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7절 #믿음으로
로마서 4장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I.
올해 하나님이 저희 교회와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입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의 정의는 히브리서 11장 1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실상이라는 뜻의 헬라어는‘휘포스타시스’입니다. 이 단어는 두 단어로 구성되었습니다. 휘포라는 밑이라는 뜻이고, 히스테미의 받침이라는 단어입니다. 꽃이라는 실상은 받침대와 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가지와 꽃은 실상인데 실상을 만들기 위하여 밑이 필요합니다. 바침이 필요합니다. 흙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하여 받침대와 흙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받침이 없으면 꽃을 볼수 없습니다.
믿음에 대하여 로마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로마서 4장에 나오은 아브라함의 예를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어려분들과 힘의 3가지 요소에 대하여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신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17절) 2)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18절) 3)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19절) 4)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20절)
II. 로마서에 나타난 믿음에 대하여
1. 없는 것을 있는 것 처럼 믿고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신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17절)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 받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던 중에 하란에 머물렀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가나안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모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롯은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삼촌? (작은 아버지)를 따라서 가나안으로 오게 되었을까? 아버지가 돌아셨든지!, 아니면 아버지보다 아브라함을 더 신뢰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지 10년이 지난 뒤에 85세의 일입니다.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창세기 16장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사라의 도움과 애굽 사람 하갈의 도움으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첩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나이 99세입니다. 사라를 자신의 몸에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였기 때문에 속으로 웃었습니다. 웃음에는 2종류의 웃음이 있습니다. 기뻐서 웃는 웃음, 믿지 못하여 웃는 웃음 비웃음입니다. 사라의 웃음은 진짜 기뻐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의심의 웃음 비웃음일 것입니다.
믿음은 환경이 좋을 때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환경이 나쁠 때가 어려울 때나 힘들 때에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로 지금과 같은 환경입니다. 코로나에서 델타로, 델타에서 오미크론으로, 오미크론에서 어떤 변의 바이러스가 이 세상을 덮을 줄 모릅니다. 특별히 지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과 제주도에서, 특별히 중국과 대만이 전쟁하려고합니다. 미국이 가만이 있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전쟁하려고합니다. 유럽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상점과 가계는 문을 닫고, 교회 또한 문을 닫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환경적으로 믿음 아니면 점점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당장은 없지만 앞으로 분명히 우리 삶속에서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몇칠전에 동생과 통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2021년에 많은 복을 주셨다고 간증하면서 자신의 눈도 치료해주시고, 집도 주시고, 장로직분도 받게 하시고, 딸도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우리가정이 정말 어려운데 우리 동생이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빌딩집 주시옵소서 부자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한 것이 40년 전인데 그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없는 것 같지만 없는 중에 믿고 간구하였더니 하나님이 마침내 야베스처럼 복을 주셨습니다.
2.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18절)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자신의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민할 때에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보고 가나안 땅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99세의 나이가 되었지만 자신의 아내 사라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만 믿음으로 자녀를 주실 줄 믿고 살았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은 소망과 희망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른 이유는 바로 예수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었기 때문에 소망과 희망과 열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말처럼 그가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하여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코로나19 상황속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군생활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군생활 할 때에는 3년의 세월이였습니다. 3년의 세월이 너무 길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탈영하고 사고도 치고 의가사 제대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군생활 잘하는 사람은 군생활을 사랑하기 때문에 해병대도 지원하고 군에서 말뚝을 박고 제대하지 않고 군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생활 하는 사람들은 저처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참자 3년만 참자 날자를 세면서 군에서 제대해야지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군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 믿음으로 치료받은 가나안 여인
마가복음 7장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가나안 여인의 딸이 어떻게 치료받았을까요? 그녀의 긍정인 생각입니다.
먼저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먼저먹고 이방인은 나중에 먹으면 되지 하는 생각입니다. 예수님 이스라엘 사람 먼저 치료해주세요. 그리고 다음에 저희들 치료해주세요하는 믿음입니다. 먼저가 있으면 나중이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입니다.
둘째로 믿음으로 모욕을 참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개 취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그렇습니다. 주여 하지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사람을 개 취급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이 먹이는 주는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이 다 먹고 남으면 남은 음식들을 개에게도 준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에게 다가가갔던 것입니다. 치료의 떡을 아들에게 그 다음은 가축에게 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옛날에 개는 보신용지만 지금 개는 거의 가족입니다. 개를 위하여 돈 쓰는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한 치료가 아니라 자신의 딸에 대한 치료입니다.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딸을 위하여 자신이 개 취급을 받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강에서 의문의 실족사로 죽은 한 대학생의 사건으로 전국이 뒤집어질 정도로 전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장래가 총망한 의대생이요, 겨우 22살의 꽃 같은 나이에 꺾였기 때문이다. 한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터넷으로 통하여 접하게 되었습니다.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는 19세기의 최고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시는 너무나 아름다운 구절로 가득 차 있지만 그의 인생은 그렇게 아름다운 일만으로가득 차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누구 못지않게 쓰라린 경험을 맛본 사람입니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첫 아내는 결혼한 얼마 후에 오랫동안 앓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떠났습니다. 그리고 새로 얻은 재혼한 아내 역시 결혼한 지 몇 년 안 된 어느 날 부엌에서 화재사고를 당해 화상을 입고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롱펠로우가 75세가 되어 그의 임종이 가까운 어느 날 어떤 기자가 그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부인의 사별뿐 아니라 여러 가지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가 있었습니까.”
롱펠로우는 마당에 서 있는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조금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을 끊임 없이 공급받아 인생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3.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확신으로 살아야합니다.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19절),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20절) 확신입니다. (21절)
1) 믿음생활하면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믿음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강하여 교회가 멀리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믿음이 약해져 교회오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교회에서 물질 드리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교회오는 것이 믿음이 생기지 않고 기도에 응답이 생기지 않습니다.
2)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생활하면서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견고해져야합니다. 세상 살면서 풍랑은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부는 매일 바다로 나가야합니다. 믿음의 더 큰 배를 만들든지, 아니면 영적으로 깊은 믿음이 있어 믿음으로 바닷속을 들어가면 풍랑이 일어도 바닷속은 잠잠한 것입니다.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믿음에 의심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가뭄으로 쓰러지 않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나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를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믿음의 뿌리가 나 자신이면 인본주의적인 신앙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하나님이면 신본주의입니다. 신본주의 첫번째 일성(一聲)은 바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는 전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지혜를 얻어서 살아가며 세상에서 정말 능력있게 믿음이 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 1장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9장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3) 확신은 고백할 때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바꿔 부르도록하였습니다. 열국의 아버지, 열국의 어머니라고 바꾸어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창세기 17장 1절로 5절에, 창세기 18장 14절)
믿음은 세상과 전쟁입니다. 영적인 전쟁입니다. 모르드게는 하만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바벨론에서 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하만입니다. 그러나 모르드게는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왜 절하지 않았는가 하고 물으니 나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절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다 모르드게에게 절하였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풍조입니다. 절대 권력자 다음으로 높은 사람에게 줄을 서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하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하였습니다. 목사님도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타협이 필요합니다. 세상과의 타협입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가운데 이러한 믿음있는 말을 하였습니다.
에스더 4장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왕후 에스더가 잠잠하면 다른 유대인들이 이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한다. 왕후의 자리를 얻게 함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모르드게의 선한 영향력이 에스도에게까지 번저 갑니다. 믿음의 선한영향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또다른 믿음의 증거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올해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풍랑가운데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이 어디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눅8장 24절 15절)
2022년을 살아가는 성원순복음교회와 모든 모든 대한민국의 성도들이 다 믿음으로 코로나를 이기시기를 기도합니다.
벧전 1장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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