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7절이하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인간은 3 종류의 사람으로 부분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짐승들과 같이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입니다.
시 49: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 49:13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셀라)
둘째로 이성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신뢰가 있어야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서로 믿고 신뢰할 때에 그 사람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신뢰가 없습니다. 늘 거짓말하고 속이는 집단들입니다. 그래서 배고프고 힘들게 사는 것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사회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과 미국을 능금 사과를 수출하는데 이 사람이 정말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 위부분에는 좋은 것을 집어넣고 밑에는 썩은 것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수출하였습니다. 미국 일본은 정직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이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크래임이 걸리게 되고 그리고 쪽박을 차게 되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기독교에 대하여 비 호감적인 목사님 아들이 있습니다. ‘나꼼수’의 진행자인 민주통합당 김용민(38·서울 노원갑) 후보자입니다. 그는 ‘한국 교회는 범죄 집단, 척결 대상…누가 정권을 잡아도 무너질 개신교…” 막말을 하였습니다. 홍익교회원로목사님이 아들을 바르게 함고 의로 교육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목회자의 자녀들이 비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영적인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이성적인 믿음은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신뢰, 신념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신뢰나 신념이 아니라 영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성적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예수님이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납니까? 여러분 사람이 심장이 멎고 그리고 뇌가 멎으면 세포가 죽고 뇌세포가 죽습니다. 그래서 심장이 멎으면 빨리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심폐소생술을 하고 그리고 병원에 대리고 가야합니다. 4분이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언제가 우리 법섭이 선생님이 2부예배 때에 의학에 전반적인 사항들을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방학기간에 7월이나 8월달에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예를 통하여 함께 그 믿음을 알아보도록하겠습니다.
아브람을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갈대야 우르에서 아버지의 우상을 찍었다는 내용이 없으니까? 아브람도 우리처럼 믿음과 신앙이 확신이 없었던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죄를 덜짖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아브라함도 우리처럼 똑 같이 거짓말하고 삶에 애착이 많은 사람이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으로 인하여 양식이 많은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에 사래가 아리따운 여인인고로 애굽사람이 자신을 보고 죽이고자할 때에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니라 나의 누이라고 거짓말하게 하였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사래의 아리따움을 보고 자신의 궁으로 들어오게 하고 아브람을 후대하여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나귀와 약대를 얻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아브람을 불러서 내가 어찌하여 그리고 아브라함의 가족을 애굽에 출애굽시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한번만 거짓말 한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아비멜렉에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자기의 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랄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였고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고 그에게 임하여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이라고 말씀하였고 그녀는 남의 아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게 되었습니다. 왜 아브라함의 씨를 맺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창세기 15장에 받았지만 창세기 16장에는 하갈을 통하여 자식을 출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이스마엘 중동에 늘 전쟁의 소리가 끝이지 않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 100가 되었을 때에는 믿음이 조금더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칠때의 나이가 127살입니다. 그의 아들의 나이는 37세입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을때가 90세 입니다. 127세를 살았으니 답은 37세가 나오네요.(★사라가 일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창23:1])
이삭이 작은 나이가 아니였고 청장년시절이니 137세된 아브라함이 자기를 죽이려 할 때 늙은 아버지에게 한번만 뿌리쳐도 거절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삭의 순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은 무엇인지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었음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죽은 것같은 나를 살리시고, 죽은 것 같은 성원순복음교회를 살리시고, 여러분 물질이 죽은 것을 살리신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질병으로 죽은 몸을 살리신 하나님입니다. 김옥자집사님입니다. 얼굴을 많이 펴지게 하셨습니다. 우리 김재복집사님의 몸을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죽은자를 살리신 믿음은 바로 창세기 22장의 말씀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백세에 자식을 주셨으므로 이 아들도 살려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위대함이 바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창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이 믿음이 바로 신약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위에 완전히 죽이고 3일만에 다시 살리셨던 것입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완전히 죽은 것은 3일째입니다. 입관할 때에도 살아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3일만에 살아났다는 사실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죽은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듯이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에스겔 골자기에서 마른뼈들을 살리신 것과 엘리사 사르밧과부의 아들을 살린것을 믿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3명의 사람들을 살리고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리고 그리고 사도바울도 청년 유도고를 살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처럼 물론 갈등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 갈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갈등을 내 마음속에서 몰아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믿은 적극적인 사고 방식과 다른 것이빈다. 적극적인 사고 방식은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이고 긍적적으로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믿는 믿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사고 방식보다는 낮지만 적극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린다는 믿음의 마음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2.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는 믿음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음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이 부르시고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듣고도 85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14년 동안을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 부녀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마음속에서 내 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7장에 99세의 나이에 아브람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하지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하라 내가 심히 번성하여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고 네 후손이 가나안땅에 거하며 영원한 기업이 되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기전에 이름을 먼저 마꾸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무엇입니까?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바꾸어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열국의 어미와 열굴의 아비가 되게 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아들을 낳을때에 너무 연약하게 낳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마음속에 아들이 건강하도록 자라도록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평강이라고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치료는 여러분이 시인부터하여야합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건강하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나는 건강하다. 건강하다. 건강하다. 건강하다. 자꾸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나는 복 받았다. 늘 일어서나 앉으나 말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긴다. 나는 이긴다. 나는 이긴다. 나는 이긴다. 나는 이긴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네 입에 말로 네가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네가 사로잡혔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미국선교사 언더우드의 기도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없은 것을 있는 것이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믿고 한국땅에 왔습니다.
“…이 작은 나라가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세계 육상, F1 자동차 경주 등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안 한 것이 없으니. 아시안게임도 인천까지 치면 3번이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까지 성공하면 인구·국토 대비 세계기록이 될 것이다. 그것도 25년 남짓한 기간에 말이 다. 인구 4500만 규모의 나라에서 국제 항공사가 둘인 나라도 드물고 자동차 회사가 5개나 되는 나라도 없다. 공항도 인천국제공항을 포함, 적자인 지방공항까지 모두 15개나 된다. 신문도 100여 개가 되고 방송도 이렇게 많은 나라는 세계에 없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무엇 하나 ‘세계적’인 것을 붙들고 늘어지려니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우리는 금메달은 알아주지만 은메달, 동메달은 알아주지 않는다.
몇칠전에 인터넷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삼성이 핸드폰 시장 1등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4년만에 기쁜 쾌거입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심을 의미합니다. 북한과 남한은 차이가 없습니다. 단 한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1950년도에 같이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60년의 환갑을 지낸 지금 북한 거지 나라이고 대한민국은 최고 부자의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있음 그곳에 하나님이 없은 것을 있는 것 같이 하시는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 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성도들입니다. 이제 함께 가는 성도들이 되어야합니다. 어떻게 함께 가야합니까? 누구와 함께 가야합니까? 우리 성도들과 함께 가야합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가야합니다.
서로 존경하고 서로 권면하면서 살아가야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가장 힘든 시대를 승리의 시대로 만들었던 링컨의 힘은 격려 한 줄이었다고 합니다. 비난과 협박 에 시달리던 그가 암살당했을 때 주머니에서 발견된 신문기사 한 조각은 “링컨은 모든 시대 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중 한 사람이었다”라는 격려의 글이었다고 합니다. 미국 작가인 윌리 엄 아더 워드는 말하기를 “아첨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비난해 보아 라. 그러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무시해 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용서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격려해보아라. 그러면 당신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사회속에서 우 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가 힘들어 그 가슴과 머리 사이 45센티미터가 가장 멀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 45센티미터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조차도 한 사람을 심판하려면 그 사람의 사후까지 기다리신 다는데 우리는 이런 여유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3.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음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영어적인 표현 조금 좋을 듯합니다.
18 Who against hope believed in hope, that he might beco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according to that which was spoken, So shall thy seed be.
희망을 저항하다 거역하다….희망이 없는 가운데 희망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을 때에 자신의 몸의 상태를 보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나이 100살이였습니다. 저도 100살정도되면 이정도의 믿음이 될가요? 뿐만아니라 사라의 나이도 90세입니다. 여러분 지동현 권사님의 나이입니다. 할머니에게서 모든 경수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생산할 수없었습니다. 희망과 소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상태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희망과 소망이 없습니까? 기독교는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을 찾느 종교입니다. 절대 희망으로 절대 소망으로 살아야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여러분의 몸이 죽었습니까? 고치지 못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신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믿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형식적으로 신앙고백하지 말라고 내 마음으로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아브라함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신앙의 근거가 바로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5장에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7장에 말슴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부흥강사 피종진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이러한 사실을 듣고 웃었습니다. 어느 시어머니가 자신의 며느리가 애기를 낳지 못하자자 부흥강사 목사님께 기도를 받으러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를 믿음이 없고 시어머니 권사님이 믿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를 이를 며느리는 아멘을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기도를 받고 서어미니 권사님은 아멘 아멘 하고 힘쓰고 용을 썼습니다. 그때 성령님이 시어머니에게 역사하여 시어머니가 임신를 하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물론 이 시어머니는 아직도 경수가 끝어지지 않는 분이겠지요.
민수기 13장에 보면 가나안땅을 탐지하고 온 12명의 족장 두목들이 보고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게 말씀합니다. 10명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그때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보고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 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11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현재 이끌어가고 계시고 먹을것을 아침과 저녁에 내리시는데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신앙의 모습으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 힘이 어디서 옵니까? 찬송가 39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의 후렴 구절에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결론
저는 오랫동안 순복음교회 10년의 부교역자 생활을 하고 그리고 12년을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 장로교회와 다르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 순복음교회에 기적과 부흥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믿음을 가지면 그것이 이루워진 것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삶은 우리가 기도하고 그러한 확신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치료가 되지 않았어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먼저 자식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요단강에 7번 넣기까지 치료가 없었습니다. 여리고성을 13바뀌 돌때까지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돌면 그것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원순복음교회에서 믿음으로 앞으로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