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보서 3장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성도들의 신앙을 판단할 때에 진짜인지 가짜 인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가지고 다니는 성경책으로 알수 있을까요? 아니면 기도할 때에 목소리를 통하여 진짜 신앙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참 신앙은 성경책도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가 어려울 때에 얼굴에 기쁨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전도의 기쁨
누가복음 10장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70인이 돌아올 때에 기쁨이 있었고, 예수님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2) 기도의 기쁨
요한복음 16장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3) 교제할 때에 기쁨
사도행전 2장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고 그리고 음식을 같이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니 기쁘지 않습니까?
4) 고난 받을 때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1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성도들이 능욕을 받고 핍박을 받아도 그 모습 속에 기쁨이 있으면 참 성도이고 진정한 성도의 모습니다.
청년의 시절에 우리 교회 다니는 친구의 집에 갔습니다. 그 어머니 집사님은 늘 기쁨으로 우리에게 밥을 차려주시고 기쁨으로 우리를 축복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기쁨이 없고 신앙생활이 정말 짜증이 난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신앙은 어딘가에 병들어 있거나 어딘가에 신앙생활에 권태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기쁜데 결혼하고 조금씩 권태가 다가오고 짜증이 다가 온다면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예수님에 대하여 사랑하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의 친구가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에 목사님들을 친구로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는 목사님을 만나면 정말 반갑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을 만나면 다시는 만나보고 싶지 않은 목사님이 있습니다. 전화를 하면 거룩한 척 목소리를 깔고 할렐루야 홍목사님 하면서 자신이 영적인 존재로 생각하여 다른 목사님들을 무시하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경건은 목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그 얼굴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 바울은 옥중서신으로 빌립보서를 서술하면서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사도 바울은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립보서는 전체가 4장입니다. 짧은 옥중서신에서 누차 강조하는 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찬송인도를 할 때에나 제가 찬송할 때에 복음성가 802장을 찬양하고 설교를 하면 더 활기차고 은혜가 있습니다. 저는 장례식장에도 찬송을 부를 때에 조금 더 정중하고 엄숙하게 활기차게 찬송을 부릅니다.
492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 가리 열린 천국문 내가 들어 가 세상 짐을 내려 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 쓰고서 …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기쁠 때에 기뻐하라고 하지 않고 감옥에 있을 때에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메세지에 더 많은 힘이 생기고 능력이 있습니다. 기쁠 때에 잘 될 때에 기쁘하라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렵고 힘들 때에 고난당하고 있을 때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감옥에 있는데 감옥 밖에 있는 사람에게 기쁘게 살라고 하니 더 힘이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배부를 때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라고 하면 설득력을 얻을 수 없지만, 배 고픈 사람에게 사람이 떡으로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라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배부른 놈이 별소리를 다하네 하고 일 침을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정말 배가 천정에 붙을 정도로 배가 고픈 상황이였지만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라고 말씀하시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떡보다 우위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부모님과 그리고 우리 할머니 권사님들이 왜 이렇게 아픈 소리를 하실까하면서 이상한 눈으로 보곤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가 조금씩 들고 조금씩 아픈 부분이 많아지고 있을 때에 정말 그분들의 아픔을 위하여 기도해야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선교사님들이 아픔을 격고 있을 때에 그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나도 이제 아플 나이가 되었구나하고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픈 목사님이 아픈 성도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행악과 외식을 버려야 기쁨이 있습니다.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개들을 삼가하라,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하라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하라고 하였습니다. 3가지 종류의 행태인데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입니다. 교회내에서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경계해야할 적이 바로 형식주의입니다. 신앙의 추상화입니다. 성도들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성도들의 행동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마귀와 싸움을 해야 하는데 성도과 싸움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도 말을 계속 돌리고 돌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미사어구를 사용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능력이 없고 기도에 말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영적인 성도들은 예수님과 성도와 싸우지 않고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교회와 싸우지 않고 세상과 싸우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고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물질을 사용하고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기쁨이 없고 신앙생활속에 기쁨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8장 9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의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종교의식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심에 과 하나님 경외의 예배가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는 예배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가증히 여기고 무미 건조한 예배입니다.
● 신앙생활의 적중에 또 하나는 바로 외식입니다. 바리세인들이 외식주의자들입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신분 때문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위신 때문에 헌금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잘하는 척하느라고 교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기로 신앙생활하면 교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기 자랑을 목적으로 신앙생활하면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낙심하게 됩니다. 내가 명색이 교회의 직분자인데 하면서 교회를 시끄럽게 합니다.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지 않으면 피곤하고 답답합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외식과 형식은 우리의 모두의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야합니다 우리 모두 재치가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해도 진실하게 살아가야합니다. 정직하게 살아가야합니다.
3. 기쁨을 주는 것은 예배입니다.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란 서비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해야합니다 서비스 해야합니다. 예배를 번역하면 Service, 또는 Worship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성령안에서 예배하라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3. For we are the circumcision, which worship God in the spirit, and rejoice in Christ Jesus, and have no confidence in the flesh.
우리가 어떠한 환경가운데 있을찌라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데에 예수님 안에서 기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활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고 감격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실패하면 인생이 실패하고 한 주간이 실패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예배를 성공하면 인생이 성공하고 한 주간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을 풀어가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예배당에 오지만 그것을 풀는 시간에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매이면 땅에서 매이고, 하늘에서 풀리면 땅에서도 풀린다고 하였습니다.
나폴레옹도 실패했습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일년을 몇시간 못자고 공부하여 7급공무원이 된 분들도 스스로 좌절하고 자살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외교의 마술사 키신저도 세상의 모든 국가의 문제를 풀수 없습니다. 오직 예배시간에 하나님만이 모든 문제를 풀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우리에게 예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예배를 통하여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나누워짐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현대인은 예배 이외에 다른 것들로 더욱 분주합니다. 특별히 핸드폰에서 세상의 소식과 유튜브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관심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4.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기쁨입니다.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사도 바울은 육체의 신뢰를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팔일만에 할례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 바리새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혈통으로나 학식으로 볼 때에 전혀 꿀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지금 말하면 금수저입니다. 성골출신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신뢰하고 살았으면 기쁨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남을 죽이고 남을 옥에 가두고 남을 해롭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육체를 벗어버리니 이제는 남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을 천국들어가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을 볼 때에 마음이 안따갑습니다. 그 돈 때문에, 그 학력 때문에, 그 지식 때문에, 그 명예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을 볼 때에 마음이 아픕니다. 물질 때문에 믿음의 성장이 방해되고, 그 머리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직 그 성향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를 의지하는 것을 버리고 주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럴 때에 기쁨과 주님이 주시는 행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인트루이스를 지나던 한 변호사가 주일 아침, 교회를 찾다가 한 경찰의 추천을 받고 한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소개한 교회를 찾아가는 도중에 보니, 몇 개의 교회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해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 경찰에게 “왜 굳이 그 교회를 소개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지역에 어느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 제가 직접 가보지 못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일 아침마다 교통정리를 하면서 보니 그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얼굴 표정이 가장 밝고 기뻐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소개한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찬송가 486장 가사처럼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그러나 주 예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예수님 안에서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웃음이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 꺼지지 않는 기쁨이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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