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저희 집은 그림을 그리는 집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동양화가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 그림을 참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이 동반된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우리의 생활의 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돈많은 사람들이 그 그림을 사야 화가는 것으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사는 사람들은 그 그림이 좋아야사고 가치가 있어야 삽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무명화가였기 때문에 저희 어머님과 우리 가정은 늘 가난한 삶의 연속이였습니다. 그 가난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찾게 되어 저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흥미없는 직업이 저희 삶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목회라는 것이 생활의 필수 요소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영적으로 살아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왜 교회를 가느냐? 그 시간에 집에서 편히 쉬지, 왜 헌금을 하느냐? 헌금하는 돈으로 적금을 들고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훨신 낳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이러한 분리한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가정입니다. 저는 목회를, 우리 보라매 동생은 장로로서 홍대 미학과를 나와 그림에 관계된 일을, 우리 푸르메는 그림을 그려서 어려운 교회를 돕고 있습니다.
고흐는 평생을 딱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던 무명의 화가입니다. 고흐는 그림을 향해 전 인생을 불태운 사람입니다. 청년기에 네덜란드 개혁파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중퇴했습니다. 1878년에 벨기에 가난한 탄광촌에 들어가 평신도 설교자로서 정성 다해 사람들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1880년이 되었을 때 고흐는 목회자의 꿈을 접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꿈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평생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네 살 아래 동생 테오의 지극한 재정후원 덕분입니다. 고흐는 극심한 정신장애와 빈곤 속에서도 자신의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평생 900여 점의 그림과 1100여 점의 습작들을 남겼습니다.
고흐는 테오에게 600통이 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를 묶어 만든 책이 반고흐 영혼의 편지입니다. 편지 글에 고흐의 주님을 향하는 열정과 그분이 마드신 세상을 캔버스에 담으려 몸부림친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습니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진정한 성도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이 성도를 두려워한다.
첫번째 성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
오늘 등장인물들은 이러합니다. 1) 먼 곳에서 온 동방박사 2)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종교지도자) 3) 왕의 자리를 지키려는 헤롯
먼 곳에서 온 동방박사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동방에 사는 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님에게 경배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아기를 찾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은 온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분입니다.
빌립보서 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제가 성지순례를 가보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자란 나사렛 가나, 가버나움이라는 곳으로 갈 때에 걸어서 3일을 걸리는 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이스라엘에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페르시야, 즉 이란, 이라크, 시리아를 거처서 예루살렘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는 아주 먼곳에서 오시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파주 운정에서, 경기도 수원에서, 그리고 왕십리에서 오시는 성도들이 마치 동방박사와 같은 분들입니다.
4세기 성지순례를 위해 베들레헴에 왔던 콘스탄타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예수님의 탄생했던 곳을 찾아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는 614년 페르시아 침략 때에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벽에 동방박사들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무슬림 점령 때에도 잘 보존되었습니다. 무슬림들은 예수님을 알라의 예언자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조상들의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장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황금은 만왕의 왕이신 메시아의 왕권을, 유향은 메시아의 대제사장직을, 그리고 몰약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베트남에 갔더니 몰약, 침향을 사라고 하여 사온 기억이 있습니다. 몰약의 나무의 가지를 날카롭게 긁으면 하얀 수액이 나옵니다. 그 하얀 액체가 나중에 굳어지면 몰약이 됩니다. 하얀 액체가 너무 써 나중에 몰약을 뜻하는 단어 myth로 쓰게 되었습니다. 몰약은 소염제, 입안에 생기는 병, 뱀에 물렸을 때에는 치료재, 항균, 소염, 콜레스톨를 제거하는데 탁월하다고합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종교지도자) 알고 있으면서 실천하지 않는 자들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즉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오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방관자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어디서 나겠느냐 헤롯이 물었습니다. 그때에 성경 구절을 정확하게 인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납니다.
길을 가다가 쓰러진 노인이나 환자를 발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연히 119나 경찰에 신고를 하고 119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거나 도와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동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길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도와주다가 가해자로 몰려 소송을 당하거나 보상을 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의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길을 가다가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못 본척하고 지나가는 ‘푸뿌푸(扶不扶)?’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강도를 당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생명이 위태로운 급박한 상황인데도 사람들은 멀찌감치 빙 둘러 서서 구경만할 뿐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주기를 꺼린다.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이자 양심이다. ‘푸뿌푸?’는 중국어로 ‘부축해서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교통사고 등으로 죽음에 직면해 있는 사람을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범죄로 처벌하는 ‘견사불구(見死不救)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3살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골목길에 방치돼 다시 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일이 일어난 ‘비인간적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지난 13일 오후, 광둥성 포산(佛山)시의 한 시장 골목에서 혼자 놀던 3살 아이(왕모양)이 두 번이나 차에 치여 쓰려져 있는 동안 이 아이 주변에 있거나 지나가던 사람이 18명이나 됐지만 아무도 도와주려 나서지 않아 결국은 뇌사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둥성은 지난 19일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는 행위를 비난하고 의용정신을 고취하자’는 주제의 대토론회를 열어 ‘견사불구’죄 입법 문제 등을 논의한 뒤 시민들에게 의견을 내 달라고 요청했다고 광저우르빠오(廣州日報)가 20일 보도했다. 일부 중국 법률학자들도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방치하는 것은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면 무관심한 중국인들의 사고를 개선하고 의용정신을 북돋으려면 ‘견사불구’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왕의 자리를 지키려는 헤롯왕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헤롯왕일 것입니다. 자신의 왕의 자리를 넘보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에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것이 왕의 마음일 것입니다.
최고의 권력지도자들은 자신을 대신하여 가짜로 행사에 내보내고 자신의 대리인을 통하여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로 푸틴, 광해, 왕이 된 남자, 광해군 치세기 당시 실존 인물을 빌려와 승정원일기에서 지워진 15일간의 빈 시간 사이에 광해군으로 위장한 대역이 조선을 다스렸다고 가정하에 만든 영화입니다.
헤롯 대왕은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는 에서의 후손인 이두매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증하게 여기는 이방인 출신이 유대인의 왕이 되었습니다. 헤롯은 야망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입니다. 세상의 권력을 탐하고 자신의 권력을 내놓치 않으려고 2살 아래로 모든 남자를 죽인 사람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직 백두혈통만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고모부도 처형한 사람입니다.
현대의 헤롯과 같은 사람들
2021년 1월 20일 조 다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실베스터 비만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다양한 종교의 이름으로 아멘 (In the strong of our collective faith. amen)
같은 해 1월 미국의 제 117차 국회 개원기도회 때는 임마누엘 클리버 목사이자 하원의원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유일신인 브라마 그리고 다양한 종교의 여러 신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 위먼) We ask in the name of the monotheisic god. Brahma, and god known by many names by many different faiths, Amen and a-woman.
목사로서 그렇게 기도를 마치는 것에 저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실망과 아픔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저는 수년 전에 미국 하원개원기도회와 버지니아 주 상하원개원 기도회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도를 부탁받을 때마다 방송을 지켜보는 사람들과 의원들의 종교도 다양하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민감한 표현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서 지필도 함께 받았습니다.
미국하원개원기도회를 인도할 때는 당신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소개로 단상에 올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쳤습니다. 그후에 얼마나 많은 이 메일과 전화와 손편지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외국인이 미국 국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목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에 칭찬을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류응열목사님의 기도를 다 인용할 수 없지만 목사님은 2022년 버지니아 주 글렌 영긴 주지사의 초청으로 상원 개원기도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목사님 오늘 목사님이 믿고 있는 하나님께 평소처럼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하늘에서 미소짓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저목사님은 세상과 충돌하라는 책에서 “하나님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편한 길을 철저하게 반대하신다. 세상과 불화하라 겁먹지 말고 당당하라.”
그렇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자다운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합니다. 세상에 발맞추어 걸어가는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발 맞추어 걸어가는 기독교인이 되어야합니다. 지금 우상에 절하지 않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어인이 찍힌 줄 알고도 매일 기도하는 다니엘처럼, 우리시대에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 당돌히 달라고 하는 아리마대 요셉처럼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를 잘 이겨낸 우리 성원순복음교회 성도님에게 에벧에셀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신앙생활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리고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여러가지 은혜와 은사와 기적들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게 하시려고, 그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가 기도한 즉 옥문이 열리고 마가 다락방으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옥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하나님은 연단을 주시고 그것을 이겨나가도록 하시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왜냐하면 쭉정이와 알곡을 고르기 위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옥에 갇혔을 때에 옥문을 열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춥고 추운 겨울에 옥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순교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 처음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복음이 들어올 때에 교회를 세우면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표적과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연단과 고난이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동안에 만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도 끝까지 잘 이기고 왔습니다. 신앙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도 우리 주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