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 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5년 7월 1일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나그네와 같은 사람(1-)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聖徒라고 했습니다(고전1:2) 성도란 ‘거룩한 무리’ 즉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거룩해졌기 때문에 우리를 성도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기 때문에(롬3:30)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도들은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평생을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창23 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가나안 땅 헷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팔아l) 나로 내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히11:9에 보면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도 나그네와 다름 없는 생활을 하며 우거하였다’고 했습니다.
寓居(붙어살 우, 살 거) – ‘정착되지 아니하고 임시로 거주함’ 그리고 10절에서는 ‘이는 (그렇게 한 것은) 더 나은 본향 즉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나그네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살았었습니다.
대상29: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사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가 이 땅에 영원히 머물 수 없는 나그네들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니 우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 땅에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이 세상의 것들에 집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광야를 지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였습니다.
민9:17 이하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더라’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해 주신 것은 너무 너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출14:19 – 구름기둥으로 애굽의 군병들 막아 주심 낮의 뜨거움을 막아 줌 밤엔 따뜻하게 해줌, 전갈 (신 8:15)
그러나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민수기에서 본대로 어떤 때는 움직이질 않고 몇 달이든지 몇 년이든지 그냥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리 힘이 남아도 빨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 어떤 곳에는 좀 살기 좋은 곳이라서 오래있었으면 했는데도 하루도 못 채우고 구름 기둥이 이동했기 때문에 옮겨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광야생활이 바로 오늘 우리 성도의 생활입니다. 광야를 지나는 사람은 장막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살아야지 영원히 살 것처럼 살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살기가 좋은 곳이라고 기초를 파고 집을 크게 지었다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일 때는 마음이 편치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이 땅에 영원히 살것처럼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자기에게 걸리는 것이 많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 있는 그 고세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하지만 하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의무적인 것만 눈가림으로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면서도 왜 구원의 희열과 감격이 없습니까? 그것은 얕은 물가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얕은 물가에서는 큰 물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얕은 물가에만 발을 담갔다 뺐다 했기 때문에 큰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그네 의식을 철저하게 갖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기쁨과 희열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시지만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는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신앙생활 하려는 사람들은 돌이키지 않으면 마지막날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실 것입니.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벧전2:11에서도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나는 나그네다’ 하는 나그네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 산소망이 있는 사람(2-4)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지 못하는, 삶의 방향이 없는 나그네가 아니라 산소망을 가지고 사는 나그네입니다.
산소망이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며, 이 땅에 사는 동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넘어에도 있는 소망입니다. 성도가 산소망을 가지게 된 것은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은 나도 죽지만 다시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는 보증이기 때문에 우리는 산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4절/성도에게는 썩지 않을 기업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소망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거나 없어집니다. 또 세상의 소망은 대개가 실망을 안겨다 줍니다.
죽으면 입히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보면 장의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잣돈이나 좀 드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더럽지 않는 기업이라고 했습니다.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더럽혀 집니.
저는 목회자라 흰 와이샤스를 많이 입게 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처음에 사서 입을 때는 햐얗고 좋은데 몇 달을 입으면 목부근부터 누래집니다. 아무리 좋은 재품을 사도 그렇습니다. 가구도 처음 샀을 때는 반짝반짝하지만 몇번 이사를 하다보면 기스가 가고 낡아집니다. 자동차도 새로사면 깨끗하고 좋지만 얼마가 가지 않으면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혀서 또 바꾸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또 쇠하지 않는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6:19-20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소망 중에는 부끄러움을 당할 소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도 부끄러움 당할 소망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엡1:18,19) 그는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한다고 했고 또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하여 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D.L. Moody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길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터덜터덜 혼자서 걸어가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그리고 걸어 가는데 뒤에 시중드는 사람이 한 사람 따라가면 상당히 돈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시중 드는 사람이 두 사람 쯤 되는 사람은 남길 유산이 상당히 많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는 가난한 자녀가 없다. 왜냐하면,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언제나 시중 드는 자가 둘이 있기 때문이.
즉 우리를 시중드는 두 사람의 이름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도 많은 돈으로 유산을 남기려고 하지 마시고, 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을 하나님의 기업을 바라고 사는 산소망을 유산으로 남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 기뻐하며 사는 사람(5-6)
우리는 원래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엡2:3에 보면 ‘우리도 전에는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그때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산소망을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2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지금 초대교회의 박해 속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나그네는 나그네되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나그네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 있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연하게 이 세상에 던져져 이런 고난과 이런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전부터 여러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고 해도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 하셨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도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셔서 성도가 될 수 있었지만 또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성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상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다니……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신비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되 이 세상에 마치 사랑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신다. 이상하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다니.….’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어떤 역경 중에라도 절망하지 않습
사도바울은 엡2:4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히 여기심 때문에 산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환경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물론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잠깐’ 근심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산소망이 있기 때문에 늘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고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명령)
살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도에게는 믿음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방언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신유의 은사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전도나 기도에도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勸慰의 은사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에게는 구원 받은 성도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염려 많은 세상을 살면서도 산소망 때문에 늘 기뻐하며 사는 것은 참으로 귀한 성도의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2절 말씀을 다시 한번 더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흩어져 사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라고 축복했습니다. ‘은혜와 평강'(순서, 사도바울도 늘 그랬다) 왜 꼭 은혜와 평강이라고 그랬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참평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평강을 바라지만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학에 합격하면 평강이 올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잘 살게되면 평강해 질줄 알았는데 그것은 더욱 아닙니다. (경제가 많이 나아졌었는데도 생활에 불만스러운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아졌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도 오히려 급속하게 늘었습니다) 어느 시인이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낭비한 시간과 죄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모두 주님께 맡겼고,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잊으셨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앞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갈 길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며 또 모든 시련을 능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습니다. 삶을 공격하는 높은 파도가 많으나 진정한 위로와 안식은 주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나는 실망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내 속에는 믿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는 믿음을 가지고 위를 쳐다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거기에 쉼이 있고 거기에 소망과 기쁨과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이 땅에서 나그네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시는 여러분들 위에 늘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