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5장 11절, 마가를 데리고 오라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주일설교
디모데후서  4장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2.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1. 마가 요한의 어린 시절
마가의 유대식 이름은 요한입니다. 히브리어 발음으로 요하난, 요나라고 부릅니다. 마가는 로마식 이름으로 로마에서 흔한 이름입니다. 요하난, 요나로 부릅니다. 망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마가는 외삼촌 바나바입니다. 어린시절 제법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가정을 내 주었습니다. 그것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 최초의 가정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120명이 모일 정도이면 큰 부자임을 알 수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다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별로 가난의 고통을 격지 않았고, 넉넉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교육도 잘 받았던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12장 5절에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에 마가 요한의 집에 갔을 때에 로데라는 계집아이가 있었던 것을 보면 종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자주 예배를 드렸으므로 로데라는 계집아이는 베드로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베드로가 문을 두드릴 때에 베드로라고 단번에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2장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마치 우리나라에서 가정교회로 성장한 소망교회와 마찬가지입니다. 1977년 8월 24일 곽선희 목사 외 11명의 교인이 모여 삼일기도회[1] 모임을 시작한 것이 교회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후 같은 해 10월 2일 압구정 현대아파트 11동 1101호에서 창립예배를 드리고, 이듬해인 1978년 6월 25일 현대아파트 상가로 예배처를 옮겼다고합니다.
  1. 청년의 시기 (한 청년이 벗은 몸으로 도망하다)
마가복음 14장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1. A young man, wearing nothing but a linen garment, was following Jesus. When they seized him,
  2. he fled naked, leaving his garment behind.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나오지 않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자신이 직접경험한 내용을 적은 듯합니다. 한 청년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신의 이름대신해 한 청년이라고 표현한 것같습니다. 부끄러운 장면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잡혔다는 것을 알고 도망친 그것도 옷 다벗고 도망친 사건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garment로 쓰여졌습니다. 이것을 번역하면 외피입니다. 또는 옷, 다른 표현으로는 세마포 옷입니다. 특별히 부유한 사람들이 입은 옷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화가가 캔버스 한구석에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처럼 마가가 자신의 복음서에 자신의 카메오를 포함시켰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2세기 초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인 파피아스는 예수의 생애 동안 “마가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그분을 따르지도 않았다”(Eusebius, Hist. Eccl. 3.39.15)고 선언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벌거벗은 도망자가 나사로나 아리마대의 요셉, 또는 다른 사람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3세기 콥트어 원고에서 각주가 청년을 전도자 마가(또는 요셉의 아들 야고보)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가 이 불행을 빠뜨렸다는 사실은 분명한 신학적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생략한 듯합니다. 왜냐하면 마태와 누가는 마가의 개인적인 일까지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은 은 30냥에 팔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이 체포당하자 (14:43~49)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50절). 젊이라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데 젊은이로 하기는 나사로가 나이가 많이들었고, 아리마대 요셉도 날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젊은이는 바로 마가 요한인 것입니다.
마가요한은 옷을 벗고 도망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나, 사도 베드로도 자신이 예수님을 3번 부인한 사건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섰던 일들을 정직하게 기술함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마가 요한은 예수님의 추종자로서 살다가 도피자로 평가받고 벌거벗고 도망치는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마저도 자신을 주의 종으로 주의 말씀을 기록하는 자로 쓰심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경고 너희들 다 나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장담합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예수님 따르겠다는 항변 (29절). 그러나 이제 예수님의 제자 모두가 도망치고 예수님의 수제자는 부인하고 저주하고했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예수님 앞에 나오는 모든 사람도 다 부족한 사람들이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 마가과 외삼촌인 바나바
마가는 외삼촌 바나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바나바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들을 직접체험한 베드로 사도에게 설교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를 자신만을 위하여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워주고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소요한 땅, 밭, 돈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이 목적이 아니였기 때문에 그것을 팔아서 주의 종의 발 앞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마가가 보았던 것입니다.
화초 처럼 자란 마가는 외삼촌 바나바의 영향을 받아서 젊은 나이지만 주의 일을 돕는 자가 되었습니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처럼 자란 아이였지만 바울과 바나바의 제 1차 선교사역에 참여하였습니다.
  1. 마가의 실패 (제1차 선교여행)
사도행전 15장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1.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2.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어머니 마리아는 천사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풀어줄 때에 자신의 소유한 집으로 도망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가요한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도 준비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게 잘 신앙교육을 받은 마가는 외삼촌인 바나바를 따라서 선교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키프로스를 떠날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그들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사도행전 13장 4절) 학자들은 설명은 마가가 향수병이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들고 어떤 학자들은 여태까지 그런 고생의 길을 걸어 보지 못한 이유였기 때문이지요. 배고픔이라든지, 강도 떼라든지, 생명의 위협 같은 것들은 자기 인생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지요. 그런 요인들이 그의 길을 비시디아 안디옥이 아닌 자기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이키게 한 것이었지요.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그 험준한 타우루스 산맥을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선교여행을 떠나려고할 때에 바나바는 그들 다시 대리고 가자고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핍박하는 하였다가, 자기가 사도들에게 강력추천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스데반집사를 죽이는 일에 앞장 섰기 때문에 그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나바의 강력한 추천으로 주의 일을 하게 되었으므로 자기 외조카 마가도 그렇게 하였으면 좋겠다고 강력하 요구하므로 그들이 둘이 갈라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극도의 의견 불일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모든 불일치는 우리의 실패가 아닙니다. 성도들의 불일치는 다른 두 방향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두 길 모두 영적인 유효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쪽이든지 상대방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1. 마가 사명 (베드로의 영적 아들)
베드로전서 5장 13.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베드로는 결혼했습니다. (막1:30), 베드로의 친아들이라고 의심할 수 있지만 영적이 아들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4장 10절에 베드로의 아들이 아니라 바나바의 사촌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 이렇게 아들이라고 쓴 것은 애정, 영적인 관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자식처럼 귀한 일들을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주의 일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 사도의 모든 말씀을 들을 기록하였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등을 기록하여 마가복음을 남겼습니다. 신약성경의 가장 근원이 되는 성경입니다. 마가복음에게서 마태복음이 나오고, 마가복음을 통하여 누가복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의 근원적인 복음이 없었다면 그 토대가 없었다면 다른 복음은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일들을 한 분이 바로 마가입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경험한 모든 부분들을 적어 놓았기 대문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공간복음이라고합니다. 공관복음이란 공통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고 하여 공간복음이라고합니다.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영적인 아들, 사도 바울의 동행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기원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 10년 동안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네 복음서 중 가장 짧고 가장 이른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태와 누가가 복음서를 작성할 때에 마가복음 내용의 90% 이상 마태복음에 인용하였고, 50% 이상이 누가복음에 인용하였다고합니다.
마가복음 문학적인 세련미가 부족하지만 단순하고 직접적인 화법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베드로에게 받아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1) 마가복음 1장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그리고 7절에는 세례요한보다 더 크신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분 만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분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막 2: 6-12).
2) 자신의 패배자입니다. 도망자입니다. 예수님을 버린 도망자이고 자신을 믿고 도와준 바나바와 사도 바울을 버리고 도망친 자입니다. (행 13:13)
그런 자신을 사용하신 예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읽을 때에 마가 요한에 감사합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을 사용하셔서 아름다운 복된 말씀을 증거할 수 있도록 도구로 쓰신 예수님께 감사합니다.
  1. 사도 바울과 마가 (데리고 오라)
디모데전서 5장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2.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많은 이유로 오직 누가만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두번째 투옥하고 이제 마지막 임종을 앞둔 사도 바울은 마가를 언급하며 그를 칭찬하는 구절입니다. 1차 전도여행 때에 자신을 떠났지만 마가는 나중에 바울이 로마에서 처음으로 체포되는 동안 바울과 함께 나타납니다(빌레몬서 1:24).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마가가 그와 함께 로마에 있었다고 말하면서(골로새서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로마에 있을 때 마가는 사도 베드로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인 마가복음을 기록되지 않았을까하는 추축을 하게됩니다.
마가는 말년에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우고 이집트에서 선교 활동에 전념하며 헌신된 봉사자로 살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상한 갈대와 같았던 겁쟁이 실패자의 모습을 을 떨쳐 버리고 자랑스런 천국 백성이 된 성공자 마가가 보여준 승리는 성령과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가 소유해야 할 믿음의 자세이다.
결론
마가는 베드로의 사역을 돕고 베드로의 말씀을 통역하였습니다. 마가 요한은 헬라어를 잘하였기 때문에 로마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베드로의 사역을 도왔던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라멘트는 베드로의 설교와 베드로가 간증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최초로 마가복음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Q문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잡힐 때의 도망, 제 1차 전도여행의 이탈이 있었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주의 일을 힘써, 사도 바울에게 필요한 사람, 사도 베드로에게 영적인 아들로 성장하게 되었고, 세계 최초의 예수님의 삶의 흔적인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주홍글씨의 A인 간음이라는 단어가, Able, Angel(천사)로 변화되듯이, 장발장의 빵 도둑이 변하여 새로운 삶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듯이 우리는 한번의 실수를 통하여 낙심하지말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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