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5장 1절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소서 (떠나가게 하셨다)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널 때에 모맥 거두는 시기였으므로 물이 언덕까지 넘치는 시기였습니다. 이 넘실대는 요단강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건너가려고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법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에서 올라오게하라,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강물이 갈라지게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 놀라운 현상들은 모세의 시대에 홍해의 사건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바다와 강의 차이가 있지만 그 놀라운 일들이 이스라엘 다음 세대에까지 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기념하고 하나님과 언약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사는 것인데 다른 어떠한 증표가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할례입니다. (세례와 성찬)
처음 할례는 아브라함의 집안 남자들만 행했던 의식입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큰 자랑 거리였고 꼭 행해야 하는 의식이였습니다. 이방인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 위한 의식이기도 합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세겜땅의 사람들과 함께 살려고 하였을 때에 그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의식을 거짓으로 행하게 하므로 그들을 도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례는 신약시대에 와서 구원의 상징이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의 시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의 상징과 같이 여겨지는 것이 바로 할례의식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마음의 할례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도 마음의 가죽을 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렘4장 4절)
할례의식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고 나면 가나안 땅에 있는 일곱족속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전쟁을 하게 되면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명하게 하였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였는가?
  2.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1) 이스라엘 백성들의 430년의 종살이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나왔는데 아직도 종의 습성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동안 하나님의 신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맞보라고 40년의 광야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단을 건너가게 하셨고 할례를 행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애급에서 종살이하는 창피한 수치가 이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그 수치가 굴러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단강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요단강 건너가 몇칠 후 만나리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이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종살이에서 죽고 악한 습성에서 죽고 못된 행실에서 죽고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말씀하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죄의 수치가 요단강에 교회에서 죽음으로 수치가 떠나가고 이제는 가나안의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대한민국과 대한민국교회의 수치
우리민족이 이제는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 광야를 건너왔는데 선진국의 문턱으로 들어서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모든 백성들이 그 동안에 수치스러운 일들을 다 걷어내고 하나님 앞에서 가나안 땅을 살게 하시는 분명한 이유를 우리는 발견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문제입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우리 대한민국과 미국, 일본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100만에 복음의 불모지에서 20%이상 기독교 국가된 것은 전 세계에서 유일 무일한 국가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기도하고 그리고 새벽기도회가 있는 나라입니다. 얼마나 부흥했는냐! 세계 50대 교회 중에 대한민국이 23개나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교회는 급속히 노령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65세이상이 30% 이상이고, 어느 교회는 청년회장의 연세가 57세라고합니다. 목회자가 물량주의와 번영신학과 사마즘적인 교회성장에 목매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의 신뢰도는 천주교가 43%, 불교 34%, 기독교가 23%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형교회의 메스콤의 보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정적인 건전성이 약하고, 교회의 세습과 여러 가지 지탄의 내용들이 우리 한국교회의 아픈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3)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의 수치
우리교회가 청년도 있고 성가대도 있고, 유년주일학교와 청소년 수련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어른들 밖에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수치스러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수치를 굴러가게 수치를 제거하는 일이 우리의 앞에 놓여있습니다.
  1. 수치를 굴러가게 하옵소서 (수치를 떠나가게 하옵소서)
1) 창세기 30장 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야곱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장자의 욕심, 그리고 사랑하는 라헬에 대한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라헬을 위하여 14년동안 일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라헬은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았습니까? 자신의 언니와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 야곱입니다. 누구에게 문제가 있었을까요? 자식 낳기 경쟁을 하고 있는데 언니는 4명 낳을 동안 자신은 한명도 낳지 못하고 야곱의 첩에서 낳은 자식들이 10명까지 낳을 동안에 자신은 한 명도 낳지 못하니 이것은 누구의 문제입니까? 바로 라헬의 문제입니다. 이건 병원에서 검사해보지 않아도 아는 내용입니다.
이러니 라헬에게 얼마나 큰 슬픔이였겠습니까? 경쟁에서 지는 부끄러움이 얼마나 큰 근심이였습니가? 울며 하나님게 부르짖었겠지요? 우리나라는 일본과 싸우면 이기고야 말겠다는 승부근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만큼 우리나라가 성장하는데 일본이 큰 정신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반드시 이긴다. 전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둘째로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강하게 된 것은 군대의 역할이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대에 가면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까라면 까는 것’ 입니다. 이 말 뜻은 하라면 하는 것이지 무슨 변명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박정희 대통령, 김용기장로님, 조용기목사님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부흥하는 이유가 바로 경쟁입니다. 선의 경쟁입니다. 믿음구역과 사랑구역의 경쟁이 필요합니다. 전도의 경쟁입니다.
라헬의 예를 통하여 수치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바로 성원순복음교회의 성도들이 새가족들을 만들어 내야하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날씨가 조금만 따뜻해지면 저도 함께 전도하려고합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안되다고 하면 안됩니다.
2) 요한복음 11장 3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돌을 옴겨 놓은 사건입니다. 수치를 굴러하게 하시는 사건과 조금 먼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이 나사로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릴 계획을 분명히 갖고 있었습니다.
1) 요한복음 11:11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여기서 “잠들었다”라는 것은 죽었다는 의미이고 “깨우러 가노라”라는 것은 “죽은 사람을 살리겠다”라는 뜻입니다.
2) 요한복음 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3)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릴 계획을 가졌지만 한가지 작은 실천을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돌을 옴기는 일이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무덤은 동굴의 문을 막아서 만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무덤 앞에 서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십니다. 흙으로된 무덤이나 동굴로 된 무덤에 돌을 옴기는 일은 2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믿음이 없지만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거역할 수 없어서 돌을 옴겨놓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믿음이 없이는 옴겨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있지만 그들에게 그렇게 될수 있다는 믿음이 아주 작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르다는 이렇게 주님께 아룁니다. 오라비가 죽은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 헛수고를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돌을 옴기라는 것은 예수님이 돌을 옮길 힘이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해야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성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10분, 1시간, 2시간, 예수님은 그들의 행동을 보셨던 것입니다.
  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여러분들과 저희들은 수치의 돌을 부끄러움의 돌을 옴겨 놓아야합니다. 믿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성원순복음교회와 여러분의 삶속에서 죽은 몸과 같은 여러분들의 몸이 치료를 받기 위하여서는 먼저 믿음으로 여러분의 문제와 죄를 옴겨야합니다.
  1. 우리의 수치를 제거하는 방법 (주님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주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왜 참으셨습니까? 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소서”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 힘으로 질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기쁨 때문에 질수 있습니다. 그 기쁨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든 인류의 죄악과 질병의 저주를 청산시키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해산하는 어머니는 해산이 끝이 아님을 압니다. 해산 후에 있을 자녀를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면 해산의 고통은 참을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가 끝이 아님을 압니다. 공부 후에 있을 성공과 성취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부의 어려움을 참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에서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루한 광야 뒤에는 가나안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그 길을 걸으며 요단까지 왔습니다. 수치를 굴러가게 수치를 떠나가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야합니다.
마지막 잎새에는 폐렴에 걸린 존즈가 나옵니다. 존즈는 살려는 의지를 가지지 못하고 창 밖의 잎만 세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호해 주는 친구 수에게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고 말합니다. 의사는 존즈의 희망만이 그녀를 살릴 거라고 말하지요.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내린 그 다음날 존즈는 창문을 열어 달라고 합니다. 창문을 여니 벽돌 담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으로 희망을 가진 존즈는 병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베어먼 노인이 죽은 날 이제 활기를 되찾은 존즈에게 말해줍니다. 바로 그 마지막 잎새는 노인이 남긴 마지막 걸작이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책에서 느낀 것은 어린 소녀가 작은 잎 세를 바라보고 소망을 갖고 치료를 받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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