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장 43절 모순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12월 15일
마가복음 10장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공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저자의 생각들의 활자들이 나에게 들어와 나의 생각에 감정이 이입되면 더 큰 재미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생각과 달리 나에게 드는 또 다른 생각들의 생각이 더 중요한 것같습니다. 저자의 생각과 같이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의 생각과 다른 생각이 들 때에 더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책을 읽을 때에 꼭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오늘은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여보겠습니다.
1. 양귀자의 모순
시장에서 내복을 팔고 있는 억척스런 어머니와 행방불명 상태로 떠돌다 가끔씩 귀가하는 아버지, 조폭의 보스가 인생의 꿈인 남동생을 가족으로 둔 어머니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안진진입니다. 원래 이름은 안진입니다. 진이란 참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아버지가 진짜 진짜 참되라고 하여 진진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중매장이에 의해서 인생이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진진의 어머니는 떠도는 건달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만 억척스럽게 살아가시는 분이셨고, 이모는 남편 이모부는 정말로 성실하시고 가정적인 분입니다. 매년마다 해외 여행을 하며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한 분입니다. 이모는 부유하지만 지루한 삶에 지쳐 있고, 가난한 어머니는 처리해야 할 불행들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어머니는 힘있게 살아가지만 이모는 평안하게 살지만 스스로 자살하여 생애를 마감하는 모순덩어리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진진은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대학교 휴학하게 됩니다. 휴학하고 수 많은 서비스 업직업을 가졌다가 이모부의 빽으로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스물다섯 결혼 적령기 나이에 청혼한 두 남자가 있습니다.
나영규와 김장우입니다. 나영규는 컴퓨터 전공을 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고, 김장우는 야생화를 찍는 가난한 사진작가입니다.
소설 내용중에 사랑이란?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전화기를 자주보고 있다면 사랑하는 증거이고,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유행가를 잘 따라 부른다는 증거요,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는 것은 거울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모순은
첫째로, 정말 행복한 이모는 스스로 자살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어머니는 처절하게 고생해 가면서 살고 있는 것이 모순이고.
둘째 모순은 생선살 한 젓가락 우리에게 떠어주기를 아까워했던 이모부지만 아버지의 사업자금으로 갈치 백마리, 아니 천마리, 만마리 살만한 돈을 빌려주었고 결국 돌려받지 못했어도 별다른 불평하지 않았던 것을 어머니는 왜 잊고 있는 모른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빛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age 127)
셋째로 자신의 결혼할 대상자가 이모부와 같은 사람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직업이 변변치 않은 야생화 사진전문가를 선택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안정적인 남자를 선택하려하는 모습을 통하여 모순을 발견합니다.
2. 성경의 모순 (섬기는 자)
마가복음 10장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동물의 세계를 보면 양육강식입니다. 강한짐승이 무리를 다스립니다. 강한 자에 의하여 서열이 정리됩니다. 인간의 사회도 그러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정권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모든 사람들을 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좋은 자리를 임명할 수 있습니다.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1만 8천개 정도 됩니다. 장·차관급이 140개 이상이다. 공공기관의 장·임원·감사 등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공공기관이 200개가 넘는다. 장관이 임명하지만 대통령 영향이 미치는 정부 부처 국·실장급 등 350개 이상이고, 고위공무원이나 부처 산하기관 임원 등 대통령실의 의중이 반영되는 곳이 1만 8000개(추정)가 넘는다.)
● 어린이 노벨상의 이크발 (모순)
파키스탄의 이 작은 소년은 네 살 때 카펫 공장에 팔려가, 하루 1루피(25원)의 임금에 10시간 이상을 노동했다. 공장을 탈출해 열악한 어린이 노동 현장을 알리는 소년 노동운동가가 되었던 이크발은 1995년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지고 만다. 이탈리아의 작가 프란체스코 다다모는 이 소년의 아름답고도 열정적인 삶을 담담한 이야기로 엮어냈다.
뛰어난 카펫 기술을 가진 이크발 마시흐는 벌써 세 번이나 공장을 옮겼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하고 25원을 받는 노동 착취와 부당한 대우 받기 때문에 공장을 옴깁니다. 이크발은 이러한 실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부패한 경찰에게 이끌려 다시 공장으로 들어오고 주인에게 모진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점차 이크발의 말에 동조를 하게 된 아이들의 도움으로 두 번째 탈출에 성공, 관련단체를 찾아가 공장 주인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시작된 이크발의 행동은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하나 카펫공장주인들의 음모로 인하여 열세살의 어린 나이에 괴한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책 종 주인공인 이크발은 어린이 노벨상이라 불리는 2000년도 ”세계 어린이상”을 수상했다.
♣ 「난 두렵지 않아요」이 책의 내용은 실화이며 13살의 파키스탄 소년은 미성년자 노동 해방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크발은 가족의 빚 대신 16달러에 카펫 공장에 팔려가 노예처럼 일한다. 이크발과 같은 아이들이 제3세계에 수백만 명에 이른다.
모순인 것은 어린 나이에 죽은 파키스탄 소년 이크발가 보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받았습니다. 특별히 노벨상을 주는 장소 유럽입니다. 유럽에서 주로 카펫트를 사용합니다. 특별히 부유한 스웨덴 국왕의 장소에는 아직 아름다운 카페트가 놓여져있습니다. 상을 수여하는 국왕이나 상을 받는 사람들이 어린 이크발의 카펫가 만든 카펫트 위에서 노벨상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종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종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높고 위대한 자리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말구의 사건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 구약의 예언들입니다.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미가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정말 그 말씀대로 오셨습니다. 모순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로마왕궁이나 헤롯의 왕궁에 오셔야하는데 왜 하필이면 말구유에 오셨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세상을 성경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세상을 마귀의 눈으로 봅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들만 믿게 합니다. 세상은 현상만 보기 때문에 인간의 눈은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방법을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모순입니다.
크리스마스, 성탄절을 맞이하는 기간동안 예수님이 종으로 오심은 바로 섬김이고 헌신인데, 세상은 그러한 것을 알지못하고 더 경건하게 살아가야하는데 세상은 더 시끄럽고 세상은 더 악해지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순입니다.
왜 이러한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 바로 아담과 하와의 원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짖는 자범죄로 인하여 우리의 눈이 어둡고 마음이 어둡습니다. 에덴에서 추방되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모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못하고 모순된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이사야 11장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찬송가 435장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내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되리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참 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예 걸리버 소인국과 거인국)
4. 대속물로 죽으심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람의 대속물이 된다는 것은 죽으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셨는데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십자가에 죽으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모순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모순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셨지만 부활하시고 40일동안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그 후에 승천하시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여서 기도하고 성령을 받고 난 뒤에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머물지 말고 유대 전체를 그리고 사마리아 땅을 세상의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첫번째 고넬로의 가정에 복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29. So when I was sent for, I came without raising any objection. May I ask why you sent for me?”
29. διο και αναντιρρητως ηλθον μεταπεμφθεις πυνθανομαι ουν τινι λογω μετεπεμψασθε με
그리스어 ἀναντίρρητος(anantirretos)에서 파생된 단어로, ἀν-(an-, 부정 접두사)와 ἀντιρρητέος(antirrheteos, “모순하다” 또는 “논쟁하다”는 의미)의 합성어입니다.
Strong’s Concordance에는 직접적인 히브리어 대응어가 없지만, 무언가가 의심할 수 없거나 부인할 수 없다는 개념은 확실성이나 진실을 전달하는 히브리어 용어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실” 또는 “충실함”을 의미하는 אֱמֶת(emet, Strong’s H571)가 있습니다.
부사 ἀναντιρρήτως는 무언가가 논쟁이나 모순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데 사용됩니다. 진술이나 사실의 확실성과 부인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신약의 맥락에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주장의 진실성을 강조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가까이함이 위법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상종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상종치 않는다는 것은 짐승(개)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상종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자신들이 선민이고 하나님이 자신들만 택한 백성으로 살라고 하기 때문이라는 자만심, 교만심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무시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복음이 증거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29절 욕을 먹더라도 비난받더라도 내가 사양하지 않고 왔다는 뜻이 오늘 본문입니다.
29. 그래서 여러분이 나를 부르러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거절하지 않고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오라고 하셨습니까?”
13절에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 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음성이 다시 들려 왔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 모순처럼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모순이 모순처럼 사람들이 느끼지만 하나님은 모순을 제거하기 위하여 환상을 보여주시고 꿈을 보여주시고 사람의 모순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모순입니다. 종이 되는 것, 섬기는 것, 죽는 것이 모순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살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모순되지만 진실입니다. 참입니다.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