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3장 6절 #현숙한 여인 #제임스 힐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10.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제임스 힐만교수의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천재 심리학자이며 도토리 이론과 다이몬(수호천사)이론으로 유명합니다.
심리학자는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분은 통계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제3의 무엇인가? 찾기를 원했습니다. 수억에 달하는 사람들 가운데 신생아, 형제자매, 일한성 쌍둥이 심지어 똑같은 환경과 동일한 영향을 받고 양육된 사람들 사이에 서로 개개인 특유의 개성에 차이점이 나타난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경제구조가 인간을 이룬다는 이론,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과거의 업보가 인간을 이룬다는 교리, 헤겔주의에서는 역사가 인간을 만든다는 이론, 뒤르켕과 그의 추종자들은 사회가 인간을 형성하다는 학설, 의학자들은 DNA 이중나선 구조는 우리 삶 구조에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는 DNA가 똑같습니다. 유전적으로 그들은 똑같은 사람입니다. 똑같은 유전 정보가 두 사람에게 똑같이 내재되어있습니다. 유전인자는 같지만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당뇨, 위궤양, 암, 고혈압이 다르게 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경의 영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 밑에서 유사한 양육을 받더라도 각기 다른 개인으로 성장합니다. 동일한 환경에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다른 인간으로 살아갑니다. 이 교수는 이곳에서 도토리 이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도토리 이론은 도토리 속에 상수리 나무가 숨어있다고 보았습니다. 도토리속에 설개도가 있고 믿어었습니다. 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다이몬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이몬을 쉽게 이야기하면 수호천사라고 합니다. 이집트의 카, 우리 기독교에서는 보혜사, 보아스(예수님)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지난 시간에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새로운 의복을 입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과부이고, 여전히 가난하고, 보아스의 신부가 아니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룻은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믿음은 계란을 바위에 붙이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안될줄 알면서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절당할 수 있지만 보아스의 이불 속으로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게 하였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살아있는 아들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립니까?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준비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 중에서 가장 핵심은 바로 순종입니다. 내가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지만 믿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기독교의 복음 중에 천국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곳입니다. 한번도 그곳에 다녀온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설명할 때에 황금으로 비유합니다. 인간이 가장 갖고 싶고 인간이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룻은 시어머니가 말한 것을 다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식에 맞는 부분만 순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이성에 맞지 않는 룻의 이야기와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의 말씀을 전부 믿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달거나 이유를 달아서 거절합니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어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에 부교역자였을 때에 참으로 선을 많이 본 청년이 있습니다. 매 주마다 선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결혼하고 난 뒤에 결론은 내가 그렇게 많이 선보고 고른 사람이 가장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혼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는 한번도 선 보지 않고 부모가 짝지어 주신 분과 함께 평생을 사셨습니다. 인간의 선택이 완벽하지 않습니다.
2.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시어머니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보아스가 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보아스는 놀라게 됩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네가 누구냐’하고 하였습니다. 룻은 당신의 여종 룻이라고 답변하면서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왜 옷자락으로 덮어 달라고 하였습니까? 왜 덮어달라고 하였습니까? 룻이 부족한 여인이기 대문입니다. 자신은 결혼한 여자이고, 재산도 없고, 흠이 많은 여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덮어달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는 표현은 자신을 보호 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 날개로 보호하심과 같기 때문입니다. 보아스의 날개로 룻을 보호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우리 모든 성도들을 코로나 가운데 보호해 달라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와같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답게 살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성도답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은혜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달라고 간구해야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의 신부로 살아가기 위하여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허물을 덮어 달라고 해야합니다. 나는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기업무를 자를 만나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도하는 것을 믿고 나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의 책에서 스페인에서는 가장 유명한 스포츠가 바로 축구이며 그리고 투우입니다. 투우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마놀레테이라는 사람입니다. 꼬마 마누엘은 두살때에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마누엘은 그림 그리스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늘 엄마 앞치마를 잡고 살았습니다. 그가 11살 되던 해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투우를 제외하곤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마놀레테는 살아있는 영웅으로 살았습니다. 1947년 투우 중에 사망하였습니다. 프랑코 총통은 온 국민을 3일간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안달루시아의 투우박물관에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소 이슬레로의 가죽도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450Kg의 까만 소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한것은 어린시절 능력치가 뒤처진다고 하여도 수호천사의 요구에 맞아 떨어지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쪽 눈을 감으면 영적인 세계가 보이고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잘못된 과거의 눈을 감고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난독증, 집중력 부족장애, 알레기, 천식, 과잉행동 무기력한 증상들 이러한 질환 속에 천사를 알아보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합니다. 한쪽 눈은 어느 정도 닫고 동시에 한쪽 눈은 다른 속을 향해 열어 두어야합니다. 세계적 인물은 어떻게 키워지는가는 유명한 현대 인물 400명의 어린 시절을 담은 유쾌하고 잘 정리된 보고서에 보면 3/5이상 학교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간디, 존 레넌, 알버트 아인슈타인, 존 밀턴, 처칠등 수많은 사람들이 신으로부터 받은 제양을 수호천사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3. 현숙한 여인
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현숙한 여인이라고 보아스가 말하였는가? 어머니 신앙을 따른 사람입니다.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길 속에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신앙의 여인이였기 때문에 현숙한 여인입니다.
둘째로 룻은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여인이였습니다. 오르바는 떠났지만 룻은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였습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신의 시어머니를 모르는체 하지 않고 그 고통을 함께 하였습니다.
셋째로 어려운 상황 가운데도 자신이 이삭줍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더러운 일, 힘들은 일, 위험한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한국사람들은 3D 업종의 일을 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맞깁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강원도에서 도망친 것을 뉴스로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밀레의 만종입니다. 부부가 추수하는 곳에서 일하다가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감사는 장면입니다.
잠언 31장 10로 마지막절 까지 현숙한 여인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잠언 31장에 현숙한 여인에 대하여 나옵니다. 22절에 걸처서 나오는데 22개는 히브리어의 알파벳 단어입니다. 현숙이라는 단어는 어질고 맑은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거미와 같은 사람, 개미와 같은 사람, 꿀벌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보아스와 룻은 꿀벌과 같은 사람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배려하고, 룻은 자신의 시어머니를 배려하고 시어머니는 룻을 배려하였습니다.
현숙한이란 히브리어로 ‘에쉐트 하일’입니다. ‘힘있는 여자’, ‘능력있는 여자’를 의미한다. 신체적으로 힘이 있는 여장입니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감화력이있고 덕이있는 여자입니다. (德力) 이러한 여자를 현숙한 여인알고 합니다.
잠언 31장에서 현숙한 여인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 19절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게 노력하였습니다.
2) 20절에 가난한 자에게 선을 행하셨습니다.
3) 23절에 남편을 존귀케 만들었습니다.
4) 26절에 모든 언사에 지혜가 있었습니다.
5) 27절에 게으리지 않고 부지런했습니다.
6) 30절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현숙한 여인에 대하여 남편이 아무일도 안하고 백수로 살아갈 때에 여인의 역활을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 주고 싶은 의미는 정말 정결하고 강인한 여성의 모습입니다. 여자라고 보호받고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도전하고 집안 일을 살피고 미래에 두려움이 없고 예수님을 잘 믿는 여성입니다. 아내가 손수 만들어준 옷을 입고 남자는 성문 어귀에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일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내의 협조로 정상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 현숙한 여인입니다.
https://www.puts.ac.kr/js_nondan/files/05_%EA%B9%80%EC%9C%A0%EA%B8%B0.pdf
보아스도 현숙한 사람입니다. (룻기 2장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보아스를 표현할 때에 유력한 자가라고 하였습니다. 유력한 자라는 뜻이 하일이라는 단어입니다. 여성이게는 현숙이고 남성에게는 유력이라는 단어가 하일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 현숙, 유력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멋쟁이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자식들이 독립하고 난 후 빈 둥지가 된 집에서 혼자 있을 때 마다 저를 많이 챙겨주었던 상태에서 2021년 4월 초, 상대방으로부터 임신 4주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지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는 자식이 생명이고 자신의 미래였던 것입니다. 2021년 5월 21일 자신의 변호사와만 이야기 하라며 연락을 차단했습니다. 사회적인 비난이 일자 순조롭게 출산과 양육을 책임지겠다고 하였습니다.
5. 책임지겠습니다.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하일, 보아스(유력), 룻(현숙)한 사람들의 행동입니다. 유력한 남자 보아스는 아침까지 누워있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스켄달의 의미가 아닙니다. 덕있고 지혜롭게 행동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룻을 배려하고 더 도우려는 모습입니다.
결혼전까지 평판을 좋게하기 위함입니다.
13절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보아스 앞서 기업무를 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4장에서 좀더 깊숙이 이야기하려고합니다. 이곳에서는 영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나도 먼저 기업무를 자가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기업을 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온 청년관원은 다 지키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거짓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죄악을 보지 완전히 지킨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기업을 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사는 사람을 숨이 막혀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룻은 기업무를 자를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타작마당에서 만났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에 다섯 처녀는 들림을 받고 다섯 처녀는 들림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르바는 쓰임받지 못하고 룻은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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