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장 20절말씀 (주일설교)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5년 3월 19일
2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전 경남 기업 회장 성완종(64)은 지난 9일 북한산 형제봉 매표서에서 300m 떨어진 지점에서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였던 그는 자수성가해 한 그룹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가난은 나의 재산”이라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었다. 그랬던 그가 230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460여억원의 정부 융자금을 사기 대출 받았으며, 이 대출 등을 위해 9000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재판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렸으면 좋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그는 많은 돈을 장학제단에 내놓은 일도 있어 정상참작이 될 것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1963년 12월 눈발이 흩날리던 밤. 고향 충남 서산을 나와 무작정 기차를 타고 엄마를 찾아 서울 영등포역에 도착한 12세 소년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다. 가진 것이라곤 외삼촌이 쥐어준 10원짜리 지폐 몇 장과 아빠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식모살이를 한다는 집 주소뿐이었다. 그때 얼굴도 본 적 없는 삼륜 용달차 운전기사가 떨고 있던 소년을 데려가 기사들이 머무는 좁은 방 한구석을 내줬다. 기사는 다음날 아침 따끈한 국밥을 사줬고, 어머니가 있는 집에 데려다 줬다. 소년이 기억하는 것은 그 사내의 성이 박씨라는 것과 얼굴이 얽었다는 것뿐이었다. 매출 2조원의 건설회사인 경남기업을 일궜던 성완종 전 회장의 52년 전 모습이다. 그는 서울 영등포의 교회에 머물며 신문팔이와 약국 심부름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다. 밤에는 교회 야학에 다니며 초등학교 중퇴의 한을 달랬다. 성 전 회장은 “언젠가 나도 낯선 이들에게서 받은 도움을 갚겠다고 다짐하며 돈을 벌었다”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도 “네가 어려운 시절 받았던 도움을 잊지 말고 꼭 다른 사람을 도와라”고 자주 당부했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은 7년 뒤인 1970년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당시 돈 1000원으로 화물운송업을 시작했다. 조금씩 돈이 모였고, 20대 중반이던 1970년대엔 서산토건 지분을 인수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회사가 성장하고 안정되자 그는 1991년 12월 15일 사재(私財) 31억원을 출연해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서산장학재단은 수백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장학과 학술·교육사업, 문화 및 사회복지사업을 벌여왔다. 그는 국내 장학사업을 넘어 해외 장학사업까지 나눔의 영역을 넓혔다. 2007년부터 6·25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 대학생 120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고, 러시아 사할린 교포신문인 ‘새고려신문사’에도 매년 1만달러(약 1150만원)를 지원했다. 성 전 회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2000년 12월 31일 충남 안면도에서 굴 따러 나간 어선이 전복돼 어민 9명이 숨지자, 그날 밤 눈길을 뚫고 달려가 희생자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 위로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고아가 된 엄수미양 3남매 소식을 들었을 땐 대구로 가 3남매에게 대학까지의 학자금을 약속했다. 2007년 12월 태안 기름 유출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장학재단 회원들과 달려가 1주일간 기름 제거작업을 했고, 조선일보사를 통해 10억원의 성금을 보냈다. 성 전 회장은 2012년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충남 서산·태안 지역구에서 19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선거 초반 열세 전망을 뒤집고 42.6%를 득표해 2위인 새누리당 유상곤 후보를 1만2000여표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그 뒤 자유선진당이 새누리당과 합당하면서 새누리당 소속이 됐다. 그는 정치적 보폭을 넓히려던 중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며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총선 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지역주민을 지원한 것이 문제가 됐고, 결국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조선일보기사)
사람의 마음속에 절망이 다가오자 그 해결하는 방법을 자살로 선택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어찌 이 사람만 자살했겠습니다.
마음의 결단과 마음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에 무엇을 품고 있는냐에 따라서 우리는 천국이 되기도하고 우리는 지옥이 되기도합니다.
1. 빈곤의식을 버려야합니다. (거지의식)
30. 눈을 감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여러분 노숙자의 삶을 보십시오 그들의 마음속에는 거지의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거지 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무엇을 주어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 북한이라는 나라를 보십시오. 북한 참으로 위대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으로부터, 고려, 그리고 이 나라의 뿌리가 되고 능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여러분 북한이라는 나라가 핵을 개발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할 수 없는 미사일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실험하고 전쟁의 위협을 주고 있는 나라입니다. 200여개국의 나라가 세상에 존재하지만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 나라는 10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능력이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거지의 나라입니다. 왜 그렇게 좋은 머리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오직 전쟁무기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습니다. 여러분 그 전쟁무기를 만드는 대신에 그것을 자기고 자국민을 더 부요하게 살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 마음속에 그지 마음을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시절에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때에는 아무것도 안주니 만나지 않고, 박근혜정부도 잘 주지 않으니 그러합니다. 박근혜정부에 소속된 사람들이 전 대통령들 퍼주기했다고 얼마나 욕했습니까? 그렇게 퍼주기를 하지 않으니 만나지 않습니다. 그 마음속에 거지의 근성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에서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인문학을 강의합니까?
▲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인문학 코스’ 졸업식에서 저소득층 수강생들이 수료증을 받고 있다. / photo 서울시
50줄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시작한 인문학 공부는 그에게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다. 2006년 9월 홍은동에서 3년간 운영하던 찜질방이 망하면서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두 딸과도 헤어졌다. 철학·문학·글쓰기 등 5개 분야에 교수진 60명, 노숙인반 등 313명 입학해 67%인 209명 졸업
무료밥, 무료 잠자리에만 집중하다보니 그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가 왜 살며 내가 왜 일해야하는 그런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인문학’의 정신적인 성찰과 지혜가 자포자기한 빈민층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인문학’을 선택했다.
배려, 양심, 의무, 반성, 사랑…. 일반 사람들에게도 익숙하지만 어려운 단어들이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겐 그마저 익숙하지도 않은 개념이 또 이것들이다. 서울시 인문학 코스가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한 것은 밥도, 술도, 돈도 아닌 바로 ‘인간됨’이란 기본 가치였다.
복지는 무려제공이 아니라 ‘자립’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인문학을 배우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씨를 뿌리는 농부’ 심정이 돼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아직 취업률 통계나 비행 빈도 통계를 따로 잡지는 않았지만,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 말로는 이들의 눈빛이나 태도 등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수료자들의 변화를 취합해 자료로 만들 예정이다.
2. 부요의식과 자족의식을 배워야합니다.
빌립보서 4장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여러분 여러분들과 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부요를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축복하시고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 한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대한민국사람들은 가난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도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족하면 살뿐만 아니라 부요의식을 가지고 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부요의식을 심어주어야합니다. 우리 평강이가 잘 때입니다. 같이 공부한 조민제 수빈 다빈, 주변의 아이들보다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너는 위대한 인물이 될 사람입니다. 우리 사모와 자녀의 교육 때문에 많은 언쟁도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강남으로 교육을 시켜야했고, 사교육을 더 많이해 영어교육을 시켜야하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무엇을 가지고 있는냐가 중요합니다. 자신이 미국을 간다고 합니다. 나는 부요하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부요의식입니다.
저는 개척하고도 보조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보조를 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선교사님들에게 빚이 있으면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것이 부요의식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심을 믿고 심는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 이러한 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거지의식을 버리고 부요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작다. 우리교회는 안된다. 아닙니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는 능히 마귀의 계괘를 이길수 있습니다.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이러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합니가?
3. 등경위의 삶입니다.
2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등불을 말 아래 뒤지 않고 평상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삶은 참으로 어려운 삶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삶입니다. 세상의 소금의 삶도 마찮가지입니다.
세상의 등불과 소금에 대하여 세상을 어둠을 비추고, 그리고 세상의 부패를 맞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난 성경은 그 단계를 넘어서 너희의 착한 행실로 인하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세상의 등불, 세상의 소금은 핍박의 대상입니다. 어찌보면 조롱의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빛도 그리고 비도 그리고 공기도 골골루 사용할 수 있다록 하시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예수님을 잘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잘믿어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고 핍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과 세상의 사람들과 차원이 다릅니다. 무엇입니까? 천국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자기고 자신을 자랑합니까? 바로 자신의 물질이나 지식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감격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통하여 천국의 파편들을 조금씩 맞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의 마귀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고통의 맞을 조금씩 보게 하시는 것이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어찌 보면 좀더 등불이되어 그리고 소금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나사로를 사랑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님의 제자 요한
요한복음 13장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마가복음 10장21절에 “예수는 자신을 찾아온 부자 청년을 “사랑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돈 많고 젊고 영생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이 청년을 사랑했다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근심하면서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싫었던 것입니다.
3. 헤아리지 말자
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24.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헤아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세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4. “Consider carefully what you hear,” he continued. “With the measure you use, it will be measured to you — and even more.
메줘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측정하다 평가하다는 단어입니다. 다른 사람을 측정하고 평가하는데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평가로 인하여 너도 평가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왜 뜬 금 없이 이 성경구절이 나왔을 까요?
나는 등불로 살아가는데 너는 무엇하고 있는냐 하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를 평가하고 우리 대통령을 평가하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5절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비판하지 않으면 너희도 비판을 받지 않습니다. 정죄하지 말아야하빈다. 그러면 너희도 정죄하지 말아야합니다.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용서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퍼주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곧 주시고 누루게 주시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의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세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평가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고 자기 잘난맛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상급이 없다고 하시면 상급은 땅에서 다 받았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더 주시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홈프러스에 가면 원프러스 원이 있습니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살면, 우리가 주님에게 하나를 더 받습니다. 무엇을 더 받습니까? 구원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평하고 남을 판단하고 살면 마이너스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 마저 빼앗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이 구절은 어디에서 많이 보던 구절입니다. 바로 달란트 비유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자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지 않고 그것을 뭍어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삶의 의식입니다. 무슨 의식입니다. 빈곤의식입니다. 우리는 부요의식으로 살아가야합니다. 그것을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한달란트 생각하는데 여러분 한 달란트가 얼마나 많은 돈이겠습니다. 약 최소한 3억정도 된다고합니다.
여러분 지난 주간부터 우리가 매달 100만원씩 원금을 갑고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값아야합니까? 100만원을 12달 (1년)을 계산하니 1200만원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1200만원을 10년값으면 1억 2천만원입니다. 20년값으면 2억 4천만원입니다. 25년이상을 값아야할 돈입니다. 무척이나 많은 돈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적은 금액입니까?
결론입니다.
우리는 빈곤의식이 아니라 부요의식으로 살아야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이든
우리의 삶을 헤아리지 말고 활요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