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7장 12절 하늘문이 열리고 3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
-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 서 序
하늘문이 열리고 세번째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문이 열리고, 야곱은 벧엘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오늘 솔로몬의 성전을 건축하고 하늘 문이 열리는 기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2026년 말의 해에 성도님의 가정에 하늘문이 열릴까 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올해는 한 분의 성도님도 하늘이 열리지 않는 성도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 성전에서 하늘문이 열립니다. 12절에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 이 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성전을 삼았으니
솔로몬이 성전 봉헌 기도후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하늘 문을 닫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문을 닫는 것은 구체적으로 비를 내려주시 않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비유를 샨사 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열리는 말씀을 첫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책 “기도가 인생을 바꾼다”는 윌리엄 파커(William Parker)와 세인트 존스(C. G. St. Johns)가 함께 쓴 책에 기도의 영향력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은 기도의 효과를 시험을 통하여 증명한 최초의 책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브레인하우스, 2006년 2월 15일에 발행, 총 335쪽. 기도는 특별한 사람이나 거룩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데 과학적으로 어떤 데이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히 편두통이나 심장병과 같은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기도의 영향을 관찰했습니다.
세 가지 주요 접근 방식을 비교했는데,
심리요법(Psychological therapy): 일반적인 심리치료를 통해 변화를 살펴보는 방식
잠자기 전의 기도(Prayer before sleep): 일상생활 속에서 잠들기 전에 하는 기도의 효과를 측정하는 방식
정해진 시간에 치유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Earnestly praying for healing at a fixed time): 집중적이고 의도적인 기도가 질병 치유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방식
윌리엄 파커(William R. Parker) 박사는 Prayer Can Change Your Life)에서 언급된 실험 결과, 체계적인 기도를 통해 치유 효과를 본 확률 (성공률)은 72%입니다. 파커 박사는 1950년대 미국 래드랜즈 대학교에서 질병을 앓고 있는 45명의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9개월간 실험을 진행했으며, 각 그룹의 개선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도 요법 그룹 (72%): 정해진 시간에 심리학적 통찰을 결합하여 체계적이고 간절하게 기도한 그룹으로, 가장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심리 치료 그룹 (65%): 기도 없이 전문적인 심리 치료만 받은 그룹입니다.
막연한 기도 그룹 (0%): 구체적인 방법이나 통찰 없이 매일 밤 습관적으로 혼자 기도한 그룹으로, 증상 호전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어려울 때에 교회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교회 성전 문이 잠겼을 때에도 계단에서 기도했습니다. 중고등부 시절에 부흥회나 동계수련회에 참석하여 기도한 기억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놀라우신 영적인 체험 방언과 치료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군 생활 할 때에는 1군단 최세창 군단장이셨을 때에 고참의 구타를 참으면서 기도할 였을 때 군생활을 잘 맞칠 수가 있었습니다.
왜 성전인가? 역대상 3장 1절에 모리아산 (아브라함과 이삭), 다윗 (아라낫 타작마당), 솔로몬의 성전짖는 곳, 예수님의 십자가상, 그리고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그리고 그곳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성원순복음교회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교회가 잘못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하여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에게 복음을 전달하셨습니다. 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마다 고유의 가지고 있는 전통과 생활 습관으로 복음이 토착화하는 과정 속에 복음이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초대교회 부터 복음의 본질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이 계입하셨습니다.
1) 최초 예루살렘 공회 (사도행전 15장)
공회의 안건은 이방인들이 구원함을 받기 위하여 유대인의 율법과 할례를 지키는 문제였습니다. 오랜 톤의 끝에 야고보 사도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비롯한 유대인의 율법을 강조하지 말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다는 복음입니다.
최소한 구원의 조건만 제시하였습니다.
1) 우상의 더러운 것 (우상의 제물)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2) 음행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성적으로 부도덕한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3) 목매여 죽인 것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 규정에 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결정으로 사도와 장로들에게 편지를 써서 바울과 바나바, 실라를 통하여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 형제들에게 전달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8절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라”
2) 니케아 종교 회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313년 이후에 니케아 공의회(325년) 공의회는 기독교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전환점이 된 회의입니다.
황제가 제국 내의 기독교 통합과 안정을 위해 소집했고, 동방과 서방 교회의 주교들이 모여 (250명-318명)의 주교들이 참석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우스 장로가 “예수는 신이 아니라 피조물에 불과하며,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이단으로 선언되었고, 아리우스 본인을 포함한 세 명의 주교가 끝까지 아리우스파를 옹호하다 파문당했습니다.
니케아 신조를 채택했는데 성부와 성자는 한 본체임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삼위일체론의 기초를 놓는 결정입니다.
3) 현대의 종교 회의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 말고 순수한 기독교 복음주의 모임단체는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을 주도로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197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1차 국제 복음화 대회를 열개되었습니다. 이 때에 조잔 언약을 발표하였습니다. 1)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2) 복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명확히하고, 선교와 전도를 통하여 복음 전파를 행야함을 강조하셨습니다.
4) 마닐라 선언문(The Manila Manifesto): 1989년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 대회의 복음주의 신학을 더욱 확고히 하였습니다.
5) 케이프타운 서약(The Cape Town Commitment): 2010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 제3차 로잔 대회에서 세계 선교의 새로운 과제들을 다루면서, 복음 전도와 함께 정의, 빈곤, 환경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기독교인의 책임과 역할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6) 서울선언문 2024년 9월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제4차 로잔 대회가 열렸습니다.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이며,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많은 선교 단체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14년 만에 다시 열리는 대규모 국제 대회로, 급변하는 글로벌 사회 문화 속에서 선교의 새로운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모색하는 귀한 자리가 되고 있어요.
예수님의 전한 복음은 한 복음인데 12사도들에서 복음이 증거될 때에 사회적, 문화적, 지리적인 이유로 다른 복음으로 증거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이집트에서, 남미에서는 자유주의적인 복음으로, 한국에서 토착화 하는 과정속에서 다른 복음으로 증거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을 증거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할찌라도 오직 증거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증거되어야 합니다.
- 하늘문이 열리기는 기도
1) 첫번째 조건은 내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역대하 7장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합니다. 백악관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통령 자녀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청와대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통령 식구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예수님을 잘 믿는 나라와 민족이 복을 받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왜 일본이 복을 받았나요? 일본의 순교숫자가 엉청납니다. 일본의 기독교 순교 숫자는 수천,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셀 수 없이 많은 신자들이 믿음을 지키다 순교하셨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순교숫자는 최대 5만명 정도입니다. 한국교회 300년 동안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하였습니다. 6.25 전쟁 당시 순교한 성도는 최소 1,158명으로 집계 한국전쟁 70년 후에도 400여 명의 순교자가 추가로 인정되는 등 계속해서 희생자들의 신앙이 기억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우리 가족들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식구들이 올해는 다 구원함을 받고 천국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사야 59장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2)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역대하 7장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으면 그것 처럼 화나는 일이 없습니다. 자녀들의 불순종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가장 화나는 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사야 1장 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기도하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주님을 고백하면 믿음으로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으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왜 서울을 찾아옵니까? 세계열방들이 우리나라의 물건들을 구매하려고 합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새벽마다 우리 교회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정우 배우가 이렇게 이야기한 짤을 보았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회개는 누위침이 아닙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계속 음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계속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정직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믿으면서 계속 술과 담배로 살아가면 잘못된 것입니다. 회개는 뉘우침이 아니라 돌아서는 것입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의지가 약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못합니다. 항상 악한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적극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몰라내고 강한 의지로 믿음으로 부정적이고 잘못된 것을 잘라내야합니다.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영화)
메타노이아(Metanoia)’의 뜻 헬라어로 회개라는 뜻입니다. 메타(μετά, meta): ‘~뒤에’, ‘~넘어’, ‘변화’를 의미하는 접두사예요. 노이에오(νοέω, noeo) 또는 누스(νοῦς, nous): ‘마음’, ‘생각’, ‘인식’, ‘지성’을 의미합니다. 메타노이아는 단순히 후회하고 뉘우치는 것을 넘어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완전히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성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종말 때에 오직 관심은 아브라함과 롯에게 있는 것입니다. 롯의 가족을 구원하는 일에만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한사람만 있으면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속에 얼마나 악하여도 목사님들의 가치관과 그리고 성도들의 행함으로 세상이 판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가치관과 성도님들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늬만 기독교인이고 무늬만 교회이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나입니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문제인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고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3)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역대하 7장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누가복음 18장 9절로 14절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의 자랑기도 이지만 창기(죄인)와 세리(매국노)의 기도는 겸손한 기도이고 자신을 낮추는 기도입니다.
바리새인의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태도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리는 당시의 사회적으로 죄인취급받는 사람입니다.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하면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4절의 말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반면 바리새인은 토색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가 아니요 자신은 일주일에 두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자라고 자랑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교만이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의 가장 큰 적은 공로의식입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서운한 마음입니다. 내가 얼마나 투자했는데, 나를 인정하지 않아줘 교회가 목사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줘 하면서 원망하면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서 하늘문이 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구유 정신을 배워야합니다.)
4) 하나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고처주십니다.
역대하 7장 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을 고처주십니다. 우리의 땅 대한민국을 고처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교회의 땅을 고처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의 땅을 고처주십니다. 나의 마음의 땅을 고처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밭이 길가의 밭이고, 여러분의 마음의 밭이 돌짝 밭이고, 여러분의 마음의 밭이 가시덤풀이면 식물이 자랄수 없습니다. 마음의 밭을 기경해야합니다.
“마음의 밭을 기경하라” 우리의 영적인 상태, 즉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잘 뿌리내리고 열매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으로 가꾸고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기경(起耕) 이란 농사에서 밭을 갈고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씨앗을 심기 좋게 다듬는 작업입니다. 딱딱하고 굳은 나의 마음으로 부정적인 돌멩이나 가시덤풀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씨앗을 마음에 뿌리면 말씀은 생명이기 때문에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