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장 18절 금요철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3월 17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1.서론

저는 프로 야구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한화 이글스를 좋아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인 81년도에 대전에서 박철순 야구선수의 경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중부장로교회에서 야구 경기를 했습니다.

 

종종 야구 경기를 하면 느끼는 것은 감독이 사인을 줍니다. 그 사인대로 하지 않으면 선수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습니다. 선수가 감독의 말을 믿고 감독의 지시대로 하면 경기에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보는 것과 감독이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1. 깨어서 기도하기

사순절을 잘 지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이번 주 금요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기도도 깨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묵상하듯이 머리를 숙이고 자는 분들이 있습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눈을 뜨고 마음의 눈을 떠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베드로전서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가 가져야 할 영적 경각심과 기도의 자세를 가르칩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꾸준한 기도와 함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권면입니다.

 

  1. 오늘 본문 말씀은 기도입니다.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영적 전쟁을 위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설명하며, 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무장할 것을 당부합니다.

 

누가복음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환난의 때를 대비하여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기도를 강조합니다.

 

1) 기도는 군사 용어입니다.

저는 대대 상황실에서 병역의 의무를 감당한 적이 있습니다. 한밤중에 졸고 있는데 수원 사령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졸고 있었기 때문에 받지 못하고 영창에 갔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졸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의 세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은 “인생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장(戰場, Battlefield)”이라고 강조하며, 기도를 단순한 소원 성취의 도구가 아닌 ‘전시용 무전기(Wartime Walkie-Talkie)’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기도는 안락한 집에서 시중을 들게 하는 ‘벨’이 아니라,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사령관에게 보급과 지원을 요청하는 통신 수단입니다. 무전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냄 받은 군사임을 깨달을 때,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필수적인 무기가 됩니다. 인생이 전쟁임을 잊는 순간 기도의 절실함도 사라지기에, 매 순간 영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때는 기도가 잘 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졸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기도하지 않고 성전에 나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엎드려 기도할 때 능력이 임하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 것처럼 예수님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2)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 목사님의 통찰처럼, 기도는 단순히 간구의 목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영적 수준을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척도’입니다.

 

‘기도의 폭’이 왜 중요한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관점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3) 신분의 증명: 그리스도인의 참된 정체성은 공적인 활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기도의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기도의 깊이가 곧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깊이입니다.

 

4) 인격의 확장: 내 문제에만 머물러 있던 좁은 기도가 하나님 나라와 이웃, 그리고 세계를 향한 광폭의 기도로 넓어질 때, 우리의 인격도 주님을 닮아 성숙해집니다.

 

5) 영적 가속도: “빨리 가는 것”은 단순히 속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양과 질이 쌓여 영적 원동력이 생기는 것을 뜻합니다. 기도의 분량이 채워질 때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 나타납니다.

 

결국 “내가 무엇을 위해, 얼마나 넓게 기도하느냐”가 바로 나의 영적 현주소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지금 가장 먼저 기도의 지경(폭)을 넓혀서 품고 싶은 구체적인 대상이나 영역이 있으신가요? ‘나’를 넘어선 광폭의 기도를 시작해 봅시다.

 

6) 기도의 정체성입니다. 엄마라면 엄마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엄마의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를 위하여 5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는지 잊지 않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바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이란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폭이 넓은 사람들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도 경계했듯, 성령 없는 지식은 영혼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하게 만듭니다.

 

성경 지식이 기도를 앞설 때 발생하는 위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명 없는 지식: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소통(기도)이 빠진 성경 공부는 단순한 학문이나 철학에 머물게 됩니다.

이단의 통로: 기도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구하지 않고 자기 지성만 의지하면,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이단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교만의 도구: 기도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지만, 기도 없는 지식은 남을 판단하는 비판의 칼이 되기 쉽습니다.

 

결국 기도는 성경 지식에 생명을 불어넣는 호흡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머리로 아는 지식을 가슴으로 내려보내는 ‘기도의 무릎’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식의 유희를 넘어 하나님과의 실질적인 만남을 위해, 오늘 말씀 묵상 후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고백의 기도’는 무엇인가요?

기도의 양이 많다고 기도의 길이가 길다고 자랑하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위대한 습관이고 좋은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랑이 될 때 바리새인의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1. 모든 기도와 간구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모든 기도와 간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기도의 ‘포괄성’과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목적에 따른 입체적인 기도를 뜻합니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기도(Prayer): 하나님을 향한 경배, 찬양, 감사, 헌신 등 하나님과의 일반적인 교제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소통입니다.

 

  1. 간구(Petition): 우리가 처한 구체적인 필요나 결핍, 혹은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요청하는 특별한 요청입니다. 긴급한 상황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즐거울 때나 고난당할 때나 어떤 형식이든 가리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소리 내어 하는 통성기도, 마음속으로 드리는 묵상기도,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정시기도, 삶의 현장에서 드리는 무시기도(화살기도) 등을 전부 포함합니다. 표적기도입니다.

 

3)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말씀

내 개인의 필요(간구)를 넘어 공동체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광폭의 기도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장에서 사령관에게 보급을 요청할 때 “사용 가능한 모든 통신 채널을 다 열어두라”는 명령과 같습니다.

 

전에 필리핀 신학교 다닐 때 대전에 계신 부모님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 나 잘 도착했어요 하고 전화를 끊은 적이 있습니다. 평강이와 미국에 있을 때 통화하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통하여 무료로 하지만 예전에 001, 002를 통하여 음성 통화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돈을 내는 것으로 하지 않고 우리 부모님이 돈을 내는 것으로 하면 수신자 부담으로 하게 되면 우리 아버지는 할 말 없다 하고 끊으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통화를 하는 기도에서 할 말 없다고 빨리 끊고 나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저분이 하나님과 얼마나 친한가, 얼마나 친하지 않은가 하는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지만, 하나님과 얼마나 친하냐는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대통령과 친한 분이 있다면 대통령을 자랑하고 대통령과 자주 통화하는 분들입니다. 대통령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국민들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하여 사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통화하는 사람들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사명이 생깁니다.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다메섹 선상에서 만날 때 주님을 위하여 충성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기적을 보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아는 것(Ginosko)’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넘어선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인격적인 사귐 (Relationship) 성경에서 ‘안다’는 표현은 부부가 서로를 깊이 알듯 경험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우리 장모님을 보았다고 설명하는데 다른 분입니다. 우리 장모님은 이제 여수 평안한 요양원에 가셨습니다. 잘못 말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와 간구라고 말씀했습니다. 간구의 기도는 특별 요청의 기도입니다. 솔직하고 간절히 기도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간절함 속에 하나님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아무 일이 없을 때 기도하는 것과 문제가 생겼을 때의 기도는 다른 것입니다.

 

필리핀에서 세대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하나님 앞에 하나로 묶이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한국어권 할머니와 영어권 손주 세대가 연합하여 드리는 예배는 그 자체로 치열한 영적 전쟁이자 아름다운 승리입니다.

말씀하신 ‘통역의 고민’과 ‘주여 삼창’의 뜨거움을 담아 몇 가지 핵심을 짚어보고 싶습니다.

 

‘Lord’와 ‘Oh My God’의 차이: 영어권 아이들에게 ‘Oh My God’은 감탄사로 쓰일 때가 많아 자칫 가볍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치는 “주여!”는 나의 주인이시며 사령관이신 주님을 부르는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통역할 때 “Lord, You are our only hope!”(주님, 당신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라는 고백이 아이들의 심장에 꽂히길 기도합니다.

 

한국어와 영어라는 벽이 있지만, ‘주여 삼창’의 간절함은 영적인 전율을 일으킵니다. 언어는 달라도 “Jesus”라는 이름 안에 담긴 그 무게와 간절함을 공유할 때, 자막이나 기술적인 통역을 넘어선 성령의 연합이 일어납니다.

 

 

“당신만이 우리의 소망”이라는 고백은 막연한 신을 부르는 불교적 명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전시용 무전’입니다.

 

우리 아들 평강이의 유학 시절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많은 것을 주지 못했을지라도 어떻게 하든지 옷을 사주고 신발을 사주면 그것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간절함이 다른 것입니다.

 

  1. 성령 안에서 기도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성령의 통제와 인도 아래서 드리는 전시용 무전’을 의미합니다.

내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내 욕심이나 지혜를 내려놓고, 성령께서 내 마음을 감화시키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기도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기록된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내 소원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게 되는 상태입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사단의 견고한 진을 파할 수 없기에,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는 승리를 위한 절대적인 사명 완수의 수단입니다.

부모님과 우리의 자녀들을 함께 묶는 기도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주여(Lord)”라는 외침은 단순한 음성을 넘어 영혼과 영혼이 공명하는 생명의 언어가 됩니다.

 

로마서 8장 26절과 27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는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무엇을 요청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연약합니다. 지식만으로는 이 전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 혹은 “주여(Lord)”라고 부르짖기만 할 때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따라 가장 정확한 통역으로 우리를 대신해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 임경애 성도가 대표 기도를 했습니다.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아멘했습니다.

 

돼지 꿈을 꾸었다고 로또를 사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그것이 성령 안의 기도입니까? 아닙니다. 로또의 간절함으로 어떤 사람들은 꿈으로 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간절함이 중요합니다.

 

그 간절하고도 솔직한 고통이 느껴집니다. “이 가시를 뽑아주세요, 저 사람들을 치워주세요”라는 기도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군사의 비명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도 똑같은 기도를 세 번이나 간절히 드렸을 때, 주님은 전혀 다른 응답을 주셨습니다. (박봉례 권사)

 

남편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하면서 “나와 좀 대화하자”는 의미를 담고자 할 때는, 단순한 문을 실제로 열어달라는 행위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마음을 열어 대화할 준비를 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여보, 나에게 마음의 문을 좀 열어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잠깐 내 마음에 문을 열고, 우리 진솔한 이야기 나눠요.”

 

 

깡패의 보스가 말로 해서 움직이는 부하가 있고, 눈짓으로 해서 움직이는 부하 직원이 있습니다. 더 위대한 부하는 마음을 읽고 행동하는 부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자신의 신복으로 사용할까요? 마음을 읽는 사람을 부하 직원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도 다윗이 그 마음에 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뇌성마비를 앓는 아이가 내뱉는 그 짧고 투박한 “음-” 소리, 그 ‘신음(Groaning, 탄식)’을 엄마는 단박에 알아듣지요. 화장실이 급한지, 배가 고픈지, 어디가 아픈지… 엄마의 귀는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이의 중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탄식(Groaning)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우리가 고통 속에서 겨우 “아버지…”라고만 불러도, 성령님은 그 신음 속에 담긴 모든 사연을 하늘의 언어로 통역해 주십니다.

 

엄마가 아이의 신음을 알아듣듯, 하나님은 우리의 서툰 한국어, 아이들의 서툰 영어, 그리고 말조차 나오지 않는 눈물의 탄식을 다 알아들으십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의 말처럼,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군사가 내뱉는 신음은 사령관에게 가장 긴급한 구조 신호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 신음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주여, 주여, 주여!”와 이름 모를 신음이 바로 하나님 보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기도입니다. 세련된 문장보다, 지식인의 철학보다, 엄마가 알아듣는 그 ‘음-‘ 소리 같은 기도가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축복하시는지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결론

하물며 우리 사모는 우리 축복이(길양이) 야옹 소리에 무엇인가 알고 반응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우리의 기도에 항상 반응하십니다. *(민14: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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