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도행전 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1. 序
저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섬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섬김은 먼저 예수님, 헨리 나우웬, 목사, 성도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섬김에 대하여
2. 헨리 나우웬의 섬김에 대하여
3. 홍철기목사의 섬김에 대하여
4. 성원순복음교회 성도로서의 섬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섬김에 대하여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가르치는 자는 권력이 있든지, 나이가 많든지, 지식적으로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나이가, 권력, 많은 것이 아니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온유함과 섬김이였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나 돈 많은 부자들은 섬김을 받으려합니다. 공동체에서 가장 높은 상석에 앉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제자들을 섬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3년 반동안 공동체 생활하시면서 늘 부족한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주간 공생애 기간 동안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는 일을 하셨습니다. 섬김의 가장 귀한 모델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민들이기 때문에 센달을 신고 다닙니다. 때문에 집에 들어올 때에는 발을 씻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종이 발을 씻어주고, 본인 스스로 발을 씻든지, 아니면 주인이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식사를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
예수님의 섬김을 가장 잘 표현된 곳이 바로 부모님이 자녀들을 섬김입니다.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일찍이 홀로 되셔서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자녀들을 모두 교육시켰습니다.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세상에서 인정받고 잘 사는데도 할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사시지 않고 오두막집에서 혼자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자녀들은 혼자 사시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애원하였습니다. “어머니, 이제 우리들도 모두 잘 사니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며 살 수 있어요. 이런 초라한 집에서 혼자 살지 마시고 저희랑 좋은 집에서 살아요.” 그러자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들이 애원하니 나도 어쩔 수 없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 이런 집을 지어다오. 집 바닥을 온통 유리로 하되 기둥은 12개로 하고 기둥 밑바닥에는 반드시 보석을 박아라. 보석은 각기 다른 색깔로 하고 문은 12개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의 말은 들은 자녀들은 하나같이 “어머니, 농담이시죠?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디 있으며 그런 집을 어떻게 짓나요?” 하며 기가 막힌 듯이 되물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런 집이 어디 있냐고? 왜 없나? 난 그런 집을 하늘나라에 분양 받았는데 그래서 곧 그곳에 살게 될 테니 나보고 더 좋은 집으로 가서 살자고 하지 말아라”
갑자기 우리 장모님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장모님은 자녀들의 자녀들을 키워주시고 본인도 어려우신데 모든 자녀들에게 상당한 많은 돈을 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에 모시고 싶지만 혼자 사시는 것이 좋다고 하시면서 지금도 일하면서 자급 자족하기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 아름다운 진주문과 황금문을 버리시고 이 땅에 병자들을 고치고, 먹지 못한 자들을 먹이시고, 창기와 세리들의 친구가 되시고, 마음이 상하고 아픈 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섬기면서 구원사역을 이루셨습니다.
2. 헨리 나우웬의 섬김에 대하여
헨리 나우웬 돌봄의 영성 책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나는 목회자, 사제, 교수, 작가로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전업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말하면 그때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가르치던 일을 그만두고 중대한 변화를 거쳐 캐나다의 라르쉬 데이브레이큰 공동체로 이주한 직후였습니다. 나는 라르쉬에서 장애인들과 그들을 돌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1986년 8월 데이브레이크에 도착해서 나는 아담을 처음 만났습니다. 아담은 아주 귀하고 온순한 남자였습니다. 공동체에서 가장 장애가 심한 사람이였습니다. 아담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아침마다 준비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아담을 아침 7시에 깨워서 목욕시키고, 면도해주고, 옷을 골라 입히고, 머리를 빗어주고, 아침을 차린 뒤 부엌으로 그를 데려가고 먹고 마시는 걸 도와주고 이를 닦아주고, 겉옷을 입히고, 장갑을 끼우고, 모자를 쒸우고, 휄체어에 앉힌 다음 휠체어를 밀고 수백미터 떨어진 학교까지 가야합니다.
가장 심각한 사람을 나에게 맡깁니까? 장애 정도가 좀 덜한 사람도 있는데 왜 하필 아담을 돌보라고 하는 겁니까? 나는 간호사도 아니고 이러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닌데…
매일 두 시간씩 아담과 함께 보내면서 점차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자신감도 생기고 여유도 생기자 아담이라는 존재와 진정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책과 대학의 강의였지만 이제는 우선순위가 아담 한 사람입니다. 내가 건성으로 대하거나 너무 밀어붙이면 아담은 간혹 발작을 일으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나는 남들이 말이나 글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집착했지만, 아담은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속삭여주었습니다. 나는 혼자만의 성취에 연연했지만 아담은 함께 일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깨우쳐주었습니다.
아담은 아무것도 생산해 낼 수 없었고 자랑할 만한 면도 없었고 내세울 만한 상이나 상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 자체야말로 인생의 진리를 가장 극명하게 증언해주었습니다.
돌봄은 고난에 대한 인간의 뿌리 깊은 반응입니다. 고난에 대한 고통을 덜어주기 원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안정과 평온을 되찾아주기 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돌봄은 희생을 따릅니다. 돌보는 사람이 종종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돌봄은 사랑에서 나오게 아니라 원망과 쓰디쓴 바닷물에서 날 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돌보셨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주셨고 궁휼함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6장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6.Be ye therefore merciful, as your Father also is merciful.)
돌봄의 사역을 그만두고 더 쉬운 일을 해볼까 생각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혹에 부딪칠 때마다 깨달은 게 있습니다. 쉬운 일을 욕망할 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한 내 헌신의 가치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헨리 나우웬은 섬김의 기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 당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나누는 것은 기쁜 일이다. 아시시 프란시스, 간디, 테레사 수녀의 한결같은 고백은 준 것에 비하여 우리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쁨은 궁휼의 숨은 선물이다.
네 살 배기 아들과 사별하고 3년이 지나도록 깊이 애도하던 어머니가 있었다. 이 어머니의 고백은 1년간의 끔찍한 병원생활 내내 오히려 환자인 그 아이가 놀라운 투지로 내 힘을 복돋아주었다. 궁휼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빛나는 순간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안겨주는 상활도 자주 찾아온다.
3. 홍철기목사의 섬김에 대하여
교회가 부흥하면 섬김도 활발하고 즐거운데 그렇지 못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헨리 나우웬의 삶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12명의 제자에 집중하고, 헨리 나우웬도 10명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서 한 사람 아담를 위하여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책을 쓰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성원순복음교회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책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굳이 십자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그 십자가를 지면 된다. 그래 성원순복음교회가 내 십자가이고 이곳이 섬김의 장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삶 속에서 섬기면서 살아가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광야가 필요하고, 하나님을 알아보려면 고독과 침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소리를 지르거나 악을 쓰거나 억지로 떠밀지 않으십니다. 친밀감으로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성령은 침묵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너의 이름이 내 손바닥에 새겨져있다.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것이고 내게 속한 자다.
헨리 나우렌과 테레사 수녀가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헨리 나우렌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였습니다. 10분 동안이나 장황하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녀님이 말씀하였습니다. “글쎄요 하루 한 시간 주님을 사모하며 보내고, 잘못인줄 아는 일을 일절 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할 일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안에 신성한 공간을 만들어 아침마다 10분 말씀을, 20분 기도를 실천하는 성도들이 다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과 함께 보내며 하루의 삶을 사랑의 손에 올려드리면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책을 읽는 동안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게 하셨습니다.
혹시 볼링을 처본적이 있습니까? 내가 힘을 주어서 치면 언제나 또랑에 빠져서 볼링 핀 하나도 맞춘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운데로만 치겠다고 하고 가운데만 밀어 넣으면 10개를 맞추는 적이 있습니다. 내가 힘이 들어가면 들어 갈 수록 인생은 꼬이고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섭리로 움직일 때에 은혜가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고 홍해로 이끄셨을까요?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홍해 앞바다였습니다. 또한 그들 뒤에는 애굽의 군대, 바로의 군대들이 들이 닥치고 있습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를 치고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든지 해결하려고 하는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때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 주시는 말씀은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가만히 있습니까?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육지처럼 그곳을 건너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세미한 음성입니다. 가만히 있어라. 그냥 섬겨라.
4. 성원순복음교회 성도로서의 섬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교역자 시절에 새로 등록한 성도가 있어서 새가족심방을 하였습니다. 처음 한 마디가 “목사님 전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였기 때문에 제가 알아서 교회를 섬기겠습니다.”하였습니다. 이유는 작은 교회를 섬기다가 부담이 되어서 큰 교회로 온 것입니다. 작은 교회는 자신이 주일성수하는지, 헌금은 얼마 하는지, 다 제정부에 알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역예배드리라고 간섭하는 일들이 많아서 큰 교회에서 하나님 한 분만 섬기기 위하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 교회에는 섬김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는 성도들에게는 더욱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교회를 섬긴다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특별히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면 잘 섬길 수 있지만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어려운 지경에서 섬긴다는 것은 정말로 힘들은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 생활이란 대부분이 어려울 때에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고 계속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믿음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복을 받고 생활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어려울 때 처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지 않고 자기 신앙만 유지하는 위한 신앙이 대부분입니다.
교회를 돌보는 일은 마치 연로하신 어머님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부모님을 돌봄을 하는 일들이 어렵습니다. 고통과 무력감, 영적 고갈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섬김으로 인하여 축복도 받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이 가장 어려웠을 때에 격려와 위로가 평생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고통을 돌봄을 통하여 다시 일어나는 힘이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에 성도님들이 어려움을 때에 돌봄을 통하여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한국교회, 성원순복음교회가 됨을 믿습니다.
결론입니다.
사도행전 17: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우리 주님은 섬길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섬김을 받으실 분이 섬김의 모델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을뿐만 아니라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셨습니다. 우리도 한 평생 살아가면 교회를 섬기며, 사랑하는 성도와 가족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삶 속에 평안과 기쁨과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