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오늘의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저는 요즘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되었습니다.
1)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10일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여 3000명씩 5000명씩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2)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 바울이 세상에 주목받게 되었던 것도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3) 안디옥교회와 이방인 교회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총회를 하게 됩니다. 이 때에 해결하는 힘이 바로 성령과 우리가 힘을 합처서 해결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써 해야할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4) 사도행전 19장에서 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에 에베소 교회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아볼로 목사님이 시무하는 곳입니다. 고린도에서 시무하다가 에베소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답변합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어 7절에 보면, 모두 열두 사람이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5) 미국과 대한민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크롬웰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100%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크롬웰은 잉글랜드의 히틀러와 같았습니다. 천주교 국가와 같은 아일랜드의 인구 1/4에 달하는 30만명을 살육하였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2천만명의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국에 여러가지 좋은 일들을 하였습니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사람입니다. 네덜란트의 해양무역으로부터 영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쟁을 시작하여 큰 승리를 거두웠습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성문법을 만들어 통치하게 되었고, 영국의 왕을 처형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크롬웰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를 병합하여 영국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영국을 부를 때에 유케(UK)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크롬웰은 청교도정신으로 충만하여 인간은 욕망에 의해 타락할 수 있는 원초적 죄임임을 잊지 않고 언제나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극심한 도적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철저한 금욕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미국에 큰 영향을 죽어 크롬웰이 주장한 대통령중심제가 되었고 예전에 평강이가 있었던 동부 촌마을에는 아직도 금욕주의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평강이로부터 들었습니다. 주일날 양복을 꼭 입고 예배드리고, 학교 다닐 때에도 청바지를 입으면 안되고, 음주, 도박, 극장, 운동경기, 노래, 춤, 식탐, 주일성수, 십일조와 같은 것을 행하게 함으로 인간을 철저히 금욕주의 살도록하였습니다. 크롬웰의 청교도 영향입니다.
■ 크롬웰의 군대에 몸담으면서 경건한 청교도적 자세에 감명을 받았던 존 번연은 1678년 천로역정을 저술하게 되었고, 청교도 영향으로 200년 뒤 1895년 제임스 스카스 게일에 의하여 조선에 청교도적인 장로교 사상이 영향을 주어 길선주 목사님을 통하여 1907년에 평양대부흥운동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 크롬웰의 외교비서관이였던 존 밀턴입니다. 그는 눈이 멀고 난뒤에 창세기 속 에덴동산을 잃은 내용을 구술로 작성하여 실낙원이라는 영국 최대의 서사 시인으로 등극하였습니다.
■ 철저한 청도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삶의 현장속에 열매들이 없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성령의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하지 말아야할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청교도정신인 장로교회 처럼 철저하게 말씀중심으로 살아야하고, 순복음의 정신인 성령으로 기도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병들고 죽게 마련입니다. 너무 성령, 은사만 강조하면 신비주의에 빠지고 번영신학(바벨탑속에 갇힌 복음)에 빠지면 기독교의 정신을 잃을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게 될 때
마태복음 4장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에 마귀에게 광야에서 시험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의 유혹이 세 종류로 다가옵니다. 1) 떡이라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것입니다. 2) 명예라는 유혹입니다. 뛰어 내리면 너희 명성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입니다. 3) 마귀, 나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다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우리가 사탄을 이기는 힘이 2가지에서 나옵니다. 첫째는 성령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 즉 기록된 말씀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에 성령에게 이끌린다는 것은 성령이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에게 이끌리는 것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게 이끌리는 것은 순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살지만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까지 해보았습니다. 한남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아주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토풀도 준비했습니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부산항구에 가서 미국가는 배에 올라타고 무조건 미국으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곳이 미국이고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면 지금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미국이 아닌 제일 가난한 나라중에 하나인 필리핀에서 공부하게 하셨습니다. 내 생각이 아니 하나님의 생각으로 이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학교가 하나님의 성회 학교였기 때문에 순복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고 말씀에 열중하는 교단에서 성령이 충만한 교단을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4대까지 장로교 통합, 합동 측에서 신앙생활하였는데, 왜 하나님이 순복음으로 옴기셨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인생의 반절은 말씀으로 양육받았고, 인생의 반절은 순복음의 영향으로 성령으로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세상에 무엇을 하든지 집중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윷놀이를 하더라도 열심히 윷이야하고 던지는 사람들이 일등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기가 있습니다. 기를 모아서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 그 기의 효과를 얻어서 인생이 조금 더 잘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냥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도록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감나무를 흔들고 감나무 밑에서 열심히 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감나무에서 감을 딸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집에는 빵조각도 없고 이웃집으로 달려가 빵을 구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웃집은 온 식구가 한 방에서 자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이부자리를 깔로 나란히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집의 가장이 일어나 문을 두리는 사람을 사람을 향하여 제발 귀찮게 굴지 마시요. 대문 닫은지 오래고, 빵을 준비하면 우리집 온 식구들이 다깨고 그러니 다음에 오시요 하고 기쁜 나쁘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급한 그 사람에게는 남의 사정을 볼 여지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온집안 식구를 깨울 요량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집주인은 문빗장을 열어주고 빵 세덩어리를 건내주었습니다. 빵 세덩이입니다. 왜 빵 세덩이입니까? 빵의 완전하고 많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간청함입니다. 헬라어로 아나데이아입니다. 대담함, 부끄러움을 모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이 강청하여 기도로 요구하는 자들에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귀찮지만 그의 강청함으로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2. 사도 바울의 성령충만
사도행전 13장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충성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함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주목 받지 못했던 사도바울이 성령충만하고 난뒤에 주목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주목을 받고 싶습니까?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3장 9절 이후로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라는 사울이 새로운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까지는 사도 베드로가 주목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스데반, 빌립집사, 바나바가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뒤에 그가 이제 주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그리고 전도여행을 통하여 주목받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무디 목사님은 집회 때 마다 수많은 질병을 치료하고 많은 사람들이 변화된 사람을 살게하는 분입니다. 부흥집회에 초청강사를 무디목사님으로 세우기를 원했습니다. 젊은 목사님이 벌떡 일어나서 왜 강사로 무디목사님만 고집하십니까? 더 말씀을 잘 증거하는 목사님들이 많은데, 그러자 원로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디목사님만큼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 없습니다. 무디목사님은 성령을 독점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무디의 자서전을 보면 무디가 시골에서 보스턴으로 올라와서 양화점에서 일하고 있을 때에 킴벌이라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어떤 일에도 유용하게 쓰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전도하여 주일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디는 성령을 받고 난뒤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날 아침 밖에 나올 때에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러웠습니다. 나는 공중의 뜬 해를 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새 소리를 들었을 때에 그것들도 전과 달리 사랑스러웠습니다. 만물은 나에게 관계를 달리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심령이 변화되어 만물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달빛과 같은 희미한 계시 속에서 하나님을 보다가 태양 빛 아래서와 같이 밝히 하나님을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 77년 조용기목사님이 빌리그래함목사님과 단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셨다고합니다. 조용기목사님이 당신은 목회 생활 가운데 일평생 유일한 목표가 무엇입니까? 물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목회자이며 부흥강사인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오직 성령이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수많은 목사님들이 성령을 받기을 위하여 삼각산으로 그리고 기도원으로 그리고 교회에서 계속적으로 기도합니다. 무엇을 받기 위하여서요.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도 받고 능력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는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도와주셔야하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교 좋은 신학교 나온 순서대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재하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3. 성령과 우리는
사도행전 15장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세계 최초의 총회를 한 것입니다. 기독교역사상 제 1회 총회를 한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율법과 할례를 행해야한다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그렇지 않습니다.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예수님만 믿으면 되지 왜 또 다른 짐을 우리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2000년 이상 지켜온 율법과 할례의 문제를 폐기하는 문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민족 공동체의 역사를 살펴보면 율법중심의 공동체입니다. 할례의 역사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사입니다.
1)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2) 모세의 할례: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고하였습니다.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당신은 참으로 내 피 남편이라고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3)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 모두 할례를 행하게됩니다. 그곳 이름이 길갈입니다. 굴러가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지표는 구약성경(율법)입니다. 그리고 몸의 할례를 표시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유대인 아닌 것인데 이것을 하지 못하게 하니 예수님을 믿을 믿는 유대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중에 유대인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율례와 할례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리고 헬리인으로 유대인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시키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예루살렘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로 심하게 다투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야했던 것입니다.
총회 결론은 사도행전 15장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성령과 우리는의 결론은 우상의 제물, 음행, 피체 먹는 것(선지국)과 같은 것만 제외하고 아무도 짐을 지우지 말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성령과 우리이라는 결론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데 율법적이고 할례적인 행위로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너무 보수적이면 성령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주목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