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 序
착하고 정이 많은 미스 마서는 은행에 넉넉하게 예금해 놓은 돈도 있고 길모퉁이에 조그마한 빵가게의 주인입니다. 그녀의 빵집에는 매일 허름한 옷차람의 한 남자가 싸구려 묵은 빵을 사러 옵니다. 정 많은 마서의 눈에 그 남자는 묵은 빵으로 허기를 채우는 천재 화가로 보였습니다. 어느날 마서는 아타까운 마음에 몰래 그가 산 묵은 빵 사이에 신선하고 부드러운 버터를 듬뿍 넣어 포장해 주었습니다. 남자를 배려한 여인의 따뜻한 마음이였습니다. 얼마 후 빵집에 나타난 남자는 마서에게‘이 마녀같은 여자야’하고 분노로 가득찬 목소리로 욕을 퍼부었습니다. 남자는 엉청나게 화를 내고 사라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헨리의 유명한 단편소설 마녀의 빵이라는 내용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갑니다.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살아갑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은 도덕이나 예의 범절, 배려가 필요한 것입니다.
배려는 마음이 아픈 사람, 상처받은 사람들, 슬픈 사람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은혜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제 친구 가방을 늘 들어주었습니다. 친구는 소아마비기 때문에 가방을 들수 없기 때문에 등하교 시간에 그래서 그 친구집에서 저를 좋아하고 사랑했습니다. 그 친구집은 부자기 때문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졸업하고 만남은 이루워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미스 마서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서는 남자의 손에 묻은 물감과 옷에 묻은 물감으로 그 사람이 화가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딱딱한 빵만 사가는 남자의 딱한 처지로 인하여 배려를 한 것입니다. 그녀는 가난한 화가에게 맛있는 저녁 선물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버터를 빵에 집어넣었던 것입니다. 마서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배려심은 분노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뒤따라온 남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난 석달 동안 시청 신축 설계 공모전에 낼 설계도를 그리는데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설계도를 그릴 때는 보통 연필자국을 깨끗하게 지우기 위해서 묵은 빵을 사용하는데 미스 마서가 빵에 버터를 넣는 바람에 설계도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습니다. 배려가 실망이 된 것입니다. 도와주고 싶고 감동을 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화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배려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아스의 배려가 그러한 것입니다. 가난하고 과부인 룻에게 베푸는 배려입니다. ‘나를 나오미라고 하지말고 나를 마라’라고 하는 가정에 작은 한 에바의 보리를 주고, 룻이 이불 속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보리 6되를 줌으로 작을 배려를 하였습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배려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룻을 위하여 기업 무를 자를 찾아 기업을 무르겠느냐고 물었을 때에 무르겠다고 하면서 룻까지 책임지라고 하니까? 무르지 않겠다고 함으로 보아스가 이제 죽은 자의 가정과 산자의 가정에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의 장면입니다.
2. 신을 벗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아무개는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자, 스스로 신을 벗어버렸습니다. 이일은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들 보는 앞에서 자신의 신을 이웃의 보는 앞에서 주는 행위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한 아버지 이삭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입니다. 차자로 태어나서 하루종일 어머니 치마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권인 장자에 대하여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떻게하든지 복을 받으려는 인간적인 욕심이겠지요. 그 복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복을 어떻게 받을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마침 에서 형이 배고품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자신의 밭죽을 장자의 명분과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에서는 그래 장자의 명분 가져라고 한들 그것이 복이 되겠느냐고 경솔히 생각하였습니다. 사실이 이거래는 장난기가 있고 우발적인 거래입니다. 사람들은 대단치 않은 일에 넘어가곤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 즐겨도 그만 안 즐겨도 그만인데 그것을 결정하고 엉청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당장은 그까짓 것 하고 넘길 수 있습니다. 경솔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적인 한 사건으로 인하여 인생에 서서히 내려가기도하고 올라가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신을 벗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앞에서 신을 벗은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신을 벗은 적이 있습니까? 사람앞에 벗는 것은 창피한 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은 보호의 역할을 하고 신분을 상징합니다. 광야길을 갈 때에 좋은 신발을 신거나 산에 오를 때에 좋은 신발을 신으면 편하게 걸어갈 수 잇습니다. 또한 어떤 신발을 신었느냐에 따라서 신분을 상징합니다. 탕자의 신발은 거지의 신분이고, 아버지의 신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출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는 거룩한 곳입니다. 여러분 성원순복음교회에서 주님을 만날 때에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마음의 신을 벗어야합니다.
수 5: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전쟁에서 이기면 점령국의 왕국에 신을 신고 들어가고, 말을 따고 들어갑니다. 그러나 피 점령국 사람들은 신을 벗고 왕궁에 들어가야하는 것입니다.
룻기에서는 권리 양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무개의 모든 권한을 이야할 때에 신을 벗었습니다. 제산과 모든 가족들의 권리까지도 나와 상관이 없다는 의미로 신을 벗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벗어던지는 것입니다.
어떤 시합을 나갈 때에 신을 꼭 묶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의 자세까지 묶어서 정신을 차리고 시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예배시간에 어려분의 마음에 흩드리게 하는 요소들이 없도록 신발을 묵고 하나님께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3. 룻은 라헬과 레아처럼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 열심있는 여인 룻 때문에
모압에서 온 룻은 베들레헴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열심히 자신의 시모를 위하여 헌신하였습니다. 룻은 젊은 남자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시모를 위하여 아침 일찍이 일어나 타작마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가 볼때에 현숙한 여인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며 그녀를 배려하고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1980년 12월 12일 저녁 7시. 충남 안면 우체국 집배원 오기수 씨는 마을에서 10km나 떨어진 산간 외딴집에 마지막 우편물을 전달하고 돌아오다 벼랑에서 실족해 순직했다. 그날은 영하 15도 추위에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져 있었고 길은 폭설로 덮여 앞뒤 분간조차 안 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가 전달한 마지막 우편물은 5원짜리 우표가 붙은 농민신문 1부였다. 신문을 받은 수취인은 날도 어두워지고 눈보라도 심하니 자고 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오 씨는 우체국에 연말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는데다 동료들이 돌아오지 않는 자기를 걱정할 게 더 염려됐다. 그 밤에 어떻게든 우체국에 돌아가야 다음날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외딴집을 떠난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다. (평택시민신문에서 인용)
카톡이나 전화가 발달된 세상에서는 우편물에 대한 소중함이 조금 떨어지지만 옛날에는 오직 우편물이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체였습니다. 작고 큰 사연들을 배달하고 사람의 마음과 정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우체국에 가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늘 우편물을 배달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예화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러브래터를 전달하는 우체국 아저씨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사연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집배원보다 못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계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인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눈이 온다고 핑게대고, 비가 온다고 핑계 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지 않는 모습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거절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이스라엘 12지파의 진정한 어머니는 라헬과 레아입니다. 야곱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라헬이 먼저 나오고 그리고 조광지처는 레아입니다. 라헬을 통하여 요셉과 베냐민을, 그리고 레아를 통하여 르우벤, …유다의 족속이 나왔습니다. 다윗왕 전까지는 에브라함이 중심인 나라였고, 다윗왕 이후에는 유다지파가 중심인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라헬과 레아의 몸종을 통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큰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나라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상징적인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과 레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룻도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라는 뜻입니다.
우리 사모와 함게 이야기를 하다가 이러한 가족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제동생중에 같이 대학교를 졸업한 동생이 있습니다. 그 동생은 고등학교 다닐 때에 공과금을 내려고 하면 언제나 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담임선생님에게 얻어 맞고 수업료를 내는 것입니다.
우리 사모의 경우도 둘째 오빠는 항상 고등학교 수업료를 낼 때에는 어려움 이 있었다고합니다. 그래서 평안하게 다닐 수 없었다고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모는 조금 편안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합니다. 사람에게도 물질이 따른 사람이 있고 물질이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럽게 생활하였지만 작은 오빠의 가정에서 어머니를 잘 모시게 되었고 저를 통하여 신앙의 계보를 이루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3)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 같게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성경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성도님들은 설교를 잘 알아 들을 수 있지만 성경을 잘 읽지 않는 성도들은 유다와 다말, 그리고 베레스에 대하여 잘 모를것입니다.
창세기 38장으로 가보면 압니다. 다말은 이방여자이며 유다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형제들의 모습에 실망하여 그 형제들을 떠나서 살기 시작합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통하여 엘과 오난과 셀라를 낳게됩니다. 엘을 위하여 아내를 얻으니 이름은 다말입니다. 엘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하므로 하나님이 엘을 죽입니다. 아버지는 계대결혼 방식으로 형수에게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고 형수에게 들었을 때에 형수에 씨를 주지 않고 땅에 설정합니다. 이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므로 오난도 죽입니다. 유다가 생각합니다. 다말이라는 이여자가 우리 가정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는 구나 하고 생각하여 셀라를 다말에게 보내지 않습니다. 시아버지가 양털을 깍으려고 딤나에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창녀처럼 변장합니다. 그리고 시아버지와 함께 하루 밤을 잠을 자게 됩니다. 그리고 유다에게 담보물을 요구하는데 도장과 끈과 지팡을 요구합니다. 몇달이 되어 배가 불러오기 시작합니다. 콩가루집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끌어내어 다말을 불사르려고합니다. 그 때에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면서사 자신의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그때에 유다는 자신이 행동이 잘못됨을 알고 다말을 받아주는 내용이 창세기 38장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유다의 계보를 잊는 사건입니다. 다말은 오직 자신이 유다의 종족의 계보를 잊기 위함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보아스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간증합니다. 룻이 다말과 같은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지파는 유다지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다지파를 통하여 다윗이 나오고, 유다지파를 통하여 예수님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피의 근원을 찾아가면 다말이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더러운 여인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바로 야곱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계보를 잊는 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열국의 어머니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율법을 넘어서 은혜로 룻을 사랑하고 결혼하는 가정에 라헬과 레아처럼, 다말처럼 하나님의 축복의 계보를 이어가는 가정이 되기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무개처럼 자신의 삶을 위하여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보아스처럼 불쌍하고 어렵고 힘들은 과부 룻을 위하여 자신이 헌신하고 기꺼이 기업무를 자가 되어서 축복의 가문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방 여인 오르바도 성경에 나오는데 아무개는 성경에 이름이 없습니다. 왜요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원순복음교회 오기 전에 최성규목사님께 이러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좋은 동역자와 좋은 일꾼, 성도들을 만나는 것이 큰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평생 편하게 목회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늘 동역자와 성도들을 위하여 쉬지 말라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목회의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큰 교회의 목회자가 되기보다는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동역자와 성도들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즉 보아스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목회자, 자신을 희생하며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여러분들은 케이크를 먹을 때에 크림부분을 먼저먹습니까? 아니면 빵부분을 먹습니다. 혹시 여러분 피자를 먹을 때에 딱딱한 부분을 먼저먹습니까? 아니면 부드러운 토핑부분을 먼저먹습니까? 대부분이 부드러운 부분부터 먹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딱딱한 부분은 먹지 않고 남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루 시작할 때에 행복하고 즐거운 부분부터 먼저합니까? 아니면 힘들고 어려운 부분부터 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할일들을 미루고 가장 행복한 부분부터 음악듣고 밥먹고 해야할 일들을 하고 난 뒤에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방과 후에 아이들은 먼저 놀고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먼저 공부하고 노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중학교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pc방을 먼저 가고 그리고 공부를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먼저 술먹고 일을 시작하는 아들이 있다고 하여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일하고 술을 먹어야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중요한 약속을 어기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실패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비참한 결혼, 사고, 정신병원, 감옥 같은 곳에 정착하는 경우를 보게됩니다.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능력을 갖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비해 상당수는 종종 회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보아스를 통하여 룻을 통하여 먼저 자신의 일을 먼저하고 난뒤에 행복이 찾아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여 하나님의 축복의 삶을 살아가시리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