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성찬예배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세상에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참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대통령께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하면서 우리나라를 부흥시키고 발전시켰습니다. 기독교내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인하여 세계의 모든 기독교국가들이 창조적인 생각과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를 가지고 나라를 참 아름답게 가꾸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보다더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진 진정한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만 가지면 사상과 종교와 철학이 될수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생각에 부정적인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서를 통하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3가정도 될수 있습니다.
1) 모든 풍랑의 원이 나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2) 예수님도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큰 물고기 속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다시 사명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사는 것입니다.
3) 한 생명 한생명이 얼마나 귀함을 알수 있습니다, 요나서는 3장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나서의 핵심은 4장 마지막 절에 있는 것입니다. 분별할 수 없는 니느웨 백성 12만명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1. 그러나
(욘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요나야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라.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들를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3절에 보니 그러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반대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맞지 않았을 때에 일어나는 행동입니다. 사사기에서보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나의 행동에 옳은 대로 행동하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언제나 마귀는 적당하게 환경을 맞추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마침이라는 단어입니다. 때마침 다시스배가 있는 것입니다.
요나는 누구입니까? 선지자요 예언자입니다. 그가 예언한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입니다.
1)열왕기하 14: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2) 니느웨에도 그러한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 백성들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백성들을 하나님이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도 사랑하지만 내 이웃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어느날 빛나와 자매님이 광고를 만들었는지, 남남으로 살던 부부가 서로 맞지 않는 모습을 그립니다. 화장실에 변기를 올려놓고, 내리고 하는 모습, 옷이 없어서 고심하는 아내에게 빨리 가자고 제촉하는 남편, 편히 수고자 하는 남편에게 어디 놀러가자고 제촉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린 광고입니다. 그런데 제일 좋은 것이 생기면 누구를 주고 싶냐하고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의 광고입니다.
어느 신혼부부가 감자를 쌈았습니다. 하지 감자를 전기밥솥에 쌈았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설탕을 찢어먹고, 아내는 소금에 찍어먹는 것 때문에 부부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문제로 목사님에게 왔습니다. 감자를 어디에다 찍어먹느냐는 문제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나는 마요네즈에 찍어먹는다고 하면서 두 부부를 멀숙하게 하였습니다. (미국선교사 What see you)
● 요나의 고집 하나님의 고집
(욘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시33:9
고집이라는 국어사전적인 말은 자기의 의견을 끝까지 바꾸지 않고 버티는 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고집을 부르는 것은 무식한 경우가 있고, 무지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고집은 무식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인간을 사랑하는 애정이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정의와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고집이 가장 쎈 사람이 바로왕인 듯 싶습니다. 성경에서는 고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하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집을 꺽기 위하여 무려 10번의 재앙을 내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피의 재앙, 개구리의 재앙, 먼지의 재양 파리 떼의 재앙, 악창과 악질의 재앙, 독종의 재앙, 독종의 재앙, 우박의 재앙, 메뚜기의 제앙입니다. 암흑의 재앙, 그리고 장자의 재앙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온 나라가 풍지박산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홍해까지 쫒아가서 모든 군사를 바다에 수장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고집를 부릴 때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억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하는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당신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당신 세운 것을 후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고집을 부릴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이 풍랑을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질병의 풍랑, 어떤 사람들에게 물질의 풍랑, 어떤사람들에게 자녀의 풍랑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풍랑을 만날 때에 내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지동현권사님예)
요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가장 평화스럽고 온순한 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때에 비둘기, 양, 염소, 소등을 드리는데 가장 흔하고 드리기 쉬운 제물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고집으로 사는 주의 종인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2번에 그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이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순복음인천교회에서 천연만년 인정받고 살고 싶어하야서 그곳에서 집을 사고 그리고 평안하게 살고 싶어서 유유자적, 속쇠를 떠나 아무런 거리낌없이 살아가는 것, 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저에게 질병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짖고 빚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3층에 때로는 4층에 개스트하우스를 하여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에 저에게 공황장애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풍랑인지 모르고 열심히 계속적으로 세상으로 나갔다면 하나님은 또다른 더 큰 풍랑이 다가오게 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풍랑을 멈추게 하는 것이 바로 회개 기도인 것입니다.
(욘 2: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욘 2: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1)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가 제비를 뽑히게 되었을 때에 내 책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큰 물고기 속으로 들어갔을 때에 그는 진정한 회개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회개기도하기 전까지는 원점에서 아주 멀리 멀리가게 되는 것입니다. 빨리 회개기도하면 원점에서 벌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순풍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욘 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욘 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욘 3: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첫 번째 임할 때에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였지만 두 번째 임하였을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격게 되고 풍랑을 만나게 되면 늘 자기 중심적에서 하나님의 중심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때때로 고난을 주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요나의 전반기 삶은 왕구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이고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위협을 하는 니느웨를 구원하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풍랑이 일고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큰 고기뱃속까지 내려가는 어려움을 격게 되었을 때에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변화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나는 것은 하나님이 요나의 반항으로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집념을 이루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고 계속 버티면 우리만 고생하고 우리만 힘든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셨습니까? 우리 한국목사님이 미국의 멘허탄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세요 미국사람들 하고 소리를 높이면 그들이 듣겠습니까? 여러분 필리핀 목사님이 한국 명동에 와서 한국사람들이여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습니다 하면 듣겠습니까? 약속이고 미개한 나라의 목사님이 회개하라면 그 목소리를 듣겠습니까? 대부분 별 미친 사람들이 다있네하고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요나의 목소리를 통하여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 시켰습니다. 그리고 요나의 목소리를 듣고 통회하고 자복하며 왕부터 시작하여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목소리르 듣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회개하였습니다.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서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서 회개하였습니다 대신들도 그리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였습니다.
● 옥호열 선교사 (미국이름으로(Harold Voekel))
- 한국전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경남 거제엔 수만 명의 인민군 포로들l 수용되어 있었다. 이들 포로들 중에는 골수 공산주의자들도 있었고, 공산주의를 싫어했으나 억지로 인민군으로 끌려나왔다가 포로가 된 소위 반공포로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주의 골수분자들이 난동을 벌여 포로 수용소장을 납치하기도 하고 반공포로들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하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일까지 발생한 바 있다. 이와 같이 포로 수용소 안이 살벌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고 한다. 이 수용소의 영어 통역장교로 일하고 있던 옥호열 선교사가 밤하늘 중천에 달은 밝고, 별들을 빛나고 해서 막사 밖에 나와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야외 화장실에서 웬 포로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옥호열 선교사가 울고 있는 포로를 찾아가서 무슨 사연이 있기에 화장실에서 울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대뜸 그 포로의 말이 ‘이 놈이 죽일 놈이지요.’ 하더란다. 그러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을 놈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으니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내 아내는 이북에서 교회를 열심히 나갔지요. 그런데 나는 내 아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마누라가 집에만 오면 귀가 따갑도록 불러대는 그 찬송소리는 더욱 듣기가 싫었지요. 그 찬송 부르는 소리가 너무나 듣기가 싫어서 아내를 야단도 치고, 때리기도 하고 심지어 찬송 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인두로 입을 지져놓기도 했지요. 그런데 데었던 입술이 회복된 후엔 똑 같은 찬송을 부르는 데 그 찬송은 허구한 날 똑 같은 찬송이니 얼마나 듣기가 싫었겠어요. 야 예수에게 미치면 저토록 무서운 독종이 되는가 보다. 나는 내 아내를 예수에게 빼앗기고, 나는 오직 껍데기 마누라와 사는가보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인민군으로 끌려나왔고, 참전하자마자 유엔군에게 포로가 되어 이곳 거제도 수용소에 오게 되었지요. 그러나 수용소에서 좌익과 우익간의 폭력과 살생이 거듭되는 생지옥과 같은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미군 군목이 나타나서 우리 막사의 포로들을 운동장에 한 줄로 세워놓고 여러분 중에 북에서 내려오기 전에 교회에 나가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오른쪽 열로 서시요. 하더란다. 이때 순간적으로 교회에 나가던 사람에겐 어떤 좋은 일이 생기고 살 길이 생길 것 같아서 자기도 오른쪽 대열로 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군목이 교회를 나갔다면 그 증거로 찬송을 불러보라고 하더란다. 자기 앞에 서 있던 사람 중 어떤 이는 통과가 되고 어떤 이는 탈락되기도 하는데 자기는 교회에 나간 일도 없고 찬송도 모르고 공연히 거짓이 들통 나면 더 큰 벌을 받지나 않을까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데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오른 고 하니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야단을 맞으면서 부르고, 매를 맞으면서도 애창하던 그 찬송이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더래요. 자기 차례가 되자 자기는 목청을 돋우어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까지는 불렀는데 다음 가사는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더란다. 364장 1절 후반부는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 하면서 주께 더 가까이 나가기 원합니다.”인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데 문득 어떤 생각이 나는고 하니 그렇지 지금 내 앞에 있는 군목은 미국인이기에 한국말을 모리니 임기응변으로 이 위기를 면해볼 심산으로 “다음은 몰라도 나 살고 싶구나.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끝을 맺으니 그 군목의 입에서 OK하며 통과시켜 주더란다. 이때부터 자기는 새로운 막사에서 좌우익간의 폭력의 위협도 사라지고 예배도 드리고, 대우도 달라져 살맛이 나더란다. 그런데 오늘 저녁 휘영청 밝은 저 달을 보니 저 북녘 땅의 나의 아내도 저 달을 바라보며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비록 내가 포로 신세지만 좌우익간의 폭력과 살생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다 아내의 신앙 덕분이구나 생각하니 그 아내가 그리워지며 눈물이 나며 마침내 대성통곡을 하게 된 연유이지요’ 하더란다. 이 고백을 들은 옥호열 선교사는 후일 그를 신학공부를 시켜 마침내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찬송의 위력은 참전했다가 포로 된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켜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인도하는 놀라운 위력이 있음을 기억하며 찬송하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참고, 하늘빛교회 설교 예화 참조)
4. 네가 수고하고 이끼는 박넝쿨도 아키는데 12만명을 아끼지 않겠느냐
(욘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은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12만명과 가축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그러한 마음을 모르고 오직 자신의 나라에 임장에서 생각하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만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일본과 같은 실정입니다. 2018년 기준으로 1억 2천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인원이 예수님을 모르고 죽게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의 성도와 주의 종은 일본의 한 만행이 정말 싫어서 그들을 위하여 전도하지 못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인간이 예수님을 믿으면 절망 싫은 것처럼 요나의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하여 요나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리고 요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본을 불쌍히 여시기고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 30년 전에 같이 공부했던 요이찌 사토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정말 예쁘장한 공부하려온 조안나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남학생들이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친구와 결혼한다고 하니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7월 29일날 2년동안 고생하다가 암으로 죽은 것입니다. 마음이 정말 안되었습니다. 일본에서 많이 고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사모에게 감사하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살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도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목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과 우리성도들에게 감사하게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사모가 열심히 기른 비트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모릅니다. 요즘 다유기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고 잘 자라는 것을 보고 행복해하였습니다. 감자를 캐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말못하는 생물도 잘 자라는 것을 보고 행복해하고 말못하는 움직이는 동물 강아지와 고양이를 보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데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고 창조하신 백성들을 보고 얼마나 행복해하실까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교회에 함께한 원당순복음꿈이 있는 교회가 1년동안 성장되지 않았을 때에 새은이는 당하감리교회로 가고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이 마침내 외식을 하러 만두집을 가게 되었을 때에 주안에서 이사온 성도가 교회를 찾게 되었고 그 권사님의 가정으로부터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행복해 하는 목사님과 사모님의 모습을 보니 저까지 행복해 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