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장 1절 마음이 합한 자 다윗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MIT 경제학과 교수 부부가 쓴 책입니다. 빈곤문제 해결을 연구하여 노벨상 받은 내용입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의 수치를 통하여 통계 수치를 통하여 한 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전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경제학자라도 그 수치와 예상은 적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게 성장한 나라가 중국이라는 나라입니다. 중국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자 가난한 나라에서 중국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돈이 자원이 불렉 홀처럼 향하고 있습니다. 중국 때문에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 기상 이상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세계의 모든 먹걸이가 그곳에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언제서 부터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모택통부터입니다. 등소평부터인가? 아니면 시진핑부터인가? 아니면 5000년의 역사를 닯아가야하는가? 하는 생각하기도 합니다.
가장 성장이 많은 나라가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이 성장하다가 성장을 멈추었습니다. 브라질은 그러한 현상들이 나타날까요? 경제학자들이 전망합니다. 여러분 수많은 나라가들이 경제성장을 하려고합니다. 태국, 말레지아가 그러하고 멕시코가 그러합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요인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한 경제학자도 찾지 못합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기계 한 대를 들어여와 성장하는 속도가 엄청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70년대에 들어서 성경성장율이 15%인 것처럼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의 나라에서 기계 한 대를 더 들여와 성장하는 속도는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자의 이론에 의하면 가난한 나라의 경제 성장 속도가 부자 나라보다 큰 폭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더 잘 살아야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유한 나라를 위하여 가난한 나라에서 온실 가스 배출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부유한 나라에서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면 지구가 계속적으로 더워져 지구의 이상 기온으로 지구에 큰 제앙이 온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하여 사람들을 말하지 못하게 접촉하지 못하고 나라와 나라를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게 막으심으로 항공기의 배출된 가스의 양으로도 많은 대기 환경의 요소들이 안정화 되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백인들이 골프을 잘하고 흑인들이 골프 예, 여성들은 수학을 못하고 남성들을 수학을 잘하고, 알게 모르게 인식에 성과가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집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 집에 대한 세금을 올리고 대출을 줄이고, 주택공급을 늘려서 집값을 안정화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게 쉽게 전세와 집값을 잡지 못합니다. 가나에서 가방 만드는 여성들에게 염소를 키우게 했더니 가방 만드는데더 열심을 내더라는 것이다. 염소로 인해 소망이 생겨나기에 더욱 열심을 내어 살아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마지막 장은 돈과 존엄성에 대한 내용이다.프랑스의 한 청년 고용 지원 센터에서 연구한 내용을 소개하는데,여기에 오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원하는 것,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하게 하고 들어준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직종을 연결해 주고,이러는 가운데 평생 남이 시키는 것만 하던 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향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이렇게 자존감을 회복되니,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결론은 아무리 유능한 경제학자도 세상을 잘살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희망과 소망 자신감이 바로 그것이 경제의 힘이라고 하는 것을 필역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와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로 만들었을까요? 많은 면들이 있지만 이 본문으로만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 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우리 사모를 제외하고 우리 친구 기성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 공부를 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성이를 통하여 제가 신학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당신의 1년 비용을 친구가 되와주었던 것입니다. 저보고 지금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고마운 친구입니다. 제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욱 더 감사한 것은 제가 잘 하지 못하는 것까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고 그리고 추석이나 설에 꼭 작은 선물을 하여 우리 부모님을 기쁘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사무엘하 5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나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합니다. 헤브론에서는 오직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이 다윗을 지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10지파의 백성들이 나온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아직도 우리의 왕은 사울왕이지만 이제 죽었고 그의 자녀들도 죽었기 때문에 이제 상황을 보니 당신은 우리의 왕이 되어서 우리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이 당신을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면서 (3절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게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들의 10지파의 마음속에는 사울을 사모하는 면이 있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 이유로 사무엘하 16장 5절에보면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저주하기 시작합니다.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졌습니다. 피를 흘린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러니 다윗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묶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서 세금을 깍아준다든지, 아니면 백성들에게 30만원씩 가난한 소상공인에게 100만원씩 지원하여 표를 얻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정책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다윗을 영적인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법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출애굽 당시에 법궤를 메고 행진하였던 것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궤를 찾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 시대에 법궤의 이동경로입니다. 실로에서 에벤에셀로, 블레셋과의 아벡전투에서 이스라엘 보병 3만명이 패배를 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목이 부러져 죽게됩니다. 그리고 아벡으로 아스돗으로 가드로, 에그론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계속적으로 제앙이 임하닌까? 젖나는 소 둘을 이용하여 벧세메세스로 그리고 기럇여아림으로 이제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려고하는 순간입니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하나님의 궤를 옮겨 보관합니다. 그곳에서 20년이 지나자 다윗왕이 여호와를 사모하여 그곳에서 가지고 오려고합니다. 다윗왕이 백성중에 뺀 무리 3만명을 이끌고 가럇여아림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궤를 새 수래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나곤(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들이 뛰므로 수레를 몰던 웃사가 손을 들어 궤를 붙들자. 여호와께서 진노하여 웃사를 치시매 그가 궤 곁에서 죽게됩니다. 이에 다윗이 크게 두려워하여 벱궤를 감히 옮기지 못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둡니다. 그리고 다윗이 다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호와의 궤를 메어 다윗성으로 모실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려보다가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겼 하나님이 죽는날 까지 자식이 없게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6: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3. 다윗은 하나님을 법궤를 모셔오겠다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습니다.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다윗이 3만명을 뽑아서 성가대를 조직하고 하나님의 궤를 모실 새 수레를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올 때에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앙금과 제금을 연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집중이 얼마나 되십니까? 다윗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지 다윗이 왕이 된 뒤에 큰 형이나 둘째 셋째 형들의 이름이 없습니다. 다윗은 밤에 양때를 지키면서 별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늘 생각하였더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함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왜 3만명입니까? 왜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했습니까? 세상으로부터 정통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정통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무려 3만명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법궤를 모여오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참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스포츠의 우선순위는 야구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우선순위를 바꾸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되 하나님게서 한화 이글스를 꼴지 하게됨으로부터 경기를 볼일이 없습니다. 지는 경기를 왜 봅니까? 야구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연속극을 보는 것입니까? 저는 연속을 잘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편의 연속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생이라는 연속극입니다. 그 연속극은 너무나 유명하여 그 당시에 보지 못하고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에 인터넷으로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검정고시 출신의 주인공이 대우라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약 20명 정도의 인턴이 최종 합격을 위하여 경쟁합니다. 그런데 마침내 4명만 합격하게됩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에서 이제 정규직이 되기 위하여 2년의 기간을 훈련을 받게 됩니다. 대우라는 기업체는 한번도 고등학생에게 사무직을 준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의 과정이 대리가 인정해줍니다. 그러나 회사의 방침이 그를 인정받지 못하고 탈락합니다. 그리고 차장이 명퇴를 하게됨으로 인턴이였던 미생을 자신의 직원으로 직장을 일으키는 과정을 그린 내용입니다. 만화책으로도 유명하고 연속극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면서 회사에서 격는 갈등과 괴로움을 연속극에서 전달 되는데 꼭 필요한 내용이라서 보게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통 가운데 회사에 들어가고, 그리고 그 회사에서 적응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한가지씩 외국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스팩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들이 얼마나 업무적으로 피곤하게 하는지 그것을 이기면 회사생활하는 것을 볼 때에 대한민국의 회사 생활이 쉽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왜 다윗은 법궤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우리 성도들이 자주 기도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단어입니다. 만군이라는 단어는 바로 군대에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전쟁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영광의 왕이 뉘시냐? 힘이 세고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전쟁의 용사이신 주님이시다”(시24:8)
하나님이 이집트의 파라오의 신을 이기고 나오게 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전쟁의 신이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에게는 법궤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자신이 이스라엘을 잘 다스릴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길 때에 북이스라엘이 그리고 남유다가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에스라 6:5 그리고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와 바빌론에 갖다 둔 성전의 금은 그릇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본래 있던 그대로 갖다두어라.’ 다니엘서 5:2 벨사살왕이 술을 마시다가 자기 아버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그릇들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이것은 그와 귀빈들과 그의 아내와 첩들이 그것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에스라 1:11 이상의 금은 그릇은 모두 2,499개였다. 포로들이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세스바살은 이 모든 성전 기구도 함께 가지고 왔다. [번역비교]
고대 중동에는 가나안에는 바알, 그리고 바벨론과 앗수르에는 마르둑이라는 신이 있습니다. 예전에 전쟁을 하면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진 신들의 전리품들이 다 이긴 나라의 신들에게 바쳐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강하게 느끼는 것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성전이 없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궤를 찾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일어보면 법궤는 사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재한 장소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드리는데 물질 그 자체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담아서 물질을 드리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보면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기만 하여도 미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기계나 인터넷이 아닙니다. 기계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반응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각양각색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반응을 기뻐하셨습니다. 법궤 속에 담긴 다윗의 마음을 보신 것입니다.
5. 법궤에 대한 하나님의 심중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어떤 성경신학자들은 웃사가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는 목사님과 주석가들이 있습니다. 물론 웃사가 잘못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법궤를 이동할 때는 레위지파중 고핫자손이 어께에 메서 옮겨야 한다고 말씀하고있습니다. 절대로 만지만 안되는데 웃사가 만져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도 잘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민수기 4장 15절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민4:15) 그들은 잠시라도 들어가서 성소를 보지 말 것은 죽을까 함이니라 (민4:20)
블레셋 사람들은 무지로 성물을 보게 됨으로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성물에 대하여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죽게하였던 것입니다. 왜 벧세메스로 법궤를 보냈을 까요? 벧세메스는 아론자손(제사장들의 후손으로 제사장들)에게 준 도시로 벧세메스 사람들은 아론자손이었을 것입니다. (역대상 6:59)
아비나답의 집에 법궤가 수십년동안 있었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집은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아래 성경 내용을 보면 고핫 자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말씀을 잘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도 그의 집은 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대상26:8) (레위지파- 고핫-고라-아삽-오벧에돔)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라고 하셨다. 말씀을 잘 숙지를 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법궤를 잘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 달을 있었지만 복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호세아 4장 6절,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6.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였습니다.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에 섭섭하고 분하여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불편하게 해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어떻게 하여야 좋은지 물었습니다.
그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블레셋 왕 아기스와 함게 동거하던 시절입니다. 3일 여정에서 돌아온 다윗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화롭게 지내고 있을 가족들이 온데 간데 없고 마을은 불 타버렸고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처들와서 한 행동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사로잡아 끌고 간 것입니다. 다윗의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포함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울 기력도 없이 심한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불똥이 다윗에게 튀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하들이 다윗을 돌려 쳐 죽이려는 순간입니다. 다윗은 크게 군급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군급은 어려운 상태에 막혀 좌절하고 낙담한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화풀이를 자신의 부하에게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누그러드리면서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고 두렵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헌금할 때에나 예배드릴 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아무리 먼곳이라도 이곳에 올라와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주일을 생명과 같이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순교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였습니다. 그들은 풀무불에 들어가는 위기에 있었고 그리고 풀무불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곳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삶에 마지막 하나님의 말씀을 기술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마치고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을 경외함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렵고 힘들으면 섬기지 않고 내가 살만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욥의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고 다니엘의 환란 가운데서도 사도바울은 옥중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세상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하나님을 경외함은 예배시간에서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찬양할 때에 나의 손을 들고 주님을 경외함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에스라가 수문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6시간 읽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일어나서 하나님을 경외함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면 다윗처럼 찬양할 때에 바지가 벗겨짐을 모르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의 찬양이 울려퍼질 때에 조지2세 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의 존경과 경외함을 표현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연설을 들을 때에 일어나거나 박수를 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외함은 늘 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늘 극동방송을 듣습니다. 왜 세상을 음성을 듣지 않고 극동방송을 듣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도 죄를 짖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