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 7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 목사 2025년 8월 17일
베드로전서 2장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설교 본론
북한의 어느 마을에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었던 부부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생명같이 소중한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잘생기고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간 후 공산당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공산주의 사상에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부모님이 종교 아편에 중독이 되었다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당에 고발하였습니다. 그 지역을 담당한 공산당 간부는 마을 주민을 교육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두 사람을 공개 재판에 부치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의 머리에 벙거지 모자를 씌우고 손을 뒤로 꽁꽁 묶은 후 단상에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억지로 공개 재판에 나온 사람들은 아들의 고발로 죽게 된 부모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아들이 큰 소리로 고발장을 읽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들은 어버이 수령과 공산당을 배반하고 아침마다 미신 같은 신에게 기도한 배반자입니다.” 아들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먼 골짜기까지 퍼져나갔고, 소름 끼치는 메아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목소리는 부모님의 가슴을 난도질했습니다. 공산당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 아이를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상까지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공산당 간부의 명령을 받고 마지못해 두 부부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된 두 사람은 검은 포장을 한 트럭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편 부모를 고발하여 영웅이 된 아이는 큰 상을 받았지만 고아가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공산 사상이 투철한 이 아이를 보살펴주고 공부도 시켜 주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예쁜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싱긋 웃는데 소름이 끼쳤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기를 보고 웃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나이가 들어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이 생각나면 식구들 몰래 광에 들어가 한없이 울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눈물이 나왔고, 길을 갈 때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명을 걸고 북한 선교를 하는 어느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하나님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저 같은 인간도 용서하시나요?” 하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는 목사님께 복음을 전해 듣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후 목사님이 그를 다시 만났을 때는 그의 얼굴이 환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님에게 “나도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는데, 내 아들이 나를 고발할까 봐 조심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을 고발하여 죽게 함으로 아들은 상을 받고 출세를 했지만, 부모님의 기도는 헛되지 않아서 그 아들이 결국 부모님이 믿었던 예수님을 믿고 신앙의 대를 이어가게 되었다는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이 믿어오신 예수님을 저도 믿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아버지는 엄하셨기에 많이 맞았습니다. 밖에서는 친절하시고 기도도 잘하시고 새벽기도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늘 평생을 새벽기도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오시면 다른 모습으로 변하시는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성격이 급하셨기에 화도 자주 내셨고, 칭찬보다는 책망이 더 많았습니다. 유머 감각이나 입담이 없고 위트나 우스갯소리를 할 줄 모르는 분이셨습니다. 가전제품을 잘 고치시고 서예나 동양화를 잘 그리셨기에 여러 가지 잘못하는 부분에 대하여 많이 혼나고 많이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칭찬받은 것은 바로 교회를 갔다 왔다고 하면 다 용서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날씨가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그만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런데 늦게 들어오면 혼날 것 같아서 김포공항 근처 대성장로교회를 다녔는데, 교회에 들러 기도하고 교회에서 놀다가 왔다고 하니 용서해주셨습니다.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된 제가 여러 면에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하십니다.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행실이 제가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 아내가 소파에 앉아있는 제 모습을 보더니 “꼭 아버지 닮으셨네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꼭 지애비 닮았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제 아내들도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씩 늘고 흰머리도 많이 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남겨주신 것들 중에 나쁜 성격들도 있지만, 좋은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새벽기도회 시간에도 간증하셨듯이 아버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새벽기도회를 빠진 적이 없다고 간증하셨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서 새벽기도회를 거의 빠진 적이 없습니다. 열이 펄펄 끓는 아픈 날이 있어도, 코로나 한가운데에서도,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일어나 교회를 향하는 모습을 볼 때 아버지의 모습이 제 모습 속에 보입니다.
어려서부터 교회는 나의 삶의 전부였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권사님들이 만들어놓으신 음식을 먹으며 교회에서 자라나게 되었고, 저녁 예배에 꼭 성가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집에 온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이 한 번도 죽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속에 살아계시고,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 속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온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지 않으셨으면 지금까지 목회한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우리 아버지도 치매로 쇠약해지고 계십니다. 집을 나가시면 종종 집을 찾지 못하여 헤매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대전에 계신 아버지께 찾아가 두 마디 하고 싶습니다. 첫째, “아버지, 예수님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던 단어,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를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지금까지 목회자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믿던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이 즐거웠으며, 기도에 응답이 있어 1987년, 당신 나이 27살 때에 필리핀에 있는 APTS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에 졸업하고 10년의 부교역자 생활을 순복음 인천교회에서 하게 되었고, 2000년 2월 22일 수색에 순복음 평은교회를 개척하여 2002년 6월 1일에 성원순복음교회에 오게 되어 지금까지 23년 동안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동기와 저의 삶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심에 대하여 크게 4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정체성)
베드로전서 2장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두운 데서 부르셨다고 하였습니다. 죄악의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 예수님의 공동체에 불러 모아주셨습니다. 특별히 우리를 성도로, 거룩한 무리로, 성직자로, 거룩한 직을 담당하는 목사로 부르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절: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기 위하여 부르셨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건져내신 출애굽 사건처럼, 영적으로 노예 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곧 ‘아름다운 덕’의 핵심입니다.
숲속에 있는 나무 세 그루가 어느 날 각자의 소원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나무는 장차 임금님이 주무시는 침대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임금님이 타고 다니시는 배가 되어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나무는 임금님의 장례식에 쓰이는 관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사람들이 숲속으로 와서 차례대로 나무를 베어 첫 번째 나무로는 말 먹이통을 만들고, 두 번째 나무로는 작은 고깃배를 만들고, 세 번째 나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은 채 두 토막을 내어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각자의 소원과는 상관없이 마굿간과 어촌 창고에 있게 된 나무들은 실망 속에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 먹이통이 된 첫 번째 나무는 아기 예수가 강보에 싸여 잠자는 침대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뒤에 두 번째 나무의 고깃배에는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구세주가 타셨고, 세 번째 나무는 온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대신 죽으신 그분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절: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빌립보서 1장 27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 고난 속에서 불러주셨습니다.
고난에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 4장 12-16절)
베드로전서 2장 18절: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절: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세 가지 고난이 닥쳐온다고 하였습니다.
죄 때문에 오는 고난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
선을 행함으로 오는 고난
이러한 모든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복을 이어받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창세기 12장 2절, 3절은 아브라함의 복의 근원임을 보여줍니다.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갈라디아서 3장 8절: “또 성경이 미리 내다보니 하나님이 이방인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것을 나타내사 아브라함에게 미리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고,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임합니다. 그러한 복이 우리에게도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 이방인에게도 임한다는 것입니다.
김미경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미경 권사님은 몇 년 전, 하나뿐인 외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는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음주 운전자의 난폭 운전 때문에 일어난 참사였습니다. 온 가족은 비통함과 함께 아들을 빼앗아 간 그 운전자에 대한 극심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밤낮을 지새웠습니다.
권사님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 권사님의 삶은 절망과 분노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저 운전자를 용서할 수 없다.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밥도 넘기지 못하고 잠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 역시 그 운전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모든 법적인 조치를 취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새벽, 권사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기도를 거듭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새벽이슬처럼 권사님의 메마른 심령을 적셨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신 말씀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씀이었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권사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마음을 애써 외면했지만, 그럴수록 권사님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습니다. 결국 권사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운전자를 진정으로 용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권사님의 인간적인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크고 아름다운 덕, 곧 용서의 마음이 권사님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권사님은 재판정에서 운전자를 만났을 때, 격앙된 감정 대신 차분하고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제 아들은 비록 돌아오지 않지만, 당신이 이 사건을 통해 진심으로 회개하고 새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 성숙을 위한 부르심
베드로후서 1장 3절: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건하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수동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어 자신의 믿음과 구원을 확증하라는 적극적인 권면입니다.
1987년,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필리핀 바기오 지역으로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2008년 필리핀에서 있었던 목회자 교통사고 소식입니다. 청소년 교육사업을 위해 필리핀으로 사전답사를 떠난 목회자와 성도 등 10명이 빗길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은 27일 낮 12시 30분쯤(현지 시각) 필리핀 루손섬 팡가시난 주 볼리나오 인근 국도를 달리던 12인승 승합차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가게를 들이받는 사고로 탑승하고 있던 목회자 일행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사망자는 서울 봉천 8동 ‘꿈꾸는 교회’의 박수진 담임목사(52)와 사모 한연오 씨(52), 박태성 부목사(38), 곽병배 부목사(33)와 부인 최미경 씨(35), 경남 진해 ‘꿈꾸는 교회’의 박성돈 담임목사(46)와 부인 정정희 씨(46), 딸 보아(5), 필리핀 현지 교회의 이인철 집사, 이수권 집사 등입니다. 현재 시신은 삼팔록 커뮤니티 병원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외교부는 “폭우가 내리는 상황에서 탑승 차량이 미끄러지며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의 철물점 창고를 들이받아 사고가 발생했다”며 “필리핀 한국대사관 관계관 등을 사고 현장에 급파하고 필리핀 당국과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대형 사고로 충격에 빠진 서울 ‘꿈꾸는 교회’ 교인들은 27일 오후 11시(한국 현지 시각) 추모 예배를 드리고 교회 1층에 임시 분향소를 설치하여 28일 오전 8시부터 분향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꿈꾸는 교회’는 사고 수습을 위해 유족과 부목사 등 12명을 볼리나오 지역으로 보낸다고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