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021년 오늘이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2019년 겨울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우한폐렴, 즉 코로나19가 시작되었습니다. 2021년 겨울 약 2년동안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예방 목적으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백신을 만들고, 백신만 맞으면 모든 것이 자유롭게 생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변의가 발생되었습니다. 델다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힘을 모아서 80%이상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신을 맞는다고 안전지 않았습니다. 백신을 맞은 사람도 돌파 감염으로 코로나에 걸리는 것입니다. 또 정부에서는 부스터 샷을 맞으라고 합니다. 설상 가상으로 목사님부부가 아프리카 지역에 오미크론이라는 점염병을 수입하여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석 하였습니다. 다시 사회는 위측되고 정부에는 감염자의 폭증과 위중증 환자의 포화 상태가 되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With covid19가 아닌 다시 국가간에 문을 닫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거리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어떠한 변의 코로나가 또 나타날지, 제2의 오미크로, 아미크로?, 너미크로?이 나올지 두렵고 걱정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모든 국가 모든 사회, 모든 가정들이 탄식소리가 들려옵니다. 연말연시가 즐겁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탄식소리를 들어보십시요. 코로나 환자의 산모가 아기를 낳아야하는데 코로나 병원이 없어서 구급차 안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명동과 가까운 홍대 거리에서는 세입자와 집주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업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이 목숨을 끊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찬송가 515장 – 1.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자여 어이할고.
이러한 코로나 정국에 저는 월터 브루그만 (Walter Brueggemann)의 책중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라는 책을 중심으로 몇주간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구약에서의 전염병
1)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전염병이 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평만 하다가 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는 놋뱀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의 교만으로 인구조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 칠만 명을 죽습니다.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하는 심판자 천사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멈추어 서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전염병을 주십니다.
열 가지 재앙 중에 다섯 번째 재앙이 전염병(출9:3)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 애굽사람과 바로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기 위하여 나타낸 전염병입니다.
3) 하나님의 신비(욥기에서 나타난 병)
욥은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께 바르게 살고 있었던 의인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통당하는 여러가지 이유를 이야기할 때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는 것입니다. 질병, 고통, 탄식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글로 설명할 수 없는 탄식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4) 코로나 19도 지내면서 하나님의 경고하심도 있고, 하나님의 심판도 있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코로나19 상황속에 꼭 잊지 말아야할 것은 비이성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풀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과학자들, 의학자들, 정직한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조언을 들어야합니다. 성경은 과학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증세시대에 갈릴레오의 지동설 바로 그 예입니다. 성경은 과학적입니다. 성경은 모든 과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성경을 풀지 못해서 그렇지 성경은 언제나 과학적이지 비과학적이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이것다 저거다 너무 빨리 말하거나 추론하거나, 교회나 목사님의 이익을 위하여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비 합리적으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피조물의 탄식
로마서 8장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1) 탄식과 고통의 시작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령을 지키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탄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자에게는 노동의 탄식, 여자에게는 해산의 탄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 노아시대 탄식: 수 많은 사람들이 물 속에서 죽음으로 수 많은 탄식들이 있었습니다.
3)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탄식: 바로의 학정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 많은 탄식을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4) 출애굽시의 탄식: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기 위하여 바로에게 제안하지만 바로가 듣지 않음으로 애굽백성들의 탄식 소리가 온 땅에 가득한 것을 보게됩니다. 가장 대표적인이 마지막 제양입니다. 모든 애굽의 장자들이 죽어나갈 때에 수많은 애굽사람들의 탄식이 유월절 절기에 있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5) 다윗 시대의 탄식: 사무엘하 24장 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전염병의 원인은 다윗의 인구조사입니다. 다윗의 인구조사의 목적은 세금부과와 군대징집 대상자를 파악입니다. 일종의 교만입니다. 자신의 허세를 자랑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다윗이 선택합니다. 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삼종 세트는 기근, 칼, 전염병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기근은 자연으로부터, 칼은 이웃나라로부터, 그리고 전염병은 하나님으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부터 자비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14절에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긍휼이 여길 것이라고 확신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6) 자연의 탄식: 천연자원의 고갈로 인하여 지구가 공멸한다는 과학자들의 이야기, 화석(석탄)에너지로 인하여 대기환경의 질이 악화되지만 중국과 미국이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G8, APEC 정상회담 등을 통해 에너지효율, 신재생에너지 등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최우선 과세로 추진하려고 하지만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소차가 나오고, 전기차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지만 점점 지구는 파괴되고 있습니다.
북극에서 북극곰이 어려움을 격고있고, 남태평양 나라들이 침수되고, 빈민국들이 프라스틱 쓰레기로 산태미처럼 쌓이고 있습니다. 소와 닭과 돼지들이 집단 폐사를 당하고 동물들의 탄식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탄식의 소리는 하나님이 만들 놓으신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짐승과 자연의 신음 소리인 것입니다.
인간들 중에 가진자들의 교만, 음난한 세대의 역풍으로 전염병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로인하여 하나님이 전염병을 주신 것은 조금 느긋하게 살아라, 움직이지 말아라, 관대하게 살아라, 정부에서 좀 나누워주고 살아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를 지구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높은 고층의 빌딩을 뉴욕, 런던, 파리, 동경, 서울, 마닐라에 건축함으로 지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맨틀을 흔들어가며 자신의 몸(지구의 몸)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지구가 공전하고 자전하면서 운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부림, 지구의 탄식입니다.
2. 성도들의 탄식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모든 인류가 그날을 예수님이 오신 날로 지키면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 때를 상상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에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온 천하로 영을 내려 다 호적하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도 호적하러 자신의 고향 즉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사관(여관)이 없었습니다. 다른 투숙객들이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여관 마굿관을 빌려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는 구유(말이나 소의 밥통)에 아기를 낳고 그 곳에서 첫번째 성탄절을 맞이합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마귀의 세력이 헤롯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유대의 왕이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두살 아래의 모든 남자 아이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어린 싹은 잘라야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대지역에 모든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는 탄식소리가 온 동내마다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탄식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아이들이 죽음을 당하는 고통가운데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들의 탄식은 우리 죄 가운데 있고 죄의 유혹에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공중권세 잡은 마귀의 세력에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롬7: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사람들은 죄악을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그 죄악을 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을 이길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이길 수 없습니다.
새로운 축복은 고통이 따른 것입니다. 탄식이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출생할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심한 탄식과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죽음과 같은 고통 뒤에 출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더 순수해지고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은 바로 고통의 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탄식하고 있을 때에, 바벨론에서 탄식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cs 루이스는 탄식과 고통은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메가폰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가 탄압받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카타콤을 숨거나 순교를 각오하고 살았습니다. 그후로 313년이 될 때까지 점점 로마 사회로 스며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네 콘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승인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도 처음 기독교가 들어올 때에 130년 경에 기독교는 아주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유교와 불교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1970년 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온 동네가 그리고 각 기관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마치 1980년 운동권 학생들이 각 기관에 스며들어 모든 조직에 운동권 학생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입니다. 로마 교황청에 부패가 발생한 것처럼, 우리 기독교도 부요함으로 부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전하고 잘되면 부패하고, 썩어지는 것입니다. 그 썩어짐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탄식 거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코로나19인 것입니다.
이것을 통제의 상실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 밝은 이야기,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우리가 안락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탄식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어는 가정의 탄식은 수능으로 인하여 불합격한 학생이 있습니다. 탄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학교에서 학점이 F가 나오고 이제 학교를 그만 다닐 상황이 다가오게 되었을 때에 탄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간증을 금요철야시간에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술먹고 놀음하고 그리고 들어와서 어머니와 가족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누님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식모살이를 하였다고 합니다. 형님은 깡패가 되었고 자신은 마트에서 물건을 흠치다가 걸려 형님에게 정말 많이 많은 기억을 간증하였습니다. 그리고 형님 입에서 ‘교회다니라’고하는 말속에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그리고 목회자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개척을 하는 곳마다 안되고 작은 교회로 초대를 받아서 살고 있는데 지하실 사택에서 사모와 자녀들과 함께 살면서 화장실이 밖에 있기 때문에 오강을 놓고 살았는데 아들이 백일장에서 오강과 홍수라는 제목을 대상을 타게 되면서 다시 개척하여 부흥하기 시작했다는 간증입니다. (목사님의 탄식)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탄식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 않고 살아가기시를 바랍니다.
3. 성령님의 탄식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자연의 탄식이나, 성도의 탄식은 우리가 잘못하여 탄식하는 것이지만 성령님의 탄식은 우리가 바르게 살도록 하기 위한 중보의 탄식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시는 탄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탄식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바르게 살 것에 관한 탄식입니다. 사람이 빌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못하고 세상으로만 향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간구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탄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탄식은 인생의 문제보다는, 삶의 곤고함 보다는, 생활의 어러움보다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고 있는가하는 탄식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땅에 보내셨는지 알면 우리는 지금 바르게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부자이든지, 권력자인든지, 학자이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이 성령님의 탄식을 듣게 될 때에 인생을 바르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