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최인호의 소설중에 상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박종경을 만났을 때의 일화입니다. 박종경은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자기가 남대문을 관장하고 있는데 하루에 드나는 사람이 몇명인지? 어떤 이는 3000명, 어떤 이는 7000명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몇 명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루에 남대문을 드나드는 사람이 몇 명인지 다음날까지 정확히 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 모든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였지만, 임상옥은‘이가와 해가 두 사람’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가는 누구고 해가는 누구냐?’고 묻자 ‘이가는 이로운 사람이고, 해가는 해로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루에 숭례문을 드나드는 사람이 몇 천명이든 간에 내게 이로운 사람이 있고 해로운 사람 뿐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박종경은 임상옥에게 내게 이로운 사람은 누구이며 해로운 사람은 누구냐고 하였습니다. 임상옥은 박종경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게 이로운 사람은 세 유형이 있고 해로운 사람도 세 유형이 있습니다. 이로운 사람은 첫째, 정직한 사람이요, 둘째, 성실한 사람이요, 셋째, 박학다식한 사람입니다. 해로운 사람은 첫째, 아첨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요, 둘째는 신용이 없이 간사한 자요, 셋째는 진실한 견문 없이 감언이설하는 자입니다.” 임상옥의 이 대답은 그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논어 계씨편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본문설명
빌립보는 외국의 영토에 세운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의 법으로 치리되고 있고, 완전히 로마의 지배에 종속된 곳입니다. 마치 이 땅에서 교회가 하늘의 출장소인 것처럼 빌립보는 로마의 군사와 그리스 문화로 둘러 쌓여있고 작은 로마입니다. 빌립왕의 이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농업과 금이 많은 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제 2차 선교 여행시 빌립보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이동한 후에도 빌립보 신자들은 바울을 지원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5년 뒤에 3차 여행중 바울은 고린도로 가는 중에 빌립보를 들렸습니다. 3차 여행 돌아오는 중에도 또 들렸습니다. 이로 보건대 사도 바울에게는 빌립보 교회가 큰 힘이되고 무척이나 귀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가게되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곤핍한 사도바울에게 헌금을 전하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약 한달 걸리는 거리입니다. 빌립보 교회 장로님인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사도에게 헌금을 전달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에 머무는 동안에 병이 들었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를 고쳐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에바브로디도를 고치심으로 내 금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체력을 회복하자 바울은 빌립보서로 알려진 편지를 주어 빌립보 성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위안과 안위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의 쓴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도 바울에 대하여 관심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형편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2) 에바브로디도의 사역을 설명하며 그를 비판하는데 대해 변호하기 위함입니다.
3) 빌립보교회에 대한 헌금과 헌신에 대한 감사입니다.
4)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기쁨이고 기쁨으로 신앙생활하는 내용입니다. 절대 긍정, 절대 희망을 가지고 살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꼭 해야할 일이라면 기쁨으로 그 일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공연히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간다면 삶에 기쁨이 없고 고통의 연속일 것입니다.
근심이라는 뜻은 영어단어로 worry라는 단어는 목을 졸라 질식시키다는 뜻입니다. 근심이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무것도 근심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심이란 조바심으로 찢겨지다의 뜻입니다. 우리의 정신과 감정에 들어있는 생각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잡아 당겨 우리를 찢어 놓을 때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신은 문제를 인식하는데 이 문제들은 마음속에 감정을 더하여 불어 넣어 결국은 그 사람을 찢어 놓는 순환논법이 형성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신경질 내서는 안된다고 알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고 불같은 성격으로 인하여 일을 그리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근심의 순환논법을 부숴뜨리고 즐거운 마음, 절대긍정으로 살아야합니다.
일본에서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하였습니다.
트럼프 포카에는 4가지 무늬가 있습니다.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하트, 클럽의 4가지 무늬입니다. 딜러가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하트, 클로버등 무작위로 주는 것입니다.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도 주고 원치 않는 것도 주는 것입니다. 정말 돈 따는 사람들은 어떤 패가 들어왔을찌라도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부자로 사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하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좋치 않은 패가 들어왔을지라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보다 이것이 나를 더 정금같이 연단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극동방송에서 이러한 예화를 들었습니다. 대장장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8년이 지났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옛날 친구 술친구가 찾아와서 이만 포기하고 나와 같이 술 먹자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어도 잘 살지 못하는데 왜 예수님을 믿는냐는 것입니다. 그때 대장장이는 하나님이 나를 대장장이를 만드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은, 쇠가 불속에 들어가 망치로 여러분 맞고 고통을 받고 난 뒤에 아주 강한 쇠로 사용되는 것처럼 나를 오래동안 연단하고 계신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 마구 섞여 들어오는데 그 패를 보고 일희일비하면 타자가 될수 없습니다. 트럼프 카드를 뒤집으면 다 같은 뒤면이 나오는데 좋은 패도, 나쁜 패도 다 뒤면은 같은 색이고 같은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킹이 들어오지 않아도 감사하면 언젠가는 좋은 패가 들어와 인생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양치질을 싫어합니다. 아이들은 예방주사를 싫어합니다. PC방에서 게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좋아하지만, 부모들은 체소와 함께 먹기를 권합니다. 어린 시절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고 나이가 들면 몸에 좋은 것을 먹습니다. 우리 인생사도 내가 원하는 것만 이루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치 않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좋게 만드실 것을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면 좋은 일이 분명히 일어납니다.
절대 긍정으로 살기 위하여서는 관용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은 분별력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신을 가지고 살 때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패가 오든지 오지 않든지 관용하는 마음을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분별력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절대 긍정의 성도들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 있는 사람들입니다. 확신이 있으면 관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억지로 형식적으로 믿는 사람이거나, 사람을 의식하여 신앙생활하면 너그러운 관용이 없습니다. 마치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가 보입니다. 잘못된 점이 찾아 낼수 있습니다. 우리 사모가 마지막 학기 부분에는 정말 힘들이게 오탈자를 찾아냅니다. 학생들을 평가하고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담임선생님이 학과 선생님이 학생들의 평가를 적어 놓습니다. 이 때는 오탈자를 눈에 부라리고 찾아냅니다. 4명의 선생님이 돌려가면서 그 오탈자를 찾아냅니다. 그래도 몇년이 지나고 난 뒤에 보면 또 보인다고 합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의 단점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을 읽어도 오탈자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생 60년을 살아오면서 여러가지 냄세 나는 부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단점 투성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목사님과 사모님과 성도들을 보시면 주님이 가까이 계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면 관용할 수 있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찌른자도 용서하고 자신을 배반한 자도 찾아가서 용서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되는 것입니다. 관용은 너그럽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참 딱딱하고 거칩니다. 왜냐 어렵게 살고 거칠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사람들이 정말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관용하지 않습니다. 너그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들 시대에는 부요하고 넉넉하기 때문에 조금은 너그럽습니다. 관용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과 남한의 축구하는 모습, 예)
예전 저 어렸을 때에는 부부 싸움하는 가정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주변에서 부부싸움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여유롭기 때문입니다. 넉넉하면 관용할 수 있습니다. 포용할 수 있습니다. 나누워 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것을 믿으면 모든 사람들과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주님에게 촛점을 맞추면 기쁨과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의 권면을 눈여겨 보십시요. 주 안에서 굳게 서라, 주 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라, 왜냐하면 주께서 가까우심이라. 이 말씀은 주님의 재림이 가깝다는 뜻도 있지만 더 정확한 해석은 주님이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로 해석하는 것이 옳바른 해석입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관용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에바브로디도의 문제로 마음이 섭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병들을 수 있습니다. 민폐를 끼칠 수 있습니다. 너그럽게 관용하면 하나님이 고처주시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하지 않고 사는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주님께 기도하면 응답하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5장 1절)
염려 근심 걱정은 정신과 마음 사이에 긴장을 가져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염려가 들 때에 근심이 들 때에 걱정이 들 때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면 하나님이 선한 능력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바른 기도란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6절에 기도라고 한 말의 의미는 바로 찬양입니다. 구약성경의 감사는 히브리어 ‘야다'(yadah)로 ‘고백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찬양하다, 감사하다’의 의미로 쓰일 때 목적어는 하나님이다(창 29:35, 스 3:11, 시 33:2, 사 12:4).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실 때에 찬양하시면서 기도하러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2분의 집사님에게 너무 감사할 것은 무려 40분가량을 찬양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일찍와서 찬양을 열심히 하면 그것이 곡조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간구는 정직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원을 뜻하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는 입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기도의 내용, 우리의 간구를 주님께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 모르겠습니다. 불교처럼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자신이 이루려고 하면 정말 진한 고생을 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님이 미리 격으신 고난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편에 불안한 상황 가운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근심 가운데 걱정 가운데 기도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는 간구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의 불안함 가운데에서도 간구하셨습니다.
다니엘은 6장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마음과 생각 지키자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인간의 삶은 끝임없는 생각의 연속입니다. 생각과 생각의 물림을 어떻게 이어가는냐에 따라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자유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다행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도하고 불행한 일도 일어나기도합니다.
일제치하에서도 우리 말과 글을 쓰지못하고 우리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징집되고 강제 수용소에서 있었지만 생각은 자유로웠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죽음의 가스실에도 생각은 자유로웠습니다. 모진 고문속에서도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의사는 독립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나라를 팔아먹고 생활 속 편안함이 있지만 생각 속에서는 늘 불안함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영의 생각과 육에 대한 생각이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나옵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이지만 육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예를 통하여 우리는 잘 알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영의 생각과 말을 함으로 예수님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6장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여기서 지킨다는 단어는 왕의 궁전에 있던 우수한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삼엄하게 경계를 받고 보호를 받던 물건이나 사람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누가 지켜주십니까?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잘못된 느낌을 갖지 않도록 지킨다. 마음속에 생각에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지킨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세상의 생각들, 나쁜 생각들, 음난한 생각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려는 생각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응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들은 절대긍정으로 생각하여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것까지 응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왜 계속하느냐 내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으로 보았습니다.
온도계 신자. 그의 만족은 전적으로 외적인 상황에 달려있다. 단순히 신앙적인 온도에 따라서 움직이는 성도입니다. 날씨가 추우면 안다오고, 코로나가 심하면 안 나오는 성도입니다. 이러한 성도는 온도계 신자입니다.
온도 조절계 신자, 그의 만족은 외적인 상황과 전혀 무관하다.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 상황을 실제로 지배하는 성도들입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도 자족하고 만족하고 절제하며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아들 평강이와 함께 볼링을 처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핀도 못 마치고 또랑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쩔 때에는 한개, 그리고 스프릿이 되어 마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링을 잘 치는 사람들은 일히 일비하지 않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아 다음에 잘 할 수있어라고 자신을 권면합니다.
공부할 때, 군에 갈 때, 직장생활 할 때, 다시 미국갈 때 좌절과 실망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포기하고 화를 낼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을 다 통과하고 사모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 평강이야, 나 할 수 있어 절대 긍정으로 살아가는 삶이 참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결론입니다.
로마의 황제의 평균 수명은 35세, 조선시대의 왕들은 43세가 평균 수명입니다. 최고의 음식과 최고의 권력 최고의 생활을 하였는데 왜 짧은 인생을 살까요? 이유는 불안과 마음의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병이되고 육체의 병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 6명 중에 1명은 최근 1년간 정신질환을 경험하였다고합니다. 예전에 없는 병원들이 생깁니다. 바로 정신건강의학과입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20년 자살사망자는 1만 3,195명입니다. 코로나 확진자 100만명, 사망자는 6942명입니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보다 자살해서 죽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성구가 있습니다. 주안에서는 예요, 아멘입니다. (고후 1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