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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1절 변화산 아래의 교회

2015-05-26 15:00:58


마가복음 9장 1절 말씀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5년 5월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저희교회로 교단에서 교단 신문을 보내주십니다. 저는 늘 한주간 살면서 설교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글을 읽으려고 하고 모든 책을 읽으려고합니다. 그런데 조용기 목사님의 추억의 명설교에 은혜받고 그 말씀을 참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팔레스타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름으로 둘러싸인 헤르몬 산으로 가셨다. (마17:3,5.6). 안티 레바논산맥의 남단에 있는 최고봉으로 연중 눈이 덮여있는 산입니다.

그곳에서 변화되어 옷의 광채가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있는데 그것 보다 더 희게 옷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좌우에 엘리야와 모세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세를 이곳에 짓되 주님을 위하여 모세를 위하여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름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세도 엘리야도 없이 오직 예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 내려오셔서 귀신들리 아이를 고처주시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왜 우리들은 귀신을 쫒아내지 못합니까? 하였더니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습니다. 기도 밖에는 신비로운 변화도 없고, 기도밖에는 질병도 치료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1. 우리 기독교는 신비로운 종교입니다.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전 예수님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로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변화되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500년전에 죽었던 모세가, 1000년전에 죽었던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적인 지주인 모세가, 능력의 주의 종인 엘리야가 예수님의 좌우편에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너무 좋아 이곳이 무릉도원으로 생각하여 초막 3를 짖자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능력으로 가득찬 책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여호수아를 통하여 여리고성을 무너트리고, 많은 주의 종들을 사용하셔서 질병과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살면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놀라운 기적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세상의 사람들과 저와 비교하면 정말로 부족한 종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보다 더 월등합니다. 저희들 학교 다닐 때에는 예비고사를 떨어지면 신학교 간다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창피하여 일반 대학교를 다니고 대학원을 신학교를 다니는 목회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부족한 주의 종들이 개척하게 됩니다. 목사님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오래동안 엎드리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부산에 있는 양정중앙교회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1994년 5원 15일 손병인 목사님이 교회에 담임목사님으로 부임하시고 저녁만 되면 하나님께 밤이 세도록 기도했다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 성도들이 화합되고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그리고 수많은 질병과 놀라운 하나님의 치료가 교회에 일어나게 되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디 그 교회 한교회 뿐입니까?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교회들이 그러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교회이고 신비로운 종교입니다.

우리교회도 세계의 모든 교회들처럼 성령의 역사가 있고 예수님의 보혈의 피의 능력이 있어 모든 성도들의 질병과 모든 성도들의 기도의 제목들이 치료받는 교회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기도할 때에 나타나고 하나님의 치료가 예배중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 많은 사람도, 능력있고 권력있는 사람들도 다 하나님앞에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신비로운 종교이지만 신비주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비로운 것들은 이단과 세상의 종교도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빠지만 기독교가 위험합니다. 늘 신비로운 헐몬산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내려와 세상을 치료한 종교가 되어야합니다.

2. 세상의 종교입니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산위에서만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산 아래로 내려오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산속에 있는 종교입니다. 불교처럼 죄를 짖지 않고 속세를 떠나서 산속에 들어가 자신의 성찰하고 도를 딱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山上垂訓의 말씀하셨습니다. 산에서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 요점은 바로 이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 본문에서도 어린 자녀가 온 몸에 상처와 질병의 흔적이 있습니다. 벙어리 귀신이 들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서기관들과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찌된 일이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아들이 귀신이 들려 귀신이 저를 물에도 던지고 불에도 던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습니다. 이병을 고치려고 당신의 제자들에게 데려왔는데 고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더욱이 병은 고치지 못하고 바리세인과 서기관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기독교의 문제점중에 하나입니다. 바리세인처럼 서기관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진정으로 성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논쟁만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의식과 신학으로 세상을 고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논쟁만 쌓이고 분열만 더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12아들 중에 4째 아들 유다에서 나온 지파입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정착하고 가장 하나님을 잘섬기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 지파속에 다윗이 나오게 되었고 이스라엘을 통일하였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과 남 유대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남 유대는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율법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오직 유다 혈통만이 진정한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월감을 갖게 되었고 철저하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선민임을 자랑하였습니다. 그 율법이 신이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표면적인 유대인이 진정한 유대인 아니라 이면적인 유대인이 진정한 유대인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질병을 치료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그 죄값으로 2000년이란 기 세월동안 고통 가운데 있게 된 것을 보게됩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형식에 잡혀서 그들 중심의 수만가지의 율법과 율례를 만들어 그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겉 꼅질의 형식입니다. 그 대표적인 바로 할례의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치고있습니다.

보라 오늘 본문의 말씀도 제자들과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의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치료하고 세상을 고치는 삶이 되어야한다고하였습니다. 그 중심에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가 만사를 해결합니다.

현대 교회는 비로 십자가를 달아 놓고 있지만 그곳엔 철학과, 문학과 도덕의 강의만 하고 논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권세와 기적이 없이 논쟁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나뭇잎은 떨어지듯이 우리가 종교로 예배드리면 언제가는 말라버리고 말 교회입니다. 교회에 기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회복되고 찬양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다시 살아나야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가 산위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모세의 율법도 아니고, 엘리야은 신비로운 능력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위에 초막을 짓는 신비주의자가 아닙니다. 신비를 체험하고 죄가 있는 세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절망과 고통과 눈물과 질병이 있는 사 아래의 동내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주셨을 때에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곳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그곳에 죄가 들어와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려고 하는데 천국에는 눈물이 없고 곡하는 것이 없고 고통이 없습니다. 오직 세상 밖에 고통과 눈물과 질병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내려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있지 않고 고통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종교입니다. 살아있는 종교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생명이 있게 미션( 선교사로 나가고) 죽을 각오를 하며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체휼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로고스’나 ‘에토스’ 같은 말은 이성적인 단어입니다. 그러나 파토스는 가슴의 단어이고 정(情)의 단어입니다. 파토스에서 영어의 ‘페이소스’(pathos, 연민의 정)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파토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 스스로 만족하고 계시는 절대 군주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시고 탄식하시며 함께 아파하시는 파토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만 계셔서 영광만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모진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장막 가운데 거하시는 파토스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무 부족함도 없고 모자람도 없어서 홀로 즐기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간과 함께 고통을 나누시며 함께 아파하시는 파토스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하나님은 마침내 인간이 되셨고, 결국에는 파토스의 결정체인 십자가까지도 감내하셨습니다. 살기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무게 앞에 두려울 때가 있습니까. 바로 이런 때에 파토스의 하나님을 떠올립시다. 조용히 그분 앞에 나아갑시다. 그리하면 파토스의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시고,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구미교회 참조)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중 부정을 써서 강한 긍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체휼하시는 분입니다.

체휼이란 무엇입니까? 몸으로 깊은 고통을 느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깊은 곳의 느낌고 같이 공감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종교는 산꼭대기의 종교가 아닙니다. 신비주의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종교는 예수님의 제자나 바리세인처럼 논쟁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상과 철학을 증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종교는 바로 사람을 치료하고 고치는 종교입니다. 그 자녀를 고침으로 아버지가 아이를 보고 얼마나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가정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종교입니다. 절망 대신에 소망이 넘치는 종교입니다.

산위의 유아독전의 종교되 아니고 산 아래 무기력한 종교되 아닙니다. 즉 교회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치료를 얻어 아버지는 직장에서, 그리고 어머니는 가정과 그의 일터에서, 그리고 자녀는 학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종교입니다.

우리 순복음은 조금 신비주의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다른 교단은 조금은 말씀 중심의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용되어야하고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치료하는 삶이 되어야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신비로운 체험도, 제자들의 논쟁도 필요합니다. 그런나 더 중요한 것은 오직 구속한 주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간곳없고 오직 구속한 주만 보이는 것입니다.

찬송가 288장 (통 204)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세상에서 내영혼이 하늘의 …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후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 없이 구주를 …

결론입니다.

변화산의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확신과 용기를 주기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신앙생활의 신비로 체험, 변화되어 놀라운 천국에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신비주의에 빠져서 신앙의 본질을 잃지 말라는 뜻입니다.

2) 그러한 세상에 만족하지 않고 세상으로 내려가 기도함으로 병을 고치며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3) 특별히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확신케하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두려움에서 눈떴을 때 오직 예수 한 분만 남아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의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요, 우리의 예배의 대상자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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