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38절 예수님의 하신 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10월 5일

 

사도행전 10장  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오늘 본문은 나사렛 예수님이 하시는 일과 마귀가 하는 일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하시고, 고치시고, 마귀가 하는 일은 사람을 눌리게 하는 일을 합니다.

 

  1. 마귀가 하는 일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질병으로 눌리게 하고, 사업장에 눌리게 하고, 직장 생활 눌리게 하는 것입니다. 잠을 자지 못하여 눌려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들은 기력이 없어 죽고 잘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밑에는 성장하고 부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큰 나무 밑에서 성장하기 위하여 뿌리가 튼튼해야 하는데 큰 나무의 뿌리가 미리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작은 나무는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시편 119편 28절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 마귀는 말로 사람들을 누릅니다.

열왕기상 19장 1절.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갈멜산의 큰 승리를 하였습니다. 수많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처단하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세벨이 이것을 보고 엘리야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의 생명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열왕기상 19장 2절)

 

이 한마디에 엘리야는 두려워져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 참조 이단의 말 한마디에 유혹됩니다.

 

마귀 곧 옛 뱀,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을 심어줍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거짓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리고 욕망을 자극합니다.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

 

마귀는 자신의 말을 듣고 따르면 마귀의 종이 되게 합니다. 죽이고 멸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3) 마귀는 죄를 짓게 합니다.

요한복음 8장 34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한일서 3장 8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와 목회자들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일부 잘못된 모습들이 언론을 통해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답니다.

 

영화나 언론은 종종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역할을 해요. 일부 교인이나 목회자의 일탈 행위, 비윤리적인 모습들이 대중의 시선으로 비춰지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밀양’, 우리 교회에서 영화를 찍게 해 주었는데 그 내용도 교회에 대한 나쁜 모습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교회 세습, 재정 횡령, 목회자들의 부적절한 성관계 문제 등이 고발합니다.

 

제 생각은 영화와 언론의 배후에 악한 마귀가 있어서 그러합니다. 마귀의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분열’과 ‘불신’을 심는 것이거든요. 교회를 향한 존경심을 무너뜨리고, 거룩함을 더럽혀 교인들이 낙심하고 교회를 떠나게 하려는 시도들은 악한 세력이 늘 노리는 부분이기도 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영적인 싸움 속에서도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말씀 안에 굳게 서는 것이에요. 교회의 본질은 사람이나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4) 마귀는 거짓말을 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고 진리에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서 그 속에서 나오는데 마귀의 속에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거짓만 나옵니다. 말할 때마다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진리, 마귀는 거짓입니다. 창조 시에 하나님은 진리였는데 하나님에게 대항함으로 거짓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평안과 기쁨이 행복이지만, 마귀는 두려움과 슬픔과 불행입니다.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아픕니다.

 

사람들이 머리가 아픈 이유를 AI에 물어보았습니다.

 

몸을 긴장하면 두통이 옵니다.

잘못된 자세로 오랫동안 사용하면 뒷목과 머리가 뻐근합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머리가 띵하니 아픕니다.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합니다.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건조한 날씨 특히 가을처럼 습도가 낮을 때 코점막이 건조해져 두통을 일으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머리가 아픕니다.

 

영적으로 무당들이 많이 머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하여 초자연적인 힘과 접촉하기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점집이나 절간이 가까워지면 머리가 아픕니다. 인천 무당집, 청라 점집의 쪼꼬동자집이 가까워질수록 머리가 아프다고 하였습니다. 점집은 본인의 의지로 간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귀신에 의하여 끌려간 것입니다. 점을 치거나 굿을 하거나 초 치성들을 하면 귀신과 마귀들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얼마나 평안한지 교회에 오기만 하면 자는 분들이 있습니다. (추석에 조상 귀신 조심해야 합니다.)

 

 

III. 눌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사도행전 10장 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1. 나사렛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사렛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는다는 것은 마치 구약 시대에 왕이나 선지자, 예언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직분을 맡기듯,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특별히 하신 것은 마귀에게 고통당하는 자들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도 바로(사탄)의 세력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장 11절: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절: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일본의 관상어 코이(비단잉어)입니다. 코이의 법칙이 있습니다. 억압된 환경에서는 제한적인 성장을 합니다.

 

어항에서는 2cm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수족관에서는 20cm 자랍니다.

하천에서는 약 100cm (1미터 자랍니다.)

 

예수님 거하시는 곳에 눌림을 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간 국가에서는 여성들이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슬림 국가에서는 여성들에게 자유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간 곳에서는 여성들이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쪽두리를 쓰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와 우리나라 여성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한국 여성의 평균 키는 142.2cm에서 162.3cm로 무려 20.1cm나 커져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마태복음 4장 23절: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예수님의 사역은 1) 가르치는 사역, 2) 복음 전도의 사역, 3) 신유의 사역, 4) 축사의 사역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2) 성령과 능력으로

사도행전 10장 38절: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으로 눌림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곳곳에서 성령의 능력이 죄의 권세, 질병, 마귀의 억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증언하고 있어요.

 

로마서 8장 2절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데살로니가전서 1장 5절: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하며, 성령이 함께 할 때 비로소 진정한 능력이 나타남을 강조했답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입을 보면 거의 입술이 쓰레기통입니다. 욕이 절반이고 거친 말을 합니다. 영화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 그러나 그러한 아이들이 성령 충만하게 되면 말이 따뜻하고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합니다.

 

교회에서도 성령을 받아야 은혜롭습니다.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한 번도 전쟁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위기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산 꼭대기에서 기도합니다. 인간의 힘은 오랫동안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론과 훌이 서로 받쳐 주어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서로 손을 끌어내기 위하여 있는지, 성령 충만한 교회는 자주 분열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희망 교회) (아말렉을 사울 왕을 통하여 멸하려고 하였을 때에 이를 살려줍니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 안수집사님이 국그릇을 깨뜨렸습니다. “조심하셔야지요, 안수집사님 괜찮으세요?” 하고 물어야 합니다.

 

음식이 아까워서 쉰 음식을 먹어 봐야 하는 것보다 그냥 버리면 됩니다. 명분은 제사이지만 그 마음속에 사욕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정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그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그 사람을 돕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 마귀가 역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왜 그러한 실수를 할까? 마치 아이큐가 물고기 아이큐입니다. 물고 또 무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또 짓는 것입니다. 한 바퀴 돌고 와서 또 물어요. 물고기에 골이 있어요 없어요? 저는 없는 것 같아요. 사욕이라는 마귀가, 거짓이라는 마귀가 붙어서 죄를 또 짓고 또 짓는 사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다윗도 상당히 악한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과 다른 것은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가 다른 것은 회개입니다.

 

번아웃입니다. 공급하는 힘이 작기 때문입니다. 왜 물질에 번아웃이 될까요?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소비가 많고, 공급하는 힘이 작으면 번아웃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번아웃, 엘리야의 번아웃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큰 능력과 권능이 있었지만 이세벨의 말 한마디가 엘리야를 번아웃되게 하였습니다. 마치 사업의 부도와 같은 것입니다. 벌어들이는 것보다 쓰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공급하는 성령의 능력이 적고, 세상으로 향하는 마귀의 생각이 많으면 부도가 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 20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자신감을 있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보았을 때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내가 물매를 던지면 언제든지 골리앗의 얼굴에 맞힌다”라는 자신감, 큰 사람 보고 놀라는데 큰 사람은 맞힐 수 있는 확률이 크기 때문에 언제든지 던지면 맞히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자신감을 갖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님이 도와주셔야 그러한 자신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질병을 치료할 때에 간증을 들었습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료할 때도 있고 치료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치료하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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