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3장 8절 인생의 목적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2월 1일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본문은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이 직면한 심리적인 압박의 내용입니다. 블레셋 군대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그리고 해변의 모래알 같은 많은 보병을 거느리고 믹마스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듣게됩니다. 사울의 군사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6절과 7절에 보면 이스라엘 군사들이 공포로 인하여 굴이나 수풀, 바위 틈, 웅덩이에 숨어 피하였고 모여있는 군사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부는 요단강을 건너 도망치게됩니다. 남은 사람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험하는 기간 8절에 7일의 기한을 체우지 못하고 사울은 자신의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대에 오른 순간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적, 마음 속의 내부의 적들이 앞에서 진퇴 양난을 어떻게 해처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말씀입니다.

 

매 순간마다 우리의 인생가운데 해야할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울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이정도 상황인데 이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무엘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질문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위를 폐위 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혼내시던지 아니면 꾸지람을 주시던지, 아니면 곤장이라도 때리시던지 하시지 그냥 폐위 시키는 처벌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왕을 세운 목적과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폐위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왕으로 세웠을 때에 순종하는 사람 겸손한 사람인데 목적에 맞지 않게 행동함으로 그를 폐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폐위한 두번째 이유는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은 흩어지고 블레셋은 모이는데 당신은 오지 않아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사무엘상 13:12)

 

제사(예배)를 부적처럼 요식행위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예배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하나님보다는 민심을 여론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라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사울은 변명이 아니라 회개해야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입에서는 이 백성들 때문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였습니다.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7일 동안 기다렸는데 담임목사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담임목사님이면 제가 미안하다고 할 것입니다. 왜 늦으셨습니까? 하고 성도님들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이 주고 싶어하는 말씀은 설령 제사를 드리지 않고 기다리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배하고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울 왕을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죽음을 각오하고 기다리는 사울에게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연애할 때에 여러분 30분, 1시간 기다렸는데 따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여자 친구를 만나고 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열을 받겠습니다. 일하다가, 사업하다가 늦게 왔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름하다가, 다른 남자 친구와 술먹다가 늦었다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7일은 사울에 괭장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의 인생이 어는 목적으로 갈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기간이였을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제사를 드렸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 극한 84(기안84)에 대한 영상을 유튜브를 통하여 보게됩니다. 기안이는 마라톤의 1등의 목적이 아닙니다. 완주의 과정 속에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감동을 주기 위함입니다.

 

사울 왕도 하나님 앞에서 순종이 목적이지 블레셋을 이기는 목적이 아닙니다. 사울의 목적은 블레셋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는 절차나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반면에 사울왕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군대의 흩어짐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얼능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제사의 긍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기안84의 마라톤이 대박이 난 이유는 그가 기록이 좋아서가 아니라, 숨이 넘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자기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혼자 남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사무엘을 기다려야했을 것입니다.

 

사울은 권력 유지를 위하여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정직한 완주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부득이한 제사는 순종하지 않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결혼하기로 약속한 아내와 함께 반지를 교환하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할 날짜가 다가오자 반지가 두 개라면 어떠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생각은 금반지 많아지면 부를 더 많이 얻는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려는 사람들은 꼭 명심해야할 것은 반지 한 개로 배우자에게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성공의 기준과 우리의 생각의 기준이 다른 것입니다.

사사기에서는 자기의 소견대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소견대로 살아야하는데 자신의 소견대로 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적으로 주변의 나라를 통하여 어려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Children of Heaven)의 내용입니다.

오빠 알리는 1등이 재앙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동생에게 줄 운동화 상을 위하여 달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의 기준은 1등해서 박수 받고 사진 촬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공 알리의 기준은 동생과의 약속 3등해서 운동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1등하고도 슬퍼했습니다.

 

사울왕은 알리처럼 1등 자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어떠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사울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마음데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승리의 사진을 찍고 기념비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시면 순종하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울의 불순종으로 제사에도 실패하고, 전쟁에서 지고, 자신도 왕의 폐위까지 엉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 평강이 어린 시절에 태권도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검정띠를 따기 위해서는 주일날 국기원에 가서 심사를 받아야합니다. 자신의 친구들은 다 검정띠를 땄는데 자신만 못 따는 것입니다. 제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들 평강이가 중학교 시절에 학원에서 주일날도 공부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학원을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주일날은 예배드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평강이의 친구들이 검정 띠를 따고, 학원에 가서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지금 비교해보았습니다. 검정 띠는 군대에서 건강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더 좋은 건강 군대 생활도 검정 띠 없어도 잘 마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학교 공부요입니다. 좋은 학교 가서 좋은 대학교 그리고 좋은 직장 갔다고 생각하지만 그 보다 더 좋은 하나님과 교재하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무엘이 이를 꾸짖자 그는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나이다” (사무엘상 15:24)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버림받게 되었을 때도, 그는 사무엘에게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사무엘상 15:30)라며 자신의 명예를 지켜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체면과 위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상 15:22)

 

하나님의 의도와 하나님의 목적이 다르면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목적이 다릅니다. 북한은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것이고 남한은 평화통일인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목적이 다르면 분열되는 것입니다. 보수는 부산으로 진보는 광주로 가기 때문에 대전에서 갈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대전사람들이 어느 편에 손을 드느냐에게 따라서 정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모스 3장 3절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서로 뜻이나 목적, 방향이 같지 않으면 함께 갈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아모스 3장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백성들은 몰랐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백성들도 다 알고 있지만 너희만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너희만 선민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 목적과 행동이 다른 것을 보고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국 목회자 샌디 밀러는 자신의 책 ‘족한 사랑’에서 육성에 가까울 정도로 실감 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중 한 번은 청년 시절이었습니다. 신앙수련회에 참석해 큰 감동과 도전을 받은 뒤 그는 홀로 해변을 산책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가 올려드린 기도는 헌신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도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시면 저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마음속에 분명한 음성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나는 너 하나로 족하단다.”​마치 바로 옆에서 자신의 귀에 속삭이시는 것 같은 분명한 음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황송한 음성 앞에 또 다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표현한 그의 감정은 ‘당혹감’이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진리입니다. “너 하나로 족하단다.” 하나님께선 이 진리를 십자가 위에서 증명하셨습니다. 이 황송하고 당혹스러운 진리 앞에 우리도 결심합시다.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한 인생을 살겠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보낸 신호: 블랙홀 내부(테서랙트)에 들어간 쿠퍼는 과거의 머피에게 중력파를 이용해 모스 부호를 보냅니다. 이때 시계 바늘을 통해 전달한 핵심 데이터는 인류를 구원할 ‘중력 방정식의 해답’이었으며, 그전에 딸에게 가지 말라고 애원하며 보낸 메시지는 “STAY”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아버지가 그의 딸에게 책장 넘어로 보내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버지는 우리의 주변의 사물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습니다. 어는 때는 성경을 통하여, 어느 때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말씀인 설교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주시고자하는 메시지를 잘 듣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축복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성도님에게 따뜻한 기운과 축복이라는 물질의 축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고 있지만 부의 축적은 잘 사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원복래 안수집사님이 시장을 보면서 물가 너무 올라서 어려운 사람들은 정말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가정에 마스코트인 축복이가 있습니다. 길 고양이 (길양이)입니다. 길거리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교회 문턱에서 태어나서 우리 사모가 기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사모가 학교 가는 길에 축복이가 아프기 때문에 병원을 대리고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데 짐승까지 병원에 가니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축복이가 중성화 수술을 하면서 아품으로 고생할 때에 가끔씩 축복이를 대리고 가면서 이러한 생각을하였습니다. 너는 우리 사모가 30만원이상 드려서 살려네 축복받은 고양인데 너는 사모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냐 하면 말을 걸었습니다.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겁워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우리의 목적이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목적인 행복 (에우다이모니아)에 있다고 하면서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서 마음의 즐거움까지 행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