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철기목사

마태복음 21장 23절 무슨 권세 (참고, 유튜브 chulki hong)

마태복음 21장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사도행전 4장 5.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frombible

1. 매년 정초에 철야를 할 때 마다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번 철야에도 성경중 신약 성경전체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글짜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무슨 권세로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무슨 권세로, 베드로가 무슨 권세로, 그리고 우리가 무슨 권세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단어였습니다.

어는 목사님이 왜 성경을 여러번 통독에 강연하였습니다. 소고기국을 먹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소고기국을 끓이기 위하여 소고기 한근을 사오라고하시면 정육점에 갈 때에 국거리용으로 사오라고 하면 정육점 주인이 덩어리로 썰어주시는 것입니다. 잘게 썰어서 주는 것과 차이가 많이 난다고합니다. 우동국물 육수를 낼 때에도 많은 양의 제료 넣고 끓이는 것과 적은 양의 제료를 넣고 끓이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김장김치도 훨씬 많은 양의 배추김치의 보관과 한 폭 배추김차의 맛이 다릅니다. 성경을 한번 읽는 것과 여러번 반복하여 읽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골을 한번 끓이는 것과 반복해서 끓이는 것과는 같은 차입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읽는 것과 통으로 여러번 읽는 것의 차이가 드른 것입니다.

 

왜 성경을 읽는 것일까? 나무는 땅에 뿌리를 잘 내려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머리에 생명이 있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과 하늘에 뿌리를 내리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은 땅에 뿌리를 두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늘에 뿌리를 두어야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용비어천가에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니 꽃 좋고 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니 내(川)를 이뤄 바다에 가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깊이 하나님께 두었을 때에 많은 열매와 깊은 영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음으로 많은 지혜와 명철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권세

마태복음 21장 23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예수님이 신문을 받을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반문합니다. 세례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냐 하고 물었습니다. 서로의논합니다. 만일 하늘로서라면 왜 그를 믿지 아니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로부터라고 하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는데 백성들을 들고 일어날 것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무말도 못하게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화를 들으셨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자신의 종들을 보냅니다.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상속자를 보내는데 그도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서 교회의 머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즉 이말은 유대인들이 빼앗기게 되고, 이방인들 예수님을 잘 믿는 민족들이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성경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알지만 예수님을 잡기를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죽음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당시에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검으로 죽이는 방법, 독약이나 사약으로 죽이는 방법, 불로서 태워죽이는 방법, 화살로 죽이는 방법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군인들은 가장 사악한 방법으로 죽이는 방법 십자가의 방법을 택했습니다. 영화 스파르타거스를 보면 길거리에다가 로마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십자가에 메달아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이를 보고 로마에 대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죽일 때에는 십자가의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빌라도가 죄가 없다고 하면서 대신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원하였지만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날까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로 허락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밖기 위해서는 최소한 백부장과 로마군인 4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첫째로 째찍질합니다. 살을 휘감아 살점이 잡아당겨 뼈가 들어낼 정도 때리는 것입니다. 죽지 않게 39대까지만 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까지 가는 것입니다. 14번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밖는 것입니다. 물과 피를 다 흘렸기 때문에 예수님을 다른 강도 보다 일찍 돌아가겼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는 우리의 모든 질병과 고통을 다 사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즉 이 다 이루웠다는 뜻은 우리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3. 베드로의 권세

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예수님이 집히는 장면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아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였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워두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충만하여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밖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화 뒤에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모통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사도들을 잡은 이유는 예수님의 권세가 앉은뱅이를 읽으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남자들만 5천명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 바리세인과 서기관들, 대제사장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판에 참석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 아나스와 가야바입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심문한 그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산헤드린 재판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질문에 답변하셨고, 그리고 그 답변의 답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즉 죽었지만 부활하시고 마귀와 그리고 그의 추종세력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해산된 줄로 생각했는데 그의 제자들이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너희들이 어떤 악한 영을 받아서 이러한 행동을 하느냐는 부정적인 질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판 장면을 보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제자들과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원들과의 긴장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처럼 죽임을 당할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뒤로 물러가 예전처럼 3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첫 번째 방법 죽으면 죽이라는 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이러하는 장면은 마틴루터가 천주교의 교황에게 심문을 받는 느낌을 들게됩니다.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다른 나라에서 죽임을 당하는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그곳에서 배 밖으로 간을 내미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우리가 이렇게한다고 답변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코로나 상황가운데서 그냥 두리로 물러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마스크 쓰고 믿음으로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참고. 우리 사모가 성경을 통독하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가가 복음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의 문서를 통하여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복음과 전혀 다른 복음 바로 요한이라는 제자입니다. 초대교회의 쌍벽은 베드로 요한 그리고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이 세사람이 초대교회의 핵심인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에서 요한복음과 요한1234유다서와 같은 복음과 베드로의 복음과 그리고 사도 바울의 복음의 뉴향스가 조금씩 다른 것을 볼수 있습니다.

 

 

4. 우리에게도 주신 권세

마태복음 28장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마태복음 28장 18절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하였습니다. 권세의 헬라어로 εζουσια는 영어로는 Authroity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Authority는 권위, 권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권위 권세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 앞 성산대교 방면에서 경찰관이 큰 덤프트럭이 난폭운전하고 있거나, 신호위반을 하였을 때에 나라에 준 경찰관의 권위로 큰 차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힘으로 큰 차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에서 주는 권세로 세울수 있습니다. 나라에서 준 법적인 효력과 권한을 위임받아서 차를 세울수 있는 것입니다.

 

이 권세는 바로 우리가 주님의 종으로 살 때에 권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의 나의 주님으로 인정할 때에 나타는 것입니다.

 

ccc의 창시자 빌브라이트 목사님은 그의 묘비에 예수그리스도의 노예라고 묘비명에 쓰여졌습니다. 노예와 종이 같은 말입니다만 조금 다른 뉴향스를 받게 됩니다. 주의 종하면 조금 부요한 느낌이들고 노예 그러면 조금 없는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노예에게는 일상이 없습니다. 일과가 끝나도 쉼이 없습니다. 개인의 정체성이 없습니다. 개인의 제산이 없습니다. 주인이 팔면 팔리고 주인이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종들, 주의 종과 성도들,은 노예이기보다는 종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 마음속에 욕심과 물욕과 안전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의 목적은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그리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좋은 차 좋은 집을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런데 마치 젊은 청년 관원이 부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뒤에 영생의 문제로 왔을 때에 그의 물질 때문에 돌아간 것처럼 물질로 인하여 인생이 후퇴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나쁜 크리스도인(unchristian)책 중에서 pasge 18-42페이지에 65퍼센트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여전히 혼외정사를 하고, 음주하고, 마약하고 세상사람들과 별드름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일날 한번 교회가지만 여전히 봉사하기 싫어하고, 정한 헌금외에는 더 헌금을 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책에서 기독교인들을 이렇게 꼬집고 있습니다.

  1. – 그리스도인은 위선적이다
  2. – 그리스도인은 전도에만 열을 올린다
  3. – 그리스도인은 동성애자를 혐오한다
  4. – 그리스도인은 안일하다
  5. – 그리스도인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6. – 그리스도인은 타인을 판단하려 한다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한 사람들

1) “풀러는 29세 젊은 나이에 변호사와 벤처기업 사장으로 성공한 백만장자였습니다. 호화주택에 고급 보트를 타고 인생을 즐기며 살면서도 재산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죠. 삶의 가치는 물론, 아내와의 관계도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 린다 풀러(Linda Fuller)는 풀러를 향해 ‘돈만 추구하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그가 33세 즈음 부부는 위기를 맞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던 그는 관계 회복을 위해 ‘코이노니아 농장(조지아 주 남서부 아메리쿠스 소재)’을 방문합니다. “코이노니아 농장엔 공동체를 이끄는 클라랜스 조던(Clarence Jordan) 목사가 있었습니다. 인종 통합을 반대하던 백인 시민협의회로부터 물리적인 폭력과 총격을 받습니다. 시장이 불태워지고 지역을 떠나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조던 목사는 오히려 그들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풀러는 이 모습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풀러는 코이노니아 공동체 사람들을 위해 그의 재산 대부분을 기부합니다. 기부금은 공동체 속 가난한 가족을 위한 집짓기 기금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해비타트의 모태가 된 ‘협동주택’입니다.” 풀러는 그 후 3년간 선교활동에 매진합니다. 1976년 9월에 이르러 뜻을 함께한 사역자들과 협동주택 건설의 개념을 지지하는 후원자 27명과 함께 토론과 기도로 ‘해비타트’를 탄생시키는데 이르렀습니다.

 

  • 태풍피해가 컸던 뉴올린온스 주에서 가장 많이 헌신 단체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서 기름띠 피해가 있을 때에 가장 많이 헌신한 단체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 반면에 예수님이 주신 권세를 잘못 사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럽의 십자군 전쟁입니다. 이라크의 전쟁에서 사용한 무력입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권세는 비폭력입니다. 로마를 무너뜨리는 것도 비폭력입니다. 기독교가 유럽을 점령한 것도 비 폭력입니다. 천주교에서 기독교로 바뀔 때에 루터목사님도 비폭력입니다. 독일을 통일도 기독교의 비 폭력입니다. 북한과 일본과 중국 그리고 우리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세력들에게 우리는 전쟁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여야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 종교지도자의 권력에서, 헤롯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에서, 로마의 군사 권력을 무너트리는 것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비폭력입니다. 베드로 당시에도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든지 베드로와 요한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협 가운데 승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인 것입니다. 이 코로나 한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인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을 자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산홍의 이름으로, 신천지의 이만희의 이름으로, 문선명과 박태선의 이름으로 바꾸어 사람을 현혹하고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마귀에게 속고 이단의 세력에 속아서 마치 바리세인과 서기관과 대제사장처럼 그렇게 지옥형벌의 자식을 만들과 자신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 바리새인과 서리관들, 대제사장들은 아주 오래된 모세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전통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마치 일본의 오래된 전통 음식점들이 전통의 맛을 내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오래된 전통의 가죽공애나 옷을 만드는 전통처럼, 영국의 오래된 전통의 가업과 전통처럼 오래된 전통속에 공든탑이 쉽게 무너지 않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가정집에 있는 간장과 소금이 오래된 것은 좋은 것입니다. 4대 5대에 이르는 전통의 예수님을 믿는 가정처럼 위대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형식이 되고 잘못된 전통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비판 받을 만한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대제사장처럼 예수님에게 화있을지라고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5.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이름이 없습니다.

(행 4:9)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행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행 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도 겁을 먹지 않았습니다. 비록 베드로는 많은 실수와 예수님을 부인하였어도 다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나 담대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주님을 이름으로 착한일을 하고 사람들을 구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이 건강헤게 된 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베드로처럼 겁을 먹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여러분들은 베드로처럼 실수도 많고 예수님을 부인하였지만 두 번째 주시는 제2의 베드로처럼 여러분들도 이렇게 외칠수 있어야합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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