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음을 본받는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서론

인생의 성패는 마음가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잠 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건희 회장의 마음을 어느 글에서 읽었습니다. 전 세계의 스마트폰의 6천만개를 판매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폰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바꿔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전철을 타면 온 스마트폰, 겔럭시폰, 아이폰을 깔려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의미신장한 말을 했습니다. “마누라외에는 다 바꿔라.”고 하였습니다.

150여 년 전 영국의 생물학자였던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것은 강한 종도 우수한 종도 아닌 변화하는 종(種)”이라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이는 지구상에 살아남는 종은 강한 자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자라는 것입니다. 성공하거나 살아남는 것은 변화하는 것들입니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새로워질 수 있거든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나날이 새로워지리라.” 은나라의 탕왕(湯王)은 자신의 세숫대야에 이처럼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라는 문구를 써놓고 얼굴을 씻을 때마다 마음까지 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고기업이 된 이건희 회장의 말입니다.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이며,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고 주문하였습니다.

2002년 4월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65조6800억 원으로 소니의 63조5천600억 원을 앞질러 사상 최초로 역전현상이 나타난 달이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삼성그룹 전체 매출액은 13조 5천억 원에 불과했으나 20년이 지난 2006년에는 매출액이 141조원으로 10.4배의 성장을 이룩했고, 지난해는 매출액 220조원을 기록하는 세계 초우량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저는 외 이 설교의 서문에 이건희 회장의 예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느냐?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마음속에 변화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올해는 변화를 시작하는 축복의 분기점과 같은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사람들 말고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마음 *광대하신 하나님의 마음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입니다. 닮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외모를 닮은 것은 아닌 것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정직하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시간에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말씀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첫째날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빛은 태양의 빛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입니다. 둘째는 궁창입니다. 셋째는 바다와 땅과 식물을 만드셨스니다. 넷째날은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습니다. 다섯째날은 어류와 조류와 땅의 짐승을 만드셨습니다. 여섯째날은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굉장히 춥습니다. 인간들이 남극과 북극에서 불을 피우고 있어서 춥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4대째 장로교회의 목회자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전도사님이고 그리고 작은아버지 4분이 목회자입니다. 장로교회입니다. 저는 외 순복음교회로 왔는냐? 중학교 1학년때에 MBC문화방송국에서 조용기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모르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순복음으로 오게되었습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조용기목사님의 모습과 그리고 목소리를 닯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을 닮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용기 목사님보다 더 위대한 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하였기 때문에 복을 주신 것이빈다. 다윗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에게 놀라운 기적들도 허락하셨습니다. 모세에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여호수아에게 태양과 달과 지구가 멈추는 기적등 수많은 주의 종들에게 질병을 치료하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고 죽은 자녀들을 살리는 놀라운 기적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우리는 두가지중 하나를 선택하면서 살아가야합니다. 하나님께 속하여 사는냐 세상에 속하여 사는냐? 예수님의 위하여 살것인가? 나를 위하여 살아갈 것인가? 성령에 취하여 살아갈 것인가? 술에 취하여 살아갈 것인가?

여러분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에 나를 들으라고 하여야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저 설교는 우리 성도들을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시는 군나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에 항상 나(홍철기목사)를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깊이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하나님이 제게 생각을 주시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마음 *세심하시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찬송가 404장1절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은 참으로 광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동일하신 예수님이 그 광대함을 인간들에게 보일수 없어서 아주 작고 겸손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면서 아주 작고 힘없는 사람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수님은 힘없고 능력없는 세리와 죄인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러분들은 닮고 싶은 성경 속 롤모델은 누구입니까? 100세에 낳은 외아들 이삭을 망설임 없이 하나님께 바쳤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무슨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과 늘 함께함으로 형통함을 입었던 요셉?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던 다윗 왕?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어떤가? 닮고 싶기에는 어쩐지 미심쩍은가? 사복음서에서 등장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시트콤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그는 엉뚱하고 성질 급하고,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기질로 잘 알려져 있다. 혀를 끌끌 차게 만들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대 위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실망스럽다 싶을 만큼 다혈질이고 실수투성이였던 그를, 졀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그를 예수님은 왜 수제자로 삼으시고, 초대교회를 이끄는 사도로 쓰셨을까?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가?

저는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있다면 베드로 사도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자신있는 말씀입니까. 얼마나 철저하게 살아가온 분입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결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정열과 추진력이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한편, 베드로는 바울만큼이나 탁월하고 존경받는 리더였습니다. 그러나 성경 곧곧에서 사도 베드로의 부족한점이 많이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아야하는데 예수님에게 뿐만아니라 사도 바울에게 책망을 받은 경우를 볼수 있습니다.

갈 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잘 알려진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 제로를 생각해 보라 그의 예술 작품은 처음 망치와 끌로 돌덩어리를 내리치는 수간부터 작품으로서만 들엊기 시작한 걸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작품은 먼지투성인 채석장에 서대한 대리석 돌덩이의 품질을 가리는 그 순간부터 만들어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미켈란제로는 투박한 돌덩어리를 바라보면서 심사숙고해야만했습니다. 작품을 만들기에 적당한 대리석이라고 판단이 되면 그 대리석은 그 날부터 그와 함께 동고동락하게 됩니다.

그는 대리석을 작업실로 옯긴뒤 매일 아침 동틀 무렵부터 일어나서 꼼꼼이 살펴보았을 것이다.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반투명의 대리석 내부를 일별하거나 돌결에 감춰진 흠집, 대리석의 톡특한 특성을 알아내려면 비스듬히 비쳐오는 새벽빛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시간을 투자해 대리석에 대해 자세히 알아 낸 다음에야 비로서 미칼란젤로는 끌과 망치를 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마음은 부족한 여러분과 저를 그리고 이 작은 성원순복음교회 이제 망치와 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작품으로 조각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섬세하시고 놀라운 세밀한 예수님의 마음에 젖어 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성령님의 마음 * 우리와 교통하시는 성령님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우리 성령님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령님을 지적이시고, 정서적인 분, 의로우신 분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은 지적으로 먼저 알아야합니다. 그분을 누구지도 모르고 남의 봉창 듣는 소리를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것을 알아야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적인 활동을 통하여 신앙의 지식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식 때문에 성경을 다 읽은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러분 올해 안에 성경을 일독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감정적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울수 있고 그리고 깨달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무치면 그 사람이 지식인이라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처의 동생도 기도할때에 성령이 임하여 강대상까지 앉아서 또끼뜀 뛰듯이 껑충껑충 뛰어갔다고 합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강한 추진력이 있지만 병들고 힘들어질 때에 사람들은 절대자이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때에 성령의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동시에 지정의적인 성령님이 우리기독교에 중요덕목중에 신망애가있습니다. 신 믿음입니다. 망 바라는 소망입니다. 의 의지적인 것입니다.

지는 믿음하고 연결되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듣는 다는 것은 안아가는 단계입니다. 믿음은 알므로 형성됩니다.

감정은 소망과 연결되었습니다. 소망는 바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마음속에 바른 것이 형성되어 그 소망을 신령과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고 소망이 있으면 희망이 있으면 자신의 마음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소망의 끈을 놓치 않습니다.

의지입니다. 의지는 사랑과 연결되어있습니다. 굳은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부음바되어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우리성원순복음교회에 각 구역의 이름이 믿음구역, 소망구역, 사랑구역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올해 성원순복음교회의 구역이 이름대로 믿음이 있는 구역이 되시고 그리고 소망을 이루시는 구역이 되시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사랑구역식구들이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성구역은 여호수아 구역으로 앞으로 가나안을 향하여 나가시는 구역식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청년들도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성경공부를 하는 청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바뿌지만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우리 이영순집사님 제가 모시러 가지 않아도 스스로 혼자 저녁마다 그 추운데 나와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제가 마음을 먹었거든요.

성령님이 임하시면 집사님들도 목사님이 이상으로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듯이 빌립집사님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행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행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행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성령님과 마음이 닮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알라 파라 크레토스라고 합니다. 알라라는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본질은 같지만 활용용도를 다른 것으로 말하빈다. 다른의 표현중에 different 용도가 완전히 다른 것이 있습니다.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19세기에 총명하고 젊은 덴마크의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빛나는 지성은 축복이자 저주였습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의 이르는 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부정할 것은 너무도 많고 긍정할 것은 너무 적어서 나는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지성으로 지적인 단계만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지적으로 연결되어 끝에 가면 이제는 지적으로 벼랑큰에 몰리게 될 것이고 믿음으로 그 벼랑을 뛰어 올라야합니다. 그뛰어 오른 곳이 지랫대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면 이제는 여러분의 세상에 붙잡고 있는 세상의 지식을 놓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손을 잡아야합니다.

저는 1987년 대학교 졸업반일 때 제 인생을 깊이 생각하는 담벼락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불확실한 내 미래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물질도 없고 그리고 공부할 돈도없고 그리고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키에르케고르처럼 기독교에 대하여 의심할 것이 너무 많이있습니다. 확신할 것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독교의 목회자가 되는 것이 나의 장래에 운명을 좌우할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 네 운명의 주인이고, 내 영혼의 지휘자가 성령님인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물론 그후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저는 평생 하나님의 얼굴을 예수님의 얼굴을 못보고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 자꾸 커져만 가는 성령님의 역사를 주체할 수없습니다.

철할자 엘튼 트루블러드의 저서 서야할 곳 (A place to stand)의 책에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시점에서는 도박꾼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거대한 도박에서는 그리스도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있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가 옳다는 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다.

24년을 신학하며 그리고 목회하며 보내왔습니다. 그날 신학교를 결정한 순간 일생일대의 도박을 해왔습니다. 나는 어설프게 주님을 따르고 있고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성령님을 통하여 항상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넓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하고 섬기고 섬세하고 작은 것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성령님의 마음은 모든 것을 연결하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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