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0년 12월 첫째주 성찬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어린 시절 저는 중고등부에서 학생회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인기가 좋거나 공부를 잘해서 중고등부 학생회장이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모든 행사를 참석하니 학생회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대표기도를 하면 중고등부학생회원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 장면을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그리고 옆구리에 창을 받으시고 양손과 양발에 굵은 못을 받아 아파하시는 과정을 기도하면 학생회원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
2020년 마지막 성찬 주일이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선상위의 장면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가는 자가 머리를 흔들면 모욕하고,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희롱하여, 너는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를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이렇게 이야기할 때에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확 내려가서 조롱하는 사람들을 당황케하거나 놀라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죽으신 것입니다. 내려오면 믿겠다는 그들에게 확 내려가서 어서 믿어하고 다시 조롱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 마음은 그렇게 하셨으면 하였는데 예수님은 끝까지 십자가에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솔찍 예수님은 예수님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하시는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죽은 나라로를 살리는 기적등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능히 그 일도 하실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치료의 길을 열어 놓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 앞에 두 종류의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한쪽에는 우편강도, 한쪽에는 좌편강도입니다. 우편강도쪽에는 예수님을 따른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과 그리고 마리아의 이름을 가진 여성들입니다. 그리고 한 쪽에 예수님의 옷을 나누기 위하여 제비뽑으려는 군인들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세인들, 그리고 비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렇게 지금도 세상을 사람들은 오른편과 왼편에 있는 사람들로 나누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치료하기 위하여 내려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1. 왜 예수님이 내려오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십자가 위에서 내려왔다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모습으로 당황했겠지요. 예수님이 내려가 더 놀라운 능력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과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보여주었다면 예수님의 체면도 살리고 주변에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에게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실히 나타나셨을 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려오지 않는 것은 예수님 이후의 모든 인류에게 지금 2020년을 살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구원과 치료를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마치 이 장면은 사도 바울이 많은 사람들은 치료하였는데 자신의 간질과 안질은 치료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세 번 간구하였지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는 말씀과 일맥 상통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따를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을 치료하면서 자신은 치료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라는 증거입니다.
미국 선교사 부부가 한국 피난 중, 아기 울음 소리를 듣고 차를 멈춰 산모를 발견했습니다. 추운 겨울, 산모는 다리 밑에서 아기를 낳았고, 자신의 옷을 아기에게 주어 아기를 살려주고는 얼어 죽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이 아기를 구해 미국으로 데려갔고, 몇 년 후 아기가 청년이 된 후에 아버지에게 “어떻게 아들이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 산모의 무덤을 찾았고, 아들은 추운 날 무덤을 덮으며 어머니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을 희생한 사랑으로 아들을 살린 것이었습니다.
2. 왜 내려오지 않았을까?
어떤 트럭 운전기사가 강원도 산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큰 트럭이고 그리고 한번도 큰 차를 가지고 가본적이 없었습니다. 길은 험하고 꼬불꼬불한 길이였습니다. 포기할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멀리 왔기 때문에 돌아갈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표지판에 이렇게 적혀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도 이길을 무사히 통과 했습니다. 당신도 이길을 무사히 통과할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확신을 가지고 운전하여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내려오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완수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 그 길을 통하여 구원으로 치료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일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이겨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삶에 적용해야하는 것은 예수님은 화를 내시기도 하시고 예수님은 묵묵히 참고 그냥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도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은 마귀에게 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어야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북으로 막히면 남으로 열어주시고, 동에서 막히면 서로 열어주시고 사방 팔방으로 막히면 하늘문을 열어시고, 그리고 육지가 막히면 홍해의 길도 얼여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목사님! 제자 후진하다가 아들을 쳤어요.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블라이언은 아들이 집 밖에 나온 줄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문을 열고 나오는 줄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을 이렇게 떠나보내고 부모님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이 가질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아무런 조언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블라이언 성도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아주 가끔씩 의무감으로 교회에 얼굴을 비치었지만 이제는 절실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나오겠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순간 난생 처음 예수님의 실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브라이언을 위하여 목사님이 기도해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이들먼 목사님은 성도들이 예수님께 돌아 올 때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는 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아무도 기댈 사람이 없을 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등을 돌릴 때)
말기암 환자로서 몇 개월 밖에 살수 없다고 통보를 받을 때
남편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게 되었을 때
중독을 이겨낼 수 없을 때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가장 어두운 구석 스트립클럽까지 찾아왔을 때에
우울증이 참으로 참기 힘들었을 때에
30년동안 청춘바처 일했던 직장에서 아무 대책도 없이 쫒겨났을 때
나의 끝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예수님이 나의 실체가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은 왜 내려오지 않았을까?
1) 공동체를 살리기 위하여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 서울시에 그리고 성산동에 상암동에 살고있는 우리들은 쓰리기 산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이 변하여 아름다운 상암동이 되었습니다. MBC, KBS, TVN, 각종방송국이 다 들어왔습니다. 아파트가 즐비한 곳이 되었습니다. 쓰레기와 같은 것이 변하여 새로운 장소가 되었 것입니다.
매일 1500톤의 쓰레기가 쌓이는 쓰레기 매립지에서 망가진 잡동사니가 사방에 가득한 땅, 이땅에서 100명정도가 매일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물건을 재활용하거나 팔아서 연명합니다. 어느날 이 마을 방문한 환경공학자이자 시간제 음악강사 파비오 차베스는 눈앞에 펼쳐진 지옥같은 현실과 아무도 그 상황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음악학교를 열었습니다.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이 줄지어 물려왔습니다. 문제는 악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차베스는 기름통과 낡은 조리기구로 첼로를 작은 캔을 모아 플루트를 통에 낡은 엑스레이 필림을 씌워 드림을 찌그러진 알루미늄 샐러드 그릇과 포크로 바이올린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탄생한 랜드필하모닉은 쓰레기 한복판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을 들고 가면 어느 곳이든지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 김종국선교사님과 윤정열 선교사님이 필리핀 앙겔레스지역의 답답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올해 꼭 성도님과 함께 가려고 하였는데 가지 못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잠잠해지면 우리가 매월마다 헌금하고 선교헌금을 보내는 곳으로 가서 직접보고 그리고 격려하고 하려고합니다.
2) 우리에게 부요함을 주시기 위하여
[개역개정] 고린도후서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적인 가난은 잠언서 10장 4절의 말씀처럼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고 손을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서 21장 17절에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생활에 절제하고 살았는데도 가난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욥의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사탄은 욥을 가난의 구덩에 쳐 넣었습니다. 욥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욥의 인생에 먹구름이 다가왔습니다. 욥을 항복시킬수 있는 것은 완벽하게 물질로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아들 7명, 딸 3명, 양이 7000마리, 낙타가 3000마리, 소가 500쌍, 나귀가 500마리입니다. 종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욥은 고난 속에서 믿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연구 대상이 되었습니다. 욥은 가축과 재산을 그리고 강풍으로 자녀들이 한자리에 죽음, 욥은 종기가 나서 건강을 잃게 되었습니다.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스스로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고난을 참고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42장 5절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자신의 십자가를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고난이고 힘들은 상황이지만 모든 것이 이기고 난뒤에는 사탄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삶이 이렇게 무너질 때에 방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마치 사탄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시켜서 예수님을 내려오도록 만들었습니다. 너는 남은 구원하면서 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느냐? 빨리 내려와 이 바보야 하면서 예수님의 귀에 속삭이는 사탄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생기면 우리 삶속에 커다란 공간이 생깁니다. 이 공간은 그동안에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 즉 재물과 명예, 세상의 즐거움의 공간인데 이것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공간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 대신에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고린도후서 1장 3절의 말씀처럼 모든 위로의 하나님의 위로가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 보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그때에서야 너희는 가장 소중한 분을 품에 안을 수 있다. 자신의 끝에 이를 때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통을 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고통을 주려는 분이 아닙니다. 아담도 그리고 욥도 처음부터 고통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왜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보통인간들은 사람에게 고통이 다가오면 고통을 빨리 이기기 위하여 안간 힘을 씁니다. 술이나 쇼핑, 일, 친구와 수다를 통하여 그것을 이기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고통의 중력은 우리를 밑바닥으로 더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잊을 만하면 또 다시 고통이 찾아옵니다. 인간은 어떻게 하든지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의학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상담사의 도움을 청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극복의 날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많이 이 모든 고통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네가 세상을 이기었노나, 너희들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왜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하여서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불교에서 자신 스스로 구원하고 합니다. 현실주의자들은 스스로 성실히 살면 그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술 취하지 않으면 송순덕권사님의 자녀 용태는 참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그 술을 이길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는 술만 먹지 않으면 참으로 좋은 아버지인데, 술만 먹으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그렇게 때리고 가정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하면서 목사님에게 어린 자녀가 상담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은 아버지를 속에 악한 영이 있어서 그런다고 하면서 이렇게 조언하여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술먹고 자면 그 발가락을 잡고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술마귀 귀신아 떠나가라고 명령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술먹거고 들어와 주무시는 아버지를 위하여 날마다 기도하였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자신의 발고락이 근질 근질 하여 일어났더니 아들이 자신의 발가락을 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좋은 아버지인데 술만먹으면 어머니와 저희 가정이 엉망이 됩니다. 하나님이 고처주세요. 나사렛 예수님으로 이름으로 명하노니 술마귀 귀신아 나오라.”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질병과 술과 마약과 음난은 우리 가슴을 불법적으로 점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법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해야합니다. 여러분 한번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될 때까지 열심히 기도해야합니다. 여러분 기도를 형식적으로 건성건성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간절히 집중해서 기도하게 될 때에 치료가 임하는 것입니다.
위장병을 고처주옵소서, 공황장애를 고처주옵서서, 평강이가 학교를 잘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서서.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내려오지 않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다 이루웠다. 테텔레스타이라는 단어입니다. 완전히 지불하였습니다. 완전히 청산했습니다. 우리는 것을 100% 믿고 구해야합니다. 이제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예수님과 함께 천국 생활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