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1절 – 4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부르심에 합당한 삶 이러한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먼저 부르심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부르셨습니다. 메소포타미야 우르라는 지역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낼 때에 예언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400년만에 그 종되었던 땅에서 너희 민족을 부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사람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할 때는 되지 않고 자신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이 못한다고 할때에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사야를 부르시고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어부인 베드로를 부르시고 다메섹 선상에서 바울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학생의 시절에는 선생님이 자신을 부르면 부담스럽기도하고 그리고 기쁘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어떤기쁨일까?
하나님은 어런분들을 어떤 사명도 없이 부르지지 않습니다. 분명한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목사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성도들도 자신의 일로 부르심을 주십니다. 비록 세속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직장으로 부르시고, 성원순복음교회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는 중학교 1학년 엑스포 74에서 비오느날 815일 밤에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에 주의 종이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고비들이있었습니다. 가정이 어려움이 있어기 때문에 공무원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갈까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행정학을 공부하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여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어린 시절에 부르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공무원이나 어떤 직장에서 정년을 준비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이길이 조금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이라도 감사함으로 그분의 부르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르심에 대하여 성경은 오늘 어떻게 살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합당하게 행하라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면 그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야합니다.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여전히 죄악의 종처럼 살아가고 사이비 교주처럼 살아간다면 세상의 부에 취하여 살아간다면 그것은 부름에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제가 무엇을 하려고하는자 예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합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게 예배드려야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늘 하나님의 임제를 느끼면 하나님께 열심 정성스럽게 드려야합니다.
제가 이번에 횡성군 실내 체육관과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운동회를 하면서 그곳 군수님이 이런 말씀으로 인사를 나누웠습니다. 사람은 3종류의 사람이 있다고합니다.
1) 저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저울과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익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무게를 실어주는 사람들입니다.
2) 꽃과 같은 사람입니다.
국화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을 때에만 사람들이 좋아하고 시들고 말라지면 그것을 버려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 땅과 산과 같은 사람입니다.
땅은 정직하여 무엇을 심든지 열매는 주는 변함없는 산과 같은 사람이라고하면서 우리 회성에서는 한우와 그리고 더덕, 그리고 안흥찐방이 많이 먹어주시면 감사하겠다고하였습니다.
합당하게의 헬라어는 악시오스라는 단어입니다. 이뜻은 어떤 사상이 어울림을 의미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옛날성경에는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어울리게 행동하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빌1:27)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사람들이 옷을 잘입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옷이 좋은 옷이 아니지만 잘 조화를 가지 입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사모에 말에 의하여 어떤 여선생님은 옷을 매일 바꿔입고 온다고합니다. 아마 좋은 옷을 맞이입고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집에 자신의 옷으로 가득차있다고 합니다.
저는 여성의 옷을 잘모릅니다. 그리고 색맹이기 때문에 옷에 대하여 감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양복만 알고 있습니다. 구멍난 청바지에 양복을 입었다면 조화가 잘못된 것입니다. 90넘은 할머니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면 그것또한 조화가 잘못된 것입니다.
정말 멋쟁이 신사를 보았습니다. 양복의 색깔과 넥타이 양말까지 색깔을 통일하는 신사를 보았습니다. 꼭 얼울리는 시계를 차고 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낵타를 색깔 별로 가지런히 정돈하여 조화에 맞게 입는 것을 보았습니다.
악시오스를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이와같습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야입니다. 에크라는 말은 밖으로 라는 뜻을 가지고있습니다. 레시야는 부르심을 입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밖에서부터 부르심을 입어 교회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시오스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좌화를 이루지 못하고 싸우는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교회를 왜 싸우려고 오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또한 악시오스의 좀더 강한 의미로 이와같은 뜻을 가지고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지만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여러분 죄에 지고 늘와서 울며 불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 알면도 주일성수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주일날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겸손과 온유하고 오래참음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1) 겸손
우리 성도들은 비교의식을 가지고 살지 말아야하는데 언제나 비교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른 교회는 괭장히 부흥한데 우리교회는 왜 그렇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조금만 가지고 있거나 성도가 많이 있으면 우월감을 가지고 목회하거나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만한 사람들에게 교통을 주고 안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유소에 일하시는 분을 은근히 무시고 반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음식을 배달하거나 그리고 음식을 잘 먹을 수 있도록 서빙하는 분들에게 이상하게 챙피를 주거나 모멸감을 주고 성적인 모멸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는 바로 교만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이 낮추시고 꺼꾸러 뜨리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제일 겸손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겸손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2) 온유
온유의 의미는 잘 길들여진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말입니다. 좋은 명말은 자신의 절제하고 주인이 명령할 때에 따른 힘이 바로 온유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시고 모진 고통과 모욕을 참고 이겼던 것입니다. 온유는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훈련되어 그것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은 모세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을 해방시키려고 할때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시고 잘 훈련된 상태가 되었을 때에 그를 만나주시고 그리고 그를 지도자로 사용하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온유하였습니다. 자신의 누님이 자신을 비방하여도 그는 참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므리바에서 하나님의 앞에서 온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혈기로 반석을 치므로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3) 오래참음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입니다. 사랑을 정의할 때에 오래 참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 오래참고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오래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오래 오래 교육시키고 사랑하기 때문에 물질과 정성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이 일을 하기 때문에 화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쌓이는 것입니다. 정말로 성원순복음교회가 나의 교회라고 생각하면 오래 오래 참고 기다리면서 주님의 부흥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떠나도 나는 오래 오래 참는 것입니다.
가자 오래 참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심판을 지금까지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가 오래 참지 못하기 때문에 헤어지고 싸우고 이혼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교회에서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참지 못해서 응답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래 참음으로 복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6장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자기에게 조금 맞지 않아도 우리는 참고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교회서 어떤 사람들은 찬송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씀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중요하다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패를 주지 말아야합니다. 덕을 세우어야합니다. 조화를 맞추워야합니다. 그것이 합당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서로 용납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에서 덕을 세우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3.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나라의 특징 중에 하나되가 어렵습니다. 교단이 나누워지면 하나되기가 어렵습니다. 영남과 호남이 하나되기가 어렵습니다. 한번 당이 분멸되면 하나되기가 어렵습니다. 이번에 국정교과서로 인하여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됩니다. 독일라나는 나가는 하나되는데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어는 것도 하나될 수 없습니다. 교단이, 그리고 영호남이, 나라의 남북이 하나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우분트(UBUNTU) 란 말 아세요?
그 유래는 어떤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근처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매달아 놓고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하고’시작’을 외쳤다. 그런데 아이들은 각자 뛰어가지 않고 모두 손을 잡고 가서 그것을 함께 먹었다.
인류학자는 아이들에게 “1명이 먼저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 함께 뛰어 갔지?”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우분트(UBUNTU)라고 외치며,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째서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 라고 대답했다.
“우분트” 반투족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I am because you are)”
라는 뜻이다. 이 말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강조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 분! 트!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곁에 있는 이에게 오늘 이 한마디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익숙함에 소중함을 잊고 살기 쉬운듯 합니다.
우리성원순복음교회에서 우분트 해야합니다. 잠언의 말슴처럼 임금은 없지만 다때를 지어나가는 메뚜기처럼 함께 주님의 명령을 잘 준행하므로 우리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에 하나도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민족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평양에서 함께 모여서 기도하게 되었을때에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6.25 사변으로 고통당하게 될 때에 초량교회에서 모여서 함께 기도하게 될 때에 유엔군이 이 나라를 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장 부흥 할 때가 70-80년대입니다. 그 때에 가장 많이 모였습니다. 74년동에 여의도 광장에서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이나라의 부흥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조용기목사님이 100만명을 모아놓고 기도하는데 여의도 광장에 비구름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모여서 기도하게될때에 용산만 비가 내리고 여의도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으로 하나될 수 있습니까/ 성령으로 기도로 하나될 수있습니다.
우리성원순복음교회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로 성령으로 하나될때에 우리가 능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