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에 걸처서 빌립보서 강해를 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한 절을 가지고, 어느 때는 두 절을 가지고, 세 절을 가지고 강해설교를 하였습니다.
빌립보서중에서 가장 기억되는 것은 1장에서는 복음의 진보라는 단어입니다. 2장에서는 에바브로디도라는 단어입니다. 3장에서는 푯대라는 단어, 4장에서는 가이사집 사람들이라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하게 빌립보 교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성원순보음교회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이렇게 감옥에 있지만 빌립보 성도들이 보내주시는 향기로운 제물을 생각할 때에 여러 성도들에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말씀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생활 가운데 이렇게 살라고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항상 기쁘게 살고, 둘째는 관용하면서 살라 왜냐하면 주님께서 가까우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기도와 간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응답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감옥에 있는 사도바울처럼 우리의 상황이 아주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사람은 살면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1918년부터 1934년까지 17시즌 동안 12번 홈런왕에 올랐고, 1935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714개의 홈런과 2217타점, 0.342의 타율을 기록했다. 베이브 루스 “714개의 홈런은 1330번의 삼진을 기록했습니다.”홈런보다 삼진이 더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실망하게 되면 자신이 목적하는 것이 이루지지 않았을 경우 많은 사람들 슬퍼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항상 늘,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실망과 좌절을 통하여 우리 생활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실망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자신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유통에 있는 개구리가 자포자기하면 우유통에서 죽지만 실망하지 않고 우유를 저으면 치즈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였지만 다메석 선상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그는 주님이 주신는 사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을 모습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가? 사도바울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주님을 만나니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기쁘게 살면, 우리 가정이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기쁘게 살면 우리교회가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한국 영화중에 어머니와 의붓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의붓아버지는 늘 자신을 때리는 것입니다. 주눅들어 갈아갑니다. 그래서 범죄자가 되고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합니다. 리더가 행복하면 모든 가족과 교회가 행복합니다.
나는 잘 생겼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는 얼굴이 저는 잘 생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유롭게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야합니다. 다리는 땅에 닫기만 하고 잘 걸어다니면 되는 것입니다. 굳이 서양 사람들처럼 쭉쭉 다리가 길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라는 걸작품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나를 걸레 취급합니다.
주님께서 가까우니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스라엘 전쟁을 보면서 주님이 가까이 오고 계심을 느낍니다.
전쟁의 비교
1) 이스라엘: 23조 원이 넘는 국방비로 막강한 화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력 전차 ‘메르카바’입니다. 120mm 포가 장착돼 있고, 시속 60km로 달리면서 헬리콥터 격추까지 가능한데, 1천300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사자를 뜻하는 ‘나메르’ 등 장갑차 1천190대에 야포도 530문에 달합니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가 올해 펴낸 ‘밀리터리 밸런스’ 보고서에 나온 수치입니다.
2) 하마스는 전차 같은 지상 전력도 없이, 사거리 250km인 ‘아야시-250’ 로켓, 또 구소련이 1960년대 개발한 대전차 미사일 ‘말류트카’로 이스라엘에 맞서고 있습니다.
3) 비행기
이스라엘은 지상 전력뿐만 아니라, F35 아디르, F16 바락을 포함해 총 345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고, 사르 6급을 비롯한 각종 경비함과 해안 전투함 49척 등 해군 전력도 있습니다. 하마스는 로켓 전력 위주인 하마스는 육해공 분류도 없습니다.
4) 군인
전체 병력 규모에서도 육해공 현역 16만 9천500명, 예비군 46만 5천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과 달리, 하마스 병력은 1만 5천에서 2만 명 정도로 비교가 안 됩니다.
왜 전쟁이 길어지나
군사력만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과 함께 전쟁이 금방 끝날 것 같지만 상황이 간단치 않습니다.
1) 미성년자
가자지구 인구 230만 명의 절반이 19살 이하 미성년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힘으로만 밀어붙이기에는 부담 요인입니다.
2) 땅굴
이스라엘이 보복하려고 들어갈 거란 말이에요. 가자지구 쪽으로. 이게 굉장히 치열한 시가전 혹은 소탕전 이런 게 벌어지게 될 거예요. 가자지구 곳곳의 하마스 땅굴도 변수입니다.
3) 주변정세
여기에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을 ‘인간 방패’로 삼고 있고, 이란과 사우디 등이 얽힌 주변 정세까지, 군사력만으로는 전쟁의 향방을 점치기 힘든 변수들이 많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튜르키에의 지진등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천둥만 치면 저희들을 불러 모아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님이 오실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안부전화를 드리면 이스라엘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주님이 오실 것 같다는 생각을 말씀하십니다.
대전 우리 아버지집에 가면 항상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예배를 드리면 아버지에게 은혜를 못받으니 홍철기목사가 설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본인에게 설교권이 있다고 하여 저에게 잘 설교를 시키지 않습니다. 은혜가 없지만 너무 길게 말씀을 증거하고 계시지만 그 속에 은혜 받는 한 구절이 있어 그것은 위안을 삼고 예배를 드립니다. 제가 말씀을 증거하면서 은혜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도 어머니는 은혜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든 예배의 설교가 은혜가 됩니까? 아닙니다. 은혜 받으려고 노력하고 은혜을 사모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사도 바울의 모습이 미친 것처럼 보이고 어리석은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우리 성도들의 눈에는 정말 위대한 사도로서 보입니다. 그의 인생을 예수님에게 낭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낭비라고 하지 않고 충성과 헌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새벽기도회 시간에 양권사님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도 아닌데 하나님의 성전을 청소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가까이 계서서 내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에 기쁨으로 청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청소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찬송가 가사만 우리에게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기도하면 염려가 물러가고 감사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희망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요엘 2:32을 인용하여 한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 사용하면 생활 가운데 구원을 받고, 영생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2)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어떤 환경 가운데 있어도 기뻐할 수 있고,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기 때문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 처럼 예수님을 본받고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본받을까요? 생각하다가 예수님의 능력을 본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도원도 찾아가고 멀리 미국의 펜사콜라 브린스빌 교회도 돈 주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성령의 나타나심도 체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병고치는 은사와 치료의 은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저에게 평범한 주의 종으로 기도와 간구하는 목회자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성도 보내주세요. 물질도 있고 봉사도 잘하고 헌신도 잘하는 성도들을 보내주세요.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오긴 오는데 적응을 못하고 다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이곳에 남아있는 성도들은 하나 같이 부족한 성도들입니다. 마치 우리 성도들을 보는 것이 저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일 성수도 못하고, 헌금도 부족하고, 봉사도 부족하고 나를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왜 저입니까? 왜 우리 성도들입니까? 다른 곳에 맡길 수 없어서 너에게 맡긴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