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장 20절 갈렙의 온전함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3월 12일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양국 총 합산 약 100만 명 이상의 군인이 사망하거나 부상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5년 기준 러시아군 전사자는 최소 12만 명에서 최대 29만 명(민병대 포함), 우크라이나군은 2024년 말 기준 약 4만 3천 명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민간인 사망자도 1만 2천 명 이상으로 보고되었습니다.
2026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은 4년째 장기화되며 전선과 협상 모두 소모적인 교착 상태입니다. 러시아는 막대한 병력 손실(전사자 32만 5천 명 이상 추산) 속에서도 동부 전선에서 공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는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 에너지 기반 시설을 타격하는 등 방어와 후방 교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전쟁의 변화
과거에는 영토 중심의 전쟁이였습니다. 근대 이전까지의 전쟁은 땅과 자원을 뺏는 ‘생존과 확장’의 문제였습니다. 누가 더 넓은 영토를 가졌느냐가 곧 국력이었죠.
지금은 이념 전쟁입니다. 20세기 냉전 시대에는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 하는 이념으로 격돌하였습니다. 영토 그 자체보다 그 땅을 지배하는 ‘생각’과 이념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미래는 어떤 전쟁을 할 까요? 종교전쟁이라고 생각이듭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독적인 생각을 가진 나라와 이슬람적인 생각을 가진 나라들 끼리의 전쟁입니다. 이스라엘과 미국, 그리고 이란과의 전쟁은 기독교와 이스람의 대결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갈렙은 온전히 따랐은즉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 갈렙의 삶은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입니다.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국어사전의 온전이라는 의미는 3가지입니다.
1) 본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모자람이 없이 원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릇이 깨지지 않고 온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2) 부족함이 없이 완벽함을 의미있습니다. 필요한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 도덕적이나 인격적으로 흠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로서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치매, 정신적으로 2% 부족한 사람) (박철현권사님)
3) 손상되지 않고 성성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물건이 망가지지 않고 멀쩡한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대로 삶을 사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정신적으로 온전하고 육체적으로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랐다는 의미입니다.
민수기 32:12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노아는 하나님은 온전히 따른 사람입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타락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고 말씀에 순종하여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니엘도 온전히 주님을 따랐습니다. 바벨론 땅에서 죽음의 위협앞에서 하루에 세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타협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인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조차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갔던 사람입니다.
- 갈렙은 어떤 면에서 온전한 신앙을 소유했을까요?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 (마음)
갈렙의 마음은 그들과 달랐다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보고한 내용의 ‘사실(Fact)’에 대한 마음과 말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분석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관점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1) 10명의 정탐꾼: “우리는 죽었다” (두려움의 관점)
이들은 눈에 보이는 환경과 상황에 압도되어 절망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성경 근거: 민수기 13:31-33)
가나안 땅의 거주민이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큽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실을 보고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귀뚜라미, 바퀴벌레)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과 마음이 달랐습니다. 같은 상황을 보았지만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매일 먹는 밥입니다. 밥먹는 것이 곤란하면 죽습니다. 밥먹는 것이 쉬어야합니다. 우리 장모님이 오래 사실려면 밥을 잘 드셔야합니다. 특별이 우리 가정에 도움을 주시기를 위하여 우리 가정을 떠나가기 전에 밥을 열심히 드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10명의 정탐군들은 우리의 상태와 적의 상태를 비교했고, 여호수아야와 갈렙은 우리의 상태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2)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환경적으로 불리합니다. 그러나 늘 긍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호랑이에게도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난다고 하였습니다.
사업이 어렵습니다. (김재복집사님, 정연준 장로님의 가정) 그러나 포기하고 낙담하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생합니다. (김예기권사님) 그러나 믿음으로 이겨나가야 하는데 스스로 교회 나오기를 포기하고 좌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메뚜기의 신앙은 하나님을 배제한 신앙입니다. 열등감으로 가득찬 신앙입니다. 메뚜기 (귀뚜라미) 콤플렉스에 걸린 신앙입니다. 왜 메뚜기라고 하였는가 아낙 자손은 신장이 매우 장대한 거인족입니다. 자신들은 왜소하였습니다. 곤충 메뚜기를 생각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잡으면 잡힙니다. 메뚜기로 음식을 만들어 먹습니다. 메뚜기의 신앙은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변수를 빠지면 메뚜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면 밥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낙자손, 나와 아낙자손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3)
메뚜기의 신앙이 위험하는 것은 바로 전염성입니다. 전쟁중에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전쟁의 승패가 좌우합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과 함께 화해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있고 신앙의 생각은 그들이 비록 핵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있으니 안전하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핵 말고 다른 것들을 준비하여 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북쪽과 남쪽이 완전히 다릅니다. 북쪽은 풍부한 물자와 물이 풍부한 지역입니다. 그러나 남쪽은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적박한 땅입니다. 그리고 늘 더운 곳입니다. 그러나 정담꾼들이 정탐한 땅은 먹을 것이 풍부한 땅입니다. 북쪽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사시사철 나옵니다. 포도열매 거봉인지 샤인머스켓인지 얼마나 큰지 사람들이 매고 다닐 정도로 농작물이 풍성합니다. 그렇게 풍성한 곳에서 살아는데 두종류의 사람입니다. 감사하고 사는 사람(마음의 상태) 늘 불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서 국경을 넘고 배를 타고 어떻게 해서든지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마약에 취하여 살아가고 노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밤이면 사람들이 다닐 수 없이 많은 총기의 위험이 있는 나라입니다.
내가 사는 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땅에 하나님 중심으로 긍정적인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 만약이 아닌 확신입니다.
민수기 14장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갈렙은 하면된다는 세상적인 긍정적인 신앙이 아니라 확실한 약속의 기반하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철저한 하나님의 중심, 말씀 중심의 신앙입니다.
갈렙은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선포와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 처럼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확신입니다.
출애굽기 3장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계산기적인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은 능력을 믿는 믿음의 용기입니다.
10명의 정탐군은 여리고 성벽의 높이를 보았습니다. 군사들의 키와 신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10가지 제양, 홍해를 건너는 기적, 매일 아침에 일어나 만나를 먹는 기적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이방여자 라합도 믿는데 10명의 정탐군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방여인 라합은 직접 기적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들었음이라”(여호수아 2:9-10)라고 고백합니다. 소문으로 들은 하나님을 “상천하지(하늘 위와 땅 아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민족이 아닌 하나님의 편에 서는 도박과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주의 해야할 점은 안일주의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3)라고 말하며 과거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변화와 도전보다는 비굴하더라도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태도입니다.
게으름과 나태의 신앙을 버려야합니다.
우리는 못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면 안됩니다. 게으름은 단순한 느림의 미학이 아니라 기회를 붙잡지 않는 영적인 게으름입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억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민 13:30)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은 게으름이 아니라 부지런함에 있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얼마나 피곤합니까? 그래도 계속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잘 풀지 않고 환경으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왜 교회 짖자고 했어요? 목요일 사모님과 함께 마포구청에 가서 우리 교회 빚으로 담보 잡힌 것을 조사했는데 빚이 없다고 사선으로 그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사님 왜 이러한 일을 시키나요 하고 모세를 원망하듯이 목사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민 14:2).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리 앞에서 자신의 옷을 찢으면서 슬퍼했습니다. 남 탓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선포하고 공동체가 무너지 않도록 모세 목사님을 보호하는 마음입니다. 그들과 마음이 달랐습니다.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이 광야에서 죽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조금 어렵다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생각해보면 자녀들도 잘 되어 열심히 살고 있고 생각하면 감사가 많은 것을 모르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 나이를 초월한 믿음 (여호수아 14:11~12)
여호수아 14장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갈렙의 나이 85세입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평안한 길 평탄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 고백하지 않고 행동으로 가장 험한 산지 헤브론을 내가 점령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젊은 늙은이가 있고 늙은 젊은이가 있습니다.
늙은 젊은이는 갈렙입니다. 생물학적인 나이 85세 당시의 초고령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유행가 가사가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싸울 수 있다”(여호수아 14:11)고 고백합니다.
‘젊은 늙은이’ 10명의 정탐꾼입니다. 희망을 잃은 젊은이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팔팔한 군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늙어있습니다. 싸워보기도 전에 “우리는 메뚜기”라며 주저앉았습니다. 갈렙이 85세에도 젊은이처럼 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영원한 현역의 꿈입니다.
개역개정 여호수아 14장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00세가 넘는 나이까지 그림을 그리며 세계적인 화가가 된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 본명 안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의 이야기는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10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으며, 88세에는 ‘올해의 젊은 여성’으로 선정되고 93세에는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론
갈렙은 2인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늘 여호수아 뒤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고 그의 다음 세대에는 갈렙의 자손들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사사기에서 웃니엘입니다. 웃니엘과 갈렙은 어떤 사이입니까?
갈렙의 신앙을 이거갈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바로 2인자 갈렙의 후손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사사가 된 웃니엘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숙부와 조카의 관계입니다. 동시에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사사기 1장 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사사기 3장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큰아버지(숙부)이고, 웃니엘은 갈렙의 조카입니다. 갈렙은 헤브론 옆의 ‘드빌’을 정복하는 자에게 딸 악사를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때 웃니엘이 용기 있게 나서서 성을 점령합니다. 결국 웃니엘은 갈렙의 사위가 되어 가족 내에서 신앙의 대를 잇게 됩니다.
‘온전한 순종’과 ‘개척 정신’이 바로 갈렙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갈렙의 그 낮아짐을 보시고, 그의 가문에서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할 첫 번째 영웅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는 “낮아지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성경적 원리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갈렙처럼 ‘누군가의 뒤에서 묵묵히 돕는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그 가치와 보상을 확신하며 기쁘게 일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갈렙(Caleb)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칼레브(כָּלֵב)’이며, 실제로 ‘개(dog)’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비하하는 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성경적인 맥락에서는 충성심 성실함을 의미합니다. 개가 그 주인을 끝까지 따르는 것 처럼. 갈렙은 여호수아를 섬기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습니다. 주인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충견(忠犬)과 같은 모습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콜(Kol, כָּל)’: 전부, 모든 (All), ‘레브(Lev, לֵב)’: 마음 (Heart) 즉, 갈렙은 ‘전심(Whole-hearted)’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자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