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장 12절 말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12월 첫주 성찬 주일예배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무 무찍한 주제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구원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구원을 얻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입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은혜로 얻는 것입니까? 이 본질의 문제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치하면 싸구려 구원이라는 생각을 할수 있고 잘못 생각하면 이단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는 성경구절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입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합니다.
불교와 천주교와 므슬렘과 기타 종교에서 노력해서 얻으니 우리가 그렇게 구원을 얻는 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고행과 자기 수양으로 얻는 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도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하고 착함을 통하여 얻는 다고 생각합니다. 므슬렘도 알라에게 무엇인가, 자살 폭탄테러를 해서 얻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샤마니즘적인 종교들이 바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울아도 못하고 눈물 많이 흘려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착해도 못하고 울어도 못하지만 믿으면 되겠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선언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장 31절을 찾아보세요. 이렇게 선언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으므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출생하고 구원을 받았다면 그대로 있어야합니까.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기독교가 썩어가고 그리고 성장하지 못하고 낙후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저희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버지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주일이 되기 전에 율법적이긴 하지만 정성스럽게 주일을 준비합니다. 주일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요즘은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지 않고 오후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의 행위가 점점 약해지고 성숙과 성장이 더 디게 이루워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믿는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자기의 옳은데로 자기의 소견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선지자들과 그리고 많은 주의 종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이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그러나 그들은 우상을 섬기기 그들이 정욕과 쾌락으로 살았습니다.
저는 율법을 강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 구약도 주셨습니다. 왜 입니까? 죄을 알리고 죄를 짖지 말라고 하시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은혜로 살고 믿음으로 만 살면 예수님만 입으로 시인하면 다 되는 줄 압니다. 그러면 그 입으로 시인하면 그렇게 살아야하는데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그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곳에 두렵고 떨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공포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나 떨림의 의미가 아닙니다. 두렵고 떨림이라는 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조심스러운 두렵고 떨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앞에서나 사람들앞에서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분 앞에서 살아가면서 조심하고 죄를 짖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하나님은 좋은 것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죄를 짖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서 영생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오므로 사망이 다가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영원히 살수 있는 우리 인간이 죽음이라는 것이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최대로 1000미만 지금은 120세 미만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편적인 사람들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죄를 적게 지은 사람들이나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들려 올라간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에녹이 그러하고 엘리야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들은 그의 죄악의 댓가로 인하여 구약시대의 왕들의 모습을 통하여 죄에 대한 흔적들이 그들의 삶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냐에 따라서 우리에게 복되고 저주도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참 잘 선택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고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삶속에서 여러분들은 죄에 선택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갈 때에 구원을 통하여 영생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30장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2. 이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통하여 너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소원은 두종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사명이라고 하고, 하나는 인간이 원하는 소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식이 잘되는 소원, 남편이 잘되는 소원, 건강해지는 소원, 집을 장만하기 위한 소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육적인 소원이고 영적인 소원이 먼저 될 때에 육적인 소원도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는 소원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사명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 생명을 불러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에 대한 소원을 항상 가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소원 교회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장하는 소원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필리핀에 갔습니다. 그리고 김종국목사님과 윤정열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로얄호텔에 투숙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사람들입니다. 같이 필리핀에 왔는데 그사람들은 놀러왔습니다. 쾌락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호텔에서 밥을 먹고 그리고 필드에 나가서 골프를 칩니다. 필리핀은 골프를 하는데 참으로 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필리핀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러왔습니다. 새벽 3시에 도착하여 아침 8시에 일어나 답답지역으로 가서 신학생 70명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아침과 점심과 저녁까지 세미나를 하엿습니다. 저녁에는 각교회로 2명씩 떠나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서 세미나를 하고 그리고 선교사님들과 식사를 하고 그리고 저녁에 대형집회를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왔습니다.
여러분 이 지구에 왜 태어났습니까? 무엇 때문에 살아갑니까? 이곳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하고 살아갑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으로 살려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소원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행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네르게인이라고합니다. 이 뜻은 energy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에너지 이것은 행동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너희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라는 말은 하나님이 분명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훈련시키기도 하시고 또한 아프게도 하시고 그리고 또한 여러분들을 고통가운데 있게 하시는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따라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어려서 일하는 소를 많이 보았습니다. 이 소가 일을 하지 않고 버티면 소의 등허리를 채직으로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수히 따라가면 주인이 부드럽게 대하지만 순수히 따라가지 않으면 소리를 내면서 채찍으로 처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5년전에 마포구에서 하는 수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초급반부터 중급반 상급반까지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초급반때의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될것같은 자꾸 폼을 강조하고 선생님이 저를 골탕을 먹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서 자기 제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계속적으로 초급반입니다. 다른 학생들은 중급반으로 오라가 접형도 하는데 저는 계속적으로 초급반에 있습니다. 이제 제가 제 생각을 버리고 그 여선생님의 말대로 하니 수영도 잘되고 중급반으로 올라간 기억이 있습니다. 왜 선생님들이 필요한가 왜 돈을주고 운동도 배우고 공부도 배우는지를 알았습니다.
3.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하였습니다.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의 소원과 나의 소원이 맞지 않을 때 원망하고 시비를 걸게 되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도바울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시면서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였을까요?
성경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홍해앞에서 있을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고 시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 앞에서 물이 써서 먹지 못하였을 모세에 대하여 원망하고 시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소원을 주셨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하였고 그들은 12명의 정탐군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10명은 우리가 올라가지 못하고 우리는 메뚜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2명의 갈렙과 여호수아는 우리가 능히 올라간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올라지못하게 되었다는 말에 그들은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수기 14장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그들에게 40년동안 광야 살이를 하게 하시고 그리고 모든 백성들을 죽이고 오지 원망과 시비가 없는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때에 어려운 일이 다가옵니다. 남편이 잘못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원망하고 시비하지 마십시오. 피차 멸망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에게 본보기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원망의 영어단어는 Resentment입니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컴퓨터 게임 그만하고 이제 공부하라고 하면 이이들은 중얼거립니다. 시비거리를 찾습니다. 10분만 더하고 그만하나다고 하면서 1시간째하고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면 이제 중얼거립니다. 즉 Murmur합니다. 이 원망과 중얼거림 (시기)라는 단어가 한 단어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지음을 받을 때에는 하나님의 뜻에 늘 순종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고 그리고 자신의 이성이 눈이 뜨게 될 때에는 언제나 원망하고 시기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 고집과 아집을 꺼기위하여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고난을 잘 이기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 하나님의 소원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