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3장 28절 주일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7월 28일 주일

  1.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모든 사람들은 가나안을 꿈꾸고 살아갑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하는 곳이 가나안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바로 가나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의 가나안일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치료의 가나안일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이 건강의 가나안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취직이 가나안일 수 있습니다.

  1. 가나안의 근원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방 땅에서 부르시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이삭이 복을 얻어 부자가 되었고, 야곱도 자녀 12도 축복에 땅에서 살았지만 요셉을 애굽에 팔므로 가나안에서 애굽, 고센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형제들은 12지파로 장정만 60만명으로 큰 부족국가로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바로와 애굽사람들이 놀라 그들을 핍박하게 되었고 그들의 고통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가나안땅으로 출애굽하는 과정을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33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행복자로 사는 비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현재의 가나안 땅

제가 10년 전에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닙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더 좋은 곳입니다. 전쟁의 포화가 있고, 사막한 가운데서 사람들이 살 수 없어서 땅을 개간하여 키부츠를 만들었습니다. (키부츠는 이스라엘의 집단 농업 공동체)

제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지역을 가보았습니다. 게넷사렛, 가버나움, 가나 (혼인잔치 지역), 예수님이 사역하신 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거의 타락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동성애 문화가 있는 곳이고, 밤 문화가 거의 홍대 수준이였습니다. 물론 예루살렘 지역에는 아직도 랍비와 전통적인 유대인들도 있기는 하지만 혼합하여 살고 있는 곳입니다. 가나안 땅은 절대로 천국이 아닙니다.

  1. 우리 가정의 가나안 땅

저는 인천에서 우리 평강이를 출생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우리 성원순복음교회가 가나안 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옛날 성원순복음교회 건물은 저에게 참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교회의 건물을 볼 때에 아직도 설래였지만 비만 오면 천장에서 비가 세고, 천장에서 쥐가 다니고 곰팡이 냄세로 인하여 비염이 항상 있었습니다. 사랑 많은 교회 건물이 였습니다. 힘들지만 오래 오래 목회하기 위하여 건축하였고 깨끗한 건물의 가나안 성원순복음교회는 그 자체가 가나안은 아니였습니다.

예전에 화장실이 안에만 있으면 가나안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쥐만 없으면 가나안인줄 알았습니다. 교회 건물만 지으면 가나안인줄 알았습니다. 교회 빚만 없으면 가나안인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평강이의 가나안이 미국유학만 가나안인 줄 알았습니다. 대학교 입학만 하면 가나안인 줄 알았습니다. 비자만 받으면 가나안인 줄 알았습니다. 사업에 돈을 많이 벌으면 가나안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가나안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살고 있는 삶 자체가 가나안은 아닙니다.

  1. 가나안은 여전히 싸우는 곳입니다.

여호수아 11장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여호수아의 지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여호수아 11장 23절에는 전쟁이 그쳤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전쟁이 그쳤습니까? 지금도 전쟁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전쟁이 그친적이 없습니다. 여러가지 마음의 갈등 죄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 작고 큰 전쟁들이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구원받고 예수님을 믿으면 여호수아 11장 23절의 말씀처럼 예수님 믿는 전쟁은 그쳤지만 영적전쟁이 남아있습니다. 천국 들어갈 때까지 계속적인 전쟁이 계속됩니다. 마치 사사시대에도, 다윗의 시대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계속적으로 영적인 전쟁이 가나안 땅에서 벌어지는 것 처럼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그러한 영적인 싸움은 가나안에서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기도제목이 완전히 이루워지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사모에 대한 기도제목, 우리 아들의 기도제목이 계속 계속 바뀌면서 계속적으로 가나안에 대한 대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영적전쟁을 계속하면서 전쟁하게 될 것입니다.

살고 있는 원주민과 전쟁, 주변환경과의 전쟁,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여러가지 욕심과 전쟁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전쟁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1. 가나안은 쉬운 곳이 아닙니다.

목회를 하는 주의 종들에게 큰 교회가 가나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큰 교회가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있는 줄 모릅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을 마귀가 가만 두지 않습니다. 특별히 큰 교회 목사님이 세상을 내려놓지 못하고 여러가지 문제가 도출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녀의 세습문제, 물질의 문제, 은퇴목사님의 퇴임문제로 교회가 여러가지로 복잡하게 법적인 싸움하고 그동안에 쌓아놓은 원로목사님의 명예가 똥 칠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치 치매 당한 노인처럼 똥으로 뭉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가나안을 완성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좌절하고 왜 나는 안될까? 하나님이 안 계시는가?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갑니다. 목사님이 개척을 하였는데 하다가 하다가 안되서 포기하는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좌절감과 상실감이 클까요?

  1. 진짜 가나안은 어디일까요?

  2.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모세는 가나안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은 백성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은 너를 돕는 방패시고 네 영광의 칼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만약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나라를 만들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솔로몬처럼 큰 궁궐 짖고 성전도 짖고 그렇게 아름답게 살았다고 하십시다. 모든 사람들이 모세를 추앙하여 모세 동상을 세우고 모세의 법을 따라서 살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어졌을 것입니다. 죽은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추앙하는데 살아있는 모세를 얼마나 추앙했겠습니까? 지금도 이스라엘 초등학교 교과서에 모세의 율법을 암송하고 모세 모세를 하고 있는데 죽지 않고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완전히 모세의 우상들으로 뒤덥힐 것입니다. 다행히도 모세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였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무엇이 가나안의 삶입니까? 나는 행복자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 받은 백성으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되고 영광의 칼이 된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지난 주일 모세의 삶에 대하여 말씀을 드려습니다. 온유함이 지면에 승하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를 비방하는 사람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민수기12장)

성 어거스틴은 어느 날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들의 최고의 덕은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첫째는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둘째는 무엇입니까?”, “둘째도 겸손이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이다.” “그러면 겸손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겸손의 반대는 교만이다.” 제자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교만은 무엇입니까?” 그때 어거스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만은 자기가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나안의 축복을 받고 가나안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늘 겸손해야합니다. 성경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죽기까지 주님 앞에 겸손했습니다. 모세도 그렇했고, 구약의 선지자들도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사야도 순교했고 예레미야도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다 순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과정을 모르고 하나님을 잘 믿으면 부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고급으로 올라갈수록 세상적인 부 보다는 영적인 부를 더 갈망해야합니다. 예수님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죽이고 늘 겸손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가나안의 삶은 행복 행복으로만 가득찬 삶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삶은 여러 부족들과 싸워야합니다. 그 땅의 백성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 신과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행복을 누리던 욥에게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 때에 복을 받았지, 이 고난이 바로 네가 지은 죄 때문이라고 욥에게 훈계합니다. 욥의 항변이 길어지지만 욥은 종국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림으로 욥기서가 마칩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제일 먼저 들어가야할 사람입니다. 모세가 들어가 애굽에서 배운 피라밋으로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 사람들로 추앙을 받게될 때에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대리고 갔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까? 영적으로도 3층천에 올라가보았습니다. 살아서 천국을 맞본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자신에게 빛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행복한 성도들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영적인 체험이 깊어질수록 그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의 차원은 물질에 축복을 받는 것이고, 그 단계를 조금 더 넘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아도 겸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그 다음 단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는 단계 주님의 영광과 존귀만이 가득한 단계가 가나안의 삶입니다.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행복한 성도들은 의무감으로 예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보여주기 위한 예배가 아닙니다. 오직 구속한 주만 보이는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공부도 의무감으로 직장생활도 의무감으로 하면 얼마나 지겹고 힘들은지 모릅니다.

더욱더 힘들은 것은 강요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군생활을 10년동안 강제적으로 하는 북한 사람들이 불쌍합니다. 우리나라는 18개월 하는데도 탈령하고 힘들어 하는데 신앙생활을 평생해야하기 때문에 의무감이나 강요로 하지 않고 즐겁고 기쁨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행복하게 돈 버는 사람과 의무감과 강요에 의하여 직장생활하는 사람과 차이가 있습니다. 행복한 삶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손님을 대할 때에나 업무처리를 할 때에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모 정년퇴직)

행복함이 없으면 매사에 능동적이 됩니다. 신앙생활은 수동적으로 해야합니다. 내가 구원에 대한 감격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에 대한 감격으로 구원에 대한 감사함으로 신앙생활할 때에 행복한 신앙생활의 창의력이 형성됩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행복감으로 하게 되면 자신의 몸을 던져 부하 군인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강재구 소령입니다. 수류탄이 터졌는데 자신이 그 수류탄을 안고 죽었습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서울로 가는 길에 눈길에 차가 굴렀습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논바닥에서 기어 올라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으신 분이 있습니다. 원종범목사님입니다. 그래서 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성가에 나는 행복합니다.

주님 한분 밖에는 아는 사람없어요 가슴 깊이숨어 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분밖에는 기억하지 못해요 처음 주를만난 그날 울며 고백하던 말. 나는 행복해요 죄 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세상 무엇이 든 채우고도 남아요.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들 만나고, 좋은 영화보는 것은 일시적인 행복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쾨테는 인생을 살면서 나는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행복은 마음 안에 있고 먼 데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물고기를 잡았지만 행복으로 가는 동안 모든 것을 잃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릴린 먼로는 36세 사망, 약물 과다 복용. 알코올 중독으로 자살한 사람입니다. 수만은 명예기, 물질, 인기를 얻었지만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나안은 세상의 가나안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의 가나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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