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8장 11절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2021년 10월 16일 지난 주 토요일 아침의 꿈이 선명하게 꾸워서 노트에서 적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평생에 꿈 이야기를 우리 사모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데 주일 음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망원시장에 가면서 그 꿈 이야기를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기근인지 전쟁으로 인하여 물과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포공항으로 가서 장모님 집으로 가려는지 외국으로 나가려는지 확실치 않지만 공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갈 수가 없습니다. 어둡고 무섭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래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교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온 식구가 냉장고에 그동안 보관해 놓고 먹은 음식을 조금씩 먹고 있었습니다. 약 3개월 정도 되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는 것을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러한 꿈을 꾸게 하셨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 중에 이 말씀이 생각나게 되었습니다.
요즘과 우리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예전에는 없던 시절에는 먹을 것으로 인하여 주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돈 주고 버리는 세상입니다. 예전에는 배가 많이 나오면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배가 나오면 자기관리가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설이나 추석이되어야지 먹을 것이 풍성한데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예전에는 새마을사업으로 고속도로 주변이나 철도 주변을 파랑색이나 빨강색으로 지붕을 칠하여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고속도로를 달리면 어디가 서울이진 지방인지 모를 정도로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합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창피하고 중고등학교 에서 교회 다닌다고 손드는 것이 어색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마을마다 예배당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나라에 치킨집이 많습니다. 교회도 그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풍요속에 빈곤이라고 군중속에 고독이라고 대도시속에 외로움이라고 고독하고 영적으로 힘들은 사람이 가득합니다.
인터넷에서는 너무 많은 설교가 있지만 나에게 맞는 설교가 없어서 설교에 써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300년전에 아모스가 살던 시절의 말씀입니다. 당시 왕은 여로보암2세였습니다. 가장 강성하고 풍부한 시절이였습니다. 남유다에 출생한 아모스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북이스라엘에 가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그는 양치던 목자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하고 정치가들은 공의가 물같게 흐르지 않고 부정과 부패로 충만하였습니다. 부자들은 물질적인 풍부로 인하여 사치과 타락의 길을 걷고 가난한 사람들은 착취인하여 힘들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암 8:11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한국사회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풍성한 부흥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물질의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갔습니다. 목사님들은 사회지탄의 대상이되고, 성도님들은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방송이나 영화에서 목사님들이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교회에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연일방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치몬드 빵집에 갔는데 빵이 없는 것입니다. 음식점에 갔는데 음식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왔는데 정치이야기로 연애인 이야기로 가득찬 교회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떡집에 영적인 흉년이 들은 것입니다. 세상에 소금이 소금의 맛을 잃고 소금이 밖에서 밟히게 된 것입니다.
2. 양식이 없어 주림
암 8:11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주림에는 세종류가 있습니다.
1) 육신적으로 주림입니다.
물과 양식이 없어서 배고파하는 주림입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주림입니다.
2) 영적인 주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예수님이 마음속에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내 마음에 없는 것을 의미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세상으로 가득차 잇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물질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데 죽는 순간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권력에 대하여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영,육의 주림입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히 주린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완전이 주린 상태에서는 예수님으로 체워질수 있는 순간입니다. 세상은 간곳없고 오직 구속한 주 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던 물질과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체워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8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학문적으로 유명한 학파였지만 그것도 버렸습니다. 바울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것도 버렸습니다. (로마시민권), 바울은 종교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바리세파의 권위도 버렸습니다. 그 모든 것을 버리는 순간 예수님의 영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말고 행함이 예수님을 위한 것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라굴로의 태풍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더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금은 보화를 다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먹을 쌀들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용해야할 모든 집기류를 다 버리는 것입니다. 왜 목숨을 위하여 생명을 위해서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제일 중요하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합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의 영으로 체워지고 그리고 그분이 이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지폐)
어느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보화만 가지면 농부는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 밭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화를 케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자신의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른 것처럼 엘리사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얻기위하여 자신의 소들을 버리고 스승을 따른 것처럼 우리가 가장 귀한 예수님을 소유해야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어는 것보다 귀한 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성도들 사랑하는 것입니다.
3. 양식과 물의 갈함
암 8:11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 양식
암으로 죽는 사람들은 잘 못먹어서 죽는다는 의학박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잘만 먹어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50년대 60년대에서는 우리 증조 할아버지 시대에는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균 수명이 60도 못되어서 죽는 것입니다. 가난한 아프리카나 동남아 사람들이 잘 먹지 못하여 성장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벼를 심어서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움으로 살아가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송순덕권사님이 암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먹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달에는 제가 모시고 세브란스병원에 진료를 받으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몸무게와 여러가지 코로나 검사를 마친 후에 의사선생님으로 부터 한달치 약을 받았습니다. 진통제와 한달치 먹을 양식을 약속에서 사게 되었습니다. 죽처럼 되었는데 그것을 하루 3끼니 먹을 수 있고 하루 한끼니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그분 의사의 말씀 암은 먹지 못하게 하여 죽는 병이라고 합니다.
2) 물
물 치료의 최고 권위자 바트만 게리지 박사님은 물로서 사람을 치료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인간이 물을 잘못 마셔서 조기에 사망하고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바트만 게리지 박사는 페니실린의 발견자 플레밍박사의 학생입니다.
물을 잘 먹으로 심장과 중풍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수분은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합니다. 우리 평강이가 코로나백신을 맞았습니다. 간호사가 하는 말이 ‘물 많이 드세요’하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병원균을 밖으로 나가게 하고 그리고 심장을 멈추지 않게 정상적으로 뛰게 한다고하였습니다.
백혈병은 체내에 산소가 부족한데 물을 통하여 산소를 공부해준다고합니다.
고혈압도 물은 천연 리뇨제역활을 한다고합니다. 당료도 물은 체내에서 항당료성분을 갖고 있는 트립토판의 양을 증가시킨다고합니다. 물은 우울증을 치료한다고하였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따뜻한 물을 먹어야합니다. 우리나라 점심시간에 커피를 들고다니면서 먹기 때문에 암을 예방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진정으로 부족한 것은 바로 물과 성령입니다. 말씀과 성령인 것입니다. 이 세대에 진정으로 부족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기갈이라고하였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의 갈망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합니까? 여러분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까? 왜 성도님들에게 카톡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유합니까? 그 말씀에 하나님이 있고 그분의 말씀과 동행하는 친밀감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왜하는 것입니까? 시간을 제어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새벽이고 밤이 하나님께 한 시간이 이상씩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친밀감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교회에 오래다녔는데 내가 목사인데 하고 은근히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그 자랑이 교만이 되고, 시험에 빠질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헨리 나우넬이라는 사람은 천주교 신부님입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보다 기독교에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1932년에 출생하여서 1996년에 소천하셨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셨고 노들담에서, 예일에서, 하버드에서 교수로 제직하셨습니다. 하버드에서 제직할 때에 논문을 쓰지 않는 조건으로 근무하셨습니다. 그러나 박사학위가 없는 분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늘 박사학위에 떨어졌습니다. 글로는 기도를 잘 쓰시는데 기도를 직접하려면 기도를 잘못하시고, 외로움이 많이 느끼셔서 주변에 있는 분들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살았다고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외롭고 고독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을 만들어서 생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의 눈의 의식하면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외롭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외로움은 하나님이 그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들마다 부족함이 있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평생 걸려도 그것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책을 덮어 버립니다. 조금만 복잡한 문제가 나오면 포기해버리는 것입니다. 조금만 복잡하면 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합니다. 그래서 복잡하게 이야기하면 결론부터 이야기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생이 한마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메마른 땅에 물방울 몇방울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비가 와도 부족한 것이 이 땅에 메마릅니다.
그러므로 갈망은 세상에 대한 갈망함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갈망입니다. 내 자신에 갈망을 하나님에 대한 갈망으로 바뀌어야합니다. 다른 사람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찾아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나를 평가해주시지 세상 사람들이 나를 평가해주지 않습니다.
정말로 영적으로 메마름, 갈망은 우리를 광야로 이끌시는 것입니다.
‘광야’ 혹은 ‘황무지’, ‘빈 들’로 번역되는 말의 히브리어는 ‘미드바르’다. 단어의 어원이 ‘말하다’라는 뜻을 가진 ‘다바르’입니다. ‘미드바르’는 말하는 도구로서의 ‘입’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 광야(미드바르)에서 말씀하신(다바르) 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출발했고, 광야와 더불어 살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단순히 빈들이 아니며 고난과 고통과 고독의 자리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곳입니다. 미드바르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다.(다바르) 곳이다.(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광야를 지나며 간증 김동욱간증을 들어보았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무척이나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에 기적같이 장학금 신청하여 버글리?, 줄리어드음악대학교?에 입학하여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미국에서 생활하기 어려워서 교회에서 찬양사역하면서 부족한 생활자금을 확보했습니다. 학기 중간에는 가장 선하게 생긴 교수님에게 찾아 장학금을 요청했는데 도와줄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교수님이 졸업하게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