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구절

로마서 5장 20절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기적들을 매일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입니다. 성경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예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는 2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은 기적이 거의 없습니다. 둘째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몇가지 밖에 안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 롯을 위하여 중보기도한 일,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하여 아들 이삭을 얻게 된 일, 그리고 아들 이삭을 드리는 일이 가장 큰 기적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도 하나님은 일상의 신앙생활 통하여 우리를 축복하시고 아주 중요한 순간에만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이렇게 평상시처럼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면 살아갑니다.

오늘은 은혜 두번째 이야기, 이해 안되는 은혜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이해 안되는 은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

이사야 55장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누가복음 15장 3절-7절에 한마리 잃은 양을 찾겠다고 아흔아홉마리 양떼를 그냥 두고 어둠속을 뛰어든 목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을 찾아 다니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다른 아흔아홉 마리는 들에두고 한마리를 찾는 은혜입니다.

● 마가복음 12장 41절- 44절에 예수님이 한 과부 동전 두닢을 성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헌금을 많이 한 사람들 앞에서 이 과부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다른 헌금한 사람들, 특별히 헌금을 많이 한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하여, 인색함이 없이 헌금한 과부를 축복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 마태복음 20장 1절- 16절에 예수님은 포도원에 품꾼을 쓰는 중에 해뜰 무렵에 온 농부와 해질 무럽에 온 농부를 같이 돈을 정산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를 어처구니 없게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지을 때에 돈 주는 사람으로서 일당을 10만원씩 주었습니다. 물론 기술자는 20만원 30만원씩 하시는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당을 10만원씩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감시간 1시간 전에 왔는데 10만원 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만 설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해뜰 때 온 기술자는 8시간 일하니까? 80만원을 받아야하는데 그대로 10만원을 받고 1시간 일한 사람에도 10만원을 주시는 주님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해 할 수 없는 은혜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어리고 개구장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재능을 주셨습니다. 반면에 독실한 성도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는 재능을 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어처구니 없이 하시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십니다. 인간은 자기가 경험한대로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다윗에게 수많은 여인들 착한 여인들이 많은데 요부처럼 비처지는 밧세바를 통하여 다윗의 왕위를 얻게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지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제 머리속에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니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태복음 20장 13절..)

살리에리여, 내가 모자르트를 후대하는것이 그것이 잘못이냐. 내가 다윗을 후대하고 밧세바를 후대하는 것이 잘못이냐,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내가 이 과부를 후대한 것이 잘못이냐,

로버트 파라 케이폰의 말처럼 세상이 계산 장부로 구원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아니라 모세을 통하여 구원을 받아야합니다.

2. 정말 이해가 안되는 은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는 말씀은 은혜가 더욱 넘치기 위하여 죄를 더 많이 지어야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라는 놈은 정말 인간의 몸속 깊이 파고들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죄를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죄, 죄가 더 많아지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더 많아진다고요. 죄를 벌로 짖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엉청나게 느끼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설령 죄가 없다고 하여도 작고 큰 죄들은 다 있습니다.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의인으로 구원받은 성도로서 살아가게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격없이 거저 주어진다는 것과 주도권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실상을 알면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거두워들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늘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사람입니다.

아동을 학대하고 어린 여성을 성추행하고 난뒤에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고 반성이 없다면 은혜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혜는 받을 이에게는 값없는 것이지만 주는 이에게는 전부를 주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맘좋은 외할머니의 호의가 아니라 자신의 온 몸을 다 주는 것입니다.

마지막 황제를 보면 중국의 마지막 황제로 등극한 소년이 휘하에 수천명의 내시를 거느리고 마술처럼 호화롭게 살아갑니다. 한번은 동생이 황제가 잘못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소년 황제는 내가 잘못하면 딴 사람이 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시범 삶아서 단지를 깨뜨리자 과연 신하 하나가 매를 맞는다. 예수님은 이 순서를 뒤집으셨다. 종이 잘못하여 왕대신 예수님이 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학입니다. 은혜란 주는 이가 친히 값을 치렀기에 값이 없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시카고 대학교를 방문하자 학생들과 학자들이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바르트 박사님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배운 가장 심오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기자 회견 때 누군가 묻자 바르트는 주저없이 답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캄캄한 곳에서는 먼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이 비치는 곳에 먼지가 떠돌아 다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어둡고 더러운 사창가의 사람들에게나 술로 인하여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마약으로 인하여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돈이였습니다. 냉혈인간입니다. 그런데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다고 결심하여 30세에 신학하여 38세에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죄인이라서 설교시간에 성의를 입지 않고 설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찬송가요 노래인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같은 죄인 살리신를 작곡한 존 뉴톤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서 은혜가 더한 것입니다.

매일 백달러씩 집 앞에 놓고 가는 분이 있습니다. 첫날은 부끄러운 듯이 슬그머니 주었습니다. 둘째 날은 덤덤하게 주었습니다. 셋째 날 당당하게 주었습니다. 다섯째 날 당연하듯이 주었습니다. 여섯째 날은 기대하면서 주었습니다. 일곱째 날은 고마워하기는 커녕 내일도 오겠지하며 주었습니다. 다음주 월요일날은 놓치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더니 왜 돈을 놓치 않고 그냥 가냐고 화를 내었다고 합니다.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 감사가가 없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 처럼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 저도 마찮가지입니다. 공로대로 받고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삶을 살게 하십니까? 제가 청소다하고, 제가 운전다하고, 열심히 중보기도하는데 왜 부흥이 없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보다 어려운 주의 종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이나 해보았느고 하시는 것입니다.

● 하나같이 제자들은 돈에 밝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뒤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함으로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삶을 살게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저에게 요즘 강하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9절입니다.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받기 전의 모습은 빌립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앞에서 그는 200데나리온 든다고 하시면서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수 없다고 계산적으로 예수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계산적인 사람이 바로 가룟유다입니다. 그가 그렇게 이치에 밟지 못하면 회계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부워드리는 나드 한근이 바로 300데나리온이라고 하고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워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가만 두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또한 무대포 기질이 있지만 그가 고기를 잡았는데 그 뻘떡거리는 고기를 한마리 두마리 세고 있는 모습을 통하여 이물고를 팔아서 돈이 얼말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은 물고기를 세지 않았지만 그는 정확히 세었습니다. 153마리. 베드로가 형제를 몇번 용서할 수 있습니까? 일곱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산수적으로 질문하니까?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번이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490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77번이라고 되었습니다.

우리는 루이스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사해 주셨으면서도 앞으로 수없이 많은 죄를 또 용서해주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에서 대신에 교활하고 속이는 야곱을 복주시는 이유를 알수가 없습니다. 단지 이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들 처럼 야곱같이 사는 여러분들을 축복하시고 오늘까지 살아가게하심의 이유는 이해할 수없는 은혜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사람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볼때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송축해 내영혼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가난한 한국을 택하여 주셔서 그래도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 중의 10번째 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무시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면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3. 모든 은혜의 하나님

베드로전서 5장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목자가 양떼를 두고 찾아나선 양도 나입니다. 아버지가 지평선을 살피며 기다리던 탕자도 바로 저입니다. 빛을 탕감받은 종도 바로 저입니다.

만일 요한에게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신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나는 사도입니다. 나는 복음 증거자입니다. 나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작성했습니다.라고 명암과 책 머리에 써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 요한복음 13장 23절에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저도 여러분들도 다 각자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행한 일도 있고 업적도 있습니다. 성원순복음교회 목사, 서울서부지방회 증경회장, 교단 사무총장등 여러가지 직함이 있지만 그런것들은 다 허망한 것들입니다. 오직 한가지 말씀만 듣고 싶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받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해경스님이 계종한 이유는 아버지 스님, 자신도 중들끼리 싸우다가 법정구속당하게 되었습니다. 교도소에 있을 때에 불경을 갔다 다라고 하니 성경을 갔다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성경과 불경을 비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론이 이러합니다. 예수님은 문제 해결하고 은혜를 주시는 분인데 부처님은 은혜가 없고 문제해결을 못하시는 분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에게 어느 여인이왔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었는데 해결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해결했습니다. 세상의 종교는 자신이 노력하여 복과 극락을 받게 되지만 우리 기독교는 은혜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러합니다. 세상에는 여자도 많이 있지만 내 아내는 우리 사모입니다. 세상에는 남자도 많이 있지만 진짜 내 남편은 목사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자녀들이 있지만 내 사랑하는 자녀는 평강입니다. 세상에 좋은 성도 많이 있지만 성원순복음교회 만큼 귀한 성도 좋은 성도는 없습니다. 세상에 여러 좋은 분이 있지만 오직 예수님이 제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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