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 죄와 벌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Raskolnikov)(로쟈)는 대학생은 사회의 악인 고리대금업자(전당포) 할머니를 살해합니다. 매춘부 소냐를 만나게 되고 자수하게 됩니다. 법정에서 자수했다는 점과 훔친 돈을 숨겨만두고 쓰지 않았다는 점이 정상 참작되어 8년 형을 받고 시베리야로 유형을 떠납니다. 소냐는 그가 유배된 도시까지 따라갑니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내용이 소설 죄와 벌입니다.
라스꼴리니코프가 죄을 짖고 그것을 회개하는 과정를 그린 작품입니다. 사회악을 제거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살인 행동으로 죄책감과 두려움이 다가오지만 이성으로 이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소냐는 어떠한 행위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꿈속에서 아시아에서 시작된 전염병(우환)에서 퍼진 전염병이 유럽으로 퍼지는 전염을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즘적인 죄입니다.
죄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인 죄의식입니다. 그것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벌입니다. 죄에는 벌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짖지 말아야합니다.
1) 살인죄 라스꼬리니코프는 유형으로 죄값을 치루고
2) 아내를 배신하고 음탕한 삶을 살던 스비트리가일로프는 자살하게되고
3) 소냐을 모함한 루쥔은 사람들의 신망을 잃게됩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자신에게 임한다나는 것입니다.
매춘부인 소냐늘 통하여 작품 속에서는 선한 에너지를 내품고 있습니다. 유형지까지 따라간 소냐를 성녀로 미화하고 있습니다.
■ 저는 성산동 성원순복음교회가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첫째는 성미산이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성미산에 올라가 한 시간 정도 걸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마포구청 자리에 마포중앙도서관을 걸립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좋은 책을 만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중앙도서관이 그냥 책을 갔다 놓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책, 그러한 책들을 갔다 놓습니다. 그곳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 스캇 팩 교수님이 쓰신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스캇 팩은 정신과 의사이면서 교수입니다. 하버드대학에에 나와서 10년간 군에서 정신과 의사로서 경험을 하였습니다. 1978년, 마흔두 살에 쓴 첫 책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은 2005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 죄에 대하여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인류가 시작하기 전부터 공중에서는 사탄이 죄를 짖게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고 난 뒤에 창세기 3장부터 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가인이 죄를 짖게되는 것이 성경의 역사입니다.
인류역사의 끝에는 죄의 용서로 천국의 생활과 그리고 죄의 결과 지옥의 생활이 있을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검사나 판사 앞에서 죄가 죄만 아닙니다. 로마서 1장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그래서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2장 2절에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 무당, 점치는자, 미신에 매여있는 우리의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캇 팩 심리학교수는 죄를 이렇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2. 무지 때문에 죄를 짖게되는 것입니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때에는 무지의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때인 것입니다.
책의 내용 중에서 아들이 권총으로 자살 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부부가 크리스마스날 둘째 아들에게 권총을 선물하였습니다. 왜 권총을 선물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자살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한 행동에 대하여 무슨 잘못이냐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둘째 아들도 죽으라고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안연실색합니다. 참담합니다. 총을 가지고 놀지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정상적인 부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악한 부모밑에서 죄가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에게 교육을 받은 자녀들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떻게 살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죄를 짖고 있어도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믿고 있는 부모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좋은 줄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목사님은 성도들이 잘못하고 있을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싫어하고 성도들이 헌금하지 않고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러한다고 합니다.
무지를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바로 나르시즘입니다. 자기애입니다. 자기 자신에 도취 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입니다. 자신밖에 모른는 삶입니다. 자신은 완전한 사람 옳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교육을 받지 않고 훈련 받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희생 양을 찾아서 타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악한 행동을 낳기 때문에 악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악한 부모 밑에서 악한 자녀들이 낳게 됩니다. 이를 고치기 위하여 우리는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께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요즘 기독교인들이 욕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유럽이라는 나라는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기는 나라였습니까? 그런데 십자군의 전쟁을 통하여 중동을 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겠다는 청교도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크롬웰이라는 독재주의 때문에 아직도 아일랜드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나라입니까? 유대인을 얼마나 처참하게 죽였습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손을 얹고 선서로 시작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전쟁하고 이라크와 전쟁하고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쟁을 한 나라입니다.
전쟁에서 사령관이 무지하면 모든 병사들은 다 몰살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이순신장군이 수군을 이끌 때와 무지한 장군이 수군이 이끌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좋은 의사는 잘 생긴 의사가 아닙니다. 좋은 의사는 병을 잘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합니다. 좋은 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치료하는 의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얼굴이 잘생긴 의사에게 가겠습니까? 아니면 얼굴이 잘 생기지 못해도 병을 잘 고치는 의사에게 가겠습니까?
좋은 부모는 자녀들을 바르게 신앙교육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고 있는데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느 교도소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합니다. 자신의 어머니의 혀를 물었다고합니다. 도둑질을 하고 왔는데 잘했다고 칭찬하고 그 도둑질한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한 것입니다. 여러분 잘못된 것을 고쳐주어야합니다.
3. 죄는 게으름으로 부터(사랑의 반대는 게으름)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사랑의 반대는 게으름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자신이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고 그것을 고치기를 싫어하는 게으름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게으름은 스스로 행하거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하거나 발휘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게으름은 돌보지 않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싫증, 불만족의 Ennui(아뉘), 독일어로 faulheit(파울하이트), 영어로는 laziness, 한자어로 나태 (懶怠)를 게으름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잠언에서 자녀들이 악하게 되고 범죄인이 되는 것은 부모들이 훈계를 개을리 하게 대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의 부모님들은 신앙적으로 게으르지만 자녀들 교육에는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교수 중 누가 학생들에게 더 사랑받고 존경받는가? 지나치게 겸손한 교수보다 자신감과 당당함을 보이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더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연애할 때도 더 사랑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겸손하고 소극적이기 보다는 자신에 삶에 자신감을 있고 적극적일 때에 사랑과 존경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감이 있는데 게으르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마치 달란트 비유처럼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마 25:24)
한국 사람들은 혼자서는 무척이나 잘합니다. 그런데 뭉처놓으면 꼭 싸우고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혼자서 연구는 우리나라를 따라올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꼭 뭉처서 살면 문제가 생기고 사색당파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잘하는데 정치만 못하고 있다고합니다.
혼자서 당겼을 때, 사람들은 약 63kg이 평균 압력을 보였다. 3인 집단일 때 전체 압력은 160kg으로 1인당 53kg에 불과했고, 8인 집단일 때 더 심해서, 전체 압력은 248kg으로 증가했지만 1인당 압력이 31kg으로 감소하여 혼자서 했을 때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이처럼 혼자일 때보다 집단의 구성원일 때에 더 게을러지는 현상을 사회적 태만(social loating)이라고 한다. 특히 이렇게 집단상황에서의 사회적 일탈 현상을, 첫 연구자인 링겔만의 이름을 따서 ‘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라고도 한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망하는 것입니다.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이다’ 잠언에 ‘거리에 사자가 있다.’고 두려움 속으로 도피하면서, ‘히끼꼬모리’라는 ‘은둔형 외톨이’ 극도의 회피를 보이는 이들은 바로 게으름의 중독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인터넷 중독, 도박 중독과 같은 현상이 보입니다. 행동의 나태는 먼저 마음의 나태부터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3. 공감능력의 부족이 죄입니다.
왜 죄를 짖게되는냐 공감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공감능력이 무엇인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 교도소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감능력이 부족하여 그 사실을 알면서 죄를 짖는 것입니다.
처음보는 사람들을 살인하고 강간하고 죽이는 이춘재의 행동과 모습을 보십시요. 그가 사람을 죽일 얼굴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죄의식이 없고 공감능력이 부족하여 죄를 짖는 것입니다.
<세속도시>의 책으로도 유명한 하버드대 교수 하비 콕스는 그의 저서 <뱀에게 남겨 두지 않은 것에 관하여>에서 타락은 교만뿐 아니라 나태와도 관계 있다고 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책임을 뱀에게 돌림으로 책임지기를 거절했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얼마나 나쁜지 죄악인지 모릅니다. 인터넷 중독된 사람들은 게임이나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C.S 루이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안전’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도전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편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진취적이고 발전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C.S 루이스의 <스크류테잎의 편지>에 마귀들의 회의 장면이 등장한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마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를 했는데 그 주제는 어떻게 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신앙생활을 못하게 방해를 할 것인가? 이것이 주제였다. 여러 마귀들이 이런 저런 의견들을 내어 놓았지만 탐탁치 않았다. 바로 그 때 아주 노련한 마귀가 손을 들고 좋은 의견 하나를 발표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도록 합시다. 열심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열심히 읽도록 내버려둡시다. 봉사하도록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 ‘내일 하자!’ 하는 마음을 집어 넣읍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을 쓰러뜨리는 비법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제일 위협적인 것이 ‘내일 마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 게으름, 공감능력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형상입니다.
나태는 휴식과 차이 있습니다. 휴식은 재충전과 같지만 나태는 죄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삶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하여 자신이 망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공감능력의 부족입니다. 교회가 붕괴되고, 가정이 파괴되고, 결혼생활이 붕괴되는 이유가 무지와 게으름과 공감능력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형상입니다.
결론
evil은 악입니다. 이것을 뒤집은면 live입니다. live, 살다, 생활과 같은 뜻입니다. 라이브 음악, 생음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뒤집으면 악이 있고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치는 장소가 교회입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8만개 정도 있다고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키킨집도 약 8만 7천개 정도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약 5만 8천개정도 였을 때에는 다방, 커피집과 비슷하였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않는 게으름, 그리고 공감능력이 부족한 주의 종과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