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5장 7절

성원교회

홍철기 목사

 

 

지금 한국인들이 앓고 있는 큰 병의 하나는 도무지 참지 못하는 성급증입니다. 차재호 교수는 구한말(舊韓末)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끈기가 있고 고통과 억압을 잘 견딘다’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전 한국 분들은 참는 데는 도사였습니다. 어느 때는 무지렁이처럼 얼마나 참기를 잘하는 지요? 기차나 버스를 타기 위해 3-4 시간을 길가에 앉아 기다립니다. 모진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나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눈물의 밤을 밝히면서 수십 년을 참으며 기다립니다.

 

지난번 이산가족 때도 보면 북한의 어떤 부인은 월남의 남편을 기다리며 홀시어머니와 자식들을 데리고 모진 세월을 살다보니 바싹 늙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의 모습은 그런 끈기와 인내가 거의 사라지고 대단히 성급해졌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이 오분만 늦어도 발을 동동 구르고, 공중전화를 걸려는데 앞에 두 서너 사람만 있어도 참지 못하고 가버리고 맙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저절로 닫히는데도 몇 초를 못 참아 ‘닫힘’ 단추를 너무 누르니 고장이 잦고 음식점에서는 음식을 빨리 안 준다고 독촉이 대단합니다.

 

언젠가 어느 글에서 보니까, 해외여행시 한국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은 비슷하여 구분하기 어려운데 한국인을 알아보는 법은 세 가지 식별 법이 있다고 합니다. (1)관광 안내원이 한창 설명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말을 끓고 질문을 하거나 아는 체 하는 사람 (2)식당에서 음식을 재촉하고 10분내에 먹어 버리는 사람 (3)버스나 비행기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서 배우는 첫말은 ‘빨리 빨리’라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너무나 참지 못한 나머지 대판 싸우거나 심한 경우 죽이는 사건까지 생깁니다. 조선일보 이규태 논설위원은 이런 병은 ‘카악병’이라고 합니다. 지난번 신문에 보니까, 어느 사위는 처갓집에서 이혼을 강요하니까 칼을 들고 가서 장모와 처갓집 식구들을 죽였습니다. 어느 부부는 신혼여행 가서 싸우고는 곧장 돌아와 이혼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운전을 하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운전하다가 조그마한 일에 시비를 걸려 들다가는 아들 같은 사람에게 욕을 먹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느 60대의 목사님은 운전을 하다가 어느 젊은 사람과 시비가 생겼는데 나중에는 ‘이 새끼 저 새끼’등,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합니다. 왜 한국인들은 점점 이렇게 성급하고 사나워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 신앙인들도 도무지 참지를 못하는 병에 전염되어 있습니다. 설교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연신 시계를 보면서 화가 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빨리 응답을 안 해준다고 쉽게 포기하고 하나님이 빨리 축복을 안 준다고 낙심하기 바쁩니다.

 

그런 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기독교인의 삼대 미덕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소망입니다. 소망 중에 참고 견디는 덕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길이 참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나타나 은혜의 열매, 복의 열매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소망 중에 인내할까? 오늘 본문은 네 가지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열매를 소망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7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마, 농부처럼 잘 참고 기다리는 것을 배운 자도 드물 것입니다. 농부가 너무 성급하거나 참지 못하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농부는 봄이 오면 거름을 내고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립니다. 그리고 싹이 나면 김을 매주고 곡식이 자라면 북을 주고 지주를 밭치어 줍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거름과 농약을 줍니다. 그러면 어느 날인가, 열매를 맺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곡식이 한참 자라 가는 데 요즈음처럼 비바람이 불어 곡식을 쓰러뜨립니다. 병충해가 생기어 열매를 병들게 하고 새들이 와서 쪼아먹습니다. 어느 때는 지독한 가뭄이 들어 곡식을 말라버리게 합니다. 그런 때는 낙심이 앞섭니다. 그런 상황에서 농부들은 어떻게 참습니까?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을 소망하며 길이 참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내란 수동적으로 닥치어 오는 난관을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그 난관을 뚫고 거름이나 농약을 주고 쓰러진 곡식을 바로 세워주면서 인내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인내는 열매를 바라는 소망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은 다 이러한 인내를 소유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지루하게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날을 소망했고, 아브라함은 소망의 열매인 아들을 25년 동안 소망하면서 끈질지게 인내했습니다. 모세는 40년의 광야 속에서 인내했고 다윗은 말할 수 없는 시험과 핍박 속에서도,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 부은 약속을 소망하면서 인내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살았던 위대한 이들도 다 소망 중에 인내한 사람들이었음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위대한 식물학자 루터 버뱅크는 콩, 오이, 사과, 옥수수, 감자, 복숭아 및 많은 화초의 개량종을 만들기 위해 무려 6천번의 실험을 하면서 기다리므로 성공의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기제품 회사인 웨스팅 하우스를 설립한 조지 웨스팅 하우스는 열차의 제동장치인 에어 브레이크를 연구할 때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니, 공기로 쇳덩이 기차를 정거시키려고 하다니 저런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는가?’라는 비웃을 받았으나 그 모욕을 견디며 인내한 결과, 오늘날에는 버스까지 에어 브레이크를 사용할 정도로 성공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살고 있는 환경은 아직도 풀리지 않거나 더 답답하게 되어간다고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소망의 열매를 바라보면서 기도의 비료를 주십시오. 충성의 망치로 계속 방주를 지어 가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인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여러분이 믿음으로 지었던 방주 안에 은혜의 열매로 가득 채워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마음을 굳게 함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8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굳게 하라’는 헬라어는 ‘스테릭사터’인데 ‘굳게 고정한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을 굳게 고정하되 어디에 합니까?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고정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약혼녀입니다. 약혼녀는 신랑을 향해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젊은 사람들의 농담처럼 고무신을 거꾸로 신으면 안됩니다.

 

만약 약혼자가 유학을 갔다고 합시다. 편지가 오갑니다. 신랑은 편지 속에서 사랑을 고백하면서 많은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는 편지가 날라오기를 ‘당신의 약혼자는 지금 다른 여자와 관계하고 있다. 함께 동거도 한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입니다. 약혼녀는 며칠 동안 뜬눈으로 밤을 샙니다. 그러다가 그 동안 왔던 편지들을 자세히 살펴 보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조금도 거짓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약혼자의 편지, 그 약속을 붙잡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약혼자를 사모하는 어느 여인의 농간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만약에 그 농간에 속아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더라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요? 그러나 믿음으로 기다린 결과, 마침내 약혼자는 수년을 기다리던 약혼녀에게 돌아와 결혼을 합니다. 신랑은 자기를 조금도 의심치 않은 이 여인을 너무나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는 약혼녀입니다. 성경은 신랑의 편지요, 약속입니다. 마귀는 끝없이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갖은 미혹과 농간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 때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약속인 성경에 우리의 마음을 단단히 고정하고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혹 세상의 약혼자나 남편은 배신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 부모까지도 자식을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탕자처럼, 고멜처럼 주님을 떠날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마음은 바다와 같습니다. 믿음으로 굳게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배는 힘차게 항진(航進) 합니다.

 

그러나 의심의 풍랑이 마음에 일어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방해를 만납니다. 우리의 신앙의 배는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잘못하면 탕자처럼 파선을 당하여 많은 손해와 실패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철저히 고정하십시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으십시오. 때로 곤고하고 답답할 때 우리 신랑 되시는 주님께 낱낱이 기도의 편지를 쓰십시오. 답장이 늦어질 때도 계속 기도하시면서 소망으로 응답을 기다리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막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응답의 열매가 열리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은호 목사님이 쓰신 예화집에는 이런 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불구 소녀가 난치병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다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소녀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일하고 싶어 안타까워할 때에 심방 오신 목사님은 그 소녀에게 열심히 기도함으로 주님을 위해 일해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소녀는 병상에 누워 마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수개월 후에 소녀는 난치병으로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소녀가 죽은 후 그녀의 베개 밑에 기도일지가 나왔는데 마을 주민 56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분들은 최근에 교회에 나와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소녀는 한 사람이 구원받을 때마다 빨간 십자가 표시를 해 놓았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믿음의 기도는 이처럼 응답이 되는 날이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심을 과감히 버리고 주님을 향해 마음을 고정하시고 우리의 안타까운 문제, 답답한 일들을 위해 하나님께 낱낱이 아뢰심으로 응답의 열매를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서로 원망 없이 인내해야 합니다.

9절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소망 중에 기다리는 때에 가장 조심할 것은 원망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왜 원망하게 됩니까? 이기주의 마음 탓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서 고정되어 있으면 주님의 마음, 주님의 평화, 주님의 용서가 가득차게 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떠나 나 자신에게 매이기 시작할 때 거기에서 이기주의가 생기고 자기의 욕심에 매이게 됩니다.

 

내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데 남들이 그렇게 해주지 않으니 원망의 마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자, 남편은 아내를 원망하고 아내는 뱀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망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심판을 받는 것은 사탄이 틈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대로 심판자가 언제나 문밖에서 들으신다는 생각으로 원망의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교인은 입에 원망이 뱄습니다. 쩍하면 목회자를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원망하고 자기 욕심대로 따라 주지 않는 자식들을 원망합니다. 이런 사람은 의심하는 죄보다 더 큰 죄를 짓는 자입니다. 의심은 마음에 있는 죄이나 원망은 밖으로 나타난 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되는 야고보서에서는 말의 중요성을 상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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