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1. 序
이정철 목사님께서 소개해주신 불편한 편의점을 읽게되었습니다. 소설책이라 마포중앙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려보기 위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인기있던지 5명 대기 인원에 들지 못했습니다. 설명절 중간에 홍대에 나가서 사려고 하였지만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할수 없이 인터넷으로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인공은 두명입니다. 염여사와 노숙자 (독고)입니다. 염여사는 국사 선생님으로 정년퇴직 후 편의점을 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염여사가 부산에 가던중 파우치(여성들의 작은 손가방)을 분실합니다. 노숙사 독고가 다른 노숙자들과 싸우면서 지킨 파우치를 염여사에게 전달합니다. 염여사는 고마움에 4만원을 주지만 받지 않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숙대앞 Always편의점에서 박찬호도시락 대신에 진수성찬 도시락을 대접해줍니다. 유통기간 만료되어가는 도시락을 매일 먹으라고 합니다. 야간일을 하고 있는 점장이 그만둠으로 염여사가 밤에 일을 하다가 불량학생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때 노숙자 독고가 이를 도와줍니다. 이로 인하여 염여사가 노숙자 독고에게 편의점에서 일하기를 제안합니다. 이로 인하여 격게 되는 여러가지 일들을 작품에 그리고 있습니다.
1) 경만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편의점의 야외테이불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푼다, 그가 애용하는 메뉴는 참께라면, 참치김바, 참이슬 세가지로 일명 참참참세트입니다. 어린 두 딸과 아내를 위해 힘겹게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가장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2) 딸은 잘 살고 있습니다. 좋은 신랑을 만나고 딸이 능력이 있어 좋은 아파트를 사고 편안히 살고 있지만 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들 민식은 편의 점을 팔아 자신의 사업자금을 투자하라고 하지만 대쪽 같은 염여사의 고집을 꺽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날 민식은 좋은 사업 아이템을 들고 염여사를 설득하기 위해서 편의점에 나타납니다. 노숙자 독고를 만나게 되고 민식은 사장 아들이라며 거들먹거리는 민식에게 당혹감을 주고 사장님은 편의점을 절대 팔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민식은 독고가 편의점 매각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설탐정 곽에게 독고의 뒤를 캐도록 의뢰한니다. 곽은 독고를 미행하였지만 큰 소득이 없습니다. 오히려 독고를 매행하하던중 독고를 노리려는 사람들을 알고 독고에게 알려주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을 일고 느끼는 점은 염여사를 통하여 노숙자의 편견을 깨고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 일하게 되는 과정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술 중독으로 인하여 기억력이 상실되고, 가지고 있는 물질과 능력이 없지만 염여사를 통하여 불투명한 미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슬기롭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염여사는 꼬질꼬질하고 냄세나는 노숙자를 편의점에 고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만 염여사는 그 편견을 깨고 그를 고용함으로 겉모습만 보지 않고 속마음까지 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입니다.
II. 베드로의 편견을 깨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갈릴리 시골 어부 베드로를 수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베드로에게 가르치시고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를 최고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초대교황을 사도 바울로 세우지 않고 교회사에서는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세웠습니다. 그러한 이유에 대하여 함께 성경을 중심으로 아보겠습니다.
1. 베드로의 인생
베드로 생애는 마태복음부터 시작하여 마가, 누가, 요한, 그리고 사도행전 12장까지 말씀하고 그 다음에는 사도행전 이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공간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반석 게바라고 이름을 바꾸워 부르심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세우시는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오해하게 됩니다. 교회가 인간 베드로의 반석위에 세워진 것 처럼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초 위에, 예수님의 교회위에 작은 반석, 연결되는 돌과 같은 존재가 되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작은 반석들입니다.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하고 예수님을 떠나 갈릴리에서 어부일을 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한번 사명을 주시고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난뒤에 베드로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형성되고, 유대인들과 헤롯왕의 핍박으로 소아시아 지역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베드로에게 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가가, 마태가, 누가가 기록하여 복음서가 완성되었습니다. 물론 요한복음은 요한에 의하여 저술되었지만 초대교회에 중추적인 역활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유대인으로 복음을 증거하는데 여러가지 편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편견을 깨드리시는 것들을 성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III. 편견을 깨시는 하나님의 섭리
1. 베드로와 다비다
사도행전 9장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다비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선행과 구제가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다비다는 죽게되었습니다. 다비다가 죽자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다락에 눕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불러오게 됩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였을 때 다비다가 지은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며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증표를 보여주게됩니다. 여러분들은 죽은 뒤에 어떤 증표가 있습니까? 흔적이 있습니까? 저 성도는 지독하게 구두쇠입니다. 저 성도는 자기 것만 아는 성도입니다. 우리 지동현권사님이 소천하셨을 때에 모든 성도들이 함께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한 번도 교회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 5:14,16)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다비다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일어나라고 명령합니다. 다비다는 눈을 뜨고 베드로를 알아보게됩니다. 성경은 왜 이곳에 이러한 말씀을 적어놓았을까요? 저는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부활의 소망으로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베드로와 유대인들의 편견을 깨드리기 위함입니다. 죽은 시체를 만지지 않는 것이 유대인의 특징이지만 베드로는 죽은 시체 앞에서 기도함으로 살려냈습니다.
2. 베드로와 무두장이 시몬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베드로가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여러날을 머물게 됩니다. 왜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었을까요? 짐승의 가죽을 가공하고, 피역을 통하여 가방, 구두등을 생활용품을 만는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에 레위기 11장 39절에 짐승의 시체를 만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정한 직업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의 백정과 같은 직업입니다.
3. 베드로와 고넬료
고넬료에게 하나님이 환상을 주십니다.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베드로가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이방인의 초대인 것입니다. 시체와 죽은 짐승의 시체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이방인을 접촉하는 문제입니다. 갈라디아에서는 사도바울이 사도 베드로를 책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요, 이방인들과 식사하다가 도중에 유대인이 오니 그 자리를 피하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우유부단함을 책망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습니다.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을 잡아먹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부정한 것이라고합니다. 결코먹을 수 없다고합니다. 그렇게 세 번을 한 후에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을 맞이하게 되면서 베드로는 깨닫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큰 보자기 같은 한 그릇에 담긴 각종 짐승은 바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라는 뜻이라는 깨닫게 됩니다. 사방 귀퉁이는 동서남북 모든 곳에서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편견을 깨드리는 것입니다. 부정한 다비다의 시체, 부정한 무두장의 집, 그리고 이방인 고넬료의 사건을 통하여 이제 베드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됩니다.
4. 베드로의 복음전도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다비다를 살리고, 구두수선공 시몬의 집에서 거주하면서, 하나님이 보낸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처음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되고 그들이 다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에 베드로는 성도들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옥에서 나와서 그 후의 행적이 없지만 베드로전서 1장 1절이하의 말씀을 통하여 이방지역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 예수님과 베드로에게 물어볼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만 이방지역에 증거했다고 성경에 쓰여져 있는데 베드로 사도님은 무엇을 했는지?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전서 1장 1절의 말씀에 비추어서 이렇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베도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 지역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을까하는 추론을 하게됩니다.
베드로는 다비다와 구두수선공인 시몬과 고넬료의 환상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부정한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유대인의 편견을 깨버리고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편견이 깨질 때 좀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19세기 들어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깨고, 20세기 들어 흑인들에게 편견을 깨고, 21세기 들어 나와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깨지고 조금더 그들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전세계, 우리나라 모든 교회들이 이러한 편견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우리들이 되어야합니다.
5. 로마에서의 순교
로마 네로 황제의 박해가 절정에 달하자 당시 로마에 머물고 있던 교회 지도자 베드로는 엄청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던 로마의 성도들이 베드로를 찾아 와서 눈물을 흘리며 간청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우리는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님에게 무슨 변이라도 생기면 교회는 완전히 흩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발 몸을 잠시 피하십시오” 성도들이 하도 간청을 하자 베드로는 환란이 지날 때까지 잠시 몸을 피하기로 하고 밤중에 사람눈을 피해 몰래 로마시를 빠져 나왔습니다. 새벽이 가까워 올 무렵 이윽고 날이 밝기 시작했습니다. 동쪽에서 찬란한 황금빛을 뿜으며 떠오르는 태양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 태양을 보는 순간 찬란한 그 태양빛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으로 보게 되었고 깜짝 놀라 다급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 당시 사용하던 라틴어로 말하면 ”쿠오 바디스 도미네“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내 백성를 버리고 나왔으니 내가 가서 그들을 위해 한 번 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려고 간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베드로는 한참 동안 고개를 떨군채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침묵 속에 앉아 있던 베드로는 드디어 결심을 선 듯 몸을 일으켜 자기가 오던 길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으로 가신다면 나도 따라가야지“ 로마로 돌아간 그는 결국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같은 죄인이 감히 스승되신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똑바로 못 박힐 수 없다고 거꾸로 메달아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달림으로써 영광스런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새생명교회 참조)
베드로가 없다고 초대교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말고 또 다른 제2의 베드로를 우리 주님이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과 저에게 주시는 사명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벽을 넘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전하기 보다는 핑계를 대기에 바쁩니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돈이 없어요, 배경이 없어서 안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있습니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멀리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할 수 업지만 주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7절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결론
제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까지 전라북도 김제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는 금산교회가 유명합니다. 교회구조가 ㄱ자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개척하신 조덕삼 장로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금산교회에서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고 있는 이자익이 먼저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를 존경하고 금산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 이자익 마부를 모시게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편견을 깨버렸습니다. ( 다른 예, 숭동교회)
어린시절 아궁이에 장작을 지펴 밥을 해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는 불을 지필 때에 요령 것 잘하지만 제가 할 때는 연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부체로 부치고 신문지를 더 놓곤합니다. 장작에 불을 붙이는 과정속에서 불과 연기가 같이 공존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인생도 불과 연기가 같이 공존합니다. 처음 불을 집힐 때에 연기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이 잘 지피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작은 불꽃이 큰 불을 이루고 주변에 있는 장작 같이 옴겨 붙어 활 활 타오른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편견을 깨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이 옴겨 붙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