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장 3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아침마다 저는 극동방송을 듣습니다. 나사렛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컬럼입니다.
1967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연합군사이에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을 ‘6일 전쟁’이라 부른다. 이스라엘의 인구는 300만이었고, 적군은 1억이 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불과 6일 만에 항복시킨, 세계 전쟁사에 유래 없는 전과였다.
이스라엘이 아랍과, 6일 전쟁을 치를 때에 일어난 일화다.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 총장이 유대인 학생들과 아랍인 학생들을 모아놓고, 당부를 했다.
“자네들의 고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는데, 자네들은 동요하지 말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학기말 시험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네.”라고 부탁을 했다.
며칠 지나고 나서 유태인 학생들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디 갔는지 알아봤더니 유대인 학생들은
“지금 우리 고국에 전쟁이 났는데, 우리가 편안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느냐”라면서, 나라를 위해서, 총을 들고 싸우기 위해서, 고국으로 다 짐을 싸들고 돌아갔다.
총장은 또 아랍인 학생들을 찾았더니,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랍인 학생들은 어디 갔는가 물어봤더니, 본국에 차출명령을 받을까봐, 무서워서 다 은신해 버렸다고 하였다. 그 전쟁의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이다.
한번은 이집트의 대공포가, 이스라엘의 전투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 추락한 비행기에 가보니, 놀랍게도 조종사가 만삭된 임산부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인과 어린 아이만 제외하고는, 만삭된 임산부까지도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니 승리하게 되었다.
이번에 4월 17일 세월호 승객 475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가게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선원과 승객들이 배안에 있을 때에 배 밖으로 나오라고 명령하였어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죽지 않았습니다.
6월은 나라사랑의 달입니다. 나라를 어떻게 사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나라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제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배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현장을 헤처나가는 것이 나라 사랑입니다.
이번에 선거를 통하여 또 속상한 것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입니다. 불평을 하고 원망은 하지만 선거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나라가 전쟁이 날때에 젊은 이들은 나라를 위하여 싸울 것이다. 30%도 되지 않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지난 주일에 그래도 희망에 대하여 설교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가 사랑이라는 역설적인 설교를 지난 주일에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로 귀한한 내용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여러분 죽어가는 제벌 총수보다. 희망이 있는 유학생부부입니다. 그들은 쓰레기장에서 중고 쇼파를 둘이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부부의 웃음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망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은 감동받은 자에 의하여 이루워집니다.
역대하 36장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고레스는 어떤 사람인가?
구약 당시의 고레스왕을 살펴보면, 바사(페르시아)제국의 건설자로서(재위 BC 559~529),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이라고도 불리우며(캄비세스 1세의 아들), 헤로도토스의 문헌에 보면 생후 즉시에 산중에 버려져 이리의 젖으로 자랐다고 한다. BC 559년 안샨왕이 되었으며, BC 550년에는 아스티아게스를 쳐서 메대(메디아)를 멸망시켰고, BC 546년에는 리디아의 도읍 사르디스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연대 즉 BC 538년 갈데아(신바빌로니아)를 멸하여 바벨론에 잡혀 있던 유대인들이 이 때 해방받게 되었다.
성경학자들이 말하는 고레스가 왜 감동을 받았는가?
1) 첫째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2) 그가 믿고 있는 조르아스터교의 교주인 짜라투스라가 선정을 베풀라고 조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그가 자라온 환경이 열악함으로 속박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쩨든 하나님이 주신 감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름을 부음받은 적도 없습니다. 이방인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믿는 사람도 감동을 주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을 도우라고 감동도 주십니다. 그래서 고레스를 이사야는 나의 목자라고 표현하고 있고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4:28)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면서부터 동족의 참소를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고레스왕부터 시작하여 아하수에로왕, 아닥사스다 왕에 걸처 다리왕 6년에 성전 건축이 완성됩니다.
성전을 건축하도록 시작한 사람이 바로 고레스입니다. 고레스를 감동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아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시작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성원순복음교회를 부흥하게 하시는데 우리 모든 서울과 대한민국의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이곳으로 오게하옵소서. 하나님이 우리성도들의 사업장을 도와주시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셔서 감동하셔서 일을 잘 되게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교회가 중요합니다. 우리 평강이가 작은 아버지 집에 용역회사인 효성인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아버지가 왕창 망해서 힘들어 하고 있을때에 우리 개척 교회와서 한 달간을 머물면서 교회의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천안으로 내려가서 철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리고 철거와 용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혜와 감동을 주셨던 것입니다.
지난 2002년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으로 인하여 감동받았습니까? 왜 시청앞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응원했습니까? 우리 나라가 동양인의 체격조건으로 4강까지 갈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드벤테이지 아닙니다. 일본도 같이 치루워졌기 때문에 일본은 안되고 대한민국만 되는 것입니까? 바로 리더쉽입니다. 히딩크라는 감독이 선수를 감동시키고 대한민국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감동하면 모이게 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감동하면 자신에 있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많은 책들이 나오지만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동 받은 책들은 돈이 얼마가 들어도 그 책을 일고 감동을 받습니다. 좋은 영화를 왜 사람들이 보게 됩니까? 감동하고 스릴과 그리고 감동이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설교도 감동이 있어야합니다. 설교는 예언입니다. 에스라 5장에서 새벽기도회 시간에 선지자 학개와 설교자 스가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예언을 받고 다시 성전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우리 주의 종들은 정치에 관여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주의 종들이 무엇을 해야하는냐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의 지도자들에게 감동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을 하게 한 것처럼 이 백성들에게 다시 일어서도록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땅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땅 가운데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른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에 세례를 받은자가 삼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얼마나 베드로의 설교에 감동이 되었으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모여서 떡을 때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서로 자신의 소유와 재산을 팔아서 성전에 드리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지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도 고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감동을 어떻게 받습니까? 억지로 할 수없습니다.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노원순복음교회 목사님의 책중에 전도는 감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전도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수 없습니다. 여 선교회에서 부침개 전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목구멍이 열려야 마음이 열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침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즐거움이 있어야합니다.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성전을 짖는데 억지로 들지 않고 예물을 기쁘게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감동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수있는가? 내 속에 기쁨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됩니다.
내 속에 기쁨이 없으면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헌금도 억지로 하고, 감사도 억지로 하고 봉사도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성미를 들이는 일이나 음식을 봉사하는 일이나,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일을 억지로 인색하므로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여 헌금하는 것이 하나님의 감동이 아닙니다.
남이 볼때는 헌금을 100000원하고 다른 사람이 볼지 않을 때는 1000원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감동을 받은 성도들이 성전 건축 헌금을 서원하고 있었습니다. 장로님 한분이 말씀하시기를 성도들 중 집 두채 있는 사람은 한채를 성전 건축에 봉헌하기로 합시다. 모두가 큰 소리로 아멘했습니다. 이번에는 마차 두 대 있는 성도들은 한 대를 드립시다. 이번에도 모두들 큰 소리로 아멘했습니다. 이번에는 자동차 2대 있는 사람…..아멘! 이번에는 소 2마리 있는 사람…..아멘!
이때 한쪽 구석에서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났습니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모두들 이렇게 자원하여 많은 것을 드리는데 저도 드리겠습니다. 저는 닭을 두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그 중 한마리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아멘을 안합니다.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그렇게 큰 소리로 아멘하고 박수쳤던 성도들이 “그건 안됩니다” 하고 반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구요? 그것은 그 교회에는 집 두채 있는 성도, 차 2대 있는 성도, 마차가 두 대 있는 성도, 소 2마리 있는 성도는 아무도 없고 모두가 닭만 수십마리씩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 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사도바울은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열 번 백 번 죽어도 싼 죄인인데 주님께선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법을 어겼으니 법대로, 죽으라 했는데 주님께선 저보고 다시 살라 하십니다. 아픔과 슬픔만 드렸는데 다시 한번 시작해 보라고 생명의 문 열어주셨습니다. 이 은혜 어찌 갚아야 하나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나요 가진 것 없어 드릴 것이 없는데 덤으로 주신 삶 이제 나를 죽이며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만을 사랑하며 살렵니다.”
이 시는 사형수였다가 예수님을 믿고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전도하기 시작한 김진태 씨의 시입니다. 그는 1992년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 중이었는데, 한 목사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영원히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사형 집행만을 기다리던 그는 이 기쁜 소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어떻게 변화되었느냐. 며칠 후, 그는 사형장에서 자신이 매달려야 할 밧줄이 예수님의 목을 묶어서 하늘로 달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의 사형밧줄에 예수님이 달려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는 그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나서 무릎을 꿇고 독방에서 사흘 밤낮을‘엉엉엉..’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아버지를 죽인 죄인입니다.” 친아버지를 죽였어요.“저는 아버지 살해한 죄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나 같은 하찮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 죄인의 죄를 예수님이 짊어진 것을 보고 그는 완전히 변화되어 언제나 주님을 먼저 생각하며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주위 교도관과 재소자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전도한 재소자가 10년 동안에 600여 명이 되었습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
바로 이 김진태가 바로 여러분과 나 아닙니까? 우리가 다 사형 언도를 받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데 우리 대신 죽으려고 예수님이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태어나시고 인간으로 사시고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우리 죄를 청산하시고 우리 불의와 추악을 청산하시고 우리 질병을 다 갚으시고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시고 사망과 음부를 다 멸하시고 우리에게 용서와 의의 은혜를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은혜를 치료와 건강의 은혜를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은혜를 부활 영생천국의 은혜를 주셔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는 은총을 베푸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 속에 모시고 변화가 되고 꿈을 못가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지난 2002년 12월 31일 이 김진태씨를 교도소 안에서 선행과 주위 사람들의 탄원에 힘입어 사형수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도록 도와주셨고 그는 ‘담 안의 전도자’로써 지금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좋은 열매 맺을 것을 끝까지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면 죽음에서 건짐 받고 놀라운 우리의 미래를 꿈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해 주셨는데 내일 꿈 안꿀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에 의해서 내 마음 속에 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죄수들에게 내리는 형벌 한가지 일을 계속 반복하도록 하는 형벌입니다. 물통 두 개를 갖다 놓고 이 물통을 여기에 붓고 또 이 물통 그 자리에 또 붓고 이것을 1년 365일 계속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구덩이 파는 것을 시킵니다. 그리고 다시 매꾸는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꿈도 희망도 용기도 가질 수 없는 좌절과 고통을 주는 형벌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꿈과 희망과 기쁨을 잃어버리면 살아갈 의욕을 상실하고 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인생의 목적을 찾아 담대히 나아가야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물들은 남도다 지식이 많거나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만아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남이 갖지 않는 분명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않는 놀라운 감동 즉 다른 사람들을 감동하여 일하게 하는 능력말입니다. 그것도 기쁘게 하는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권력도 없습니다. 배운 학력들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감동을 통하여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에 하나님이 부워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시편 92편 4절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