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2장 15~23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6년 2월 21일입니다.
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새 272 통 330)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갑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 버리려고 주께로 갑니다.
성경의 기록된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있는 책입니다. 인간의 흥망성쇠는 인간의 스스로의 죄악으로 망하게 되고 죄악의 회개함으로 은혜로 발전의 역사를 가져오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범죄로 인하여 밧세바가 다윗에게서 낳은 아이가 아파서 고통하는 장면을 아버지인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아이의 고통과 나의 죄악의 결과이므로 미리 포기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행할 바람직한 길이 아닙니다. 미래의 될일은 우리의 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은 은혜를 구하고 그분의 뜻을 선한 방향으로 인도함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아도 그냥 그분의 섭리에 따라서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고 싶은 하나님의 음성은?
1) 아픈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께 밤새도록 기도하고 금식하는 부성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2)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어도 또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십을 찾는다면 다시 밧세바의 몸에서 세로운 생명체 솔로몬이 나오게 되고 그 후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3) 다윗은 자신의 아기가 죽었다는 것을 신하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통하여 듣게 되고 다윗이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보고 하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하는 두려움이 신하들에게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금식하면 밤낮을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4) 그러나 다윗은 신하들의 보고를 듣고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새롭게 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즉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5)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두가지를 집고 넘어가려고합니다. 첫째는 현재 당하고 있는 일이 어려움을 당하고, 앞으로 좋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도 주님에게 변함없이 기도하는 모습니다. 둘째로 기도의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에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세로운 일로 매진해야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따라서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즉, 죽은 아이 살릴 수 있는냐? 나는 천국에 가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지만, 그 아이는 다시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어는 목사님이 이 원리를 알았으면 더 큰 죄악을 짖지 않았을 것입니다.
1. 왜 어려움을 당해도 기도해야합니까?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살아 있을 때 문제가 있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때에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찍히 다윗에는 한번도 그러한 기적이 없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린다든지, 물이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다든지,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이라든지, 홍해가 갈라지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번도 그러한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삶속에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느끼며 살아갈 수있었습니다.
어려울 때에 기도하는 이유는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죽고 사는 권세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장기 결석한 학생을 조사함으로 그동안에 숨겨지고 있었던 사건들이 속속 발혀지고 있습니다. 부천의 여자 아이를 11개월째 자신의 집에다 보관한 목회자의 자녀의 사건요 몇칠 사이에서 폭행으로 숨지게하 사건이 있습니다. 사망당시의 나이는 7살입니다. A양은 감금돼 있던 베란다 안에서 용변을 해결하기도 했다. 심지어 A양은 사망 한 달 전부터는 밥도 거의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이 끔찍한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7살 어린아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 A양은 죽어서도 편하지 못했다.엄마를 포함해 자신을 학대했던 어른들 때문에 또다시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받았다.어른들은 범행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해 숨진 A양의 시신을 인적이 드문 한 야산에 묻어버렸다.무심하게도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영원히 묻힐 것 같았던 이 사건은 작은딸의 엉뚱한 학적 정보시스템 덕분에 실체가 밝혀졌다.
봉천동 슈바이쳐 윤주홍
개업한 지역은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지역에 병원을 걸립하였습니다. 어느날 한 기사가 한 사람이 가슴이찌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치료하다보니 그 아이는 바로 자신의 딸이였습니다. 가슴이 찌저지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의사의 까운을 집어던지고 병원문도 닫았습니다. 딸아이의 무덤을 매일 찾았습니다. 무덤의 내리는 눈이 추위를 느낄 까봐 자신의 웃옷을 벗어서 딸아이의 무덤을 덥곤하였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었습니다. 어린 소녀를 안고 울고 있는 가난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업고 선배의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치료비는 제가 부담할 테니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한 참의 세월이 지난 후에 제 병원에 어린아이와 할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둘려보더니 아저씨도 의사야 그런데 왜 의사 옷을 입지 않고 있어, 청진기는 귀에 안대네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가운을 입고 의자에 앉아서 청진기를 대었습니다. 아 그 순간 천지를 깨우는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죽은 딸아이의 심장소리였습니다. 그토록 청진기를 대어도 들리지 않았던 그 심장소리를 지금 느낄 수 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심장을 때리고 아버지의 죽어있던 영혼을 깨우는 힘찬 고동의 소리였습니다. 그후 봉천동에 병원을 다시 세우고 불쌍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절망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았지만 이제 그는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하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마치 다윗이 이때까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목욕도 하고 예복도있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음식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이 의사는 자신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 다윗의 죄
다윗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변국에 있는 모든 나라를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들은 다 전쟁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데 혼자서 왕궁에 거닐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속에 죄악의 둥지를 틀고 더 크게 둥지를 짖게 되는 것입니다. 간음하게 되었습니다. 백주 대낮에 음욕이 일어났고 그리고 십계명 간음하지 말라, 내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을 저버리고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야하는데 죄를 덥기 위하여 또다른 살인죄를 짖게 됩니다. 자기의 충성된 신하를 불러들여 그 죄를 덮으려고합니다. 그런데 덮어지지 않자 그는 다시 살인죄를 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충신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졸지에 남편을 잃은 여인과 함께 공식적으로 결혼하여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 죄악의 자녀입니다.
13절에서 나단 선지자는 그를 질책합니다. 다윗은 죄를 인정하게 되었고 하나님앞에서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16절에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 간구라는 뜻은 하나님을 찾다라는 히브리어 비퀘쉬로 (בקשׁ) 하나님을 찾다라는 (to seek)의미입니다. 아이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얻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아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을 통하여 얻는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로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여러분의 자녀의 문제 사업장의 문제, 장막의 문제로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가끔 묵비권을 행하하십니다. 아무말도 없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질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계시는가 하는 의미마저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이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하나님의 곧 그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너희들일까보냐?
다윗의 아들을 대려가지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다윗의 자녀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인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늘 주님의 섭리를 기다리며 주님의 섭리에 겸손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촌부와 같은 목동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이길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셔서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망다시면서 늘 하나님의 향한 로메스 있는 남자로 찬송시를 쓰며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고 그리고 그는 큰 왕이 되었고 그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권력과 힘을 다른 곳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충성스러운 아내 우리아를 죽이고 과부된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이하여 자식을 낳은 것입니다. 그는 아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도 넘처났습니다. 자식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잘나고 좋은 자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서도 불구하고 그는 욕망의 남자와 욕망의 여인이 만나서 요즘 안방극장에서하는 불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남자가 불륜하였지만 지금 드라마는 아내가 불륜하고 그리고 불륜하여 낳은 자식들끼리 결혼하는 막장 드라마를 안방극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막장드라마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의 결과로 다윗은 죄의 결과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죄를 회개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죄를 고백하고 자백하게 될 때에 그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받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넓은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것이 바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받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베풀어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근심이 없이 주시고 최고의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는 무긍무진하고 충만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2. 여디디아
사무엘하 12: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다윗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몸을 씻었습니다. 기름을 바랐습니다. 의복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우리는 슬픔에 잠겨 계속적으로 한숨을 쉬고 안된 일을 곱씹으면 좌절하고 있다면 그 삶자체가 지옥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 가운데 절망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소망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희망의 종교입니다. 십자가가 있으면 늘 부활이 있는 곳이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2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솔로몬의 이름을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란 뜻의 여디디야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이름을 지어주신 적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솔로몬의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의 시작입니다.
다윗의 죄악으로 인하여 자녀는 죽었지만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다시 그에게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셔도 하나님 죄인은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죄인의 기도는 물리치셨지만 죄의 사함의 은혜는 그 다윗에게 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말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숩게 여기며 경외하지않습니다. 두려워하지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숩게 여기고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죄를 짖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죄에 대한 부딛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면서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앞에서 다시 은혜를 받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다시 자녀를 주셨는데 솔로몬, 즉 여디디야. 평강이 있는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자입니다.
만약에 다윗은 솔로몬을 죄의 회개 없이 태어났다면 솔로몬은 처음부터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쓰임받을지 모릅니다. 마치 압살론 처럼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회개의 영이 임하고 나를 주의 성령을 거두워가지 말라고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은 누가 봐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 많은 형들이 있었음에도 왕이 되었고,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와 권세까지 그에게 주셨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밧세바에게난 첫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는 은혜입니다.
우리 주님께 여러분의 슬픔과 죄악을 듣고 다시 부활하여 제자들 찾아오신 것처럼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그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짖고 숨었을 때에 하나님이 찾아오셨고,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배 밑에 숨어있을 때에 주님이 찾아오셨고, 엘리야가 이베셀의 말을 듣고 슬픔에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각오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 주님이 언제나 여러분들을 먼저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첫아이의 죽음은 우리의 죄에 대한 죽음입니다. 다윗이 또 다른 아이 솔로몬의 출생은 어찌 보면 새로운 피조물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내가 회개하고 다시 일어날 때에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유복한 환경에 자란 슈바이처는 어릴 적부터 좋은 옷을 입히려는 부모님에게 남들은 이렇게 입지 못하는데 저만 이렇게 입을 수는 없어요,라고 동정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그는 의사 없이 고통 당하는 아프리카 이야글 그냥 넘길 수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남은 생애를 그들을 위하여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의학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헬레네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아프리카를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슈바이처는 그녀와 만나 심각하게 고민하였고 자신의 결심을 그녀에 말하였습니다. 난 아프리카로 갈 사람입니다. 그때에 헬레네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제가 간호사가 되어서 당신을 더 헌신적으로 도울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라카에서 헬레네는 슈바이쳐를 도우면서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