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신앙생활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은 예배, 봉사, 헌금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남에 있습니다.
성경의 위인들은 하나님을 만남에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에서, 야곱은 벧엘에서, 모세는 떨기나무 아래서 주님 만남입니다.
주님을 만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짓, 몸짓, 싸인, 표정, 말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깡패의 세계에서는 말을 해서 행동하는 깡패가 있고, 손짓으로 행동하는 깡패가 있지만 보스의 마음을 읽고 행동하는 깡패가 진짜 깡패입니다.
지난 추수감사절은 진정한 감동이 있는 예배였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라고 찬송할 때에 마음의 감동이 되어서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은 작은 알카리성 액체지만 안구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지만 사람에게 큰 감동이 되고 큰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약 4000번정도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장 적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데 고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울어도 누가 위로 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데 위로해 줄 수 있으면 힘있게 운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건강하고 힘있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울 수 있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광야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요한복음 6장, 마가복음 6장 32절 등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빈들 광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사람들이 살기 힘들은 곳입니다. 음식도 물도 어떠한 시설도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인간에게 절망의 장소가 바로 하나님이 일하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시고 그곳에서 40년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보이지 않는 시간입니다. 인생에서도 가장 힘들은 곳이 광야를 지니는 시간입니다. 광야는 희망이 없는 곳입니다. 소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복음성가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
성경에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19)
헬렌켈러는 가혹한 현실이 그를 힘들게했습니다. 질병 탓으로 시력, 청력,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 속에서 하나님은 그를 가장 높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육사의 광야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독립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2000년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생활을 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에서 세번 시험을 받으셨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광야의 길 속에 무엇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지 말고 주님은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봉생마중 불부직(蓬生痲中 不扶直), ‘굽어지기 쉬운 쑥대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 저절로 곧아진다’는 뜻이다. 삼은 크고 곧게 자라는 식물인데 쑥도 삼밭 속에서 자라게 되면 삼의 영향을 받아 곧게 자라게 되는 것이다. 사람 또한 인품의 향기가 나는 사람과 어울리면 내 몸에서도 인품의 향기가 날 것이다.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http://www.jbnews.com)
조용기목사님의 설교중에 왕대 밭에 왕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큰 교회 밑에서 큰 교회가 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저가 보통키인데 지금은 아주 작은 키입니다.
여자들도 저 만큼 큰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평균신장이 가장 큰게 성장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김종국목사님의 딸들과, 윤정열목사님의 딸을 비교하면 엉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경쟁에서 지지 않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끼리 경쟁하여 세계에 나가니 어디서나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 곳에 치료가 있고,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때를 극복했습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광야, 빈들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이미 저물었고 활동을 하지 않을 시기입니다. 저녁은 누가 식자제를 공급할 때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때가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학교를 다녀야합니다. 봄에는 모종하고 가을에 거둘 때입니다. (전도서 3장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
사람에게 때로 아픔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할 때가 있고 기뻐할 때가 있습니다.
인도의 일화입니다. 노인과 제자가 어느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유숙하면서 오직 늙은 젖나는 소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인은 제자에게 늙은 젖나는 소를 낭떨어지게 떨어뜨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가정에 소망이 없고 절망 가운데 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뒤에 다시 그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들판은 황금농장으로 바뀌게 되었고 집도 큰 집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제자는 어떻게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날 자신의 소가 없어저 소망이 없어졌었는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들판을 가꾸고 힘있게 살다보니 오늘날 이렇게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늙은 젖소 때문에 실망하였지만 그것을 통하여 힘을 얻었습니다. 목사님 저희들은 나이가 많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입니다. 젊은이는 배움을 멈출 때에 늙은 이가 되는 것입니다.
숫자도 초월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오천명, 여자까지 아이들까지 약 2만명 가량의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여러분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여러분 5000분의 1로 하면 얼마나 나누워주어야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무엇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안드레와 빌립입니다. 빌립은 빈들, 저녁 때 이 사람들을 먹일 방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지만 안드레는 무엇인가 찾으러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병이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에 전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때어서 나누워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천지창조하셨을 때에 기대와 소망으로 밝고 환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만들 때에 가장 행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에 얼굴이 일그러지셨습니다. 어둠이 가득차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통하여 기쁨이 있지만 믿음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통하여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었습니다. 노아를 보시면서 자랑스러워하셨고, 다윗을 보시고 마음에 기쁨을 이기지 못했지만 우리아의 범죄를 통하여 우리 주님은 참으로 화를 내기시고 슬퍼하셨습니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를 드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시면서 큰 기쁨으로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헌금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이번 어느 사모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에게 식사대접하는데 왜 성도님들을 괴롭히는가?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에 헌금하는 모습을 통하여 성도들이 불쌍히 여겨서 깍아주고 보둠어주었는데 사실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간증하였습니다.
광야 미드바르의 뜻은 부터 “미”는 ~로 부터 “드바르.다바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이 들려지는 곳입니다.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지는 곳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지는 곳입니다.
모세는 광야를 통하여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저자가 되었고, 신약의 사도 바울은 광야의 훈련을 통하여 성경 13권을 쓰게 되 동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기도했다고 절망하십니까? 얼마나 예배드렸다고 소망을 포기하십니까? 아무 소리하지 말고 계속 주님을 붙잡아야합니다.
광야는 인간이 무엇을 공급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메추라기와 만나가 내려지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위로부터 내려지는 장소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일하는 농부는 앉아 있는 신사보다 귀하다.” 작은 아이와 안드레의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 멸시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전 1:28-29).
성전에서 부자들은 헌금을 넣을 때에 쫘르르 소리가 나지만 과부는 땡그랑 소리가 납니다. 사람들은 부자들의 헌금에 관심이 있지만 예수님은 생활비 전부를 드리는 과부에게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누가복음 21:3-4).
남은 조각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요한복음에서는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너무 많은 것을 버리고 있습니다. 우리 마포구에서 추가로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한다고 많은 시민들이 추가 쓰레기 장을 건설하지 말라고 프랑카드를 걸고 대모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얼마나 풍요로움이 넘처납니까? 그러나 주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환경적인 보존의 삶과 낭비하지 않는 삶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파트 단지내에 많이 버려지는 좋은 물건들이 다 동남아로 간다고합니다. 우리나라에 좋은 차들이 베트남으로 필리핀으로 갑니다. 이렇게 풍요로움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옛날에 정말 가난한 시절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나이드신 권사님, 우리 부모님 세대 몇 십년 묵은 것도 사용할 수 있으면 버리지 않고 사용합니다. 이사를 하면서 버릴 수 있는 상활에서도 굳이 싸들고 갑니다. 종이 한 장이라도 아끼고 일회용 봉투 하나도 다시 사용합니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그 모습은 구질구질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난 후에 주어졌습니다. 충분히 배부르게 먹었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버려도 될 상황에서 예수님은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넉넉하여 아낄 필요 없이 사는 자들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아무리 넘쳐나도 함부로 버리지 말고 절약하라는 것입니다.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분리해서 모으면 자원이 됩니다. 우유 팩은 고급 천연 펄프로 만든 우수 자원으로 분리 수거하면 고급 화장지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 커피 산업이 성장하면서 한 해 발생하는 커피 찌꺼기는 약 27만 톤이라고 합니다. 커피 찌꺼기는 대부분 생활 폐기물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 수거하면 생활 폐기물의 양을 줄일 수 있고 양질의 친환경 퇴비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업들은 환경을 보전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하는 일입니다. 나아가 미래 세대를 위하는 일입니다.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음식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습니다. 구속의 은혜는 거저 받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값싼 은혜는 아닙니다. 구속의 은혜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흔히 낭비하는 것이 시간입니다. 시간이 많다고 낭비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깨달아 알고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