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 15절 성전청소

2018-10-19 09:15:20


마가복음 11장 15절 주일예배 성전청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10월 14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맥스 비어봄이 쓴 행복한 위선자라는 짧은 소설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조지 헬은 이름 그래도 부도덕하고 탐욕스럽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그가 어느 날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제니미어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방탕하고 흉측한 그의 얼굴로 그녀의 마음을 끌수 없었습니다. 그는 사랑에 빠져 그녀를 포기할 수 없게 되자 밀랍으로 성자의 마스크를 맞춥니다. 이 마스크는 매우 정교해서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본디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마스크를 만들어 준 사람과 옛 연인 갬보기 뿐이였습니다. 마침내 조지 헬은 이름도 조지 헤븐으로 바꾸고 성자의 마스크를 쓰고 사랑하는 제니 미어에게 다가가 사랑을 고백하며 혼인합니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혼인 생활 뒤에는 자신의 흉측한 내면, 자신의 과거 모습이 탄로 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수록 그는 성자처럼 자신의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워 주고 착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가짜 얼굴과 마주하는 자신의 사랑하는 제인 미어에게 미안함과 무거운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정체를 아는 옛 연인 갬보기가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들은 혼인생활이 행복할수록 질투심에 가득한 갬보기는 그들을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행복하게 사는 제인 미어를 만나 남편의 정체를 폭로하며 그녀가 보는데서 그의 마스크를 벗기고 맙니다. 그런데 마스크가 벗겨진 순간 옛날 흉측했던 조지 헬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고 오히려 그의 얼굴은 성자의 모습으로 변해이었습니다. 가면 뒤에서 끊임없이 회개하고 성장의 얼굴을 닮으려고 노력하여 그의 얼굴이 바뀐 것입니다. 성자의 얼굴이 된 그는 이제 자신의 진짜 얼굴로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진실한 사랑의 입맞춤을 하며 소설이 끝납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러한 가면을 끼고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가리며 교회와서는 가식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세월이지나 큰 바위의 얼굴처럼 자신의 모습이 점점 닮아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습니다.

성전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오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섬기는 사람들, 성전을 찾는 사람들이 잘못인데 성전이 교회가 욕을 먹는 것이 참으로 안타갑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목사님인 조용기 목사님도 국민일보의 아들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감리교회의 가장 큰 교회인 김홍도 목사님도 아들의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이번에 장로교회중에 가장 큰 교회인 김삼환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명성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예배하러 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시는 장면입니다. 나귀를 타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시며, 오늘 본문 성경을 청결케하시는 장면을 볼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4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모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사건인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1. 성전에서 화내시는 예수님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시니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세로 그러한 일들을 하시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이 답변을 하지 않고 이렇게 그들에게 묻습니다. 그럼, 세계요한이 무슨 권세로 너희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설교하며 꾸짖은 이유는 무슨 권세냐?고 물었습니다. 하늘의 권세가 아니라고 하면 백성들이 하늘의 권세를 믿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하늘의 권세라고 하면 세례요한의 말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아무말도 못하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나도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는지 이야기 할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 성전이란?

사전적의미는 성전(聖殿)은 신성한 전당을 뜻한다. (교회, 성당를 의미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의 성전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 가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이는 성전을 허물어버리시고 3일만에 새로운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성전을 통념상으로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로볼 때에 성전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바로 예배당, 그리고 마음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성전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나오스와 히에론입니다.

히에론은 건물자체를 의미하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에 성전 꼭기에 세우고 뛰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곳의 헬라어는 히에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에론을 썼습니다. 성전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을 내어 쫒으셨습니다. 성전 건물 자체를 말합니다.

나오스는 외형적이기 보다는 내적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곳의 성전은 나오스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할 때에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을 때에 히에론이 아니라 나오스입니다.

히에론은 건물의 외형을 가리킬 때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반면 나오스는 주변 건물과 부속 건물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모셔져 있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하는 곳을 가리킬때에 나오스를 사용합니다. 특별히 영적으로 우리의 몸을 가리킬 때에 나오스를 사용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린도전서 6장 18절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성전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이방인들이 들어가는 장소 즉 성전의 부속건물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장사하고 그곳에서 물건을 바꾸는 일을 하였습니다. 3) 제사장만 들어갈수 있는 곳입니다. 주의 종만 들어갈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전에 들어갈 때에 예물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자신이 기르는 양과 소와 비둘기를 직접가고 와야하는데 3일, 4일 걸리는 먼거리를 혼자오기도 힘들은데 양과 소와 비둘기를 가지고 오는 길을 정말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서 돈으로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는 과정에서 이권이 계입됩니다. 제사장들의 이권이 계입되어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청결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유대인들에게서는 성전세가 있습니다. 일종의 성전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 내는 종교세와 같은 것입니다. 이 성전세는 반 세겔 (Half Shekel, 출30:13)을 내도록 되어있었는데, 반 세겔은 두 데나리온 정도, 즉 노동자의 2일 품삯입니다. 문제는 성전세를 낼 때에는 반드시 두로 화폐만을 사용하도록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살던곳에서 살 던 화폐는 로마의 화폐가지고 옵니다. 로마 화폐를 환전하는 과정속에 많은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성전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내어쫒으셨다고합니다. 아닙니다. 환전을 하거나 제사장에 관계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라기 1장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 편리주의

3일동안 예물을 가지고 오다보니 불편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서 살수 잇어 얼마나 편리합니까? 제사장들이 이권에 계입하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들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신앙의 편리주의 여러분 예배을 드리는데 불편해야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맨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오산리 금식기도원에 가보니 강대상 앞에서도 의자를 놓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편하게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주일예배만 드리는 편리주의입니다. 성대가도 해야하고 그리고 유년주일학교도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요예배도 해야하고 금요철야도 해야하는데 불편합니다. 특별히 새벽기도회 나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사모는 저녁에 와서 자고 그리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고 그리고 새벽기도회 끝나면 빨리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갑니다. 새벽기도회 기도시간도 부족합니다. 늘 졸려서 피곤한 기색이 영력합니다. 그래도 새벽기도회를 나오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쓰럽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 마지막까지 설교의 주된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불편합니다. 좁은 길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지라는 것입니다. 힘들게 핍박받고 살으라는 것입니다. 왼빰을 맞으면 오른빰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라는 것입니다. 상석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아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2. 만민이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 먼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의 인용 성경구절은 이사야서 56장 7절입니다. 이말의 함축된 의미는 만민 즉 모든 사람들, 이방인들도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내용입니다.

당신의 기록에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만 하나님이 받으신다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성전에 들어갈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는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을 때에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문, 기도의 문을 얼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46년동안 헤롯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3일만에 헐고 다시 세우신다고 하니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얼마나 놀래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그런데 정말로 3일만에 부활하시고 성전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예배당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라미아 여인과의 성전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가 어는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합니까? 사마리아인의 생각은 예루살렘이 아니 그림산에서 예배를 드려야합니까?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 신정과 진정으로 드리는 곳 그곳에 예배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1)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 4:24)

◉ 하나님이 영이 계시는 곳 그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시편 11: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하박국 2:20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리라.’

성전이라는 난말뜻처럼 거룩한 전입니다. 청결한 전입니다. 예수님이 깨끗하게 하신 전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성전을 우리의 마음에 비유하였습니다. 그것을 청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성전에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세상이 재물, 출세에 대한 욕심, 이생의 자랑을 위한 명예욕, 일신의 편안함을 위한 욕심, 낭만과 희락의 추구 등)을 섬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형식적인 예배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 강도의 소굴 (굴혈)

도둑의 소굴은 영어로는 a den of robbers 라고 번역되어 즉 강도들이 살고 있는 굴이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7장 11절이하게 보면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의 성전이, 혹은 우리의 마음이 너무 많은 강도들로 가득차 있다는 뜻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죄를 짖고도 마음에 가책이 없이 사는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입술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마음으로 큰 죄를 짖고 있는 상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지으면 마음에 가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죄를 지으면 이번에는 가책이 없어집니다. 죄를 짖고도 얼굴이 뜨겁지 않습니다. 주일을 빠져도 마음에 가책이 없습니다. 음난해도 부끄럽지 않게 예배드리고, 노름을 해도 죄악으로 느끼지 못하는 마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세시대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굴을 팝습니다. 카타콤의 굴입니다. 300년동안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갑바도기아에서 굴을 파고 살았습니다. 오직 신앙을 위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잘되고 부하게 되니까? 성전을 마음의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마음이 양파와 같이 계속 죄를 짖고 벗겨내고 또 벗기고 눈물이나고 또 눈물이 나는 것을 볼수 있ㅅ브니다. 여러분 양파를 벗기면 뿌리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위선과 가식과 거짓의 뿌리가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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