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 8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8월 8일

 

베드로전서 3장 8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절: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쿼바디스 (Quo Vadis)』**는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 1905년 노벨 문학상 수상)**가 1895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라틴어로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 소설은 고대 로마 시대, 특히 네로 황제의 폭정이 극에 달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작가는 미국의 루 월리스 소설 『벤허』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썼다고 해요.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를 전후한 시기가 주된 배경이 됩니다. 네로 황제가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전가하며 박해를 시작하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초대 교회의 외경인 「베드로 행전(Acts of Peter)」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어 순교를 당했고, 베드로 사도 역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교우들의 간절한 권유와 강권에 못 이겨, 베드로는 잠시 박해를 피해 로마 성 밖으로 피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베드로가 로마 성문을 막 벗어나 아피아 가도(Appian Way)를 따라 피난길을 가던 중, 갑자기 눈앞에 빛과 함께 예수님의 환영(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로마를 등지고 반대 방향, 즉 예루살렘(또는 베드로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시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떠나오던 로마 성을 향해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Quo vadis, Domine?)” 당황한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보시며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내 백성을 버리고 로마를 떠나니, 나는 로마에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 (또는 “네가 내 양을 버렸으니 내가 대신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로마로 들어간다” 등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깊이 회개했습니다. 자신이 두려움 때문에 양 무리를 버리고 도망치려 했음을 깨닫고, 즉시 발걸음을 돌려 다시 로마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로마에서 체포되어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은 감히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릴 수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를 자청했다고 전해집니다.

주기철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의 차이점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평안히 목회하며 큰 부흥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고난은 더 큰 고난을 찾아오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 **”동정하며”**의 의미는 원어적으로 **’함께 고난을 받다’, ‘함께 공감하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심파테이스, συμπαθεῖς).

헬라어 원어는 **’심파테이스’**이며, 여기서 영어 **’sympathy'(공감, 동정)**의 어원이 나왔습니다. **’심파테이스’**는 **’함께’라는 뜻의 ‘심(συμ-)’**과 **’고난을 받다’, ‘고통을 느끼다’라는 뜻의 ‘파테인(πάθειν)’**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이는 단순히 어떤 사람의 어려움을 안쓰럽게 여기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깊은 감정적 공감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한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며”**라고 하여, 개인적인 동정심을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가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을 강조합니다.

로마서 12장 15절의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의미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의 **”동정하며”**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의 기쁨과 슬픔에 깊이 공감하고, 상대방의 아픔을 마치 나의 아픔처럼 느끼며,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어주는 실천적인 관계를 형성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악하게 구는 사람에게는 욕과 저주를 퍼붓습니다.

2.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장 9절).

이 성경을 읽고 있으면 밤고구마를 10개 먹는 것과 같이 답답합니다. 음료수나 물 없이 먹는 고구마와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분을 품고 마음의 생각으로만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게 되지만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가르침입니다.

성도들은 악한 자를 향해서도 기꺼이 복을 빌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담가 게리 스멜리가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이혼 직전에 로라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했습니다. 로라는 40여 분 동안 남편이 저지른 악행들을 쏟아놓았습니다.

가만히 듣기만 하던 목사님이 로라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남편의 이런 모든 잘못을 용서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처구니없어 하는 로라에게 목사님은 한 번 잘 생각해 보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로라는 목사님의 말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께서 개입하신 것입니다. 결국 로라는 남편을 조건 없이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축복했습니다.

트럭 운전을 하던 난폭한 남편은 아내의 태도가 변하자 이상하게 생각하며 아내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5개월 후 로라의 남편은 아내를 상담했던 목사님을 찾아와 고백했습니다.

“내 아내는 변해도 너무 훌륭하게 변했습니다. 저는 참으로 못된 남편입니다. 목사님, 저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 부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은 로라가 남편을 용서하고 축복한 결과였습니다. 축복의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축복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축복의 말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 그리고 모든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시인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늘은 축복을 내린다. 하나님은 태양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태양은 따사로이 우리를 지킨다. 하나님은 달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달은 우리가 가는 길을 은은히 비쳐준다. 하나님은 공기를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는 이 공기를 호흡한다. 하나님은 땅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땅은 모든 열매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러나 인간은 ···.”

시는 여기서 끝납니다. 사람만이 아직 주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축복은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입에서는 저주의 말이 사라지고 오직 축복의 말만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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