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bible

마태복음 16장 21절 확신과 용기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4년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성경에서 믿음으로 기적을 일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frombible

첫째로 죽어야사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어야 얻는 것입니다.

셋째로 섬겨야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적 중에 기적은 바로 십자가의 기적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기적은 바로 죽었을 때에 부활하고 죽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얻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 수능 시험에 만점을 맞고 메가스타에서 광고도 하고 공부의 신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은 바 있는 학생의 삶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서울대 의대를 지원했는데 떨어졌습니다. 너무 교만했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많은 의대 교수님이 들이 공부는 백지장인데 더 겸손하라고 했는지 그를 떨어뜨렸습니다. 신문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지난해 11월 세 번째 수능을 치른 뒤 표준점수 542점을 받아, 자연계 수석을 차지한 전씨는 수능 100% 전형인 연세대 의예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신의 십자가를 질 수 있을 까?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적을 베풀으신 것처럼 우리도 기적을 베풀수 있을까? 저는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1. 마음을 정해야합니다.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기적으로 믿음이 일어나는데 기적은 마음을 정하는데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예수님의 결단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의 주변 부분에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로부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많이 받을 것을 생각하면 올라가갔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과 비슷한 장면이 또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이 보장되면 재산도 팔아서 그곳으로 갑니다. 공부를 위해서는 해외에 유학도 갑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성공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과 결박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아도 전도를 다른 곳에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거 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러나 성경은 이와반대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불평불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불과 구름기둥으로 광야의 길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홍해라는 큰 바다가 그들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집트 군대들이 바로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으려고 오고 있는 중입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먼지를 일으키고 달려오는 이집트 군대를 보고 그들은 지도자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는 요소가 바로 이러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1장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여러분 회의를 할 때에 마지막으로 꼭 묻는 말이 있습니다. 가하시면 예라고 답변하시고 아니면 아니라고 답변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면 사탄도 그곳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 제자로서 가룟유다는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죽으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고 하니 자신은 돈궤를 맡았고 그리고 예수님을 이용하여 권력과 권세를 잡아보려고 하였는데 예수님이 죽으러 간다고 하니 자신의 뜻에 맞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요동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 앞에 있는 말씀을 읽도록하겠습니다. 13절입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답변합니다.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자자중에 하나라고합니다. 그러면 너희 제자들아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들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합니다. 그런데 용기 있는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답변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정답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몬을 축복합니다. 이를 네가 알게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고백위에다 교회를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왜 베드로는 이러한 정답을 말했을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만이 참 능력의 주님이요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정한 빅토르 위고 :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이 왜 이땅에 오셨는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죽으러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살으신 분입니다. 십자가에서 기적을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바로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나를 치료하신다는 확신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는 확신의 말씀

믿는 자들에게 이러한 표적이 따른 다는 확신이 있어야 치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확신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확신 없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찮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는 믿음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라는 고백도 하기 때문에 성원순복음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나 그에 대한 확신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이 죽으러 간다니까? 예수님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항변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항의하고 변론하는 것이니다. “예수님이 잘못 생각하신 것입니다.”라고 예수님을 꾸짖은 것이 항변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계속적으로 말합니다. “주님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주님에게 결코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주님 왜 죽습니까? 이 좋은 세상에 주님과 같이 행복하게 살고 편안하게 살면되지 왜 죽으려고 하십니까?”

예수님께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도다.” 베드로는 큰 칭찬을 받는 줄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조금 전 까지만해도 베드로의 답변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도다 하면서 베드로를 꾸짖습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욕심입니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힘없이 죽는다고 하니까? 그러지 않다고 하면 그렇게 살지 말라고 예수님에게 항변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대한 확신으로 살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른 목적인 반신반의 했습니다. 확신이 있을 때도 있어고 자신의 욕심이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 절대로 그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하면 그때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야지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섬기고, 드리고, 죽고라는 아이러이한 법칙이 기독교에서 많이 기적을 일으키는 힘인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살면 무엇하러 예수님을 믿습니까? 세상에서 안되고 세상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곳에 하나님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3. 용기있게 행하라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신앙의 걸림돌은 자신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에 끌리는 삶입니다. 자신의 모습으로 가득하면 예배드릴 때에 모든 잡생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하여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개역개정]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사람들은 자기가 자신의 자아속에 살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을 죽이게 될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죽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더 자랑하고 자신을 더 PR하고 자신을 나타내야하는 것입니다. 연애인들이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의 삶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 까? 솔찍히 그것이 죽는 길인데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는 길을 분명히 알고 그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멀리보면 그것이 생명의 길이고 부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이길을 갈 때에 두려움이 다가올수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용기를 내어 믿음으로 물맺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기있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사자 굴 앞에서 다니엘도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에 3번씩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자굴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그 믿음의 확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용기 있는 행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을 따라갔을 때는 자신의 욕심으로 따가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에 지신 예수님을 보았고 성령을 체험하고 난뒤에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세상의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낚는 어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을 많이 하였지만 그는 작은 비자앞에서 3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고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