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장 1절말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5년 11월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알렉산더 대왕은 예수님 오시기 전 356년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필립포스 2세의 왕위를 이어받아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지역을 점령한 전쟁의 왕입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의 이름을 도시를 건축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이름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입니다.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알렉산터는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에 칼과 말로 점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에 나귀와 초라한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게 죽으로 그곳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 성령을 부워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같은 나이 33세에 죽었지만 전세계는 예수님의 피뭍은 복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죽었지만 알렉산더 시에는 아볼라는 사람이 출생하였습니다. (행18:24).
그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있었고, 1세기 경에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있는 셉튜전입니다. 그곳에서 성경만 연구하는 신학자 교수님이 아볼로가 목회자가로 길러졌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에 대하여 알게 되었는지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만 않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주후 52년 경에 아볼로는 에베소에 오게 되었고 에베소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스빈다.
그때 마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막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여 복음을 잘 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를 더 깊이 가르쳤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참으로 겸손하자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하고 복음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복음을 증거하고 특별히 성령에 대하여 말씀할 때에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서는 알고 있지만 성령의 체험에 대하여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와 우리교회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우리가 로마서를 공부하였듯이 모든 사람들은 죄인입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도 죄인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방법을 로마서 4장2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음에 아브라함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지만 성경 로마서 6장에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자로 여겨주시는 칭의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우리가 죽을때까지 주님의 구원을 이루워가는 영화 성화의 과정을 격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러면 구원과 성령의 역사는 어떠합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을때에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없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지 못하고 성령이 없을 때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을 일차적인 구원 즉 성령의 내주하심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이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냐고 묻고 잇습니다. Second blessing입니다. 이차적인 축복입니다. 즉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구원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꽃과 나비에 대한 비유입니다. 나비는 꿀을 따기 위하여 꽃에 갑니다. 나비의 입장으로 볼때에 자기가 가는 것처럼보이지만 꽃에 이끌리어 가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를 이끄시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두두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문을 열면 우리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에서는 성령이 처음이고 마지막인 것입니다. 성경전체도 그러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에보면 하나님과 성령이 함께 창조하시는 장면을 볼수 있습니다.
성경의 중간인 사도행전 15장에서도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하면 예루살렘 공회를 결론을 짖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하는 부분도 마찮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저도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많은 목사님들은 설교를 통하여 울게 만들고 그리고 회개하게 만들고 헌금하게 만드는 요소를 보게합니다. 주체가 바로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주시는 예배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김구선생님은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첫째로 독립이요 둘째도 독립이요. 셋째도 독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도 성령의 충만이요 둘째도 성령의 충만이요. 셋째도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가짜와 진짜의 차이점
아인슈타인과 운전기사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엄청난 강연 요청에 쉴 틈이 없었다. 너무 바쁘고 피로를 풀 시간 조차 없다보니까 금방이라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운전기사가 지칠 때로 지친 아인슈타인에게 말했다. “제가 상대성 이론을 30번이나 들어 거의 암송하다시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박사님을 대신해서 강연하면 어떨까요?” 운전사는 공교롭게도 아인슈타인과 너무나 닮았다. 두 사람은 서로 옷을 바꿔 입었다. 연단에 올라 선 가짜 아인슈타인의 강연은 훌륭했다. 말, 표정, 진짜 아인슈타인과 정말 똑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 교수가 이론에 관한 질문을 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정작 놀란 것은 가짜 보다 운전사 복장을 한 진짜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런데 가짜 아인슈타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빙그레 웃으면서 “그 정도의 간단한 질문은 제 운전사도 답할 수 있습니다.” “어이 여보게, 잘 설명해 드리게나”
너무 유명한 예화입니다. 진짜 아인슈타인은 교수의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알고만있습니까? 성령의 체험이 있습니까?
알고만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생명이 없습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한번도 방언기도를 하지 못하고 한번도 제대로 헌금하지 못하고 한번도 하나님앞에서 헌신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설교집에 있는 것을 읽고 설교할 수 있습니다. 내 설교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들고 그리고 제가 경험한 것들을 즉 하나님을 만난 체험의 역사들을 말씀하게 될 때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살아있는 예배가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예배를 들여합니다.
2. 성령을 체험하는 성도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현대교회에서 왜 성령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현대교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특징이 바로 하비콕스가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그는 하버드대학교의 종교학자입니다. 그는 순복음교회의 목회자가 아닙니다. 그는 세속의 도시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또다른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는 오순절적인 교단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장점들만 받아들였을 뿐만아니라 진정 예배의 개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영성, 음악, 여성』이라는 책에서 영성 즉 오순절 운동에 대한 내용에서 1세기가 지나기 전에 약 5억의 사람들을 성령운동교회의 교인이 되게 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00년만에 5억명이라는 놀라는 숫자의 발전입니다
둘째 교회음악이 교회의 부흥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여성의 목회자들과 여성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그러한삶을 살았습니다.
1906년 LA의 아주사 스트리트에서 성령운동을 시작한 윌리엄 시모어라고 주장한다. 이미 1900년 찰스 파햄의 베델성경학교에서 아그네스 오즈만이라는 백인 여자가 방언을 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큰 폭팔적인 부흥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25년간 기성 교단들은 20-40%나 감소하였으나, 오순절교회는 두 배, 세 배의 부흥을 하였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이 현상을 연구하게 하였다(영국의 경우 지난 20년간 성공회는 150만에서 110만으로, 감리교회는 13,000 교회에서 7,000 교회로 감소하였다). 그가 발견한 성령운동은, 이제 전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으며(보편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셈블리아 데 데우스(Assembleia de Deus)라는 브라질 성령운동 교단은 현재 1,100만 내지 1,500만의 교인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브라질의 학자들은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성령운동 교인들이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카톨릭 교인들보다 더 많다고 평가한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장로교회에서 자랐습니다. 교회는 부모님이 다녔기 때문에 아무런 체험없이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는 이성에 대한 그리고 교회 친구들에게 우정과 정으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목회자가되어가는 과정속에서 제 마음속에는 영적인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늘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영적인 체험이 있는데 늘 마음속에 공허하고 이루워지지 못하는 체험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주님을 만난 체험들을 이야기하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여 개척하게 되었다고 간증하는 모습을 볼때에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성령을 갈망하는 교단에서 목회를 시작하게 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부흥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늘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는 장소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사모하고 모셔들이려고 할때에 성령은 임으로 바람을 불때에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창문을 열 듯이 우리의 마음속에 마음의 창문을 열고 하나님의 성령을 인정하고 모셔들여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수많은 달걀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번은 우리 국정숙전도사님의 아들이 끼운 달걀를 먹는데 참으로 싱싱한 유정난을 주신 것을 먹으면서 상당
히 달걀이 건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밖에다 2주간을 두었는데도 골지 않았습니다. 상점이나 홈프러스에 산 달걀들은 후라이를 하면 풀어지고 깨진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정난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유정란과 같은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속에 없는데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큰 고통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생명이 있는 유정란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병아리가 그곳에서 부활하듯이 우리의 생명의 부활이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고 성령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1903년동에 하디 선교사님이 강원도 지방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토론토대학의 의대를 나왔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서울대 의대출신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들이나 우리나라사람들을 약간은 무시하였다고합니다. 자신이 회개하면서 말한 내용입니다. 선교사님은 설교는 기도에 대한 설교엿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의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하늘에게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가장 좋은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교마한 것을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한국의 마가요한의 다락방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907년 1월에서 장대한교회에서 성령의역사가 하였습니다.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만 특별히 있는 새벽기도회 대표기도회가 있다고합니다. 한국교회에서 통성기도회가 있는데 그 통성기도회를 30-40명이 부르짖어 기도하니 대표로 한사람이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낳다고 생각하여 대표기도회가 생겼다고합니다. 새벽기도회는 장대한교회에서 밤지회를 하고 성도들이 아침 일찍 와서 새벽 3시 4시경에 기도회를 하는데 밖에 나가보니 벌써부터 기도하고 있어서 새벽기도회가 형성되었다고하였습니다.
성령의 사역이 왜 필요합니까?
성령은 우리에게 연장과 같은 것입니다. 밭에 나가는데 맨손으로 나가는 것과 우리가 호미나 낫을 가지고 나가는 것과 같은 차이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더 발전있고 능력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은 우리에게 전도하게 선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고 난뒤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역사를 받기 위하여입니다.
우리는 성원순복음입니다. 전도 2번하기를 합니다.
1) 추수감사절입니다. 2) 크리스마스 주간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