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7절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6년 2월
개역개정 로마서 4장
-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1)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2)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 아브라함이 3)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 아버지가 이 본문으로 자주 이야기하셨고, 우리 편정자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말씀하시는 본문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실 때에 일상의 상식을 믿음으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상식을 밖의 일을 실행할 때에 믿음이 요구됩니다. 믿음으로 천국에 가고, 믿음으로 질병이 치료받고, 믿음으로 물질의 문제가 풀리는 경우를 우리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우상 장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된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장자 르우벤이나, 유다의 자손도 아닌데 하나님은 레위 자손, 저주 받은 자손에게서 모세를 선택하셨고, 바다에 버려진 존재지만 하나님의 극적인 섭리로 공주의 아들이 되어 세상의 향락을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하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지도자입니다.
이새의 아들 중 아버지와 형들에게조차 주목받지 못하고 들에서 양을 치던 가장 천한 자(막내)였으나, 하나님이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사람은 다윗입니다. 이사야 11장 1절은 메시아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
목수의 아들로 나사렛 땅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선택하시고 인류의 구원자로 선택하셨습니다.
한국교단 중에서 통합, 합동, 감리, 성결교회가 대부분이지만 하나님은 나를 우리교회를 순복음교단에서 목회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교단보다 선교사님이 가장 늦게 들어오시고, 그리고 이단 소리를 들어가면서 성령운동한 교단이지만 하나님이 우리 교단과 교회를 사용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 믿음은 바로 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나라 사람도 아닌데 연구를 합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땅에서 활동안 인물도 아닌데 우리는 그 이름을 자주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육적인 것으로 아무 상관이 없지만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같으리라.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인천에서 개척할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모 학교가 인천이기 때문입니다. 인천교회 성도들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상암동으로 올 때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색으로 건너가 수색에다가 개척하였습니다. 우리 장모님, 평강, 우리 사모, 그리고 저혼자서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2년 뒤에 이곳으로 와서 10년 뒤에 교회 건물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은 종종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가지 핑계를 댑니다. 목사님 사람들이 없습니다. 목사님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하는 목회입니다. 목회는 하나님의 믿는 믿음으로 목회를 해야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려분들의 소망을 이루는 공식이 있습니다. 바로 환난, 인내, 연단, 소망입니다. 즉 인내와 연단이 필요합니다 인내와 연단은 헬라어로 버티는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내(휘포모네, Hupomone): ‘아래(Hupo)’와 ‘머물다(Meno)’의 합성어로, 단순히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는 힘을 뜻합니다.
연단(도키메, Dokime): 금속을 제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시련을 통과해 증명된 인격 또는 단단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바이블렉스(Biblelex) 등의 자료에 따르면, 이는 고난을 통과한 뒤 얻게 되는 ‘확증된 신뢰성’을 강조합니다.
환난으로 우리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인내, 즉 버티는 힘을 통하여 연단을 받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소망을 이루는 삶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러했고,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 정지선 세이프
한국의 중식 주방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과 정보의 한계를 느끼고, 본토에서 제대로 배우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혜전대학교 졸업 후 중국으로 건너가 양저우대학교(양주대)에서 중학 요리를 전공했습니다. 처음 유학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언제나 먼 미래를 향하여 나가는 길이 불확실하지만 도전과 연단을 통하여 소망을 이루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 로마서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믿음
-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몸은 죽었지만 하나님은 사라의 몸에서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 히브리서 11장 11~12절
창세기 22장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죽고 난 뒤에 살아난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사람 죽은 자를 살리신 분 나사로를 살리신 분이 부활하셨습니다. 그 분이 부활의 첫열매가 되셔서 우리에게 다른 부활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2)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는 믿음
-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사라의 나이 90세, 생물학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곳에서 출산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절망이 아니라 확신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하나님입니까? 없는 것으로부터 창조하시고, 없는 것으로 부터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인간은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것을 응용하여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이 완성되는 것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나만장군의 순종이 바로 문둥병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는 것이 순종입니다. 100세에 은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도 망설임 없이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산 위에 방주를 지으라고 하였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성경에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는 베테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였을 때에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포기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는 것이 믿음의 순종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밀가루를 엘리야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줌으로서 자신의 생존보다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의지함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순종의 대표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종입니다.“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하였을 때에 부활의 축복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무엘상 15:22)
자기 생각이나 고집을 버리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신앙의 태도를 비유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주님의 명령이라면 소금 가마니를 메고 물속으로 뛰어들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 조용기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이 갈등합니다. 하나님은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이삭을 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때 사람들은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설령 하나님이 이삭을 죽이시더라도 다시 살리실 하나님,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주신다는 확신, 하나님은 살리실 경우 다른 방법으로 주실 줄 믿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확신
1) 아침 일찍이 모리아산으로 향했습니다.
창세기 22장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2) 너희는 여기 있으라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2장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믿음은 입술로 고백도 중요하지만 야고보서의 말씀 처럼 행함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이 다 있는 것 처럼 우리의 믿음도 입술로 고백하고 행할 때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우리의 앞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의 실제적 원리
구분 현상 (눈에 보이는 것) 믿음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
자녀 한 명도 없음 (無) 바다의 모래, 하늘의 별 (有)
몸의 상태 죽은 것 같음 (절망) 생명의 통로 (희망)
이름(정체성) 평범한 족장 열국의 아버지 (매일 고백)
아브라함의 믿음은 환경이 갖춰져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말씀)이 떨어지는 순간 그것을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현실은 ‘없음’이나,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있음’으로 선포해야 할 영역” 선포해야합니다. (사업장, 장막, 자녀)
- 바라볼수 없는 상황
-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랄수 없는 중에 아브라함은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나이 100년, 자신의 아내 90세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현실에는 아들 하나 없었지만(없는 것), 부를 때마다 ‘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함으로써 이미 이루어진 사실(있는 것)로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로 보는 것입니다. 성원순복음교회 건축하였습니다.
너는 망했다 10명가지고 무슨 건축을 하게돼냐. 성서 중학교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바라보고 이루워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설마 세상에서 이룰수 없는 일을 일어나는 것은 믿음입니다.
지구의 나이가 약 45억 4천만 년에 형성되었다고 교과서에서 가르치고있습니다. 그러나 약 6천 년 ~ 1만 년 성경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젊은 지구론’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약 6,000년 정도로 봅니다.
과학과 성경은 맞지 않지만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설령 과학이 맞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6000년까지만 말씀하고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창세기 1장 2절과 3절의 사이를 45만년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참고, 17세기 영국 주교 제임스 어셔(James Ussher)는 창조 연도를 기원전 4004년으로 계산한 바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기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그가 계신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