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0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는 문이 항상 열려있습니다. 성전에 들어오는데 아무런 비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2층 3층 4층은 다 비번이 있습니다. 2층 3층 4층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번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은행에서 여러분의 돈을 찾기 위하여 비번이 있어야합니다. 여러분들의 비번은 무엇인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각 자의 비번이 있습니다. 여러분 비번을 하도 바꿔서 비번이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2016년도에 게스트 하우스를 할 때에 외국사람들이 오면 먼저 묻는 것이 있습니다. WIFI 비번입니다. 그래야 카톡도하고, WECHAT, LINE, FACEBOOK를 통하여 자신의 부모와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핸드폰으로 동영상도 올리고 자신이 찍은 사진도 올려 자신이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립니다. 이처럼 비밀번호는 그 문으로, 어느 장소로 들어가는 KEY입니다.
문은 꼭 자신이 살고 있는 실제적인 문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원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성공의 문, 그리고 질병을 치료받고 싶은 사람들은 건강의 문,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의 부흥의 문입니다. 그 문을 들어가기 위하여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찬양이고, 섬김이고, 그리고 감사입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감사를 중심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오늘 한 날만이라고 하나님이 일 년동안 은혜를 베푸신 것을 잊지 않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찬송함으로 그 문에 들어갑니다.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
1. PSALM 100 A PSALM. FOR GIVING THANKS. SHOUT FOR JOY TO THE LORD, ALL THE EARTH.
본문을 영어로 일어보면 SHOUT FOR JOY TO THE LORD.라고 되어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QUEEN이 노래하는 실황을 보셨습니가? 에호, 에호하면 청중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에호 에호합니다. 마치 다윗이 블레셋을 이기고, 암몬과 모압을 점령하고 돌아올 때에 예루살렘 문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다윗이 법궤를 모시고 자신의 성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올 때의 모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 사도 바울 로마로 입성하기 위하여 압비오광장에서 입성하는 장면과 같습니다. 물론 바울은 아무도 없었지만 개선장군들이 그 문을 통과할 때에 로마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렙과 락음악으로 태창을 부르면 소리를 지릅니다. 코로나로 한동안 함께 놀지 못해지만 지금은 많은 마스크를 쓰고 소리를 지릅니다. 중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발라드 7080의 옛 노래를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노래합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현대음악은 즐기지 않지만 옛노래, 창이나 가요, 민요 쾌기나 칭칭나네를 태창합니다. 교회도 태창이 필요합니다. 즐겁게 찬송을 부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찬양을 드리면 문이 열립니다. 사도행전 16장 24절이하에 보면 발에 착고에 든든히 채워졌지만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미하매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도 우울한 찬송보다는 밝고 명랑한 찬송을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고난주간 때에는 고난 주간에 맞게 불러야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데 우울하게 찬송을 부르면 안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원복래안수집사님과 김재복집사님이 나오시지 않아서 제가 찬양인도를 하였는데 얼마나 성도들이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또한 목회자도 힘듭니다. 찬양하랴, 기도하랴, 설교하랴 하니 힘듭니다. 우리 집사님들의 찬송인도가 정말 고맙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주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 사울에게 붙어있는 악귀가 떠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찬송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찬송가 한 장을 부르면 마귀가 힘을 못씁니다. 두 장을 부르면 마귀가 나가려고 안절부절합니다. 세번째 찬송을 부르면 욕을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기도하러 감람산에 올라가실 때에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을 때 찬송항 옥문이 열렸습니다. 여호사밧은 찬송하면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에 적군이 물러갔습니다.
현대는 더의 시대입니다.
우리 교회 앞에 THE 평양이 있습니다. 주선숙집사님의 동생 주병진이가 하는 갈비탕집입니다. 그런데 11월 30일로 문을 닫는 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더 평양, 오직 하나밖에 없는 그 평양, 정관사 더(THE)를 붙여서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쓰는 단어입니다.
더(MORE)의 시대입니다. 더 많이,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의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행복할까요? 더 더 더 있어야합니다. 음주측정하면서 더더더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눅12장 15절에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고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찬양을 더 기도를 더(MORE)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찬송을 더, 말씀을 더, 설교를 더, 예배를 더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 때문입니다. 속히 더 많은 찬송과 더 많은 기도와 예배가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THE 성원순복음교회는 더 많은 찬송, 더 많은 말씀, 더 많은 예배가 있는 교회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 섬기면서 그 문에 들어갑니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2. WORSHIP THE LORD WITH GLADNESS; COME BEFORE HIM WITH JOYFUL SONGS.
노래하면서(찬송하면서) 그 문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2절에서는 여호와를 섬기면서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간다고하였습니다. 찬송도 하고 섬기면서 그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섬김의 영어단어는 WORSHIP입니다. 예배드리면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축복의 문이, 건강의 문이, 사업의 문이 예배를 통하여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으로 나가야합니가?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분이 우리를 복을 주셨고, 그분이 코로나 19의 어려운 생활 가운데 이만큼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그 문에 성전에 문에 들어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를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적인 표현은 이러합니다. ‘THANK YOU SO MUCH’, 라고합니다. 감사의 표현을 하신 분에게 영어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IT IS MY PLEASURE’라고 답변합니다. ‘나의 기쁨입니다. 내가 즐거워서 했습니다.’라고 답변합니다. ‘우리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섬기면서 교회나옵니다. ‘우리 주님 고맙습니다’하고 교회 나옵니다. 그리고 그분을 섬기려고, 교회를 섬기려고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에게 엄마 고마워, 아빠 고마워하고 진심으로 감사의 표현하고 섬기면 얼마나 기쁨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이 우리 2째 동생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중학교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제일 많이 효도하고 제일 많이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그렇게 섬기는데 둘째 동생내가 잘되는 것입니다. 불황을 모르고 잘되는 것입니다. 너무 잘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어째든 부모를 섬기면 하나님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왜 섬김니까?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주님이 나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복음성가 “주 내맘에 모신 후에 날 주장하시네 주께 내 맘 드린 후에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욱 섬길수록 더 귀한 주님 더 사랑할수록 주 날 사랑해 매일”
한 외국계 우수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했다. 공석은 단 한 자리뿐 1차 시험과, 2차 면접을 거친후 다섯명의 지원자가 남았다. 인사과 책임자는 이들에게 3일 안에 최종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통보했다. 지원자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다음 날, 한 여성 지원자는 회사로 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 메일을 받았다. 저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귀하는 이번에 채용되지 않으셨습니다. 인원 제한으로 인해 귀하처럼 재능있고, 뛰어난 인재를 모시지 못하게 된점.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녀는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메일에 담긴 진심어린 위로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짧은 감사 메일을 써서 보냈다. “앞으로 회사의 하시는 모든 일이 잘 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그녀는 뜻밖에도 회사로 부터 합격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받았던 불합격 통지 메일이 마지막 3차 시험이었다. 다섯명의 지원자 모두 그녀와 같은 메일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감사 메일을 보낸 사람은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해야 할 이유 동원 서명식 글에서 참조)
3.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갑니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찬송과 섬김(예배)와 감사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늘 궁정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실 것 같습니다. 물론 기쁘게 놀고 먹고 쉬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사에는 예물이 있었습니다. 동해, 옥저, 삼환, 부여, 고구려등 모든 부족국가에서 감사제도가 있었습니다. 영고에는 많은 음식과 제사를 가지고 그 해 풍년에 대한 감사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다음 해에도 잘 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무속신앙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신에게 감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우리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리는데 인색하게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말라기 3장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사를 드릴 때에, 예배를 드릴 때에 그 감사로 하늘의 문을 연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추수감사절 예물을 통하여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 감사할 조건이 아닌 헬렌 켈러의 감사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6.27~1968)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9개월이 되었을 때 심한 열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하다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3중의 고통을 지게 된 헬렌. 그녀의 부모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권유로 보스턴에 있는 퍼킨스 맹아학교에서 앤 설리번을 헬렌의 가정교사로 모셔오게됩니다. 설리번 선생님의 노력으로 헬렌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전 생애 맹, 농아를 위해서 헌신, 희망과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의 산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보자.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은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우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 감사는 성령충만, 찬송과 같은 것입니다.
예베소서 5장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골로세서 3장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공통분모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말씀하시면서 골로세서 3장 16절에 이렇게 말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충만함과 감사함은 같은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필요충분조건이고, 빛이 있는데 열이 없을 수 없습니다. 열이 있는데 빛이 없는 태양이 없습니다. 즉 우리의 성도들은 성령충만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성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 감사하는 사람들의 해택
1998년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 두 의사가 실험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찬양하고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존 헨리 박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감기약보다 더 대단한 효능을 가진 것이 감사약입니다. 우리가 기뻐하며 감사하면 우리 신체의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준다고 합니다. 매일 감기약이 아니라 감사약을 먹어야 합니다.
탈무드에도 보면“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호흡이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지금 걸어 다닐 건강이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저는 사모와 같이 목요일날 극동방송을 듣고 인천에 가게 되었습니다. 극동방송국에서 이런 말씀이 나오더라고요. 북한에 탈북한 분이 너무 먹을 것이 없어서 탈북하였다고 합니다. 굶이서 죽는 것보다 남한에 가다가 죽은 것이 더 났다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오고 보니 자신이 한국사람보다 너무 형편이 없다고 생각이 들어 좌절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무엇보다도 더 감사한 것은 부족하지만 감사할 수있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였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코로나 19의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밖에 나가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러한 상황을 2년 이상 계속되게 하실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출애굽기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출애굽상황 가운데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것처럼 우리의 이 상황 가운데 늘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저주가 넘어 가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난뒤에 40세 이상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40세 이하는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40세 이상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더 감사하고 더 찬양하고 더 예배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편 #추수감사주일 #문에 들어가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