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장 22절 교회의 역사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11월 첫주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1. 세계에서 유래없이 장로교회가 우리나라에 성장할수 있는 이유
1) 장로교 선교사와 감리교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2) 우리나라의 유교문화 때문입니다. 유교문화중에서 장례문화도 사람이 죽으면 모든 사람들을 학생이라고 지방을 쓰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심지어 벼슬을 못한 사람은 늙어도 계속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 공부한다고하는 의미의 학생입니다.
3) 외국에서는 목사님과 함께 어깨동무도 하고 형제 자매로 지내는데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유교 영향으로 교회내에서도 수직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장로교회 스타일인 성경을 가르치는 일들을 잘 말하고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임금, 신하의 관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가 수직적인 것입니다. 명령의 복종의 관계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권위있는 말씀에 문화적으로 맞았던 것 같습니다.
2.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 성원순복음교회까지 복음이 들어온 과정과 그리고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란 무엇인가?
에베소서 1장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의 머리는 누구인가? 장로님이 세웠다고 하여 장로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목사님이 개척하였다고 하여 목사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오후시간에 신천지에 대하여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가 교회의 머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만희는 영생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온몸에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12지파를 만들어 놓고 자신이 예수님이라고 하면서 영생한다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으면 그의 교리는 끝이나는 것입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러분 몸이 분열되면 아프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럽습니다.
저희 부부가 결혼할 수 있도록 붙잡아준 책중에 한진관 목사님의 사모님이 쓰신 책 김태열 사모의 수기 “내 모습 이대로”는 한진관 목사와 함께 당시 어려웠던 이민사회 속에서 교회를 뉴욕최대 한인교회로 성장시키는 과정을 담은 책에서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순복음권사님이 미국에 이민가셔서 뉴욕 한인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늘 목사님 성령받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나 받지 왜 나를 받으라고 하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흥회 참석하셔서 성령을 받게 되었고 그리고 방언과 하나님의 치료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흥회를 인도하시면서 어느 장로님이 이렇게 이야기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 제가 이교회에 건전한 야당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그 장로님에게 장로님 건전한 야당은 마귀가 우두머리입니다. 마귀짖 하지 마세요라고 엄하게 꾸짖어주었다고하였습니다.
3. 교회라는 것은 교회의 건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말하는데 이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불러 모으다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불러모은 모임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당이 큰 교회당도 있고 작은 교회당도 있고 교회당이 가정교회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당 교회의 건물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를 바로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가 사유제산제도입니다.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 예수님 당신의 교회이니 그 교회를 세우고 이끌어 가는 방법이나 권한도 물론 전적으로 ‘예수님 마음대로’ 정하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었습니다.
18-19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는 베드로를 헬라어로 petros 로, ‘조약돌’이라는 뜻의 남성형 단어입니다. 즉 원래 이름인 ‘갈대’(reed)라는 시몬에서 ‘조약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단어는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의 ‘반석’이란 단어를 ‘petra’라는 여성형 단어를 쓴 것입니다. 즉, 주님이 당신의 교회를 어디에 세우시느냐? 베드로, 즉 ‘조약돌’위가 아닌,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에 세운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세운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고백 가운데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베드로처럼 믿음의 교백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천하시고 부활하여서 이 땅에 40일동안 살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너희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들은 10일 동안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이 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부흥이 예루살렘과 유대 전지역과 그리고 사마리아와 아시아 전지역 유럽까지 퍼저나게 되었습니다.
4. 교회사 (AD 64)
1) 네로 황제는 황제가 된 뒤에 5년동안 가정교사인 세네카의 영향을 받아서 가난한자들을 위한 법령을 만들고 성공적인 통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되어 꿈과 향락욕에 빠져 생모와 아내 옥타비아등을 살하고 기독교인들의 급속한 확장을 두려워하여 64년 7월18일 로마시에 대 화재가 발생하였다.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었던 로마시는 6일동안 3분의 2 이상이 불에 타고 말았다. 평소 황제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있던 시민들은 이 화재가 미친 네로의 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일로 인하여 네로 황제는 화재사건에 연루되게 되었고 이 소문은 계속 확대되어 로마시 전체에 걷잡을수없이 퍼저 나갔다. 네로는 이때 로마 시민들의 민심을 안정 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화재가 발생하게된 모든 책임을 기독교 인들에게 뒤집어 씨웠습니다.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맹견이나 사자의 밥이 되거나 십자가에 처형되곤 하였다. 그러나 네로는 결국 그일로 인하여 로마 원로원의 처형결정으로 위협을 느끼자 부하 4명과 함께 어느 시골의 지하실로 피하여 도망을 갔다. 69년 네로는 체포하러온 군인들의 발굽소리를 듣고는 이런말을 남겼다고 한다.“세상에 나같은 예술가를 잃는구나” 네로는 그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긴뒤 스스로 자신의 칼로 목을찔러 자살하였다. 네로 황제의 통치 기간동안에 바울과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무덤지역이였던 카타콤에서 약 200년 동안 박해를 피하여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155마일의 길이와 같은 길이의 카타콤의 지하동굴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2) 서로마 지역에서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전투를 벌였다.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력 10만 명 가운데 5만 명을 이끌고 갈리아에서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전투가 있기 전 콘스탄티누스는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 하늘에서 이상한 물체를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빛나는 십자가로, 거기에는 ‘엔 투토이 니카(Εν Τούτῳ Νίκα)’라는 그리스어 문구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 문구는 “In Hoc Signo Vinces(이 증표 안에서 승리하리라)”는 라틴어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매우 놀랐고, 그 환상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동안 밤이 되어 잠이 들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다시 꿈에서 구세주가 낮에 본 것과 동일한 형상이 그려진 깃발을 손에 들고 나타나서 ‘이 깃발을 만들어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것이다’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꿈에서 본 것을 그렸고, 기독교 지도자들을 불러서 하나님과 자신이 본 십자가 모양에 대해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은 그는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선언했으며, 꿈에서 본 십자가를 제국의 깃발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상징은 그리스 알파벳 중 ‘카이(Ⅹ)’와 ‘로(Ρ)’를 합친 것이며, 그리스 알파벳으로 ‘그리스도’란 단어를 쓸 때 앞의 두 글자이다. 이 심벌은 후에 카톨릭교회의 상징으로 그대로 사용되었다. 밀비안 전투의 승리로 서로마의 주인이 된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를 주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324년에 로마제국 전체를 다스리는 단독 황제가 되었다.
3) 로마에서 유럽에서 기독교가 공인 된 뒤에 기독론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하여 325년 니케아에서 공의회가 열렸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주재 하에 열린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파가 승리하여 “성부와 성자는 동일한 본질(homoousion)”로써 삼위일체가 정통임을 천명하였고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아리우스의 주장의 주장은 삼위일체의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로서 후대 황제들이 아리우스파를 신복하게 되었고 유럽에 대대적인 포교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최고의 피조물이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지금은 여호와증인과 같은 교리입니다.
◉ 그레고리 1세(590년-604년)까지 14년간 눈부신 활약으로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그가 교황으로 황제의 직위를 겸하게 되기도 하였는데 황제의 직위를 겸하게된 이유는 이러하다. 또한 그레고리1세 이후 이탈리아내에서 교황의 권위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였고 야만족들이 침략하기 시작을 하였는데 이들과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앞장을 서야 하는데 롬바르트족을 방어할 책임을 교황이 맡게 되었다. 그레고리1세는 교황으로서 황제가 해야될 어려운일 까지 잘 수행하게 됨으로서 교황의 지위까지 부상시키게된 것이다. 이 교황을 통하여 천주교 미사가 정립되었고, 성가미사가 불리워지기 시작하였으면 수도원 생활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사후에 성인으로 시성되었고 로마 카톨릭교와 동방정교(1054), 성공회, 루터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마틴루터 (1517년 10월 31)
마르틴 루터가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사부(면벌부) 판매, 연옥에 대한 교황권 주장, 그리고 공로사상을 비판한 내용의 95개조 반박문을 발표로 시작된 사건으로, 부패한 교회에 대하여 오적 성경, 오직 은혜(sola gratia)와 오직 믿음(sola fide)을 강조함으로써 교회와 교회의 제도를 새롭게 개혁시키고자 했던 교회 개혁 운동이다.
5. 순복음이란?
1901년 1월 1일 미국 켄사스주 토페카라고 하는 조그만 도시에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 운동을 시작한 분은 챨스 파함 목사님입니다. 챨스 파함 목사님은 어린 시절 발에 류마티즘이 걸려서 잘 걷지 못했습니다. 그때 8살 때인가 그랬어요. 그때 어린 나이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 고쳐주시면 평생 주님 일 하겠습니다.” 그 어린아이의 기도를 주님 들으시고 그의 병을 즉시 고쳐주셨어요. 그로부터 이 어린아이가 하나님 앞에 일생을 바치기를 결심하고 기도하는데 16살 때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1900년에 토페카에 벧엘성경학교를 세우고 이제 신학생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를 하는데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때가 되어서 삼 일간 휴가를 주면서 성령 받을 때 어떤 일이 있는지를 찾아봐라. 저들이 와서 말하기를 삼일 후에 “목사님, 성령받을 때 방언이 임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성령 받고 방언 말하는 것을 사모하고 기도하자.” 그래서 그 해 송구영신예배 때 신학생 40명, 동네주민 70명, 110명이 모여서 밤새 철야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1901년 1월 1일 오전 11시쯤, 그 중에 한 학생이었던 아그네스 오즈만이라고 하는 여학생이 성령의 감동이 왔어요. “목사님, 목사님 저에게 안수해 주세요.” 그래서 목사님이 안수하는 순간 방언이 탁 터져 나왔는데 평생 배워보지 못한 중국어 방언이 나와서 삼일동안 입만 열면 중국어 방언이 쏟아져 나왔어요. 할렐루야. 그 후에 모든 사람이 다 성령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파함 목사님이 성령 받고 방언을 말하는 메시지를 증거 할 때에 그 때 휴스턴에서 와서 말씀을 듣고 배운 윌리암 시무어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윌리암 시무어 목사님은 노예의 아들로서 한쪽 눈은 멀었고 또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서 볼품이 아무것도 없는 그러한 목사님인데 성령을 받고 그 다음 1906년 미국에 L.A.에 아주사 거리에 내려와서 아주사 거리에서 성령운동을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처음 3년 동안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 10년은 계속해서 기도회를 가졌는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이곳에 모여서 기도할 때에 성령의 불이 떨어지고 병이 고침 받고 방언이 터져 나오고 여기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서 이 오순절 성령 충만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불과 100년 가까운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서 전 세계 이 오순절 성령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오억 명이 넘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왜 순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까? 순복음의 뜻은 순수한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전부를 믿는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full gospel입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신학을 하는 신학생들은 하나님의 전복음을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고 시작하여야 학위를 준다고합니다. 그들은 성경속의 말씀을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고 오직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는 것을 신학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유적인 신학입니다.
결론입니다
확증편향이란 말이 있습니다.
2014년 1월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은 일본군 장교였던 한 노인의 사명을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참전했던 그는 1945년 필리핀에서 나홀로 전쟁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1944년 겨울 250명의 병사들과 함께 필리핀 루방섬에서 임무 수행중이던 H 소위는 비행장 활주로를 파괴하여 미군의 공격을 지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미군의 막강한 화력 앞에서 궤멸되고 패잔병으로 정글로 들어갔습니다. 대다수 일본 병사들은 산에서 내려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H 소위는 정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옛 전우들이 루방섬에 찾아가 전쟁은 끝났다고 하였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원주민 마을을 습격해 약탈하고 불을 지르며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였습니다. 난처한 일본정부는 그의 가족까지 필리핀으로 보내 설득하게 되었지만 절대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30년동안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본 한교수가 소위에게 접근하여 정황 설명을 차근 차근 하였습니다. 긴 대화 끝에 소위는 마침내 투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직속상관이 와서 항복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근무지를 이탈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N 교수는 수소문 끝에 전시중 직속상관 가운데 한 사람이였던 Y씨를 찾아내었고 투항명령서를 소위에게 건내게 되었고 총을 내려놓고 본국으로 송환되게 되었습니다. 22세에 조국을 떠난 소위는 52세의 중년이 되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29년동안 지역 순찰대와 민간인등 30여명의 목숨을 빼앗고 100여명의 부상을 입힌일을 과오로 들수 있습니다.
확증편향은 좋은 방향으로는 좋은 일들이, 나쁜 편에서는 히틀러와 같은 확증편향을 가질수 있습니다. 우리는 순방향의 확증편향을 가져야합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한 확증편향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에 확증 편향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순복음이 이단이라고 하였을 때에도 이곳 성도들이 다 떠났을 때에도 확증편향으로 이곳에 남아 계속 예배드리는 자들에게 은헤와 평강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전북 김제의 대지주 조덕삼(조세형 전 국회의원의 조부)씨와의 일화는 유명하다. 이 목사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떠돌이생활을 했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집에 머슴 겸 마부로 받아들인 이가 조씨였다. 조덕삼은 어깨 넘어로 한글과 한자를 배워 교육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가 끈끈해진 것은 미국 남장로교 최의덕(Lewis Boyd Tate) 선교사를 만나 함께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1902년 ‘ㄱ’자 교회 금산교회를 짓고 그해 가을 동시에 세례와 집사 직분을 받습니다. 1907년 장로 1명을 투표로 선출할 때 교회 설립자인 조씨를 제치고 마부 출신인 이자익이 장로로 선출되었습니다. 조덕삼은 확증편향으로 그를 평양신학교에 입학시켰고 그리고 학비를 전액 부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였고 장로교회 총회장까지 역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선한일에 확증편향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