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13절 주일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5년 2월 설 주간 (유병무 안수집사 소천)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인생에는 3종류의 삶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포기하는 삶입니다.
둘째로는 자신의 힘으로 할수 있다는 삶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안에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삶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있다고 하여 이만큼 발전해왔습니다. 그렇다고하여 이세상의 모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암도 치료받지 못하고 그리고 가족의 아픔인 죽음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맹자는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혈안이 되어 찾고 있으면서 잃버린 자기를 찾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탄식했다고합니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하여 철학자들이 노력합니다. 그리고 명상하고 자기를 찾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찾아야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일입니다. 그 분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할 때에 아름다운 자화상으로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게르솜이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 되었다는 뜻입니다. 게르솜 게르솜을 불르때에 나는 이방 땅 광야에서 나그네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8장
3.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그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이는 모세가 이르기를 내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함이요
4.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출애굽기 4장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의 힘으로 노력하는 모세에게는 80전까지는 자신의 힘만 의지하고 살때에 그의 장자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광야의 나그네 된 삶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도 그러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나는 험악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을 낳고는 하나님의 나의 구원이라고 하여 엘리에셀이라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어려분의 삶의 주인공이 되시고 예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 모든 죄악과 사탄의 유혹을 이길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화상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이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풍성하게 살수 있다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땅과 육신과 영혼의 저주가 다가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삶아가며서 모든 것을 풍요럽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먹을 것이 없어서 가난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나눔에 대한 인색함입닌다. 여러분 미국에서 나오는 모든 농수산물을 아프리카에 주어 먹어살릴 수있다고합니다. 남한의 모든 벌려진 것을 모아서 북한에줄 수 있다고합니다. 죽어가지 않을 수있다고합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죄입니다.
본문 13절은 참으로 유명한 구절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왠만한 일을 할수 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어떤 전도사가 자주 한 말입니다.
이구절은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 너 광장된 요소를 갖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저는 저희 지역구에있는 국회의원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왜 전에 있는 대통령들을 부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역사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순복음목사가 되었는지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순복음의 특징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목사입니다.
아픔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죽음 그 자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절대 긍적, 절대 희망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로마 감옥에 갖였다고 하여도 그것을 합력하여 선을 우리는 것을 믿고 감사의 쓸수 있는 절대 긍정, 절대 희망으로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사도바울을 위하여 빌립보 교인들이 헌금을 가지고 에바브로 목사님이 사도 바울을 만나면서 교회 헌금을 제공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과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으로 구분된 세상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할수 없다는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러가 기독교인들에게는 주안에 믿음으로 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정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정복한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링컨, 에디슨 등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어는 인텟에 있는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려고합니다. 사상가들만 소개하려고합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강조한 아타나시우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성경을 집대성한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쯔빙글리의 예수님을 기억하라, 존 칼빈의 장로교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조나단 에드워드의 현대 문화의 도전등, 칼바르트의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시에스 루이스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등
2.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가? (줄 때 나옵니다)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중고등부 수련회 가니 이러한 글귀가 있습니다. 오신 자체가 은혜입니다.
공부해서 남을 주자, 돈벌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자 멋있는 글수 있습니다. 복된 글귀입니다.
여러분 왜 지도력이과 영향력이 필요합니가? 자신을 극대화하고 그리고 세상에 영향력이 있어서 함께 지도력은 무엇인가? 지도력 영향력은 어는 정치적인 지도자많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경제인도 그리고 교회에서도 특별히 개인에게도 꼭필요한 것입니다. 자기자신에 대하여 명령하고 지도력과 영향력이 있어야합니다. 날마다 자기 자신에게 지는 사람있습니다. 예배를 드리여야하는데 드리지 못하는 사람, 일을 해야하는데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 여러분 나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그리고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결심하고 다시 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물론 인이 밖히거나 중독이 되면 참으로 끊기가 어렵습니다.
한 가정에서도 영향력과 지도력이 있어야합니다. 장례를 집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참으로 막대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교회에도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 장로님이 들어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 영향력이 있고 지도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감옥에 갖혔다는 말을 듣고 영치금을 넣어드리기 위하여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김성애 권사님의 가정에 장례로 인하여 두 교회가 함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원순복음교회와 둘째 사위가 다녔던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서 헌신하므로 물질을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의 괴로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참 잘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좋은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잘하였다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공부에 열심히 참여하면 참 잘했어요라고 선생님이 도장을 찍어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참 잘했다고 이마에 인치심을 주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바로 인색한 사람들입니다. 주는 사람들은 마음 너그러운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줄 때 행복합니까? 받을 때 행복합니까? 줄때에 행복한 사람을 아름다운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사람입니다. 줄 때 마음이 아픔니까?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행복은 받을 때 보다 주는 사람이 될 때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 더더욱 그러합니다.
주는 일에 어려운에 참여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잘하였다고 사도 바울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성도들도 그러한 일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선교가 될 수없습니다. 복음 증거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나 복음 증거하는 자가 간접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바로 물질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당장에 빚이 있어도 우리교회에서 선교사의 일에 참여하기 위하여 매달 김종국 목사님, 윤정열목사님, 로델 선교사에게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장례식 때 어는 권사님과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이권사님은 어려운 목사님을 돕는다고 하시면서 자신에게 돈이 딱 70만원이 있는데 그 목사님이 전화하셔서 자신이 집새를 내야하는데 방을 옴겨야하는데 70만원이 필요하다고합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이 저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제가 드릴 까요? 말까요? 그 마음속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드리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드리지 않아도 죄를 짖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권사님의 손실통하여 더 큰 축복을 주시고자하는 것 같습니다. 하고 기도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렛다 과부에게 주셨던 축복이 오늘도 임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보험을 깨서 00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당시 15년전에 10년동안 들어놓은 760만원을 개척하는데 드렸더니 하나님이 성원순복음교회로 옴기게 하셨습니다. 제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개역개정] 마태복음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개역한글] 역대상 16:22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개역한글] 시편 105: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주의 종에 대하여 왈가 올부 할 필요가없습니다.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00의 교회에서 500명의 성도들이 대모를 하고 있다고 뉴스에 들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500명이 따로 개척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 대하여 할 일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괜히 하나님께 혼나거나 하나님께 죄를 짖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 이러한 물질에 대한 욕심 있습니까? 바로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성경이 한 권이라도 있다면, 전 세계에서 축복 받은 사람 1/3 중에 속한다. 당신이 오늘 건강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면, 금주에도 전 세계에서 질병으로 죽어가는 1백만 명 보다는 더욱 복 받은 사람이다.
당신은 아직 전쟁의 위험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현재 감옥, 고문, 기근 등의 재난도 당해 보지 않고 산다면, 적어도 이 세상의 5억 인구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아무 핍박, 체포, 투옥 없이 자유롭게 교회를 다닐 수 있다면, 아직도 전 세계 30억 인구는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함을 기억하라.
집 냉장고에 넣어둘 음식이 있고, 여벌의 옷이 있고, 지붕이 덮인 집이 있다면, 당신은 세계에서 부유한 25%에 들어간다. 은행에 잔고가 남아있고, 지갑에 돈이 넣어져 있고, 잔돈이 집에서 굴러다닌다면, 당신은 세계에서 부유한 8% 속에 속한다. 양친 부모가 당신을 버리지 않고 키웠고,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매우 희귀한 행운아이다. 잘사는 선진국에서도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당신이 지금 처한 현실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웃을 여유가 있다면, 당신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연약한 자의 손을 잡아 주고,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위로해 줄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해주는 도구로 쓰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제도 기도했고, 오늘도 예수님께 기도드리고 있다면, 당신은 정말 축복 받은 소수의 무리 가운데 속한다. 오늘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을 전혀 믿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당신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진정 거듭났다면, 당신은 지금부터 영원히 성공했다. 세상에서 이런 사람들은 역사를 볼 때, 결코 많지 않았다. – 갓피아 큐티 대광순복음교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