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序
떡집, 베들레헴으로 와서도 신분이 상승되지 않았습니다. 계속 미천한 신분에 이삭을 줍는 일입니다. 룻은 아침 일찍 밭으로 나가면서 어머니에게 문안 인사드립니다. 나오미는 지친 음성으로 ‘내 딸아 갈지어다’합니다. 룻은 베들레헴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이삭을 주우러 나가지만 마음속에 조마 조마합니다. 왜냐하면 혹시 자신을 좇아내지 않을까봐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밭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룻은 축복의 작은 공을 쏘아 올리기 위하여 나갑니다.
1. 내 딸아 들으라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보아스는 귀족이고 그리고 동내 유지이고 밭의 주인입니다. 룻은 이방여인이고 과부이고 보잘 것 없는 이삭줍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녀에게 딸이라고 하면 은혜의 호칭인 것입니다.
식당 여종업에게 부르는 호칭 언니라고 부릅니다. 재벌이 부를 때 어이라고 부릅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향하여 부를 때에 국민 여러분이라고 부릅니다. 딸은 오직 아버지와 어머니가 여자 아이에게 부르는 호칭입니다. 주로 아버지가 딸에 부르는 호칭입니다. 엄마는 아들을 좋아하고 아버지는 딸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딸이라고 하면 모든 것을 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딸에게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딸에게는 계산하지 않습니다. 딸에게는 목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사랑으로 다가갑니다. 그냥 베풀고 싶고 나누워주고 싶은 것이 딸입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유산을 주고 돈을 주고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예뻐서 잘생겨서 2) 착하기 때문에 3)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 아들이고 내 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반찬이 없으면 반찬없다고 짜증을 냅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신경질 내면서 부모에게 요구합니다.
저희들이 집을 물려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우리 사모가 우리 아들에게 매달 10만원씩 우리은행에 가서 주택마련 적금을 들어주었습니다. 서울에서 1억, 2억가지고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보아스를 항상 생각할 때에 예수님을 생각하셔야합니다. 룻기 강해를 끝날 때까지 보아스를 예수님 처럼 생각하시면 은혜가 됩니다.
룻이 그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룻은 신랑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의 은혜를 받다가 예수님이 천군천사들과 함께 마지막 날에 신랑되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모든 신부들이 다 주님을 맞이하여야합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등불을 잘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말세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2. 건드리지 말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이곳에서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는 2가지입니다.
첫째로, 물질적인 건드립니다. 이삭을 줍는 일에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로는 남성이 여성을 건드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힘있는 남성들이 여성을 건드리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됩니다.
베들레헴에 들어왔고 보리 추수 때지만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좋은 밭주인을 만나 이삭을 줍고 하루는 먹을 수 있는데 내일이 보장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일용직 일꾼처럼 비가 오면 일할 수 없습니다. 일감이 없으면 인력사무소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미래가 보장되어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지만 내일은 어느 밭으로 가야할지 모른 삶입니다.
■ 우리 가정에 이러한 적이 있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고 그리고 거처가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정한 직장이 없고 벌이도 없을 때에 친척가 할아버지집에 손 벌릴 상황도 아니였습니다. 우리집은 논산 가는 길에 원정리라는 곳으로 무허가 건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완전히 촌입니다. 농촌입니다. 제가 군생활을 마치고 집에 있는데 원정리 집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필리핀에 있을 때에도 원정리에서 살았습니다. 군생활 마치고 복학하기 전까지 다림방 국수집에서 한달에 15만원을 받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학비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한일정공이라는 회사에 나가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에 출근하여 저녁에 퇴근하며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데 대학 졸업하고 취직은 하지 않고 신학을 간다고 하니 얼마나 우리 어머님이 우시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졸업하여 순복음인천교회에서 우리 사모를 만나서 결혼후 개척하기 전까지 매달마다 30만원씩 대전 집으로 붙여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형편이 낳아지셔서 대전으로 이사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가운데 부모님은 예배를 잊지 않고 드리셨습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매일 기도하셨습니다. 그 결과 모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생활하고 있습니다.
3.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땅 주인 보아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미래를 보장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내일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냥 저냥 살수 있는데 내일이 보장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걱정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
사람들은 살면서 수많은 걱정을 하고 살아갑니다. 길을 갈 때 차량이 나를 치지 않을까?하는 걱정, 코로나에 대한 걱정, 물질의 걱정, 수많은 걱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미리 걱정한다고 한자나 우리의 키가 크는 것이 아닙니다. 한 날의 걱정은 그날 족한데 계속적으로 걱정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인간입니다. 내일 걱정 뿐만 아니라 10년 뒤, 20년 뒤의 걱정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준비와 걱정은 다른 것입니다. 준비는 미래를 위하여 잘 살아 갈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고 걱정은 준비하지 않고 막연히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개미처럼 준비를 하되 걱정하면서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걱정과 근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하고 준비합니다.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라도 국방을 튼튼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군비의 경쟁적인 준비로 인하여 서로 전쟁하게 되고 상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군비 경쟁이 정말 위험한 상황까지 올수 있습니다. 더 좋은 무기를 계속 만드는 것은 그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혹시 큰 전쟁이 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스트라제네가를 맞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화이자를 맺고 싶었습니다. 60세 이상인 사람들은 아스트라제네카를 맞아야합니다. 그런데 맞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뉴스에서 부작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백신을 꼭 맞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족을 보호하고, 그리고 목회자로서 성도를 보호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잘 다니는 동네 의원에 가서 혹시 예약하고 맞지 않는 화이자 백신을 맞을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연락이와서 지난 주간에 백신을 맞았습니다.
사탄은 하루하루를 유혹하고 타락하게 하고 소망 없게 하지만, 성령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꿈을 주고 미래를 보장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보면 이러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손해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보면 내 생각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복을 받으면 내 생각과 내 이론이 아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살아합니다. 삶도 주일예배도 물질 드리는 것도, 모든 면에서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2) 왜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하였을까요?
보아스는 룻에세 울타리를 처주었던 것입니다. 보호하고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밭으로 가면 그러한 보호와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때로 우리교회보다 다른 교회가 더 커보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보다 세상의 밭이 더 커보일수 있기 대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울타리를 떠나서 세상의 밭으로 가는 것입니다.
다른 밭으로 가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더 편한 곳, 다 보기에 좋은 소돔과 고모라고 롯처럼 가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밭을 떠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사탄이 가룟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팔고 그리고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하여 갔지만 종국은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국가, 가정, 교회를 포기하고 더 좋은 곳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국가를 포기하고 더 좋은 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마치 탕자가 아버지집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돼지와 함께 주염열매를 먹고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기 성원순복음교회 밭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밭인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복 받고자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어리석게도 그 복 받을 그릇을 엎어 버립니다. 여기를 떠나 다른 밭으로 갑니다. 왜 여기를 떠납니까? 염려 때문입니다. 그 염려의 실제는 욕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룻이 아무 일 없이 이삭을 줍고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지기까지 견딜 수 있었던 비결이 룻이 믿음이 좋고 심지가 견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은혜입니다.
우리 삶의 현장도 마찮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얼마나 많은 사고를 낼수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다가 회사를 다니다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할수 있는데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종종 사람은 하나님이 네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딸, 내 아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씀하여주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행여 더 힘들면 우리가 영영 쓰러질까봐 하나님이 은연중에 우리를 건들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4. 룻에게 은혜를 !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룻에게 은혜는
1) 이삭을 줍게 하는 은혜입니다.
2) 건드리지 말라는 은혜입니다.
3)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는 은혜입니다. 이곳에서 안전하게 주으라는 것입니다.
4) 물과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은혜입니다.
나는 이방인이고 당신은 유대인이고 지위 있는 분인데 어찌 은혜를 베푸시느냐고 묻습니다. 은혜라는 뜻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방인이고 지위도 없지만 보아스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런 댓가도 없고 받을 만한 자격도 되지 않지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왜 은혜를 베풀어주느냐고 묻는 룻에게 보아스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네가 시모를 잘 돌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고 이곳까지 온 것을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작은 것을 드리지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우리게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중에서도 작은 아이가 물고기 2마리, 보리떡 5개를 예수님에게 드렸습니다. 어린아이의 모든 것을 드린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예수님은 오천명을 먹이고 12광주를 남게 하였습니다. 아마 이 아이게도 돌아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5.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온전한(솰레마)이라는 말은 ‘평화로운, 완전한’이란 의미입니다. 샬롬의 형용사입니다. 즉 하나님의 살롬의 평안이 함께 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상(마쓰코레트)이라는 단어는 ‘임금, 보상, 보답’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보아스를 통하여 완전한 상 샬롬의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평안의 상입니다. 보상의 상입니다. 이삭 몇개 줍는 그러한 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이러합니다. 그 밭의 여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게 하는 상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계보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가고 성경에 들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칭송받는 여인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안의 상입니다.
우리 평강이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처럼 일하고 있는데 너무 잘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보수는 너무 작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차량과 성과급을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그러한 상이 아닙니다. 작게 주는 상이 아니라 가정과 교회와 삶에 풍성하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야곱과 외삼촌 나반과의 대화에서도 온전한 상이 나옵니다. 나반은 찔금 주지만 하나님은 한령없이 큰 무리가 되고 부자가 되게하시는 축복입니다. 무일푼으로 갔지만 자녀가 13명입니다. 자신의 부인이 4명입니다. 큰 무리를 이끌고 나오게 하시는 온전한 상입니다.
6. 위로의 은혜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보아스의 말로 인하여 은혜를 입었고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 같지 못하지만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을 들으니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하녀보다 못한 룻을 귀하게 취급하여 주는 은혜입니다. 식사시간에 오라고 하여 같이 먹게 됨의 은혜입니다. 마치 다윗이 므비보셋과 함게 식사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과 같이 식사하는 것과 같이 룻은 보아스 밭 주인과 같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남녀 칠세 부동석이였습니다. 옛날 할아버지들은 남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부엌 한 구석에서 여성들끼리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여동생의 불만이 왜 오빠들은 좋은 반찬 주고 자신들은 맛없는 반찬주고, 오빠들은 밥 밑에 계란을 깔아주는데 자신들은 아무리 뒤져도 없다고 불평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용맹스러운 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온몸에 상처가 있어야하고, 훌륭한 독수리가 되기 위해서는 상처 없는 독수리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상처 없는 성도가 없습니다. 한 순간 순간이 은혜가 아니면 살수 없습니다.
결론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룻처럼 가장 어려울 때에 가장 낮은 자리 이삭줍는 자리로 내려가게 하시지만 하나님은 그 장소에서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
네가 불 가운데 물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하시리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함이라.”
내가 혼자 이룬 것으로 착각하지 마십이요. 하나님의 아니고서는 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니어도 되는 줄 착각하지 말아고 두럽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워야합니다.
은혜 앞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자격없는 자로서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방 여인, 하녀만도 못한 여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펼치시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은혜가 흐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교만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지 않고 은혜를 은혜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은혜가 그들에게 흘러갈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사용방법은 상대방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배우자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능력이 있는데하면서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방송하는 사람들이 인기를 유지하는 방법은 자신은 낮추는 것입니다. 많이 겸손해지 많이 바보가 되는 사람들이 계속 인기를 누리고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결론
이곳이 가장 좋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밭입니다. 이 밭에서 영원한 살롬의 상을 받고 오고 오는 시대에 크게 쓰임받는 귀한 가정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