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4장 6절,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1월 10일

스가랴 4장 6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절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페르시아왕 지금은 이란의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침략하여 멸망시킵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사람 유대인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5만명의 인솔하여 예루살렘 귀한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것이 솔로몬 성전이후 두번째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그 다음은 헤롯성전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이스라엘의 인구의 수가 수백만이 넘는, 꽤 많은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출애굽 당시에 인구수를 200만에서 300만 정도로 추정합니다. 출애굽 당시의 유대인들은 장정만 60만명, 다윗시대에는 130만명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북왕국과 유대왕국이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수가 전체의 30%정도로 치면 20만명에서 50만명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70년동안 포로생활하고 그곳에서 정착하였습니다. 마치 우리 시대에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수가 2022년 기준 미국내 한인 인구는 총 205만1,572명으로 추산됩니다. 205만명에서 한국으로 돌아 가자고 할 때에 몇명이나 돌아갈까요? 미국에서 잘 살고 있는데 몇명이나 한국 땅으로 돌아갈 분들이 몇명이나 될까? 그냥 여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지만 한국에서 살려고 역 이민하는 분들이 5만명이나 될까하는 생각이듭니다.

50만명 중에서 1/10의 일인 5만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들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일 것입니다. 당시 포로로 잡혀갔으면 다니엘처럼 10살에 잡혀갔으면 80세나 되었을 것입니다. 다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들에게 강도의 위험과 강의 위험과 여러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의 위험들을 당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분 자지 못했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을 것입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고난처럼 많은 고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1. 큰 산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스룹바벨의 큰 산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루살렘까지 5만명을 이끌고 가는 일, 둘째로 무너진 성전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큰 산은 무엇입니까?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평강이가 앞으로 카나다에 가서 행해야할 일들이 큰 산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큰 산은 무엇입니까? 부흥을 방해하는 것들, 교회 성장에 방해하는 것들을 이기고 성장하는 것들입니다.

직장 생활할 때에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들 입니다. 질병으로 치료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결혼생활에서 오는 갈등입니다. 결혼생활에서 오는 남편의 외도, 시집살이의 고통, 자녀의 가출과 술의 중독등,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큰 산 앞에서 기죽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힘으로 능력으로 안되는 것들 여호와의 신으로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에 도피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포기하면 도망가면 인생의 성공자가 되지 못합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기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도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산악인들의 영원한 꿈인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 최초의 등반자는 누구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론 1953년 뉴질랜드의 힐러리 경이 셀파 텐징 노르가이가 세우지 않았을까하는 것이 공식적인 기록입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은 이보다 29년 앞선 1924년에 영국의 산악인 말로리가 세웠다는 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이같은 설을 뒷받침 하듯 말로리의 시신이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75년 만에 발견됐습니다. 8,200m 지점에서 말로리 시체를 찾았습니다.

힐러리 경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기 전에 첫번째 실수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패하면서 힐러리경은 에베레스트 산이여,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랄 것이다. 나의 힘도 능력도 자랄 것이다. 또 내가 갖춘 장비도 더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오겠다. 기다려라. 나는 다시 산에 오를 것이다.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뉴질랜드 청년 에드먼드 힐러리-

우리나라 최초로, 전 세계에서는 56번째로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해발 8848m) 등정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국이 된다. 제주 출신 산악인 고상돈(1948~1979). 그는 그렇게 전설이 됐다.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올라갈 때가 없다. 알라스카 메킨리 봉에서 내려오다가 3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성공하는 삶을 위한 10가지 교육 원리

1944년 양평에서 출생한 강영우 박사는 중학교 시절 사고로 실명하였고, 이어 모친과 누나를 잃고 맹인 고아가 되었다. 고난과 역경 속에도 대학 졸업과 유학이라는 꿈을 꾸게 된 저자는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아내와 도미, 3년 8개월 만에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전공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1976년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었다. UN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 7억 명에 가까운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했다. 교육 전문가인 저자는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리더로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두 아들도 각각 안과의사와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성장시켜 미국 사람도 부러워하는 명문가를 만들었다. 2012년 2월 23일 향년 68세 나이로 별세했다.

안과의사(강영우박사의 아들) 하버드 대학교 에세이

어질러져 있는 장난감들을 피해 침대에 누워 아버지가 “이제 자야지”라며 불을 꺼 주시면 나의 하루는 마감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다섯 살 고사리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어둠 속의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다. 밤의 침묵이 나를 감싸기 시작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나를 반기곤 했다. 자리를 잡고,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 이불로 나의 작은 몸을 포근히 감싸고 나면,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최면사의 기법을 닮은 아버지의 책 읽는 음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버지의 부드러운 음성은 나를 유치원에서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 갔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거북이, 토끼와 경주를 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며 자유로이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그저 간간이 들려오는 아버지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방해가 될 뿐이었다. 상상의 세계에서 여행을 하던 나는 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어 버렸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이야기를 끝내겠다는 기대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내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쳐 주던 아버지의 마술책을 열어 보았다. 내 상상의 뿌리인 그 책에는 그림도, 글자도 없이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온 점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점자 페이지 위에 나의 작은 손을 얹어 놓고 이리저리 더듬어 보며 ‘아버지는 어떻게 이것을 읽으실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앞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매일 밤, 아버지는 수많은 이야기로 나를 당신의 세계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주셨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나의 상상의 세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어린 시절의 동반자였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육안이 없이도 볼 수 있는 세상을 보여주신 맹인 아버지를 가진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깨닫게 된다. 세월이 흘러 나도 자랐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늘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가 잠자리에서 읽어 주신 이야기들이 나에게 미친 영향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들로 나는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독창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미래를 향한 비전이 선명해졌다.

나의 아버지는 외모로 보면 장애인이다. 그러나 나에게 아버지는 내가 아는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도 뛰어난 능력과 재능을 갖추신 분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장애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고귀한 교훈을 깨우쳐 주셨다. 아버지로 인해 나는 세상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도전하게 되었고, 누구나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배움의 자세로 삶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나는 아버지처럼 어둠 속에서 책을 읽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당신의 실명을 통해 나에게 주셨고, 앞으로도 주실 것은 미래를 바라보고 정진할 수 있는 비전과,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자유로움과, 인생을 풍족한 기회의 터로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신 점이다. [출처] 어둠 속에서 아버지가 읽어 주신 이야기(강영우 박사 아들 에세이)

  1. 평지가 되리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스룹바벨 앞에는 2가지 어려운 문제를 극복해야했습니다. 첫째는 바로 유대인들을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규환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예루살렘서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스룹바벨은 유다총독으로서 규환하는 일과 건축하는 일은 태산과 같은 큰 산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다가 그러나 결국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큰 산이 그 앞에서 평지가 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같은 체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었듯이 태산 같은 걱정과 문제가 저와 여러분들 앞에서도 평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산 위에서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 -로버트 슐러-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밤이 찾아 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인생의 절벽 끝에 설 때입니다. “이것이 나의 인생의 전부인가? 이제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하며 절망케 합니다.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붙드는 한 우리의 인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절벽 끝에서 아주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날개가 있습니다. 절벽끝이 가파를수록 믿음의 날개를 힘차게 편다면 높게 날아오르게 됩니다. 마치 독수리가 거친 바람을 타고 올라가듯이 말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파산자 욥은 인생의 벼랑 끝에서

욥기서 13장 15.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요셉은 인생의 벼랑끝에서 “나의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신다”고 확신하고 믿음의 날개를 펴고 절망의 골짜기를 날아올랐습니다.

  1. 믿음으로 외치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내 야망과 소원으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세상의 모든 산들은 사람들이 정복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정복되었습니다. 큰 산이 우리 앞에서 평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외치면 평지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1. 하나님의 은총으로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1. “What are you, O mighty mountain? Before Zerubbabel you will become level ground. Then he will bring out the capstone to shouts of `God bless it! God bless it!'”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어 그가 Capstone, 머릿돌을 내놓을 때, 즉 성전을 건축하고 머릿돌을 내놓은 것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고 두번째 성전 스룹바벨성전을 짖고 난 뒤에 머릿돌을 완성하였습니다. 그 때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은총 은총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516년 11월 3일날 성전이 준공되었습니다. 이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 은총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은혜입니다. 마치 다윗의 엔게디 골짜기입니다.

다윗의 피난처인 엔게디 골짜기가 있습니다. 물이 있고 굴이 있어 다윗이 피난처를 삼았습니다. 다윗이 그곳에 숨어 있는데 사울의 정예부대 3000명을 이끌고 다윗을 추격하는데 사울이 용변을 보기 위하여 그곳에 들어왔을 때에 사울을 죽이지 않고 옷자락만 배고 그를 살려준 장소입니다. ‘엔 게디’(산양의 샘이란 뜻) 그곳에서 자라는 산양들을 보면 놀랍도록 신기합니다. 그 절벽 가운데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산양의 발의 힘줄과 바위데 달라붙은 발바닥 때문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박국 3장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1. 산에 오른자가 할 일입니다.

시편 15편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거룩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정직해야합니다. 사람들은 물질의 높은 산으로 올라가려고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물질의 산만 오르려고 하지 영적인 거산에 오르지 않으려고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영적인 산에 오르는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물질의 산도 허락하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유럽의 나라들에게, 미국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에게 축복의 산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기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물질의 산에 오를 때에 해야할 일은 시편 15편의 말씀처럼 정직해야합니다. 무엇에 정직합니까? 십일조에 정직하고, 삶에 정직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아프리카에 원숭이를 잡는 방법은 좁은 항아리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놓고 기다린다고 합니다. 원숭이는 그 항아리에 손을 넣고 바나나를 꺼내려고합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으면 절대로 놓치 않는다고합니다. 사냥꾼이 다가오는데도 항아리 속에 바나나를 움켜쥐고 놓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원숭이가 어리석은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마귀가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는데 바나나와 비슷한 것을 여러분 항아리 속에 넣어둡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 주식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장막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놓아야하는데 그것을 놓치 않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원숭이처럼 자신이 손을 놓치 않고 살아갑니다. 목숨이 위험한데도 쥔 손을 포기하지 않고 움겨쥐고 산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살아가면서 버릴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이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며 때로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또한 버릴 줄 안다는 것은 더 높은 곳으로의 도전이요, 희망이며 삶의 열매이고 지혜이며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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