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3장 1절 새벽기도회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24년 4월 23일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서신서 중에 제일 먼저 쓰여진 책이 데살로니가 전후서입니다. 서신서 중에 제일 나중에 쓰여진 책이 디모데전후서입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예수님이 오시고 난뒤에 20년 전후로 쓰여진 것으로 추론 됩니다. 그 당시의 주요 신학적인 잇슈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사상입니다. 예수님이 곧 오시겠다고 하시면서 일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재림의 바른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는 AD 63년에서 65년 경으로 추정되명 64년 경에 로마에 큰 화제가 나게 되었습니다. 14개의 행정구역이 있는데 3개 구역은 완전히 전소되었고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 예), 7개 구역은 절반이 전소 되었고, 4구역만 안전한데 이지역에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음으로 유대인으로 기독교인들이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감독의 직분을 받을한 주의 종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미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을만하다라는 뜻입니다. 주의 종이나 성도들이 믿음만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믿을 만하지도 못한 주의 종이나 성도들을 어떻게 직분자로 세우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있는 장로들과 함께 울면서 헤어지는 장면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29절에는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감독이라는 단어를 감리교회에서만 쓰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총회장, 지방회장과 같은 직분입니다. 당시의 직분은 순교를 각오하는 직분인데 지금은 명예의 직분입니다.
감독자의 성품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첫째 성분은 책망을 받지 않는 자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책망받을 만한 자을 세우는 기관이 어디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존경받고 쓰임받는 사람들을 세상의 관리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는 더욱 더 가치관과 신앙관이 분명해야합니다.
둘째로 한 아내의 남편이 된자를 선택해야합니다.
요즘은 모두 한 아내의 남편된자 였지만 당시의 디모데의 상황속에서는 여러가지 음난이 만행했습니다. 당시의 여사제들은 신전에서 제사의식을 행하고 저녁에는 창기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도 이혼한 주의 종은 목사직분을 박달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과 아내된 자들이 교회를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가정도 다스리지 못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어느시대나 종교가 탈락하면 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볼 수있습니다. 고려의 멸망가운데는 신돈이라는 사람이 성적인 타락이 있었고, 천주교의 몰락 가운데 수녀와 신부의 음행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타락중에서도 목회자의 성적인 타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교단에서 큰 교회중에 하나가 성적인 타락입니다. (일산, 광명)
셋째는 절제입니다.
기독교의 덕목중에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덕목중에 하나가 바로 절제입니다.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패망하는 모습을 볼 수있습니다.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담배를 절제 하지 못하고, 성적으로 절제하지 못하고, 명예와 사치를 절제하지 못하고,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TV를 절제하지 못하고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넷째로 단정함입니다.
옷을 단정하게 입어야합니다. 주의 종으로 품이 있는 옷을 입어야합니다. Y셔스도 긴팔을 입어야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차량에 여집사님을 태울 때에는 뒷자석에, 여성도 치마를 길게입을 것을 권면합니다.
요즘 담임목사님이 된 뒤로는 옷에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단정하게 입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굳이 넥타이를 하지 않아도 단정하게 입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